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의 시기 – 마태복음 24:32-41

오늘 설교 제목은 재림의 시기입니다. 세상 사람들까지도 지금이 말세라고 하는데 과연 성경에서는 주님께서 언제 오신다고 되어 있느냐에 대해 교훈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92년도에 주님이 오신다고 법석을 떨었던 단체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 잘못된 교리를 가지고 사람들을 미혹하는 자들에게도 책임이 있겠지만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주님의 말씀보다는 사람의 말씀을 더 신뢰한 개개인에게 또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주님께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라고 예루살렘의 멸망의 시기와 세상 종말의 시기에 대해 질문을 하였고 주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주는 대로 주님께서 재림하실 시기에 대해 답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대답을 바로 이해하므로 세상의 종말에 대한 보다 성서적인 지식과 믿음을 가져 주님의 재림에 만전을 기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을 네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그 교훈을 우리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무화과나무의 비유(32-35)

[2]그 날과 그 때(36)

[3]노아의 때의 예(37-39)

[4]데려감을 당하고 버려둠을 당함(40-41) 입니다.

 

[1]맨 먼저 무화과나무의 비유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루살렘 성의 멸망과 세상 종말의 시기에 대해 묻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들어 재림의 시기에 대해 답을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하십니다. 즉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아주 친근한 나무로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하여 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알듯이 주님께서 앞에서 예언하신 여러 징조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문 가까이 와 계신 것을 알라는 것이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잎이 생기면서 바로 열매가 생기는 것으로 잎사귀가 생겼다고 한다면 아직 완전한 여름은 아니나 여름이 가까워 온 것을 다 알게 되듯이 나라와 나라가 대적하고 지진이 나며 기근이 심하고 사랑이 식어 서로 싸우고 거짓 그리스도나 거짓 선지자들이 나오고 핍박이 있는 것을 보면 주님께서 재림의 문 앞에 서 계신 것으로 알라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재림에 대해 무관심하므로 시기를 전연 예측을 하지 못하겠지만 성도들은 재림을 기다리는 자들이므로 주님께서 주신 재림의 징조들이 일어난다면 주님께서 곧 오실 것으로 알 수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34절에 보면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고 하였습니다. 즉 이 세대가 가기 전에 주님이 오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혹시 성질 급한 사람들이 이 세대가 다 지나갔는데도 재림이 없다고 재림의 소망을 포기해 버릴까 하여 35절에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재림의 약속이 꼭 지켜질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심을 보게 됩니다. 세상 끝에는 옛 하늘과 옛 땅은 없어지겠으나 주님의 약속은 그대로 이뤄지리란 말씀인 것입니다.

벧후 3:8-10에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한 것을 인간들의 기준으로 더디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시간 개념과 하나님의 시간 개념이 전연 다른 것은 하나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을 수도 있고 천년이 하루 같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근본 뜻은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회개하도록 하기 위해 좀 지체되는 것 같으나 주의 재림의 날이 도적같이 예측을 하지 않은 때에 온다는 것입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다 이루리라고 약속하셨는데 세 가지 사건이 종말과 연관해서 인간 역사에 실제로 일어날 것이 명백합니다. 하나는 24장 8절에 약속된 재난의 시작이요 둘 째는 21절에 약속된 창세 이래로 없었던 대 환난이요 셋 째로는 권능과 큰 영광으로 하늘 구름을 타고 인자가 오신다는 약속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2]둘 째로는 그 날과 그 때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기독교 역사에 세상 종말을 몇 년 몇 월 며칠이라고 못박아 예언한 예가 가끔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예언은 모두 잘못된 예언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에는 하도 신령한 자들이 많아 모두 영웅이 되고 싶어서 기도로 하나님께 세상의 종말이 몇 년 몇 월 며칠에 일어나게 될 것인지를 알게 해 달라고 때를 써서 얻어내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아무리 신령한 자들의 예언도 다 가짜였음이 증명되었습니다.

