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도 행 전

사 도 행 전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의 기록자인 의사 누가가 기록한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 1절에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이라 했는데 누가복음 1장 3절에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여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썼던 먼저 쓴 것이 누가복음이요 이제 데오빌로에게 써내려가려는 것이 바로 사도행전이라 믿으면 되겠습니다. 사도행전 기록 중 “우리” 라는 말이 나오는데 사도 바울과 묶어서 “우리” 라고 표현한 것을 보아도 사도 바울의 2차, 3차 여행과 예루살렘 입성 및 로마 호송에 동참했던 의사 누가임을 뒷받침해주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기록 목적은 누가 복음에 기록된 내용 이후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데오빌로에게 알리고자 하는 의도에서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탄생부터 십자가와 부활까지 예수님에 대해 소개했다면 사도행전에서는 예수님의 부활이후 교회를 통해 유대와 이방에 복음이 전파되어진 사실을 증거하기 위한 것으로 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베드로의 사역을 통해 이스라엘에 복음이 전해진 사실(1장-12장)과 사도 바울에 의해 이방에 복음이 전달된 사실(13장-28장)을 증거하기 위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본서의 특징은 신약성경 중에서 유일한 역사책으로서 사도들 특히 베드로와 바울의 행적을 중심으로 하여 초대 교회의 역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 교회를 세우겠다” (마 16:18) 고 약속하셨던 그 교회가 언제 어디에 세워졌으며 세워진 교회는 유대교와 다르게 어떠한 예배를 드렸으며, 그 교회 교인들은 어떤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했는지, 또 그 교회는 어떻게 번성해 나갔으며 어떻게 세계를 향해 확장되어 나갔는지를 증거 해주는 절대적인 문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은 초대교회의 신앙을 회복하고자 하는 우리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기록이라 하겠습니다.

 

사도행전을 크게 세부분으로 나누어서 진행하게 되는데

제 1부는 1장 1절부터 7장 60절까지의 예루살렘에서의 증거

제 2부는 8장 1절부터 12장 25절까지의 유대와 사마리아에서의 증거

제 3부는 13장 1절부터 28장 31절까지의 땅 끝까지의 증거입니다.

 

1부 예루살렘에서의 증거/1:1-7:60

 

  1. 교회의 태동/1:1-2:47

(1:1-2) 편지를 받은 자와 전에 쓴 글의 내용: 1절 앞부분에서 이 편지를 받은 자를 데오빌로라 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데오빌로 각하라 했는데 사도행전에서는 각하를 생략하고 있습니다. 각하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데오빌로는 높은 관직에 있었던 인물로 보아집니다. 1절 뒷부분과 2절에서는 먼저 쓴 글 즉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다고 함으로 사도행전에서는 부활하신 이후의 일을 기록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1:3-8)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해를 받으신 이후 승천하시기까지 40일 동안 주님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알리기 위해 친히 여러 번(10번) 나타나시어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다고 했는데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 지상에 40일간 머무셨다는 기록은 오직 사도행전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분부하시기를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다 했습니다. 이때로부터 실지로 약 10 여일 후에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였는데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한 것은 복음의 진리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널리 땅 끝까지 전파될 것이라는 예언(이사야 2:3; 미가서 4:2)을 성취시키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분부를 들은 제자들은 메시아가 세계의 통치자로 오셔서 이스라엘이 전 세계를 다스리게 될 것이라는 그들의 옛 꿈이 다시 되살아나 주님께 묻기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바로 이 때이냐고 물었다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영적인 나라 즉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시고 계시나 제자들은 메시아에 의해 이 땅에 몇 날이 못 되어 이룩될 세상 왕국을 기대하고 물은 질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의 질문에 직접적으로 답하시지 않고 영적인 하늘나라에 대해서만 대답하시기를 ‘때와 기한’ 즉 주님께서 재림하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그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라고 답을 하셨습니다. 주님의 재림의 날짜는 주님도 모르시고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는 것이므로 주님의 재림 날짜를 사람들이 거론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끌어내리는 일이 되겠습니다.

 

8절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이 땅에 세워질 이스라엘 왕국에만 소망을 두었던 사도들도 약속된 성령이 임하신 이후에는 변화되어 땅 끝까지 복음 전파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에는 주님께서 직접 사역을 하셨지만 주님의 승천 이후에는 주님을 대신하여 성령께서 사역하시게 된 것입니다.

 

(1:9-11) 예수님의 승천: 주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제자들이 보는데서 승천하셨다고 했으며, 예수님의 승천을 자세히 쳐다보고 있던 제자들에게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했다 했습니다. 이 말씀은 승천을 직접 눈으로 보았듯이 재림도 실제로 보게 될 것임을 강조하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1:12-14) 성령을 기다림: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했던 곳이 감람원이라는 산에서였는지 감람원이란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와 다락에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다락에 대한 설명이 없이 다락에 올라갔다고 한 것을 보아 이 다락은 제자들에게 잘 알려진 마지막 만찬을 행했던 다락이거나 부활 후에 제자들에 나타나셨던 방(다락)이거나 12장 12절에서 언급한 마가의 다락방이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이 임하시기를 기다리라는 주님의 분부를 들은 제자들이 다락에 모여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썼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혀 기도에 힘썼다고 한 것은 주님의 분부를 마음을 다해 지키고 있음을 보여주며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시기를 진지하게 기다리는 모습을 소개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락에 모인 제자들은 가룟 유다를 제외한 11제자, 예수님의 십자가와 무덤을 지켰던 여자들과,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와, 또 예수님의 동생들 즉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마13:55) 이었는데 예수님의 동생들은 예수님 살아계신 동안에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지만 주님의 부활 이후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었고 그 중 야고보는 야고보서의 기록자이며 형제들 중 가장 지도자적인 인물인 것입니다. 15절에 보면 모인 무리의 수가 약 120명쯤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15-26) 맛디아 임명: 다락방에 모인 무리가 한 120명쯤 되었는데 그들 중 베드로가 일어나 가룟 유다의 자리를 대신할 사도를 세우는 일을 주도한 사실을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베드로가 일어나 모인 무리들을 향해 ‘형제들아’ 라는 단어를 사용한 사실입니다. 육적인 이스라엘 형제라는 뜻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게 될 영적인 형제들로 느끼고 부른 칭호로 여겨집니다. 베드로는 가룟인 유다가 그동안 12사도의 수에 가입되어 직무의 한 부분을 담당했었으나 배신하고 떠났으니 12 사도의 자리를 체우고 사도의 사명인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할 자를 세워야 할 것을 제안하고 맛디아를 세운 사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12 명의 사도를 세우신 것은 이스라엘 12 지파를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의미였을 것이므로 가룟 유다의 빈자리를 채워 12 사도가 되게 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한 자리의 사도를 세우되 주님께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공생애를 시작할 때부터 나머지 11사도와 함께 주님 곁에서 함께 가르침을 받은 자 중에서 선택해야 함을 전제하고 두 사람을 후보로 내세운 후 기도하고 제비를 뽑아 맛디아를 세웠다 했습니다. 사도는 특별히 세움을 입은 자들로서 주님께서 직접 선택하시고 주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고 주님의 부활을 목격한 자들을 말하는 것이나 사도 바울의 경우 주님의 부활 이후에 주님으로부터 직접 세움을 받은 특별한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유대인들은 사도 바울은 진정한 사도가 아니라는 반론으로 사도 바울을 핍박하고 비난하였고 반면에 이런 반대에 대항하여 사도 바울은 주님으로부터 직접 세우심을 받은 사도임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기도하고 제비를 뽑았다고 하는 뜻은 사람이 뽑지 않고 하나님께서 뽑으시도록 완전히 하나님께 맡겨드렸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투표하여 뽑는 방법과는 전혀 다른 형태인 것입니다. 요사이 각 교단에서 총회장을 뽑을 때에도 제비뽑기로 선출하는 교단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의 제비뽑기는 우리들이 보통 아는 방법으로 종이에 두 사람의 이름을 적어 그릇에 넣고 손을 넣어 그 중 하나를 뽑도록 하는 방법과 같은 요령으로 했던 방식입니다.

 

사도행전 기록자 누가는 수일 내에 전개될 복음전파의 개막 수순을 1장에서 소개해 주고 있는데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이 임하기를 기다리라는 주님의 분부를 소개하고, 이 분부를 듣고 다락방에서 기도하면서 성령이 임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제자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할 사도의 보충을 끝마침으로 준비가 완료된 상태를 소개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2:1-4) 성령 강림: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신 일을 소개하고 있는데 1절에 보니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라 하여 성령이 임하신 때가 오순절 절기 중이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순절이란 유대의 3대 절기(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중 하나로 오순절은 유월절 주간의 안식일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에 지키는 절기입니다. 제자들이 다 함께 모였었는데 갑자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위에 임하였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임하실 때에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를 들었으며 또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 을 본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의 주변 분위기는 불, 바람, 소리, 진동 등이 동반되었었는데 오순절 성령 강림 때는 소리와 불이 동반되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2:5-13) 방언을 말함: 5절에 보면 오순절을 맞아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렀다고 했습니다. 유대인 남자들은 유대 3대 절기에는 예루살렘에 모여 절기를 지킨 관습이 있어서 여러 나라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다 모여들었음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지방 말)으로 말하기를 시작했다 했습니다.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 보다는 육적인 이스라엘 왕국이 회복되기를 소망하고 기다려 왔던 주님의 제자들이 오순절에 성령이 그들 위에 내리심으로 (약속하셨던 성령의 세례를 받음으로) 그들은 방언의 은사를 받고 제자들의 고향인 갈릴리 말이 아닌 다른 여러 지방의 사투리(방언)를 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다 갈릴리 사람들임에도 그들이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의 지방 말(방언)로 말하게 되므로 각 지역에서 모여든 유대인들이 자기들이 사용하는 방언으로 들을 수 있게 되니 사람들이 다 놀라 이 어찌된 일이냐고도 하고 또 더러는 조롱하여 저희가 술에 취하였다고 말하기도 하였다고 했습니다.

