운명을 결정짓는 말 – 마태복음 12:22-37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을 중심 하여 얻은 설교 제목은 “운명을 결정짓는 말”입니다.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은 마지막 절인 37절에서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란 말씀으로 결론짓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 속담에는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씀이 있는데, 이 말씀은 누구에게 돈으로 빚을 졌거나 또는 어떤 말로나 행동으로 실수를 하고 누를 끼쳤다 하더라도 그 사람 입에서 나오는 말에 따라 모든 것을 다 용서해 주거나 진 빚을 갚지 않아도 되도록 후한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인 것입니다. 반대로 말을 한다면 말 한마디 잘못해서 원수가 되고 너그러운 대접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말인 것입니다.

얼마 전 택사스에서 사교 집단들의 거처에 불이 나서 교주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죽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놓고 미국 국민들은 클린턴 대통령에게 화살을 날리기 시작할 때 법무장관이 말하기를 이 사건은 내가 잘못 지시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로 대통령은 전연 잘못이 없고, 전폭적으로 내가 잘못한 것이며 내가 책임을 지겠다고 발표했을 때 날카로웠던 화살들이 무뎌지고 오히려 법무장관의 솔직하고 책임 질줄 아는 책임감 있는 말로 인해 높이 평가를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일로 물러나야 할 입장이었는데 솔직한 말 한마디로 생명을 건져낼 뿐 아니라 새로운 인기를 얻었던 일을 기억합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은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하며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음을 교훈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소개받은 우리 모두는 “내가 한 말에 의해서 사람 앞에 사랑을 받고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말씀을 4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1]주님을 훼방하는 바리새인들(22-24)

[2]이에 대한 주님의 반박(25-29)

[3]사하심을 얻지 못하는 죄(30-32)

[4]운명을 결정짓는 말(33-37) 입니다.

 

[1]주님을 훼방하는 바리새인들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은 무리들이 귀신들려 눈이 멀고 벙어리 된 자를 주님 앞에 데려와서 주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벙어리가 말하고 또 보게 되었다는 사건을 소개하므로 시작됩니다. 병자는 눈이 멀었고 또 말 못하는 벙어리였는데 그 병의 원인은 귀신이 들렸기 때문으로 진단되어졌습니다. 영적으로 보지 못하고 바로 말을 못하는 바리새인들은 사탄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는 주님의 암시를 주는 것 같습니다. 눈먼 자가 눈을 뜨게 하고, 벙어리 된 자가 말을 하게 하기 위해 병의 원인인 귀신을 쫓아내므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사실상 이런 능력을 행할 수 있는 분은 분명히 오시기로 하신 “메시아”임을 믿기에 충분한 사건이었기에, 이 사건을 본 무리들이 다 놀라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라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이 사건을 전해 듣고, 만일 그가 귀신을 쫓아냈다면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로부터 능력을 받아 귀신을 쫓아냈을 것이라고 악평을 하는 바리새인들도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빼빼 마른 바리새인들의 종교 행위만을 보아 오다가 주님의 생명력이 넘치는 이적 앞에 신선한 충격을 받고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는 무리들이 있었고, 마음 문을 꽉 닫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귀신의 손발로 악평하는 바리새인들이 있었음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을 통해 반복되어지는 진리이지만 불신하는 무리들은 초자연적인 이적과 기사를 많이 체험해도 불신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한탄하신 “고라신아 벳세다야, 너희에게 행한 이적과 기사를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그들이 이미 베옷을 입고 잿더미에 앉아 회개하였을 것이라”는 말씀은 모든 세대에 적용되는 진리인 줄 압니다.

 

[2]이에 대한 주님의 반박입니다.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냈다는 바리새인들을 반박하시기 위해 네 가지의 논리를 전개하며 이를 통해 바리새인들로부터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신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떻게 반박하셨는지 귀담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냈다고 한다면 귀신과 귀신이 싸웠다는 말이 되므로 그렇다면 집안 싸움을 한 셈이니 그런 집안이나, 그런 나라나 그런 동네는 황폐해질 것이고 무너질 것이 아니겠느냐고 공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귀신과 귀신이 싸웠다는 말은 논리에 맞지 않는 억지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또 만일 예수님이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냈다면 너희 바리세인들의 제자들 중에서 귀신을 쫓아내는 자들은 누구를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느냐? 고 공격을 하신 것입니다. 만일 너희 제자들이 하나님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믿는다면 마땅히 나도 하나님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냈다고 말해야 할 것이고, 아니면 너희의 제자들도 귀신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말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어떻게 너희 제자들은 하나님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며 나는 귀신을 힘입어 쫓아낸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너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냈다면 마땅히 나도 하나님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 것이 분명한데도 분명한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진실을 굽게 한 거짓말쟁이임을 너희 스스로 증거 하는 것이 라고 반박하신 것입니다.

