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하고 음란한 세대 – 마태복음 12:38-45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은 회개치 않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불신 상태를 책망하시는 말씀으로 불신하는 그들을 “악하고 음란하다”고 지적하시고 심판 때에 회개했던 니느웨 사람들과 열심을 가지고 지혜를 구했던 남방 여왕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불신을 정죄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말씀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소개받는 우리 모두는 불신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신뢰하고 순종하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4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1]악하고 음란한 세대(38-40)

[2]요나 보다 더 크신 주님(41)

[3]솔로몬보다 더 크신 주님(42)

[4]악한 귀신 일곱(43-45)

 

[1]악하고 음란한 세대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심은 바알세불을 힘입은 것이라고 한 비난에 주님께서 정연한 논리로 반격을 가하므로 바리새인들은 패배를 당하고 말았는데 그 때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중 몇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 와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함으로 예수님을 다른 주제로 괴롭히려 함을 보게 됩니다. 그들의 요청을 좀더 자세히 풀어 본다고 한다면,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오시기로 한 메시아임이 틀림없다면 우리가 그 사실을 믿을 수 있도록 하늘에서 불이 내리게 하던지, 여름에 눈이 오게 하던지 색다른 어떤 기적을 보여 달라”는 요청인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미 귀신을 쫓아 내셨고 많은 병자들을 기적적으로 고치신 일을 행했음에도 그들은 새로운 표적을 보여 달라고 요청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주님께서 마귀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 “만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 든 높은 성전 꼭대기에서 아래로 뛰어 내려 보라”는 요청과 같은 종류의 요청으로서 “그것을 행하면 예수님을 믿겠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오 “그것을 통해 예수님을 넘어뜨리려는 흉계”였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문둥병 자를 고치셨고, 백부장의 하인과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한 여인을 고치셨으며 수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어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따르고 있는가 하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새로운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요청을 듣고 말씀하시기를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말씀하심으로 표적을 구하는 자들이란 바로 악한 자요 음란한 자들임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볼 때 남편과 아내와 같이 절대 불가분의 관계임에도 유대인들은 쉽게 하나님을 떠나 잡신을 섬기고 배신하므로 “음녀”로 간주된 것인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역시 많은 이적을 행했음에도 이를 믿지 못하고 새로운 표적을 요구한 것은 표적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그들의 믿지 못하는 불 신앙이나 쉽게 세상과 더불어 짝하는 그들의 본성임을 아시고 표적을 구하는 자들이란 악한 자들이요 음란한 자들이라고 단정을 지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오직 요나의 표적밖에 보일 것이 없다 하시면서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3일을 있었던 것같이 주님께서도 땅속에 3일을 머무실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감으로 죽은 듯했으나 3일 후에 다시 살아나 올 수 있듯이 주님께서도 3일만에 다시 사실 것을 예언하시며 이것이 주님께서 보여주실 표적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심으로 주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믿게 하기 위해서 새로운 기적을 창출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행한 이적과 기사는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믿게 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이겠습니다. 즉 지금까지의 이적과 기사를 보고도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믿지 못한다면 그 이상 놀라운 어떠한 새로운 이적이 베풀어진다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표적을 구하는 자를 주님께서 뭐라고 하셨지요? “악하고 음란한 자”라 하셨음을 마음에 두시기 바랍니다.

 

[2]요나 보다 더 크신 주님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니느웨로 가서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기를 외치도록 명령을 받았는데 요나가 어디로 도망을 쳤지요? 다시스로 가는 배에 올라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져 버리고 도망치는 요나를 하나님께서 니느웨로 돌려보내게 하기 위해 물고기 뱃속에 3일을 있게 한 후에 니느웨로 보냈고 니느웨로 가서 하루 동안 외치기를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했으며, 왕까지도 보좌에서 내려와 굵은 베옷을 입고 잿더미에 앉았고, 온 국민들에게 조서를 내려 온 국민들이 금식을 하고 죄를 회개하도록 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내리리라 하신 재앙을 내리시지 않았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요나 보다 더 크시다고 하신 것은 작은 선지자 요나가 하룻길을 걸으며 회개를 외쳤는데도 니느웨 사람들이 잿더미에 앉아 악한 길에서 돌이키는 회개 운동이 일어났는데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메시아이신 주님께서 회개를 선포하시고 많은 이적을 행하셨음에도 유대인들이 회개치 않고 새로운 표적을 구하므로 그들이 얼마나 악한 자들인가를 암시해 주시며, 목이 곧고 완악한 이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심판 날에 회개한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의 악한 자들을 정죄할 것이라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회개치 않는 모든 자에게 적용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3]솔로몬보다 더 크신 주님입니다.