요사이 일본에 지진이 크게 나서 수천 명이 죽었는데 만일 언제 이런 지진이 날지 알았다면 인명 피해를 많이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진 연구를 위해 유명한 학자들을 동원하여 지진이 일어날 시기를 연구하고 또 연구해도 실지로 불가능하다고 지진 학자들이 솔직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런 큰 지진이 언제 일어날지를 학적으로 안다고 가정한다면 주님의 재림의 시기도 대략 몇십 년이나 몇백 년 내에 있을 것을 알아낼 수 있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주님께서 36절에 하신 말씀과 같이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함같이 주님 자신도 몇 년 몇 월 며칠에 재림하실 것인지 알지 못한다고 하셨기 때문에 어떤 신령한 자들이 주님이 오실 날을 예언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불경한 짓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만일 종말에 있을 천체의 변동을 천문학자들이 꼬집어 낼 수 있고 대 환난 시의 큰 지진을 지진 학자들이 알아낼 수 있게 된다면 그 시와 그때를 하나님만이 아신다는 비밀이 무의미하게 될 것이므로 인간의 두뇌로는 전연 불가능할 것이고 영원히 하나님 외에는 비밀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누가 어떤 자료를 가지고 와서 뭐라고 하던지 주님의 오실 날과 때는 주님도 모르시는 일임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도 그 날과 그 때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이미 그 날과 그 때를 정하고 계신 것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즉 재림이란 가상적 시나리오가 아니라 실제적 사건으로 나타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주님께서 분명히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3]세 째로는 노아의 때의 예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37절에 보면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고 했습니다. 노아의 때에 노아가 방주를 짓기 시작하여 홍수가 있을 때까지는 120년간의 여유가 있었으며 노아가 방주를 그렇게 오랫동안 짓고 있을 때에 모든 사람들은 홍수로 멸망하게 될 것에 전연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햇빛이 쨍쨍함에도 홍수를 대비하여 방주를 짖고 있는 노아를 많이 비웃었을 것입니다. 본문 38절에 보니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며 시집도 가고 장가도 가야 하겠지만 거기에만 정신을 몰두하고 주님 오심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재림을 준비하라는 전도자들의 말을 전연 무시해 버린 잘못을 지적하신 것이며 재산을 늘리고 사치하고 세상의 향락에만 몰두하고 영혼 관리에는 전연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불신자들이야 죽음 이후에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자들이므로 할 수 없지만 문제는 믿는다고 하는 교인들이 교회는 다니나 교회 다니는 목적이 하나님께서 현세에 보다 많은 복을 내려 주시기를 바라는 기복 신앙만을 가지고 있고 미래에 대한 준비에는 전연 무관심한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고 하셨지만 오히려 이 세상일에 몰두하고 이 세상일이 영적인 삶보다도 늘 우선적인 자들을 지적한 것입니다. 교인들을 위한 축복기도를 해 줄 때에 잘먹고 잘살게 해 달라고만 복 빌어 주는 전도자들을 지적한 것이기도 하며 교인들이 주님의 재림을 대비하도록 가르치는 일에는 등한하고 주일마다 교인들의 머리수 세는 일과 들어온 헌금 액수가 얼마인지에 더 큰 관심을 보이는 전도자들의 잘못을 지적한 것이기도 합니다. 육의 양식은 꾸준히 섭취하면서도 영의 양식은 잠깐 먹다가 얼마 안돼서 중단해 버리고 6개월도 1년도 중지 상태에 있으면서도 영적으로 전연 배고픔을 느끼지 아니하는 자들을 지적한 것이며 월수입이 줄어들면 심각하게 느끼면서도 믿음이 식어진 것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자들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즉 이런 자들은 주님께서 재림하시게 될지라도 전연 낌새를 채지 못하고 있다가 멸망을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살전 5:3에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고 했는데 실은 주님의 오심이 더디다고 할 정도로 그의 오심에는 여유가 있는 것이 사실이나 아무리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하더라도 준비하지 않는 다면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피하지 못하게 홀연히 재림하신 결과같이 될 것입니다. 즉 세상에 빠져 있으므로 시대를 전연 분간 못하고 징조를 전연 분간 못하므로 준비 없이 주님을 맞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방주가 준비되지 아니한 자는 물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듯이 주님의 재림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한 자는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4]네 번째로 데려감을 당하고 버려둠을 당함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40절, 41절에 보면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는 기록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주님이 오시어 양과 염소를 갈라내는 것을 의미한 것입니다. 날마다 함께 밭에 나가 일하는 친한 남자 일꾼 둘 중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는 것이며 한 방에서 맷돌질을 하는 두 여인 중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밭에서 일하고 있는 도중에, 또 맷돌질하고 있는 동안에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는 것은 심판이 갑자기 진행되는 심판의 돌발성을 말해 주며 또 친한 두 남자가 부자간일지 혹은 형제간일지 또는 친한 친구 사이일 수가 있겠으나 그 이상 함께 하지 못하도록 갈라놓는다는 것은 심판의 엄격성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심판이 시작되면 그 때에야 후회하고 반성해도 소용이 없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우리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잘 압니다. 거지 나사로는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고 부자는 음부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었으며 부자가 목말라 나사로의 손가락에 물을 적셔 자기 혀를 적시게 해 달라고 자기는 불꽃 가운데서 고민한다고 아브라함에게 애원하였으나 나사로와 부자 사이에는 큰 구렁이 있어 피차에 오고 갈 수 없다고 거절을 당했으며 또한 부자가 자기 형제 다섯이 이 뜨거운 불꽃에서 고생하지 않도록 나사로를 자기 집에 보내서 전도해 달라고 부탁을 했으나 많은 전도자들의 말을 듣지 않고 있다면 비록 죽은 가운데서 나가서 전도해도 듣지 않을 거라고 거절했음을 압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부자에게 말하기를 너는 세상에서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통을 받았으니 여기서 너는 고민을 당하고 나사로는 위로를 받는 것을 기억하라고 하였음을 보게 됩니다. 어떤 부부는 죽어서 함께 묻히기를 바라고 죽은 후에 합장을 한다고 해서 죽은 후에 같은 곳에 가서 함께 사는 것도 아니며 또 함께 묻히기를 거절한다고 하여도 죽은 후에 같은 곳에서 살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얻게 되며 그 교훈을 우리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때가 종말의 때인 줄을 알고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에만 몰두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요사이 세상을 돌아보면서 신자 불신자 할 것 없이 모두 말세라고들 합니다. 모두가 입으로 시인한 대로 현세가 말세라면 세상이 곧 끝이라는 말이므로 세상이 끝이라면 주님께서 오시어 세상을 심판한다는 말인데도 세상이 곧 끝나더라도 자기들만은 영원히 살아 남을 것을 믿는 자들인지 말세와 주의 재림에 대한 대비책에 대해서는 전연 관심을 쏟지 아니하고 입으로만 말세라 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말로 말한 대로 정말 말세인 줄 안다면 아니 주님의 심판 날이 곧 온다고 믿는다면 불신자들은 믿어야 할 것이고 신자들이 모인 교회의 분위기가 이보다는 더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교회를 메울 것이고 형제끼리 남보다 자기가 더 사랑을 하려고 앞 다투어 사랑을 하리라 봅니다.