 

(2:14-21) 베드로의 설교하나님의 은사에 대한 변호: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가 성령을 받고 변화되어 설교하고 있는 장면을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주의를 집중시키고 설교를 시작합니다. 지금이 제 3시니(아침 9시)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엘 2:28-32 에 보면 말세에 모든 육체에게 하나님의 영으로 부어주심으로 예언을 하거나, 환상을 보거나, 꿈을 꾸게 될 것이라 했으며, 또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라 했으며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한 말세란 성령이 임한 이 때를 두고 말하는 것도 되거니와 주님 재림시를 두고도 말세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니 성령이 임한 오순절 때부터 주님 재림시 까지를 다 말세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의 요엘서에서 언급한 피와 불과 연기,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된다는 것은 주님 재림시의 말세에 일어날 일을 말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2:22-36) 베드로의 설교 계속예수의 참 메시아 되심: 하나님의 은사에 대해 설교를 한 베드로는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고 하면서 이제 나사렛 예수가 참 메시아라는 설교를 계속하게 됩니다. 설교 내용은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베푸심으로 너희 앞에서 스스로 메시아 되심을 증거하셨다 했으며,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다시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메어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그 이유를 다윗의 시 16:8-11 을 인용하고 있는데 이 인용된 말씀은 메시아 예언에 대해 기록해 준 것 중에 하나로 메시아의 부활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며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가 바로 메시아이심을 입증하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의 존경의 대상인 다윗의 이야기를 계속하며 그들의 관심을 집중시켜 나사렛 예수가 메시아이시라고 강하게 설득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죽어 장사되어 그의 묘가 오늘날까지 우리 중에 있으며 다윗은 선지자이기에 하나님께서 맹세하사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았고 또 다윗은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일에 증인이다. 하나님이 오른 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성령을 부어 주셨다 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고 설교의 결론을 맺었습니다.

 

(2:37-41) 설교의 결과: 각 지역에서 모여들었던 청중들은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이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우리가 어찌할꼬 라고 즉각적으로 반응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를 메시아로 환대하지 못하고 오히려 잡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나 죽은 그를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다는 베드로의 설교는 듣는 청중들에게 큰 죄책감을 느끼게 했을 것이고 그 죄의 사슬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심각한 질문에 베드로가 해답을 주기를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얻으라 하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했다고 했습니다.

 

비록 다섯 절에 불과한 간단한 말씀이지만 이 말씀 안에는 매우 중요한 진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두꺼운 율법 책에서 제시하지 못했던 구원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율법이 선하고 율법이 유용한 것은 율법은 모든 인간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므로 율법이 맡은 역할을 해냈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고 신약(복음)은 죄를 씻는 길을 안내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옛 언약인 율법과 새 언약인 복음을 주신 것입니다.

 

이 구원의 메시지가 바로 복음이며 구원의 복음이 최초로 선포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죄를 깨달았으면 그 죄를 먼저 회개하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죄 사함을 얻으라고 구원에 들어가는 길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는 자들은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이라는 죄 사함 받는 자가 받게 되는 선물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구원의 문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 열려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자들에게나 먼데 있는 자들에게 다 열려 있다고 선포하므로 이방인에게는 구원의 문이 닫혀있다고 했던 고정 관념을 깨는 중대한 선포를 한 것입니다. 성령 문제만 해도 성령이란 기도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또한 어떤 특별한 사람에만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라 누구나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자, 즉 죄 사함을 받은 자들 모두에게 주어지는 선물인 것을 분명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이 충만치 못하고 세상 것에 밀려나 있을 경우에 우리들은 성령이 충만하게 하기위해 영적인 삶을 살도록 힘써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또 오순절에 임했던 성령과 고넬료의 가정에 내렸던 성령(10장)을 성령의 세례라고 말을 한다면 이런 성령의 세례란 오순절에 유대인들에게와 또 이방인인 고넬료의 가정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에 의해 특별히 한정하여 주어진 것이지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즉 성령의 세례란 그리스도인 모두가 받아야 하는 필수적인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인이 받는 성령은 죄 사함을 받는 구원의 세례를 받음으로 선물로 받는 것이고 성령의 세례란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으로 특정한 사람들 위에 한시적으로 내리게 했던 은사인 것입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지금도 성령의 세례를 받으라고 하고 있지만 신약성경 전체적으로 볼 때에 이런 가르침은 한쪽으로 치우친 가르침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하루에 3천명이 세례를 받고 죄 사함 받아 구원의 문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3천명이라는 숫자가 크기에 그 많은 수가 세례를 받으려면 분명이 침수세례가 아니라 약식으로 머리에 물을 뿌리는 세례였을 것이라고 추측하거나 단정하는 것은 옛 몸을 물속에 장사지낸다는 침수 세례의 상징적 의미를 모를 뿐 아니라 구태여 침수세례를 부정하기 위한 약식세례자들의 주장일 뿐인 것입니다. 41절에 보면 이날에 제자의 수가 3천명이나 되었다고 했는데 세례 받은 자가 바로 예수님의 제자요 그리스도인이요 구원받은 자가 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는 성령을 선물로 받아 성령을 소유한 자들이므로 그들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성전 즉 교회 또는 천국이며 그들의 공동체가 또한 교회요 천국(하나님의 나라)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나타나는 천국과는 구별되는 것이나 천국이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개인이나 교회 또는 주님 재림시에 나타날 새 예루살렘성이 역시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하나님의 전)가 세워질 것이라는 예언이 이사야서 2:2-3 에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으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라 되어 있는데 이 예언대로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전(교회)이 세워졌으며 복음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전파되기에 이른 것입니다.

 

(2:42-47) 초대교회의 활동: 주님께서 ‘내 교회를 세우리니–’ 라 약속하신 그 교회가 오순절에 세워졌고 42절부터 47절까지 에서는 이 지상에 처음 세워진 초대교회의 분위기와 활동을 소개해 주는 정말 귀한 기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 교회에는 사도들의 가르침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사도들이란 주님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주님의 부활을 목격했으며 성령을 받고 주님의 부활을 만방에 선포할 준비된 주님의 사역자들인 것입니다. 서로 교제했다고 했는데여기에서의 교제란 물질을 가지고 돕고 봉사하는 구제의 일을 의미하는 것이며 즉 요사이 우리들의 헌금으로 풀 수 있는 것입니다. 떡을 떼며 는 (Breaking Bread) 주님께서 떡을 제자들에게 주며 이것을 떼어 먹으라고 했던 주의 만찬을 의미하는 것이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다고 했는데 전혀 힘썼다고 하는 것은 전심전력하여 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또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 사람마다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기사와 표적은 성령을 받은 사도들을 통해 일어났던 능력을 소개해준 것입니다. 지금도 기사와 표적을 행한다고 하는 자들이 있으나 성경적으로 풀어본다면 사도들과 그 당시의 다른 제자들에게만 한정적으로 주어진 특별한 은사였다고 풀어야 적합하다고 봅니다. 또 초대 교회 성도들은 다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줬다고 했습니다. 자발적으로 자기들의 재산과 소유를 교회에 내놓고 필요한 교인들에게 나눠줬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 우리들과 같이 각자의 위치에서 경제생활을 하지만 성도들 중에서 재산을 교회에 바치고 그 물건을 팔아 필요한 성도들에게 나눠줬다는 뜻입니다.

 

또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고 했습니다. 이전에는 날마다 성전에 모여 유대주의에 따라 신앙을 해왔으나 이젠 유대주의 적인 신앙 활동이 아니고 날마다 모이기를 힘써서 성전에 모여 기독교인으로서의 신앙 활동을 한 것입니다. 집에서 떡을 떼며 는 만찬을 말하는 것이며,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는 일반 음식을 먹었다는 것으로 애찬을 통해 친교를 돈독히 했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 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동물의 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으나 이젠 동물의 피가 아닌 신령과 진정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즉 기도와 찬미와, 구제(헌금)와 말씀 그리고 주의 만찬을 통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기독교의 예배를 소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초대 교회의 예배 모법에 따라 현재의 기독교회들이 주일 예배시간에 예배의 5 가지 요소인 설교, 기도, 헌금, 만찬 그리고 찬송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1. 교회의 성장/3:1-7:60

(3:1-10) 앉은뱅이 치유: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사역하실 때에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메시야임을 증거하는 것이 ‘앉은뱅이가 걸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문둥병자가 깨끗하여지며, 죽은 자가 살아나는’ 이적과 기사였는데 사도들 역시 사도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들임을 증거하는 이적과 기사가 그들과 함께 했던 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씩 성전에 와서 기도를 하되 제 삼시(오전 9시), 제 육시(오전 12시), 그리고 제 구시(오후 3시)에 하게 되는 데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기위해 모이는 유대인들을 전도하기 위해 제 구시에 성전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가 구걸하기 위해 성전 문 앞에 앉아 베드로와 요한에게 구걸하니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 했다고 했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랐다 했습니다.

 

(3:11-26) 베드로의 설교: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칭하는 행각에 모이거늘 베드로가 좋은 기회로 알고 설교를 시작한 것입니다. 베드로의 설교 요점은, 이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예수를 영화롭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놓아주기로 결정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반대하였으니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님 예수를 죽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이름을 믿음으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으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다. 이와 같이 사도들에 의해 행해졌던 치유의 은사는 단번에 그리고 완전히 낫게 하는 것이었으며 요사이 행하는 은사집회에서의 치유와 비교가 되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너희나 너희 관원들도 그런 잘못을 저지른 줄 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들의 입을 의탁하사 그리스도께서 해 받으실 일을 미리 예언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다시 보내실 것이다.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예수 그리스도)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 모든 말씀을 들을 것이라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을 것이다. 너희는(이스라엘 자손은)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위의 모든 족속이 너희 씨(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하나님이 그 종(예수 그리스도)을 세워 복 주시기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던 것이다 라 증거했던 것입니다.

 

(4:1-4) 베드로와 요한의 잡힘: 사도들이 백성들에게 설교를 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들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백성을 가르치는 일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 했다는 도를 전하는 것이 싫어서 저희를 잡아 날이 이미 저문 고로 이튿날까지 가두어 두었다고 했습니다. ‘날이 저문 고로’ 란 말의 뜻은 그 당시에는 해가 지면 어떤 재판이나 심문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심문하지 못하고 다음 날 까지 가두어 두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4절에 보면 사도들의 설교와 나타난 증거들에 의하여 믿는 자들이 늘어나 남자의 수가 약 5천이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남자만 5천명이라 했으니 여자 아이 합하면 일만 명 내지 2만 명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삼천 명이 세례를 받았었는데 이젠 급속도로 수가 증가한 것을 보게 됩니다.

 

(4:5-12) 예루살렘 공회에서의 베드로의 증거: 이튿날에 관원과 장로와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모였다고 하는 것은 공회가 소집 되었다는 뜻이며 당시 공회는 그 당시의 최고 법원으로서 극형을 제외한 모든 재판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서기관들이란 바리새인들로 구성된 율법 교사들을 말하는 것이며 그들이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기를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느냐 고 물었다 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대답하기를 만일 앉은뱅이가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을 하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고 대답했다 했습니다. 세상에 많은 종교가 있지만 천하 인간에게 구원을 주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4:13-22) 도를 전하는 것을 금하고 사도들을 풀어줌: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도를 전하는 것을 보고 본래 학문 없는 평범한 사람으로 알았었기 때문에 이상히 여겼다고 했으며 그리고 병 나은 사람이 사도들과 함께 있으므로 비난할 말이 없었다 했습니다. 공회 회원들이 의논하기를 이미 사도들을 통해 나타난 표적이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공회 회원들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 되어 이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하고 사도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한 것입니다. 이런 경고를 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기를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관원들은 백성들이 진실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베드로와 요한을 그 이상 벌하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는데 백성들이 되어진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했습니다. 두 사도는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관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고 담대하게 관원들의 경고에 맞섰던 것입니다.