주님께서 솔로몬보다 더 크시다 는 사실을 그 누구도 아니라 할 자가 없으리라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게 된 안타까운 사정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말씀을 연관해서 남방 여왕을 들추십니다. 남방 여왕이란 열왕기상 10:1 에 있는 스바 여왕으로 아라비아 반도 남부의 한 왕국의 여왕을 말한 것입니다. 스바 여왕은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이 매우 지혜 있다는 소문을 듣고 솔로몬 왕의 지혜를 시험코자 아주 어려운 문제를 준비해 가지고 이스라엘로 가서 솔로몬 왕을 시험하였던 여왕입니다. 스바 여왕이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말하였으나 솔로몬 왕이 그 묻는 말을 다 대답한 것을 보고 솔로몬 왕에게 고백하기를 자기가 들은 소문은 실지보다 절반도 못된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스바 여왕을 인용하신 것은 지혜를 얻고자 땅 끝이라고 하는 아라비아의 남부의 먼 거리로부터 왔던 그 열정적인 탐구 열을 높이 칭찬한 것으로 사람인 솔로몬의 지혜를 얻고자 그렇게 열성을 부린 자도 있는데, 하나님의 존재이신 주님께서 하늘나라의 지혜를 가르쳐도 거역하며 고집을 부리고 게으름을 피우는 이 세대 사람들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지혜를 얻는 일에 게으르고 미지근한 이 세대 사람들을 심판 때에 스바 여왕이 정죄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지혜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무관심한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된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4]악한 귀신 일곱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회개치 아니하거나 또 지혜를 얻기에 무관심한 자들에게 경고를 주신 후 이제는 회개한 후에 다시 사탄에 사로잡히게 될 자들에 대한 경고를 주십니다. 여기에서는 주님께서 주님에 의해 쫓겨난 귀신의 예를 들어 교훈해 주십니다. 귀신이 사람 속에서 쫓겨나 자기가 살 곳을 찾아 이곳 저곳 돌아다녀 보아도 마땅한 살집을 찾지 못하게 되어 옛 집으로 다시 들어갈까? 하고 찾아와 보니 집이 청소가 잘되고 수리가 잘된 것을 보고 이제는 자기보다 훨씬 강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살게 되니 그 사람의 형편이 처음에 귀신들렸던 때보다 나중이 더욱 심해졌다는 비유입니다. 일곱 귀신이란 가장 강하고 악한 귀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옛 집에 다시 들어가려니 현재 집을 지키는 자보다 더 힘이 세야 할 것이므로 아주 강한 귀신이 들어올 수밖에 없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처음에 귀신을 쫓아냈을 때에 빨리 성령으로 채웠어야 했는데도 귀신만 쫓아내고 비워 두었으니 더 악한 귀신들이 합세하여 쳐들어온 비유가 되겠습니다.

역사적으로는 이스라엘이 비록 이방의 우상 신상들을 파괴하였으나 그들의 삶에는 하나님이 부재인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으며. 형식적이요 의식만 존재하는 상태가 되겠습니다. 특히 율법주의자들인 바리새인들의 율법 규정들에 대한 맹목적 추구하는 마음 상태를 지적하신 것이라 봅니다. 이런 마음 상태에 하나님의 영을 대신하여 악한 마귀가 도사리고 있게 되므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많은 순교자들을 낸 것입니다. 결국 사람은 성령에 사로잡힌 자이거나 마귀에 사로잡힌 자로 구분이 되겠는데 예수를 알았던 자가 마귀에 사로잡히게 될 때에는 훨씬 악질적인 마귀 짓을 한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을 통해 우리가 얻는 교훈은 무엇이며 우리 생활에 어떻게 적용하겠습니까?