무화과나무가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워 옴을 알듯 요사이 지구의 변화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볼 때에 주님이 오시려고 문 앞에 서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아니 내가 죽은 후에 주님이 오신다 하여도 그 전에 죽은 자나 그 때까지 살아 남은 자나 모두 심판을 받아야 함으로 내가 죽은 날이 결국 주님의 재림 날이요 심판 날이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달리 말한다면 우리는 모두 주님의 재림을 수 십 년 안에 다 맞아야 하는 운명인 것입니다. 주님이 몇 년 몇 월 며칠에 오실 지 내가 몇 년 몇 월 며칠에 죽을지 정확한 날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다만 우리는 믿음의 선배들을 통해 그들이 경험한 인생을 잘 배워 우리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운영해야 합니다.

 

 

전도서를 기록한 전도자 솔로몬은 전도서를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지식, 지혜, 부귀 영화를 다 누려 본 자가 한 고백입니다. 돈이 없을 때는 돈만 많이 있으면 다 될 것 같아 돈을 몽땅 가져 보니 헛되었고 권력과 지식 아니 수천의 아내를 거느려 보았지만 그런 것을 바랄 때는 그런 것이 큰 의미가 있을 줄 알았으나 그것을 다 차지하고 나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결론뿐이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될 종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생의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두워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늙으면 모든 기력이 쇠해진다는 말입니다. 그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늙으면 손발이 힘이 없고 떨 수밖에 없다는 말이며, 힘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라고 했으니 늙으면 허리가 굽어진다는 말이며, 맷돌질하는 자들이 적어진다고 했으니 이가 빠져 간다는 말이며, 창들로 내어다 보는 자가 어두워 진자고 했으니 눈이 어두워진다는 말이며 길거리 문들이 닫힌다는 말은 귀가 먹게 됨을 말하는 것이며 음악 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 진다고 했으니 목소리가 이젠 나올까 말까 하는 가는 소리를 내게 된다는 말입니다. 또 살구나무가 꽃이 핀다고 했으니 머리 색깔이 하얗게 변한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하다가 사람이 원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된다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얼마 후에 조문객들이 자기 주변에 왔다갔다하는 것을 상상해 보고 자기의 삶을 바꿔 살아라는 것이며 이런 평범한 진리를 깨닫고 헛되다고 고백을 하며 이렇게 되기 전에 조물주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충고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헛된 세상이니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충실히 하되 세상의 모든 것이 다 헛된 줄을 알고 하고 그런 것을 목적으로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주님의 말씀에, 주님의 재림에 초점을 맞추고 살다가 당장 주님이 오늘 오신다 해도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인 것입니다. 한 교회에서도 어떤 자는 주님이 받아 주시고 어떤 자는 버리실 것이며 같은 마을에 사는 자중 어떤 자는 주님이 데려가시고 어떤 자는 버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저는 성도들이 모이는 모임에 보이지 않는 얼굴이 있으면 너무 서운함을 느끼게 됩니다. 모두 같은 마음이리라 생각됩니다. 하물며 하늘 나라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했던 자들 중 어떤 얼굴들이 보이지 않는 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어떤 일류 여자 바이올리스트에게 성공의 비결을 물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대답이 무시하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남을 무시하는 교만을 배웠다는 말이 아니고 자기가 바이올린 연습을 끝낸 다음에야 다른 일을 손에 델 정도로 다른 일을 무시하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돈벌고 친구 만나는 일을 무시할 줄 아는 비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일, 말씀 배우는 일, 말씀 읽는 일, 기도하는 일을 세상이 어떤 것보다도 우선 적으로 맨 앞자리에 오도록 한다면 주님으로부터 데려감을 당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신랑 되신 주님의 신부로 모두 데려감을 당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