 

(4:23-31) 사도들의 기도: 사도들이 풀려나와 형제들에게 관원들이 했던 말들을 다 전하니 형제들이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기도 내용은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신 하나님을 찬양했으며, 다윗의 시편 2:1, 2 절을 인용하여 그리스도의 대적 자들인 세상의 군왕들, 관원들, 헤롯과 빌라도를 통한 그리스도의 수난을 회상했으며, 그리스도의 시대에뿐 아니라 지금도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위협하고 있는 그들의 위협이 덜하게 해주시고,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해주시고,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한 것입니다. 기도가 끝나니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셨고 그들과 함께 하셨다는 징조로 모인 곳이 진동한 것입니다. 물론 지금도 기도에 진동으로 응답하시기를 기대한 다는 것은 바른 기대가 아닐 것입니다.

 

(4:32-37) 물건을 서로 통용함: 믿는 무리가 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고 했으며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그 이유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면 사도들은 형제들의 필요에 따라 나눠줬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한 예로 구브로에서 태어난 바나바란 사람도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5:1-11) 아나니아와 삽비라: 다른 교인들이 재산을 팔아 교회에 바치는 일에 부담을 느꼈던 아나니아와 삽비라란 부부가 자기들도 재산을 팔아 바치기로 부부가 합의하되 판값의 일부를 감추어 두고 나머지만 바치면서 그것이 전부라고 바쳤던 것입니다. 그 당시 사도들은 성령의 은사에 따라 사람들의 마음을 다 아는 통찰력이 있어서 이 부부가 판값의 일부를 감추어 두고 이것이 판값의 전부라고 사도들을 속이기로 작정했기 때문에 이것을 아는 베드로가 아나니아에게 네가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하니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메고 나가 장사했다고 했습니다. 세 시간쯤 지나 그 아내 삽비라가 들어오니 베드로가 가로되 그 땅 판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가로되 이뿐이라고 대답하므로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므로 또 너를 메어 가리라 하니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 젊은 사람들이 메어다가 그 남편 곁에 장사했다고 했습니다.

 

모든 교인들은 누구나 의무적으로 재산을 팔아 교회에 내 놓아야 하는 것이 아니고 자원하여 기쁨으로 하는 일이었음에도 이 부부는 거짓을 공모했기 때문에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며 만일 바치지 않았다면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도들이 그들의 마음을 다 아는 능력뿐 아니라 한 마디의 말에 혼이 떠나 죽게 하는 것을 보았으니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했다 했습니다. 사도들은 특별한 은사를 행했던 것인데 어떤 사람이 사도들의 은사를 흉내내려한다면 성령이 근심하시게 될 것입니다. 즉 자기 말 한마디로 죽일 수 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고 장담한다면 그건 진실이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5:12-16) 사도들의 표적과 기사: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였다 했습니다.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뉘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림자라도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었다 했습니다. 병의 크고 작고, 어떤 병이냐를 초월하여 누구나 다 나음(완치)을 얻었다는 사실이 현대의 은사집회와 전혀 다른 것입니다.

 

(5:17-28) 이적적 구출: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사도들을 잡아 옥에 가두었더니 하나님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가로되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저희가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이적적인 구출이었던 것입니다.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관속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말하여 가로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킨 사람들이 문에 섰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라 했습니다.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될까 하더니 사람이 와서 고하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성전 맡은 자가 관속들과 같이 가서 저희를 잡아 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사도들이 기적적으로 옥에서 구출된 것을 백성들이 다 알고 있어서 많은 백성들이 사도들을 신뢰하고 따르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만일 사도들에게 어떤 악을 행한다면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을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 제사장이 물어 가로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히 금하였으나 너희가 너희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그리스도를 죽인 죄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라고 했다 했습니다.

 

(5:29-32) 공회에서의 증거: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 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우리에게 보내신 성령도 또한 이 일에 증인이 된다고 확신 있게 증거한 것입니다.

 

(5:33-39) 가말리엘의 충고: 저희가 사도들의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쌔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교법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이었는데 그가 일어나 사도들을 밖에 나가게 하고 말하기를 사도들에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 하면서 이전에 드다라 하는 사람과 유다라 하는 사람이 백성들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들이 죽거나 도망하니 그들을 좇던 자들이 다 흩어진 일이 있는데 이 사람들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람들의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으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고 충고했다 했습니다. 이 가말리엘은 유명한 율법 학자로서 공회의 율법고문직을 수행했던 자였으며 사도 바울의 스승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행전 22:3 에 ‘나는 가말리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육을 받았다’고 자기를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5:40-42) 사도들이 매 맞음: 저희가 가말리엘의 충고를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이렇게 매 맞고 능욕 받는 일을 영예롭게 생각하며 공회 앞을 떠났다 했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했다 했습니다. 관원들은 매를 때리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했지만 사도들은 사람의 말을 듣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든 것이 옳다는 확신 가운데 사람들의 말은 거절했던 것입니다.

 

(6:1-6) 일곱 일꾼을 세움: 그 때에 제자 즉 교인들이 많아졌는데 헬라 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 구제에서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했다 했습니다. 헬라 파 유대인들이란 각지에 흩어져 살다가 이스라엘에 다시 돌아온 유대인들을 말하는 것이며 히브리파 사람이란 이스라엘에서 출생하여 이스라엘에서 살고 있는 유대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물론 사용하는 언어도 달랐던 것입니다. 교회에서 매일 과부들에게 구제를 하는데 헬라 파 과부들의 경우에 구제 받는 일에 다소 소홀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 헬라 파에서 불평을 한 것입니다. 이 불평을 들은 사도들이 말하기를 사도들은 복음 전도에 전념해야 하는데 사도들이 그 일을 제쳐놓고 구제하는 일에 몰두하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형제들 중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일에 전념하겠다고 하니 온 무리가 이 일을 기뻐하여 일곱을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했다 했습니다. 이 일곱을 두고 직분으로서의 집사라고 규정지을 필요는 없으며 교회에서 필요해서 어떤 특별한 일을 임시로 맡기기 위해 뽑힌 자들이라 하면 되겠습니다. 일곱 일꾼은 그 구제의 일을 위해 필요한 자격기준에 따라 세워진 것이요 우리가 아는 교회 직분으로서의 자격 기준에 의해 집사의 직분으로 세워진 것이 아닌 것이기 때문입니다.

 

(6:7-15) 스데반이 잡힘: 7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했다 했습니다. 8절부터는 일곱 일군중의 하나인 스데반에 대한 소개인데 그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했다고 했습니다. 구제하는 일을 위해 뽑힌 자이나 그가 성령의 특별한 은사를 받아 큰 권능을 행했던 것입니다. 9절에 보면 여러 지역의 회당에서 온 사람들이 스데반과 더불어 변론을 했는데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했다고 했습니다. 스데반과의 변론을 당해내지 못한 그들은 스데반을 모함하여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자기들이 들었다고 하고 또 거짓 증인을 세워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기를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다고 거짓 증언을 했다 했습니다. 15절에 보니 공중 앞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했습니다.

 

(7:1-7) 아브라함의 교훈: 대 제사장이 스데반에게 이것이 사실이냐고 물으니 스데반이 아브라함의 교훈, 요셉의 교훈, 모세의 교훈,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의 교훈, 성령을 거스리는 이스라엘의 교훈에 대한 설교를 하고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7절까지는 아브라함에 대한 줄거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고향 땅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한 땅으로 가라 하시고 약속하시기를 그에게 아직 자식이 없을 때에 지금 이스라엘이 살고 있는 땅(가나안 땅)을 그의 씨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며 그 씨가 다른 땅에(애굽) 나그네 되어 그 땅 사람들이 종으로 삼아 종들을 400년(출애굽기 12:40 에는 430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셨고 그 종삼은 나라(애굽)를 하나님께서 심판하리니 그 후에야 저희가 이곳(가나안)에서 나를 섬기리라 하셨다 했습니다.

 

(7:8-16) 요셉의 교훈: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팔 일만에 할례를 행했으며, 이삭은 야곱을 낳았고, 야곱은 열두 조상을 낳았는데 여러 조상이(요셉의 형제들)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으나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셔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저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치리자로 세웠다 했습니다.

 

그때에 흉년이 들어 우리 조상들이(요셉의 형제들) 양식이 없어서 애굽에서 양식을 구하려고 애굽에 가게 되어 결국 요셉이 형들을 알아보고 요셉이 그의 부친 야곱과 온 친척 일흔다섯을 초청하였는데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 거기서 살다 죽고 세겜으로 옮기워 장사되었다 했습니다.

 

(7:17-36) 모세의 교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창 12:1-2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지니 요셉을 모르는 새 임금이 애굽의 왕이 되어 이스라엘의 수가 더 늘어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집에 태어나는 모는 아이들을 내어 버려 살지 못하게 할 때에 모세가 태어났었고 모세의 부모가 석 달을 집에서 기르다가 버렸는데 그 모세를 바로 왕의 딸이 자기 아들로 길렀다 했습니다. 모세가 나이 40 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 이스라엘 사람과 애굽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고 애굽 사람을 쳐서 죽였고 그 다음 날 이스라엘 사람들끼리 싸우는 것을 보고 이스라엘 형제들끼리 싸우지 말라고 책망하니 그중 한 사람이 말하기를 어제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우리도 죽이려 하느냐고 말하는 것을 듣고 애굽 사람을 쳐서 죽였던 사실이 왕궁에 알려지면 해를 당할까봐서 모세가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았다고 했습니다. 광야생활에서 40년이 차매(모세가 80세가 되었을 때에) 천사가 시내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모세가 이 광경을 보고 기이히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를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대 모세가 무서워 감히 알아보지 못하였다 했습니다. 그때에 주께서 가라사대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너 섰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정녕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시방 내가 너를 애굽으로 보내리라 하셨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가시나무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을 통하여 지도자와 해방하는 자로 삼으셨으니 이 모세가 백성을 인도하여 나오게 하고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사십년간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느니라 했습니다.