 

첫째는 표적을 바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떠나기 전에 모세를 통하여 많은 이적을 경험했습니다. 지팡이가 뱀이 되게 하고, 모든 물이 피가 되게 하며, 개구리가 온 이스라엘을 덮게 하여 심지어 침대에까지 기어오르고 떡 반죽에까지 들어갔었습니다. 온 땅의 티끌이 변하여 이가 되게 하고, 파리와 메뚜기로 온 땅을 덮게도 하고, 온 애굽은 어둡게 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거하는 곳은 빛이 있게도 하고, 애굽 사람들의 장자는 죽게 하고 이스라엘 사람의 장자는 살게 하고 이런 절차를 따라 바로 왕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을 떠나게 허락했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런 이적들이 자기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내리신 사실을 너무나도 잘 체험한 사실로 요사이 교인들의 입을 빌리자면 “할렐루야”“할렐루야”가 연발할 만한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적들을 많이 체험한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이스라엘 사람은 홍해 바다를 육지를 건너듯 건너고 말을 타고 쫓아온 애굽 군대는 바다에 몰사하고, 바위에서 생수가 터지게 하며, 40년 동안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이 갈 길을 인도해 주셨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 많은 이적을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이 반석 위에 다져진 믿음이었습니까? 아닙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호렙산에서 조금 늦게 내려오자 그 동안을 참지 못해서 자기들을 인도해 줄 신을 만들자고 모세의 형 아론에게 고하니 아론이 귀걸이, 목거리 반지 등 금을 모으게 하여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아론이 그 일을 추진한 추진 위원장 역할을 했다고 볼 때 어처구니없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만 해도 이미 바리새인들이 보는 앞에서 귀신을 쫓아내고 문둥병자를 고치고, 소경이 보게 하며 벙어리가 말하게 하고, 중풍 병자가 일어나며, 혈루증 환자가 치료받고 했으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기에 충분함에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또 새로운 표적을 구한 것입니다.