세 번째, 만일 내가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 것이라면 성령이 하신 일을 너희가 방해하고 있고 오히려 너희가 귀신을 돕고 있는 일이며 성령으로 계속 사탄의 세력들을 소탕하게 될 것이므로 점점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어질 것이고 너희들 사단의 세력은 분쇄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천국을 확장해 나가기 위해 사단이나 그의 부하들인 귀신들을 계속 결박해 나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네 번째,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않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고 말씀하심으로 하나님 편이던 가, 귀신 편이던 가이지 중립이란 있을 수 없다는 말로, 주님이 하신 일을 적극적으로 따르지 아니하고 미지근한 상태에 있는 자는 주님 편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주님의 일을 방해하는 사단의 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메시아임을 확신하고 따라야지 그렇지 못하는 것은 불신이요 사단의 편에 서 있는 자들이라는 말씀을 하심으로 바리새인들의 분명한 결단을 촉구하고 계시며, 바리새인들이 현재 하나님의 반대편에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이를 경고하신 것입니다.

[3]그 다음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는 죄입니다.

주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함부로 말한 그 말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알려 주시고 계십니다. 사람들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받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죄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경고하고 계십니다. 훼방이란 말은 심한 비방이나 반대하여 말한다는 뜻으로 성령을 훼방하는 죄란 성령의 힘으로 되어지는 줄을 알면서도 마귀의 힘으로 되어진다고 말하는 바리새인들이 저지른 죄와 같은 종류의 죄를 말하며, 성령께서 죄인을 구원시키시려 하시는데 이를 거슬려 반대하는 일이며, 성령께서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감동 감화하심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고의적으로 배척하는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죄를 깨닫게 하고 참회케 하는 성령의 사역을 적극적으로 방해하거나 고의적으로 성령에 대항하려고 고집스럽고도 악의에 찬 심령과 모든 활약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몰라서 부지중에 교회를 핍박했던 사도 바울의 죄는 용서를 받되 고의적으로 알면서도 “세례 요한을 보고도 귀신들렸다” 고 하거나 예수님이 “귀신을 힘입어 병을 고친다는 억지”는 용서를 받을 수 없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로 인자 즉 주님을 거역하면 용서를 받되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에서와 저 세상에서 용서를 받을 수 없다는 결정적인 말씀을 주시고 계십니다. 사람 중에는 하나님께나 예수님께 어떤 말의 실수를 하게 될 때 용서를 받을 수 있으나 성령을 말로 거역하면 용서를 받지 못한다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나 주님을 거역하는 것이나 성령을 거역하는 것이나 다 같게 생각되는데도 본문에서 성령을 거역하는 죄는 용서를 받지 못한다고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말한다면 하나님께나 주님께나 성령께 거역해서는 아니 되겠지만 어떤 형태의 말의 실수 중 하나님께나 예수님께 한 실수는 용서가 가능하나 우리 중에 역사 하시는 성령의 일을 방해하는 죄는 용서를 받지 못한다는 엄중한 경고인 것입니다. 요1서 5:16에 기록된 “사망에 이르는 죄”나 히6:4에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할 수 없나니”라고 한 죄와 같은 성질의 죄라 볼 수 있겠습니다.

 

[4]운명을 결정짓는 말입니다.

37절에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는다”고 하였으니 우리가 뱉은 말 한마디가 우리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경고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벙어리와 눈먼 자 속에 들어 있는 귀신을 쫓아내시므로 벙어리가 말을 하고 귀머거리가 듣게 됐으니 이 선한 일이란 마땅히 하나님께로 난 것으로 알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어야 마땅한데 이 선한 일이 바알세불을 힘입어 났다고 악평하고 있으니 바리새인들 너희들은 독사의 자식들로서 너희 속에 악이 가득 찼으므로 입만 벌리면 너희 속에 가득 찬 것이 토해 나올 수밖에 없다고 공격하고 계십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이 너희 바리새인들은 악하니 악담이 입에서 나오고 주님은 선하므로 그 열매는 선한 것일 수밖에 없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들 속에는 무엇이 가득 차 있습니까? 만일 우리의 속에 불만과 시기와 화가 가득 차 있다면 우리의 입에서도 바리새인들과 같은 부정적인 악한 말이 나올 것이고, 우리 마음속에 사랑과 기쁨과 감사가 가득 차 있다면 은혜스럽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선한 말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입에서 악한 말이던지 아니면 선한 말이 나오게 될 터인데 무슨 말이 나오던지 심판 날에 이 말에 대하여 심문을 받는다는 경고입니다. 내가 한 말에 의해 의롭다는 심판을 받던지 내가 한 말에 의해 내가 죄 있다고 심판을 받던지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떤 교훈을 받게 되며 이 교훈을 우리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본문을 통해 얻게 되는 교훈은, 첫째는 하나님께와, 둘째로는 사람 앞에 의롭다는 판단을 받도록 말을 조심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혀를 통해 나오는 말이 사람의 운명을 결정 짓는다니 각별히 조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각자가 자기를 반성해 볼 때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하나님께나 사람 앞에 칭찬을 받을 만한 말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반대로 하나님께와 사람에게 지적을 받을 만한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좋은 나무에서 무슨 열매가 맺힌다고 했지요 좋은 나무에는 좋은 열매가 맺히고 나쁜 나무에는 나쁜 열매가 맺히듯 내 속에 좋은 믿음과 좋은 인격이 들어 있으면 하나님께와 사람 앞에 좋은 말이 나올 것이고, 내 마음속에 나쁜 믿음과 나쁜 인격이 들어 있으면 나쁜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원천적으로 내 속에 좋은 것을 가득 채워야 하겠습니다.