 

(7:37-43)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 신명기 18:15 에 하나님께서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찌니라’ 하셨는데 그 선지자가 바로 모세라 하였고, 이 모세는 시내산에 나타난 천사와 및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회중들을 일컬어 교회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의 도(율법)를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바로 모세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이 모세에게 복종치 아니하고 아론더러 이르기를 우리를 인도한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니(율법의 돌 판을 받으러 산에 들어갔으나 곧 나타나지 않으므로) 우리를 애굽으로 되돌아가게 인도할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들의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였으니 하나님께서 그들이 우상 숭배에 빠져 있는 이유로 그들을 그 이상 간섭하시지 않고 버려두셨으니 선지자의 책(아모스 5:25-27)에 기록된 대로 ‘이스라엘 집이여 너희가 40년을 광야에서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너희들이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또 일월성신을 섬겼으니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에 옮기리라’ 함과 같다고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선지자의 말을 거절하고 우상 숭배에만 빠져 있었던 것을 지적하며 그 조상들이나 그 후손들이나 다 어리석고 또 깨달음이 없는 자들임을 강력히 공격하는 어조로 설교를 한 것입니다.

 

(7:44-53) 성령을 거스리는 이스라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여 지으라 하신 장막이 있었으니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지은 것이었는데 광야 생활 때부터 가나안에 들어갈 때 이것을 가지고 들어갔었으며 다윗 때에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하고자 하여 준비하다가 솔로몬이 그 집(성전)을 지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집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이사야 66:1-2 에서 보는 대로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하나님이 계시는 집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사람이 만든 집에 계시지 않다고 유대인들의 잘못 이해된 생각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 도다.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바요 살인한 자가 되었으니 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라 한 것입니다.

 

(7:54-60) 스데반의 순교: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았고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하니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쌔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었다 했습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자 누가는 사도 바울이 회심하기 전에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동참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여기에서 잔다고 표현된 것은 앞으로의 부활을 마음에 둔 표현인 것입니다.

 

 

2부 유대와 사마리아에서의 증거/8:1-12:25

 

  1. 사울의 박해/(8:1-3) 1절에서 사울이 스데반이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했습니다. 개종자 사도 바울이 등장하기 전 사도 바울의 등장을 예고하는 듯합니다. 스데반이 순교 당한 날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졌다 했습니다. 3절에서는 사울이 교회를 핍박하여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겼다고 개종 전 사도 바울의 교회 핍박에 대해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1. 빌립의 증거/8:4-40

(8:4-25) 사마리아인에게 증거: 4절에서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3절에서 교회를 핍박한 일과 아주 대조적인 말씀인데 핍박은 오히려 보다 넓게 복음이 번져나가도록 한 기회가 된 것입니다. 5절부터 빌립의 복음 전파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이 빌립은 예루살렘교회의 일곱 일꾼 중 한 사람입니다. 그가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일심으로 그의 말하는 것을 좇았다 했습니다. 빌립은 12사도에 들지 않았지만 성령의 능력을 받아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를 낫게 하므로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다 했습니다. 사마리아 성에 사는 사람들은 유대인과 이방사람과의 통혼으로 피가 석인 자(혼혈인)들이란 이유로 유대 사람들이 상종도 하지 않았는데 이젠 그런 벽을 초월하여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어 이방인과의 혼혈인인 사마리아 사람들도 복음을 공유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 성에 시몬이란 전부터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들을 놀라게 했던 자칭 큰 자가 있었는데 이는 낮은 자부터 높은 자까지 다 청종하여 가로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였는데 빌립이 하나님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랐다 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있는데 바로 이 비유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 되어 주었으나 유대인들은 강도 만난 자를 돌아보지 안했다는 비유인데 주님께서는 이런 비유를 통해서도 유대인들로부터 철저히 무시당했던 사마리아 사람들도 구원의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을 미리 예고한 비유라고 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었다 했는데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았다 했습니다.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라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함께 망할찌니라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여 불의에 매인바 되었도다 하니 시몬이 대답하여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말게 하소서라 했다 했습니다.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았다고 했는데 성령 받는 것을 보았다는 말은 안수함으로 방언이나 예언 등 외적인 어떤 현상이 일어난 것을 시몬이 보았다는 뜻으로 풀어야 합니다. 2장에서 오순절에 베드로가 설교를 할 때에 성령이 내렸을 때에 방언으로 각 지역에서 왔던 자들이 자기들의 지방 말로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던 거와 같은 어떤 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에 시몬이 성령 받는 것을 보았다고 했을 것입니다. 2장에서와 같이 10장 고넬료의 가정에서는 설교하고 있는 동안에 성령이 내렸고 이곳 8장에서는 안수함으로 성령이 내린 것입니다. 2장에서는 유대인들에게 성령이 내렸고 10장에서는 이방인에게 성령이 내렸고, 이곳 8장에서는 사마리아인에게 성령이 내린 것입니다. 이방인과 사마리아인은 구원에서 제외된 자들이라고 유대인들이 믿어 왔었는데 복음은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사마리아인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은혜임을 특히 유대인들에게 깨우침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임을 깨닫게 됩니다.

 

26절에서는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거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촌에서 복음을 전했다 했습니다.

 

(8:26-40)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증거: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라사대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여 가서 보니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 데 병거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길을 읽고 있었다 했습니다.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라고 물으니 내시가 대답하기를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깨달을 수 있느뇨 라고 대답하고 빌립을 청하여 병거에 올라앉으라고 권했다고 했습니다. 읽고 있었던 이사야서는 53:7 이었는데 내시가 빌립더러 말하되 청컨대 묻노니 선지자가 말한 이는 누구를 가리킴이뇨 자기를 가리킴이뇨 타인을 가리킴이뇨 라 묻고 빌립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했다 했습니다.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 라고 물으니 이에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혼연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했다 했습니다.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갔다는 말은 기적적인 일로 빌립을 순간적으로 어디로 보냈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흔연히란 기쁜 마음으로 란 뜻입니다.

 

40절에 보면 기적적으로 내시로부터 떠나간 빌립이 아소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빌립은 성령의 지시에 의해 내시에게 접근했었는데 지금도 어떤 이들은 성령의 지시(음성이나 환상)를 받았다고도 하는데 이는 건전한 믿음으로 보기 어렵다 하겠습니다.

 

빌립이 내시에게 베푼 세례를 통해 세례에 대한 분명한 답을 얻게 됩니다. 첫째, 세례는 믿는 자가 즉시 받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내시는 믿자마자 많은 물을 보고 세례를 받겠다고 자청하였으며 둘째, 빌립과 내시 둘 다 물에 내려가서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온 사실은 물속에 잠기는 세례(침수세례)를 위한 것이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에도 같은 형식으로 세례를 받으셨음을 우리가 확인할 수 있었던 사실입니다.

 

  1. 사울의 회심/9:1-31

(9:1-9) 주를 만남: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했습니다. 사울이 다메섹에 가까이 갔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니 땅에 사울은 엎드러졌었고 사울이 들으니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사울이 대답하기를 주여 뉘시오니이까 하니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였는데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것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었다고 했습니다.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했다고 했습니다.

 

(9:10-19) 성령 충만: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었는데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셨다 했습니다. 이에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라 했습니다. 이에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네게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졌다 했으며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었다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성령을 체험한자는 물세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주님의 음성을 들었던 자이며 아나니아의 안수로 성령이 충만한 자였으나 그런 후에 물세례를 받았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즉 사울은 세례를 받음으로 속에 거하시는 성령을 선물로 받았겠지만 그 이전에 주님의 나타나심으로 특별한 체험을 하였으며 안수를 통해 외적으로 임하는 성령을 체험했던 자인 것입니다.

 

(9:20-22) 다메섹에서의 선포: 20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세례 받은 후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핍박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였다 했습니다. 22절에 보니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켰다 했습니다.

 

(9:23-31) 예루살렘에서의 선포: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졌다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울을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켰는데 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달아내려 피신을 시켰다 했습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해주었다 했습니다.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 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므로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냈다 했습니다. 다소는 사울의 고향입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졌다 했습니다.

 

  1. 베드로의 증거/9:32-11:18

(9:32-35) 룻다에서 애니아를 고침: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 내려갔더니 거기서 애니아 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가 중풍으로 상 위에 누운 지 팔 년이나 되었다 했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하니 곧 일어나니 룻다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갔다 했습니다.

 

(9:36-43) 욥바에서 도르가를 살림: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 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뉘웠다 했습니다. 룻다가 욥바에 가까운지라 제자들이 베드로가 거기 있음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말고 오라 간청하니 베드로가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가서 이르매 저희가 데리고 다락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의 곁에 서서 울며 도르가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어 보이거늘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았다 했습니다.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들여 그의 산 것을 보이니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이 주를 믿었다 했으며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피장의 집에서 유했다 했습니다. 피장이라는 직업은 동물의 가죽을 가공하는 피혁 제조업을 말하는 것입니다. 죽은 시체를 향하여 일어나라 하니 눈을 뜨고 일어난 사실은 사도 당시에 특정한 자들이 한시적으로 행해졌던 것이나 어떤 자가 현 시대에 이와 같은 흉내를 낸다면 의심스러운 신앙을 가진 자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때까지 성경이 완성되지 않았으므로 사도들의 이적과 기사를 통해 믿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보게 되나 지금은 성경에 많은 이적과 기사가 예수님과 사도들에 의해 일어났음을 보게 되고 그 기록을 통해 믿음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10:1-8) 고넬료의 베드로 초청: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는 군대의 백부장(백 명을 거느리는 지휘관)이었는데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는 자라 했습니다. 하루는 구시쯤(오후 3시)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바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저는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니 그의 집은 해변에 있느니라 하였고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종졸(부하 군인)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이 일을 다 고하고 욥바로 보냈다 했습니다.

 

(10:9-22) 베드로가 본 환상: 이튿날 저희가 성에 가까이 갔을 그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옥상)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시(낮 12시) 였다 했습니다. 시장하여 먹고자 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다 했습니다.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발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또 소리가 있기를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다 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것이라 한 것을 보아 보자기 안에 있는 것들은 레위기 11장에서 부정한 것으로 규정된 것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또 두 번째 소리가 있기를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한 것입니다.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갔다 했습니다.

 

베드로가 본 환상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속으로 의심하더니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피장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 있었는데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 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내가 저희를 보냈느니라 하셨다 했습니다. 베드로가 내려가 그 사람들을 보고 가로되 내가 곧 너희의 찾는 사람이니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 물으니 저희가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저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너를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고 하였다 했습니다.

 

(10:23-43) 베드로의 증거:

베드로가 불러들여 유숙하게 하고 이튿날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갈때 욥바 두어 형제도 함께 갔다 했습니다.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마침 베드로가 들어 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베드로가 일으켜 가로되 나도 사람이라 하고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들과 교제하거나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뇨 라 물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고넬료가 대답하기를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시간에 나타나셔서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저가 바닷가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느니라 하시기로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냈더니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라 대답하였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이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전파된 것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음이라. 우리는 유대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의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라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셨으며 우리를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산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거하게 하셨고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고 답을 하였던 것입니다.

 

(10:44-48) 이방인들의 회개와 방언: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였고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였다 했습니다.