우리 신앙 생활에 적용해 본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표적을 보여주시면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다는 사실을 믿겠다든지, 어떤 이적을 보여 주신다면 하나님께 일생을 바치겠다는 그런 소원을 주문하시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주문을 현대 교인들이 너무 쉽게 하게 되고, 지금 기도원 주변에서는 이런 표적을 보기를 소리질러 외치겠지만 주님은 이런 자들을 두고 “악하고 음란한 자들”이 그런 것을 구한다고 경고한 것입니다. 이미 성경에 나타난 이적을 보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지 못한다면 하늘에서 기기 묘묘한 사건이 일어나도 그때는 반짝한 믿음을 가질지 모르나 머지 않아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길 수가 있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표적을 구하지 말고 이미 나타난 표적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내게 나타난 이적만 믿으려 하지 말고 남에게 나타난 이적도 똑같이 믿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표적은 누구의 능력으로 행해졌으며 지금 내가 바라는 표적은 누구의 능력으로 되어지겠습니까? 우리 성도들은 행여 라도 새로운 무엇을 보여 달라는 “악하고 음란한 자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런 생각이 날 때마다 “악하고 음란한 자들이 구한다”는 주님의 음성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표적을 구하는 자들에게 요나의 표적밖에는 그 이상 보여줄 것이 없다고 잘라 말씀하셨습니다. 요나의 표적이 무엇입니까?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3일만에 부활하신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사실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전무후무한 표적인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주님이 죽으셨다가 3일만에 다시 사신 것을 믿는 다면 다른 시시한 표적을 구하는 것은 불신이요, 교만이요, 자기 자랑에서 난 “악하고 음란한 자”들의 주문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심판대에서 합격하는 신앙들을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아 주 잘 믿는다는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을 두고 “화 있을 진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여, 너희가 심판 날에 어두운데 던져져 이를 갊이 있으리라”는 말씀을 여러 번 반복한 사실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란 불신자가 아니라 잘 믿는다고 하는 신자들인 것입니다. 즉 신자라고 하더라도 심판대에서 버림을 받을 수가 있다는 경고인 것입니다. 이것은 심판의 표준이 “내”가 아니라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자신을 재판한다면 다 합격이지만 주님의 자로 크고 작고를 재기 때문에 너무 커도 너무 작아도 불합격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심판대에 합격하는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심판대에서 니느웨 사람과 남방 여왕이 정죄할 것이라고 주님께서 지적하신 잘못된 믿음이 무엇인가요? 자기의 죄를 지체치 말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설교를 듣고, 성경을 묵상하면서 자기의 잘못과 죄가 생각나거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사람에게 잘못한 것이 있으면 즉시 사화 하라는 것입니다. 적은 잘못과 죄를 그대로 두면 죄가 장성하여 뭘 낳는다고요? 사망을 낳는다고 했으니 결국 죽고 만다는 것이요, 심판대에서 합격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적은 잘못을, 적은 죄를 회개치 않는 자는 더 큰 죄를, 더 큰 잘못을 저지를 수가 있을 것입니다. 대담해 지는 거지요. 수지같이 적은 아이들도 엄마 눈치를 보면서 이것도 만져 보고 저것도 해보고 하면서 엄마가 눈감아주면 점점 간이 커져서 말을 안 듣거나 아니면 자기 머리 쓰는 것을 포기하고 엄마 말씀을 잘 듣거나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맨 처음에는 적은 것부터 눈치보면서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도 하나님 눈치보면서 적은 거짓말도 해보고, 작은 미움도 해보고, 교회 가는 것을 빠져도 보고, 성경 읽는 것이나 기도하는 것이나 헌금하는 것이나 걸러도 보면 하나님께서 “요놈” 하실 줄 알았는데 아무 책망이 없으시므로 세상이 하도 험하고 살기 힘든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이 정도는 죄로, 잘못으로 인정을 하시지 않는 모양이라고 스스로 판단을 하고 담력을 얻어 점점 간이 커지게 되는 것입니다. 조금씩 더 큰 죄를 구상하고 죄를 지으며, 그래도 죄를 지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남들도 다 그러기 때문에 남을 핑계 대면서 지속적으로 죄의 생활에 젖다 보면 주님이 지적하신 대로 7귀신이 든 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한계를 넘어 버려서 하나님의 심판을 전연 통과할 수 없는 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예수 믿은지 오래되면 될 수록, 직분이 높아지면 높아질 수록 그 사람에게 귀신이 들어간다면 큰 귀신이 들어가서 그 사람을 통치하기 때문에 교회 내에서 그런 분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교회가 깨져 버리거나 두 쪽이 나 버린 것입니다. 왜 ? 그런다고요? 믿음이 강한 자에게는 더 큰 귀신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다는 사람 속에 성령이 주장하면 주님의 큰 종이요, 그 속에 귀신이 들어 있다면 큰 귀신이 되어 사사건건 교회와 사회를 어지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적은 죄를 회개하고, 마음을 정결케 하고 그 빈 마음에 말씀으로, 성령으로, 경건으로 가득 채워서 귀신이 들어갈 자리를 남겨 두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귀신은 틈만 있으면 비집고 들어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귀신은 더럽고 물이 있는 곳을 찾게 되므로 우리 마음 속에 바퀴 벌래가 일지 않도록 늘 어떻게 해야 해요? 회개를 통해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청소된 빈집을 그대로 비워 두지 말고 날마다 말씀으로, 기도로, 찬송으로 채우고 지켜서 성령에 온전히 이끌리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방 여왕이 개으른 자들을 정죄한다 했으니 보다 더 좋은 믿음과 사는 지혜를 얻기 위해 시간과 정력을 투자하여 귀한 것을 갈고 닦으라는 것입니다. 좀 열심을 내라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을 바쁘다고 게을리 하고 피곤하다고 게을리 하면서 어떤 심판을 내리든 상관없다고 믿고 있는 사람은 상관이 없으나 심판대에서 합격시켜 주시기를 바라는 선수들은 더 열심을 내어야 할 것입니다.

 

말씀에 따라 철저히 순종하는 삶을 사는 지혜 있는 자들이 다 되어 심판대에서 합격되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