내 속에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감사와 감사를 채우면 감사가 내 속에 가득 차서 감사가 나올 것이고, 날마다 짜증이나 불평을 채우면 내 속에 불평이나 짜증이 가득 차서 입만 벌리면 짜증이나 불만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입에 음식을 넣고 말을 하면 무엇이 튀어나오던가요, 음식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내 입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사람에 따라서는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도 있고 정말 밉게 말하는 사람도 있음을 보게 됩니다. 감사를 받고도 감사하다는 말을 못하는 입도 있고, 잘못해 놓고도 잘못을 사과하지 못하는 입이 있으며, 적은 것에도 늘 감사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 입도 있고 적은 실수라도 자기의 잘못을 사과하는 입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찬양하는 입이 있고 하나님을 저주하는 입이 있으며, 사람을 칭찬하는 입이 있고 사람을 저주하는 입이 있는 것입니다. 또 형제를 진심으로 충고하는 입이 있고 사람에게 아첨하는 입이 있으며 사람을 속이는 입이 있고 진실을 말하는 입이 있습니다. 남의 약점을 소문내는 입이 있고 남의 약점을 덮어 주는 입이 있으며, 천냥 빚을 갚을 수 있는 입이 있고 매를 자초하는 입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 받을 만한 말만 하는 입이 있고 미움만 사게 하는 입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님께서 자유의지를 주셔서 우리가 가진 입으로 무슨 말을 하던지 자기가 결정하도록 하고 있으나 심판 때는 내가 한 말로 인해 심판을 받게 된다는 교훈인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에서 세례 받고 신앙 생활하던 자가 술 한 잔하고 좀 취했는지 자기는 지옥 아랫목에 자리잡아 났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너무 두려운 생각을 했습니다. 그 말대로 지옥의 아랫목에서 생활하는 결과가 되면 어쩔려고 그런 끔찍한 말을 하는 걸까요? 우리는 이런 헛소리를 쉽게 하게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말 한마디에 의해 우리의 운명이 결정됨을 본문에서 보게 될 때 하나님께 망언을 장난 삼아서 하는 일을 절대 삼가해야 함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계명이 있는데 사람들이 보통 하나님을 장난으로 들먹이며 하나님을 가볍게 대접하는 경우가 신자들 중에 있음을 가끔 보게 됩니다.

어떤 분이 미국에 꼭 와야 할 형편이라고 간절히 부탁을 해와 미국에 올 수 있도록 해 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서울에 있었을 때도 별것이 없었는데도 미국에 와서 입만 벌리면 내가 이런 것 하려고 미국을 왔느냐든지, 미국이 나쁘다든지 그런 말만 늘어놓는 것을 보면서, 좋은 입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복되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지금까지 도와주신 하나님을 향해 불평을 늘어놓고 있으니 자기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사람이구나 했습니다. 그 입에서 나오는 말에 따라 그의 운명은 결정되는 것입니다. 입에서 항시 불평만 나오면 그의 인생은 불행한 인생이요, 좋은 입을 가진 자는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입이 내 운명을 결정 짓는다는 본문의 결론을 마음에 두고 하나님께와 사람에게 의롭다는 칭찬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의 혀를 잘 길들이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 찬양으로 영광 돌리는 입, 하나님께 감사로 영광 돌리는 입, 하나님께 기도로 사죄하며 은혜를 간구하는 입,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입 이런 입을 가지시기 원합니다.

말을 통해 듣는 이에게 덕과 은혜를 끼치게 하는 입, 형제를 위로하며 힘을 주는 입, 베풀어준 적은 감사라도 표현하는 입, 적은 실수라도 사과하는 입, 정직한 입, 좋은 점을 칭찬해 주고 고칠 점을 사랑으로 지적해 주는 입, 귀에게 듣게 하고 말을 되도록 사양하는 입, 남의 약점이나 비밀은 절대 다물어 주는 입, 거짓과 부정을 보고는 벌리게 되는 능력 있는 입, 벌어진 입에 대해서는 절대 책임을 스스로 질 수 있는 입 이런 입을 가지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와 사람 앞에 의롭다 칭찬 받는 말을 해내는 훈련된 좋은 입을 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