 

약속하신 성령은 오순절 때에 이미 내렸고 이곳 고넬료의 가정에서도 성령이 내린 것입니다. 그 약속이 다 이뤄진 것이므로 찬송가 가사중 성령의 강림을 소망하는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 하시고” 라는 찬송 가사는 맞지 않은 것이며 또한 성령의 세례를 통해 받게 되는 성령의 은사를 달라는 찬송 즉 “성령의 은사들을 내게도 주옵시고” 라는 가사는 성경 말씀에 어긋나는 가사인 것입니다. 부흥집회에서는 유달리 성령에 관계된 찬송을 많이 부르게 되는데 그 가사가 성경에 맞지 않는다면 불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11:1-18) 베드로의 변론: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 자들이 비난하여 가로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베드로가 저희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기도할 때에 보자기 같은 그릇이 하늘로부터 내려온 이야기며 그 속에 담아 있는 것들을 잡아먹으라고 세 번이나 음성이 들린 이야기며 또 가이사랴에서 보낸 세 사람이 내가 우거한 집 앞에 섰으니 아무 의심 말고 함께 따라 가라 하시기로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욥바에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너와 네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했다는 이야기며 베드로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오순절에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 지라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이 났다고 했으며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니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라 했다 했습니다.

 

  1. 초대 교회의 증거/11:19-12:25

(11:19-30) 안디옥 교회 설립: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왔다 했습니다. 이 안디옥은 수리아에 있는 안디옥인데 이방인 교회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나 다른 사도들을 통해서 세워진 교회가 아니고 핍박 때문에 흩어진 성도들이 복음을 전해 세워진 이방 교회인데 결과적으로는 이 수리아 안디옥 교회가 이방 선교의 거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했다고 했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소개되어 있으며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했습니다. 즉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더 많아졌다는 뜻입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말이 이 이방인 교회인 안디옥 교회에서 처음 사용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사울은 회개한 후에 잠시 예루살렘에 머물다가 고향 다소에 돌아와 있었는데 바나바가 사울을 다소에서 데려오므로 사울이 바나바와 함께 이방지역에 전도를 해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바나바의 행적은 아주 조금 나오지만 바나바를 통해 사울이 일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던 점은 높게 평가받을 수 있는 역할을 해낸 것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합니다.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었다 했습니다. 유대에 큰 흉년이 들어 안디옥교회에 있는 성도들이 각각 각자의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구제금을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냈다 했습니다.

 

(12:1, 2) 헤롯의 박해와 야고보의 순교: 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였다 했습니다.

 

(12:3-19) 베드로의 잡힘과 구출: 야고보를 죽인 일을 유대인들이 기뻐함을 보고 베드로도 잡아 옥에 가두어 군사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내고자 하였다 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였는데 헤롯이 끌어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고 있었고 파숫군들은 옥을 지키고 있었는데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겨졌다 했습니다. 천사가 띠를 띠고 신 끈을 매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가로되 겉옷을 입고 따라 오라 하여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갔는데 천사의 하는 것이 참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였다 했습니다.

 

베드로가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성으로 통하는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 지라 옥에서 나와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는 곧 떠났다 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가로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있었다 했습니다. 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계집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베드로의 음성인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한 것입니다. 그러니 저희가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계집아이는 참말이라 하니 저희가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였다 했습니다. 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저희가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 지라 베드로가 저희에게 손짓하여 종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갔다 했습니다. 날이 새매 군사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헤롯이 그를 찾아도 찾지 못하매 파숫군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했다고 했습니다.

 

(12:20-25) 헤롯의 죽음: 20절은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식량을 얻기 위해 헤롯 왕의 침소 맡은 자와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했다 했습니다. 아마 헤롯이 시돈과 두로에 식량 공급을 막은 것 같이 생각되며 그래서 시돈 사람과 두로 사람들이 헤롯 왕의 침소 맡은 자와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했다 한 것 같습니다. 헤롯왕이 어떤 날에 왕복을 입고 왕위에 앉아 백성들 앞에서 연설을 하는데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니(백성들이 아부하는 소리)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그를 치니 충이 먹어 죽었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했다 했으며 바나바와 사울은 부조의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왔다 했습니다.

 

3 부 땅 끝까지 증거/13:1-28:31

 

  1. 1차 전도 여행/(13:1-14:28)

(13:1-3) 바울과 바나바가 수리아에 있는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됨: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여러 명이 있었는데 그 중 바나바와 사울이 있었다 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선교 여행을 보냈다 했습니다.

 

(13:4-13) 구브로에서의 선포: 바나바와 사울 두 사람은 성령의 보내심을 받고 구브로 섬(바나바의 고향)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회당에서 전했는데 마가 요한을 수종자로 두었다 했습니다.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 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박수를 만났는데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었고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였다 했습니다. 그러나 이 박수 엘루마는 바나바와 사울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 지라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침을 기이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13절에서는 바울과 동행하는 사람들이 버가에 이르니 요한(마가라 하는 요한, 바나바의 조카)은 저희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했습니다. 선교 여행 도중에 포기하고 되돌아간 것입니다.

 

(13:14-41)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선포: 바나바 일행은 버가로부터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았다고 했습니다. 안디옥이라고만 하면 어떤 안디옥인지 구별하기 어려우므로 안디옥 교회가 있는 안디옥은 수리아 안디옥이라 하고 이곳은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구별합니다. 회당에서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읽은 후에 회당장들이 사람을 보내어 형제들아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니 바울이 일어나 말하기를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님이 우리 조상들을 택하시고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된 백성을 높여 큰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사 광야에서 약 40년간의 소행을 참으시고 가나안 땅 일곱 족속들을 멸하시고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 그 후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는데 그 후에 저희들이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께서 사울을 40년 동안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그 오시는 앞에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했다 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분 발의 신끈 풀기도 감당치 못하리라 하였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었으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살리셨다 했습니다.

 

예수님은 살아나신 후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간 사람들에게 여러 날 보이셨으니 저희가 이제 백성 앞에 부활의 증인이라 우리도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을 너희에게 전파하니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러므로 또 다른 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 섬기다가 잠들어 그 조상들과 함께 묻혀 썩음을 당하였으되 하나님의 살리신 이는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라 고 전했던 것입니다.

 

(13:42-52) 이방인 전도 및 유대인들의 핍박: 모임이 끝나고 사울의 일행이 나갈 때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고 청했다 했습니다. 폐회한 후에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사람들이 많이 바울과 바나바를 좇으니 두 사도가 더불어 말하고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했다 했습니다.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거늘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었다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게 되었고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 하여 그 지경에서 쫓아내니 두 사람이 저희를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였다고 했습니다.

 

(14:1-7) 이고니온에서의 사역: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었다 했습니다. 그러나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였으나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 그 성내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좇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좇는 자도 있는지라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원들이 두 사도를 능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 저희가 알고 도망하여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였다 했습니다.

 

(14:8-19) 루스드라 에서의 사역: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어 앉았는데 나면서 앉은뱅이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했습니다. 바울의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어 걸었다 했습니다. 무리가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질러 가로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바나바는 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허메라 하였다 했습니다. 성 밖 쓰스 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환(꽃)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질러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함이라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하고 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했다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선동하여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성 밖에 끌어 내쳤다 했습니다.

 

(14:20-28) 귀환여행중의 사역과 전도 보고: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다시 돌아가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했다 했습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 금식 기도하며 저희를 그 믿은 바 주께 부탁하고 비시디아 가운데로 지나가서 밤빌리아에 이르러 도를 버가에서 전하고 앗달리아로 내려가서 거기서 배 타고 수리아의 안디옥 교회에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제자들과 함께 오래 있었다 했습니다. 즉 제 일차 전도 여행을 마친 것입니다.

 

  1. 예루살렘교회 회의/(15:1-35)

(15:1-5) 율법에 관한 논쟁: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바울과 바나바와 유대로부터 왔다는 사람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나서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였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관심을 갖고 보아야 할 점은 안디옥 교회가 교회의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보낸 사실입니다. 안디옥 교회가 사람을 예루살렘 교회에 보낸 것은 일반 교단의 총회나 노회와 같은 조직으로 인정해서 보낸 것이 아니고 사실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예루살렘 교회 역시 상부 조직으로서의 위치에서가 아니고 사실을 확인해주는 것으로였던 것입니다. 교회 위에 교회 없고 교회 아래 교회가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이시고 그 어떤 조직도 교회의 머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저희가 교회의 전송을 받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니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기를 유대인들과 같이 이방인들에게도 할례를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였다 했습니다.

 

(15:6-11)은혜를 통한 구원 선포: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10장 고넬로의 가정에서)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고 하였다 했습니다. 할례를 받거나 율법을 지킴으로가 아니고 주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진리를 강조하며 이방인 개종자들도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옳지 않음을 밝히므로 안디옥 교회에서 궁금해 했던 문제에 대해서는 답을 얻은 것입니다.

 

(15:12-21) 이방인 개종자들에 대하여: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 고하는 것을 듣더니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가로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베드로가) 고하였으니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 바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15:22-29) 공문서 발송: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라 했습니다.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 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시킨 것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혹하게 한다 하기로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일치 가결하였노라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저희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 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고 했다 했습니다.

 

(15:30-35) 안디옥에서의 보고: 저희가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였다 했습니다.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였으므로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얼마 있다가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형제들에게 받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되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치며 전파했다 했습니다.

 

  1. 2차 전도 여행/(15:36-18:22)

(15:36-41) 마가로 인한 불화: 수일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니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제 일차 전도 여행시에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두고 도중에 전도를 포기하고 떠나버린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들을 굳게 했다 했습니다. 바나바의 조카 되는 마가 요한이 1차전도 여행 도중에 되돌아가버린 일로 바울은 마가 요한을 2차전도 여행에 동행케 하는 것을 반대하고 바나바는 동행하는 것을 주장하여 이 일로 크게 다툼이 일어나 바나바와 바울이 서로 갈라서서 따로따로 2차 여행을 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의견의 충돌이 있어 심히 다퉜지만 그 충돌이 복음 전도의 길을 포기하거나 지체케 하지 않았고 이 일로 바울이 마가 요한과 완전히 관계를 끊는 것이 아니었고 차후에 바울이 마가 요한과 다시 함께 함을(딤후 4:11) 보게 됩니다.

 

(16:1-5) 더베와 루스드라에서: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모친은 믿는 유대 여자요 부친은 헬라인이라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받는 자니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하였기 때문에 그 지경에 있는 유대인을 인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부친은 헬라인인 줄 다 알고 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여러 성으로 다녀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예루살렘 회의에서 결정하고 보내온 서신)를 저희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했다 했습니다. 바울 일행은 제 2차 전도여행에서 디모데를 만나 여행에 동행하게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했는데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거나 할례를 받아야 구원되기 때문이 아니라 디모데가 할례를 받으므로 유대인들로부터의 필요 없는 방해를 받지 않고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기 때문입니다.

 

(16:6-10) 드로아에서: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빌립보, 데살로니가 지역)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여서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마게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신 줄로 믿었기 때문이었다 했습니다.

 

(16:11-15) 빌립보에서 루디아의 회심: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경 첫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는데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비단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청하기를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였다 했습니다. 믿는 자로 태어나자마자 바울 일행을 자기 집에서 숙식을 하며 전도하도록 지원했다는 것입니다.

 

(16:16-24) 빌립보에서 귀신 쫓아냄: 바울 일행이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귀신 들린 여종은 점을 쳐주는 일로 주인에게 물질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던 자라 했습니다. 그가 바울의 일행을 좇아와서 소리 질러 가로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하며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 것을 보고 바울이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그에게서 나왔다 했습니다. 종의 주인들은 그에게서 귀신이 나왔으므로 더 이상 점을 칠 수 없을 것이므로 자기들이 그를 통한 돈 벌이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잡아가지고 관원들에게 데리고 가서 말하기를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니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였다 했습니다.

 

(16:25-34) 빌립보에서 간수의 회심: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였는데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바울과 실라를 묶었던 것이 다 벗겨졌다 했습니다.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므로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다 하니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니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였다 했습니다. 밤 그 시에 간수가 바울과 실라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은 후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했다 했습니다. 간수의 가족들도 믿자마자 그날 세례를 받은 사실은 세례란 믿은 즉시 베푸는 것임을 증거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믿자마자 세례를 받는 그 이유는 세례란 죄를 사함 받기 위함인데 그 누가 죄 사함 받는 일을 6개월이고 1년 후까지 미루겠습니까? 세례를 미루는 것은 세례가 죄 사함의 목적이 아닌 것으로 믿고 실행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16:35-40) 빌립보에서 바울의 석방: 날이 새니 상관들이 부하를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 간수가 이 말대로 바울에게 고하되 상관들이 사람을 보내어 너희를 놓으라 하였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 하였는데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우리를 내어 보내고자 하느냐 관원들이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대 부하들이 이 말로 상관들에게 고하니 저희가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 와서 권하여 데리고 나가 성에서 떠나기를 청하니 두 사람이 옥에서 나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보고 위로하고 갔다 했습니다.

 

(17:1-9) 데살로니가에서: 바울과 실라 일행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어서 바울이 자기의 평상시의 습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았다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마을의 불량배들을 동원하여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여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바울과 실라 일행을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 발견치 못하매 야손과 및 형제를 끌고가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가로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야손이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석금을 받고 놓아주었다 했습니다. 빌립보에서는 루디아의 집에서 그리고 데살로니가에서는 야손의 집에서 전도단 일행들이 유숙한 것으로 보입니다.

 

(17:10-15) 베뢰아에서: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저희가 베뢰아에 이르러 복음을 전하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갔다 했습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였다 했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이 하나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케 하므로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어 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유하였다 했습니다. 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렀고 바울은 자기를 데리고 온 자들에게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부탁을 했다 했습니다.

 

(17:16-34) 아덴에서: 바울이 아덴에서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다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하여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저자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토론을 하게 되었는데 혹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을 전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붙들어 가지고 아레오바고(법정 같은 성격의 장소)로 가며 말하기를 우리가 너의 말하는 이 새 교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느냐 네가 무슨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 되는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외에 달리는 시간을 쓰지 않았다 했습니다. 아덴 사람들은 무엇이든 새로운 것이 있으면 그 새로운 것에만 몰두했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기를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섬기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다.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였다 했습니다. 저희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조롱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이에 바울이 저희 가운데서 떠났으나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으니 그 중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했습니다.

 

(18:1-17) 고린도에서: 이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아굴라라 하는 본도라는 지역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로마의 4대 황제)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가족이라 했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가니 직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여 일을 하니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었으며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였다 했습니다.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저희가 대적하여 훼방하거늘 바울이 옷에서 먼지를 털면서 가로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거기서 옮겨 하나님을 공경하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그 집이 회당 옆이라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았다 했습니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고 하셨다 했습니다.

 

바울 일행이 고린도에서 일 년 육 개월을 유하며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했습니다.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재판 자리로 데리고 와서 말하되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어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 하거늘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무슨 부정한 일이나 괴악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가하거니와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고 저희를 재판 자리에서 쫓아내니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재판 자리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치 아니하였다 했습니다.

 

(18:18-22) 안디옥으로 돌아옴: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갔는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갔다 했으며 바울이 일찍 서원(하나님과의 약속)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다 했습니다. 에베소에 와서 저희를 거기 머물러 두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지 아니하고 작별하여 가로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가이사랴에서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수리아 안디옥으로 되돌아갔다 했습니다. 제 2차전도 여행을 마친 것입니다.

 

  1. 3차 전도 여행/(18:23-21:16)

(18:23) 갈라디아와 브루기아에서: 바울 일행은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게 했다 했습니다.

 

(18:24-28) 에베소에서 아볼로의 사역: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주었다 했습니다. 요한의 세례만 알았다는 말의 뜻은 아볼로가 성경에 능했지만 구원의 세례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잘 몰랐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 의해 배웠다 했으니 아볼로가 구원의 세례를 배워 깨닫고 세례를 받았다고 보아야 합니다. 아볼로가 아가야로 건너가고자 하니 형제들이 저를 장려하며 제자들에게 편지하여 영접하라 하였더니 저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니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여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들과의 논쟁에서 능히 이겨냈다 했습니다.

 

(19:1-7) 에베소에서 요한의 제자들이 성령을 받음: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대답하니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여기에서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했다는 것은 8장에서 이미 확인한 대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사도들이 안수하므로 성령을 받았다 했는데 여기 에베소에서도 안수하여 성령을 받았다 했습니다.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같은 성령을 내리신 것은 이제는 구원의 문이 유대인에게뿐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똑같이 열려 있음을 증거하는 표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강조하는 말씀은 누구나 세례를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고 그 성령은 성도들 안에 계시는 것이지만 외적으로 안수 하여 성령을 받는 것은 특수한 목적으로 한정적으로 일어났던 일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은 자들이 복음을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했는데 요한의 세례를 받은 자들이 세례를 다시 받았다고 풀이하는 것보다는 구원의 세례를 몰랐던 자들이 세례 받고 죄 사함을 받기 위해 구원의 세례를 받았다고 하는 것이 옳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받았다고 하는 것은 똑같은 것을 반복했다는 뜻이지만 요한의 세례를 받은 자들이 구원의 세례를 받은 것은 두 번 반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례가 무엇인지 정의한다면 세례의 목적은 죄를 사함받기 위함이요, 세례의 형식은 많은 물속에서 옛 몸을 장사지내는 침수의 형식이며, 세례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은 누구든지 주 예수를 구세주로 믿고 자기의 죄를 회개하며 죄 사함 받아 구원 얻기를 원하는 자가 받는 것이며, 이런 것을 종합하여 세례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런 내용의 세례를 받은 자가 다시 받았다고 한다면 다시 받았다 말할 수 있겠지만, 목적과 형식과 받는 자의 자격이 전혀 다른 어떤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성경에서 말한 구원의 세례가 아니므로 다시 받았다는 표현은 적절한 표현이 되지 못하다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19:8-10)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선포: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는 일도 있었지만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 이같이 두 해 동안을 계속한 결과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19:11-20) 에베소에서 많은 기적이 일어남: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다 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병들이 낫는 것을 보고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 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라 고 하였다 했습니다.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악귀가 대답하기를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였다 했습니다.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고하며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었다 했으며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었다 했습니다.

 

(19:21, 22) 에베소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의 파송: 이 일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계획하고 말하기를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 얼마간 더 있었다 했습니다.

 

(19:23-34) 에베소에서 데메드리오의 소동: 그 무렵 에베소에서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으로 인하여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아데미(여신)의 은감실(모조 여신상)을 만들어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그가 그 종업원들과 이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유족한 생활이 이 업에 있는데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 허다한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우리의 이 영업만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경홀히 여김이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고 했다 했습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분이 가득하여 외쳐 가로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온 성이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가지고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갔다 했습니다.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또 아시아 관원 중에 바울의 친구 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였는데 사람들이 외쳐 혹은 이 말을, 혹은 저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하였다 했습니다.

 

바울 일행의 전도를 방해하기 위해 모여든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일행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바울의 일행과 다른 입장을 가진 유대인들의 입장을 변명하기 위해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변명하려 했지만 저희는 바울의 일행과 같이 알렉산더도 유대인인 줄 알고 변명을 듣지 않고 소리를 질러 다 한 소리로 외쳐 가로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 동안이나 하였다 했습니다.

 

(19:35-41) 서기장의 중재: 서기장(지역 행정 관리 책임자)이 무리를 조용하게 하고 말하기를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성이 큰 신인 아데미와 및 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을 지키는 수호자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너희가 마땅히 조용하고 경솔하게 행동을 해서는 아니 되리라. 바울 일행이 신전의 물건을 도적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훼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잡아왔으니 만일 데메드리오와 및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송사할 것이 있거든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거든 정식으로 공식적인 회의에서 해결할지라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의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가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재료가 없다 하고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였다 했습니다.

 

(20:1-5) 마게도니아에서: 소요가 그치매 바울이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고 그 지경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그리스에 이르러 거기 석 달을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로 다녀 돌아가기로 작정하였다 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 이방 교회들로부터 구제금을 모아 각 교회 대표들의 손으로 전달하기 위한 자들의 명단은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바울 일행을 기다렸다 했습니다.

 

(20:6-12) 드로아에서: 바울 일행은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먼저 가 있는 각 교회 대표자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물렀다 했습니다. 바울의 일행이 안식 후 첫날에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했는데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층 누각에서 떨어져 죽었는데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 하고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났는데 사람들이 살아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위로를 적지 않게 받았다 했습니다.

 

7절에 “안식 후 첫 날에 떡을 떼려하여 모였다”라는 말씀에서 우리가 찾게 되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매 안식일(토요일)에 모였었는데 바울의 일행이 안식 후 첫날(주일)에 모였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신약 교회 성도들은 안식일 대신 주일에 모이고 있는데 주일에 모였다는 첫 기록이 바로 7절인 것입니다. 또 주일에 모이게 된 제일 중심적인 목적은 떡을 떼기 위해(만찬을 행하기 위해) 인 것도 확인하게 됩니다.

 

(20:13-16) 드로아를 떠남: 누가와 함께한 일행은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행선하니 이는 바울이 도보(육지)로 가고자 하여 이렇게 계획했던 것인데 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니 배에 승선하고 미둘레네에 가서 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리고 또 그 다음 날 밀레도에 이르렀다 했습니다. 바울이 지체치 않기 위하여 에베소에 들리지 않고 지나가기로 하였는데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위해 급히 가야 하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20:17-38) 밀레도에서 바울의 고별 설교: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오매 저희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알려주시기를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보라 내가 너희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지금은 너희가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 그러므로 오늘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너희 아는 바에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저희 모든 사람과 함께 기도하니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그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한 말을 인하여 더욱 근심하고 배에까지 그를 전송하였다 했습니다.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28절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밀레도 섬에 초청하여 장로들에게 이르기를 ‘성령이 너희를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세운 교회를 치게 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즉 성령이 장로들을 감독자로 삼고 교회를 치게 하였다 고 함으로 장로, 감독, 목자(양을 치는 자) 는 한 직분인 장로가 역할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표현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말로 말을 한다면 교회들이 감독, 또는 목사와 장로를 다른 직분으로서 이해하고 있지만 성경의 근거로 보자면 감독, 목사, 장로는 같은 직분이나 장로가 하는 일을 일의 측면에서 각각 다르게 표현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장로들을 불러 놓고 말하기를 성령이 너희를(장로들을) 감독자로 삼았다고 했으니 장로를 감독자라 한 것이며, 장로들에게 성령께서 교회를 치게 하였다 했으니 교회를 치는 자는 목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로, 감독, 목자는 한 직분인 장로가 하는 일에 따라 붙여진 이름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21:1-6) 두로에서: 우리가(누가를 포함한 바울 일행) 저희를 작별하고 배를 타고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로 가고 거기서 바다라로 가고 또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타고 가다가 수리아로 행선하여 두로에 상륙하니 거기서 배가 짐을 풀기 위함이었다 했습니다. 바울 일행은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였다 했으며 여러 날을 지난 후 우리가 떠나갈 때 저희가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였는데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서로 작별한 후 바울 일행은 배에 오르고 저희는 집으로 돌아갔다 했습니다.

 

(21:7-16) 가이사랴에서: 두로로부터 수로를 다 행하여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일군:희랍어 디아코노스 가 한글 성경상에 집사, 종, 또는 일군으로 번역됨)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유했다 했습니다. 그에게 딸 넷이 있었는데 처녀로 예언하는 자였으며 여러 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였는데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고 대답 하니 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다 했습니다. 이 여러 날 후에 행장을 준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유하려 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8절에 ‘일곱 집사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 이란 표현이 있어 6장에서 택함을 받은 7 일군은 바로 집사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지 모르나 한글 성경상에 있는 일군, 집사, 종은 희랍어 디아코노스 라는 같은 단어가 이렇게 여러 가지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어떤 곳은 집사로, 어떤 곳은 종으로, 어떤 곳은 일군으로 번역된 것이므로 이곳에서 집사라고 번역되었다 해서 7명은 집사라는 직분으로서 선택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한 예로 롬 16:1의 일군 뵈뵈 를 어떤 영어 성경에서는 여자 집사(Deaconess) 로 번역되어 있는 것을 보고 여자가 집사로 선택되었다는 증거를 찾았다고 말한 자들도 있으나 단어 하나의 번역을 가지고 단정을 지우려는 것은 무리인 것입니다. 일곱 집사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에서 본다면 그를 전도자라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을 하자면 집사도 전도자도 어떤 교회에서 세움을 받은 전도자나 집사가 있고 또는 어떤 교회로부터 집사나 전도자로 세움을 받지 않은 일반적인 일군 또는 전도자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1. 로마 여행/(21:17-28:31)

(21:17-26) 예루살렘에서의 증거/유대 풍습을 따르게 함: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바울 일행을 기꺼이 영접하였으며 그 이튿날 바울일행이 야고보(예수님의 형제)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었다 했습니다.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전도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고하니 저희가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심 있는 자라 네가(사도 바울이)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자녀들에게 할례를 하지 말고 또 유대인의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저희가 들었으니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저희가 필연 그대의 온 것을 알고 모여 들어 공격할 것이므로 우리의 말하는 이대로 하여라 너는(사도 바울은) 유대인이므로 유대인들이 지키는 규례를 지키는 것을 사람들 앞에 보이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저희를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저희를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게 대하여 들은 것이 헛된 것이고 그대로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하였으며 그러나 유대인이 아닌 믿는 이방인들은 유대인 우리들이 행하는 이 대로 그런 것을 지키게 하지 말고 우리들이 결의하여 보낸 편지대로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인 것과 음행을 금하면 된다 하니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저희와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드릴 때까지의 결례의 만기된 것을 고했다 했습니다.

 

그 당시에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은 할례도 행하고 기타 서원이라든지 정결케 하는 의식 등을 지켰지만 이것은 유대인에 한정된 것이고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런 율법을 행하도록 짐을 지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 15장 예루살렘 교회의 회의에서 결정하고 안디옥 교회에 편지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인이었고 또 유대인들 상당수가 바울은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쳤다는 오해가 있으므로 그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장로들과 야고보가 바울에게 제안하기를 예루살렘교회에 서원한 네 사람이 있으니 그들을 데리고 가서 예를 행하라고 제안하였고 바울이 이렇게 율법의 정결 의식을 행함으로 율법을 실천한 증거를 보여주므로 율법을 지키지 말라고 했다는 것은 잘못된 소문이었음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던 것입니다. 물론 사도 바울은 이런 것을 지켜야만 구원된다는 그런 것은 전혀 아니었던 것입니다. 불필요한 오해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21:27-39) 예루살렘에서의 증거/바울의 체포: 그 정결의식을 치르는 칠일이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훼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게 하였다 하니 이는 저희가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성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저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혔으며 저희가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의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니 저가 급히 군사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갔더니 저희가 천부장과 군사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쳤다 했습니다. 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겹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누구며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 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는 이 말로, 어떤 이는 저 말로 부르짖으니 천부장이 그 실상을 알 수 없어 그를 영문(병영) 안으로 데려가라 명했다 했습니다.

 

바울을 데리고 영문으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더러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냐고 물으니 천부장이 묻기를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그러면 네가 이전에 난을 일으켜 사천의 자객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대답하기를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작은 도시)이 아닌 큰 도시 길리기아 다소 성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한 것이었습니다.

 

(21:40-22:23) 예루살렘에서의 증거/군중 앞에서의 변론: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크게 종용히 한 후에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여 가로되 부형들아 내가 지금 너희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하니 저희가 히브리 방언으로 말함을 듣고 더욱 조용했다 했습니다. 이어 가로되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였으며 내가 이 기독교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었으니 이 일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했습니다.

 

또 내가 저희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는 도중에 다메섹에 가까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가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하면서 바울이 다메섹도상에서 일어났던 일들, 다메섹에 들어가 아나니아를 통해 안수 받고 눈이 볼 수 있게 되었던 일들, 세례 받은 일,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의 전도를 위해 예루살렘을 떠나라는 음성을 들었던 체험 등을 말해주고 있었는데 저희들이 여기까지 듣다가 소리 질러 가로되 이러한 놈은 세상에서 없이 하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렸다 했습니다.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렸다는 말은 군중들이 많이 흥분하였고 많이 화가 나 있는 상태에서 했던 행동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22:24-29) 예루살렘에서의 증거/천부장 앞에서의 변론: 천부장이 바울을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 명하고 저희가 무슨 일로 그를 대하여 떠드나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신문하라 하여 가죽 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서있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사람 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백부장이 듣고 가서 천부장에게 전하여 가로되 어찌하려 하느뇨 이는 로마 사람이라 하니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 사람이냐 내게 말하라 가로되 그러하다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가로되 나는 나면서부터로라 하니 신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사람인 줄 알고 또는 그 결박한 것을 인하여 두려워하였다 했습니다.

 

(22:30-23:11) 예루살렘에서의 증거/공회 앞에서의 변론: 이튿날 천부장이 무슨 일로 유대인들이 그를 송사하는지 실상을 알고자 하여 그 결박을 풀고 명하여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데리고 내려가서 저희 앞에 세웠다 했습니다.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말하기를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 바울이 가로되 회칠한 담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판단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 곁에 선 사람들이 말하되 하나님의 대제사장을 네가 욕하느냐 바울이 가로되 형제들아 나는 그가 대제사장인 줄 알지 못하였노라 기록하였으되 너의 백성의 관원을 비방치 말라 하였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그 한 부분은 사두개인이요 한 부분은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하여 내가 심문을 받노라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이니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크게 소동이 일어나니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저더러 말하게 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뇨 하여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이 바울이 저희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사를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문으로 들어가라 하였으며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셨다 했습니다.

 

(23:12-22) 예루살렘에서의 증거/유대인들의 바울 살해 계획: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었다 했습니다. 그들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함인 것 같이 꾸며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문에 들어가 바울에게 이 일을 전해주니 바울이 한 백부장을 청하여 가로되 이 청년을(바울의 조카) 천부장에게로 인도하라 천부장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 했더니 천부장에게로 데리고 가서 말하기를 죄수 바울이 나를 불러 이 청년이 당신께 할 말이 있다 하여 데리고 가기를 청하였다 한 것입니다. 그러니 천부장이 이 청년의 손을 잡고 물러가서 종용히 묻되 내게 할 말이 무엇이냐 물으니 바울의 생질이 매복하여 있다가 바울을 죽이려했던 음모에 대해 전하니 이에 천부장이 청년을 보내며 경계하되 이 일을 내게 고하였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했다고 했습니다.

 

(23:23-33) 예루살렘에서의 증거/바울의 구출: 천부장이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마병 칠십 명과 창군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그를 태울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또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일렀으되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에게 문안하노이다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알고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송사하는지 알고자 하여 저희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송사하는 것이 저희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건이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게 하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송사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를 대하여 말하라 하였다 했습니다. 보병이 명을 받은 대로 밤에 바울을 데리고 안디바드리에 이르러 이튿날 마병으로 바울을 호송하게 하고 영문으로 돌아갔으며 저희가 가이사랴에 들어가서 편지를 총독에게 드리고 바울을 그 앞에 세웠다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으며 또한 사도 바울의 사명이요 그의 꿈이었는데 유대인들의 핍박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잡혔기 때문에 로마는커녕 예루살렘성도 빠져나갈 수 없는 형편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을 빠져나가도록 보병 200 명, 마병 70 명, 창군 200 명을 세워 사도바울을 호송하신 놀라운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23:34-24:27) 가이사랴 에서의 증거/총독 벨릭스 앞에선 바울: 총독이 읽고 바울더러 어느 영지 사람이냐 물어 길리기아 사람인 줄 알고 가로되 너를 송사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 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명했다 했습니다.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소했고 더둘로가 송사하여 가로되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을 인하여 여러 가지로 개량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감사 무지하옵나이다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저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의 송사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였다 했습니다.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바울이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쁘게 변명하나이다 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 이틀 밖에 못되었고 저희는 내가 성전에서 아무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과 또는 성중에서 무리를 소동케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제 나를 송사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저희가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저희들과 똑같이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저희가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저희가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송사하였을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오직 내가 저희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가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가로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백부장을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며 친구 중 아무나 수종하는 것을 금치 말라 하였다 했습니다.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였다 했습니다. 이태를 지내서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대신하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었다 했습니다.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했던 벨릭스는 유대인들로부터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죄 없는 바울을 2년간이나 구류하여 두었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권력이나 인기 유지를 위해 개인의 인권을 유린한 부덕한 지도자상을 보게 됩니다.

 

(25:1-12) 가이사랴 에서의 증거/베스도 앞에선 바울: 베스도가 총독으로 부임한 지 삼 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보내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러라 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미구에 떠나갈 것을 말하고 또 가로되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송사하라 하니라 베스도가 그들 가운데서 팔 일 혹 십 일을 지낸 후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고 바울을 데려오라 명하니 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송사하되 능히 증명하지 못한지라.

 

바울이 변명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바울이 가로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에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사죄(죽을 죄)를 범하였으면 죽기를 사양치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송사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누구든지 나를 그들에게 내어 줄 수 없삽나이다 내가 가이사 (로마 황제)께 호소하노라 한대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가로되 네가 가이사에게 호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했다 했습니다.

 

(25:13-22) 가이사랴 에서의 증거/자문을 구하는 베스도:

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아그립바 왕의 여동생이며 벨릭스 전 총독의 처형)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여러 날을 있더니 베스도가 바울의 일로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벨릭스가 한 사람을 구류하여 두었는데 내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를 고소하여 정죄하기를 청하기에 내가 대답하되 무릇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고소 사건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있기 전에 내어 주는 것이 로마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였노라 그러므로 저희가 나와 함께 여기 오매 내가 지체하지 아니하고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아 명하여 그 사람을 데려왔으나 원고들이 서서 나의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사건은 하나도 제출치 아니하고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의 죽은 것을 살았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송사하는 것뿐이라 내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망설이다가 바울에게 묻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일에 심문을 받으려느냐 한즉 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 주기를 호소하므로 내가 그를 가이사에게 보내기까지 지켜 두라 명하였노라 하니 아그립바가 베스도더러 이르되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 베스도가 가로되 내일 들으시리이다 하였다 했습니다.

 

(25:23-27) 가이사랴에서의 증거/아그립바와 버니게: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추고 와서 천부장들과 성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신문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베스도가 말하되 아그립바 왕과 여기 같이 있는 여러분이여 당신들이 보는 이 사람은 유대의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치되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여 예루살렘에서와 여기서도 내게 청원하였으나 나는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러나 저가 황제에게 호소한 고로 보내기를 작정하였나이다 그에게 대하여 황제께 확실한 사실을 아뢸 것이 없으므로 심문한 후 상소할 재료가 있을까 하여 당신들 앞 특히 아그립바 왕 당신 앞에 그를 내어 세웠나이다 그 죄목을 베풀지 아니하고 죄수를 보내는 것이 무리한 일인 줄 아나이다 하였다 했습니다.

 

(26:1-18) 가이사랴에서의 증거/바울의 변명: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모든 송사하는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옵나이다 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및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 중에와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태를 유대인이 다 아는바라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저희가 증거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좇아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을 인하여 내가 유대인들에게 송사를 받는 것이니이다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 다시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범사를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세와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하면서 또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났던 일을 다 말한 것입니다.

 

(26:19-23) 가이사랴에서의 증거/그리스도를 전파하는 바울:

그러고 난후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리지 아니하고 먼저 다메섹에와 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선전하므로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거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라 했습니다.

 

(26:24-32) 가이사랴에서의 증거/무죄 판결: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하여 가로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바울이 가로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하나이다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편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로소이다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바울이 가로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이다 라 한 것입니다.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므로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더러 일러 가로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아니하였더면 놓을 수 있을 뻔하였다 고 한 것입니다.

 

(27:1-8) 로마에서의 증거/바울의 로마여행: 사도 바울이 소원했던 선교의 꿈은 로마를 선교 기점으로 스페인에 복음을 전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가능치 못했던 것은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을 죽이려고 갖가지 음모를 꾸미고 있기 때문에 로마까지 가는 것도 불가능한 형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이방교회가 모아준 구호금을 전달하려고 갔다가 체포되어 결과적으로는 비록 죄수의 모양으로 로마 군사의 호위를 받으며 로마에 가게 되었는데 로마에서 재판을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가고자하는 그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하셨고 가장 좋은 방법으로 안전하게 로마를 향해 배를 타게 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고 있습니다.

 

1절에서 ‘우리의 배타고 이달리아로 갈 일이 작정되매’ 라 했는데 우리라고 하는 것은 누가와 함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가 동행하게 됩니다. 물론 이들이 배타고 로마까지 가는 허락을 받고 바울이 탄 배에 승선했을 것이며 바울은 다른 죄수들과 함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겨졌다 했습니다. 이튿날 시돈에 도착했는데 이 시돈에도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는지 율리오가 바울로 하여금 시돈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허락했다 했으며 배가 기후 조건이 아주 나빠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미항이라는 곳에 도착했다고 했습니다.

 

(27:9-20) 로마에서의 증거/바다에서 만난 광풍:

계절적으로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기후 조건이 행선하기가 위태한 것을 잘 아는 바울이 저희를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고 행선을 연기하도록 권했으나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고 바울의 말을 듣지 안했다 했습니다. 바울의 권고를 듣지 않고 그 항구가 겨울을 나기가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나자고 말하는 자가 더 많았고 남풍이 순하게 불매 저희가 항해하기에 좋은 날씨로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가까이 하고 행선하였다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못되어 섬 가운데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일어나니 배가 밀려가는 대로 두고 쫓겨 가다가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구명선을 잡아 끌어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모래수렁)에 걸릴까 두려워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 가더니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버리고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내어 버렸다 했으며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다 했습니다. 바울의 권고를 듣지 아니했던 사람들이 바울의 절대적인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환경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해 가시는 것입니다.

 

(27:21-38) 로마에서의 증거/바울의 위로: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떠나지 말자고 권했던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러나 우리가 한 섬에 밀려가 닿을 것이라 했습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라고 했다 했는데 이런 식으로 지금 어떤 종교 지도자가 ‘음성을 들었다’든지 ‘환상을 보았다’ 든지 한다면 그는 위험스런 지도자로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지금은 어떤 환상이나 소리로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말씀으로 나타나시기 때문입니다.

 

열 나흘째 되는 날 밤에 이 배가 바다에 이리저리 쫓겨 가더니 밤중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고 물을 재어보니 이십 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길이라 암초에 걸릴까 하여 뱃머리에 닻 넷을 주고 날이 새기를 고대하더니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뱃머리에서 닻을 내리는 체하고 작은 배(구조선)를 바다에 내려놓거늘 바울이 백부장과 군사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이 배에 있지 아니하면 너희가 구조를 받지 못하리라 하니 이에 군사들이 작은 배에 연결된 줄을 끊어 떼어 버렸다 했습니다. 날이 새어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을 음식 먹으라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음식 먹으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터럭 하나라도 잃을 자가 없느니라 하고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저희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배에 있는 사람들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인이었는데 그들이 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다 했습니다.

 

‘너희 중 머리터럭 하나라도 잃을 자가 없느니라’ 라고 말한 것은 사도 바울의 개인의 짐작이나 소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에 따른 것으로 그 당시에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사를 사도 바울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종교 지도자들도 사도 바울과 같은 특별한 은사를 받은 것 같은 언행을 하고 싶은 유혹이 있기 마련이나 하나님께로부터 특별한 은사를 받은 것 같은 언행을 하는 것은 자기가 영광을 받고자 하나님을 이용하는 결과가 되는 행위인 것입니다.

 

(27:39-44) 로마에서의 증거/광풍으로부터의 구출:

날이 새매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거늘 배를 거기에 들여다 댈 수 있는가 의논한 후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킷줄을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을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 두 물이 합하여 흐르는 곳을 당하여 배가 끼여들어 뱃머리는 부딪혀 움직일 수 없이 붙고 선미는 큰 물결에 깨어져 가니 군사들은 죄수가 헤엄쳐서 도망할까 하여 저희를 죽이는 것이 좋다 하였으나 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 저희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원을 얻었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백부장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군사들이 죄수를 죽이겠다는 뜻을 막음으로 바울이 살아남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28:1-10) 로마에서의 증거/멜리데 섬에 도착: 모두 구원을 얻은 후에 알았는데 그 섬은 멜리데라는 섬이었고 그 섬의 토인들이 특별한 동정을 하여 비가 오고 날이 차매 불을 피워 일행들을 다 영접하였다 했습니다. 바울이 한 아름 나무를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을 인하여 독사가 나와 바울의 손을 물고 있으니 독사가 바울의 손에 달림을 보고 토인들이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원을 얻었으나 정의의 여신이 이 사람을 살지 못하게 하는 구나라 하였다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었고 그가 붓든지 혹 갑자기 엎드러져 죽을 줄로 저희가 기다렸더니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생각을 바꿔 말하기를 신이라 하였다 했습니다. 이 섬에 제일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모든 일행을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유숙하게 하더니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후한 예로 모두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어주었다 했습니다.

 

(28:11-15) 로마에서의 증거/멜리데에서 로마로: 석 달 후에 그 섬에서 겨울을 넘긴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떠나서 수라구사에 갔고 사흘을 있다가 거기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난 후 남풍이 일어나므로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러 거기서 형제를 만나 저희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유하다가 로마로 갔으며 거기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저자와 삼관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저희를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었다 했습니다. 보디올에서도 형제들의 청함을 받고 칠일을 함께 지냈다했는데 교회가 이곳에도 세워져 있었던 모양이며 로마에 도착했을 때에도 로마 교회 형제들이 바울을 맞으러 나왔다 했습니다.

 

(28:16-22) 로마에서의 증거/유대인에게 변증하는 바울: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받았으며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모인 후에 말하기를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규모를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어 준 바 되었으니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놓으려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못하여 가이사에게 호소함이요 내 민족을 송사하려는 것이 아니로라 이러하므로 여러분들과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며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저희가 바울의 말을 듣고 가로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고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노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우리가 앎이라 하였다 했습니다.

 

(28:23-31) 로마에서의 증거/바울의 강론:

저희가 바울과 약속 날짜를 미리 정하고 그 약속된 날짜에 바울의 우거하는 집에 사람들이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해 가르쳤다 했습니다.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마디 더 덧붙여 말하기를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 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을 이방인에게로 보내신 줄 알라 저희는 또한 들으리라 하였다 했습니다. 바울이 만 이년을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다 했습니다. 로마에서도 복음을 전하하고자 했던 바울의 소원이 이뤄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