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어라 – 마태복음 24:42-51

지난 주에는 재림의 시기에 대한 말씀을 소개받았습니다. 주님께서 언제 오신다고 했던가요?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서울이라면 어제가 되겠습니다. 4월 16일에 주님이 재림하시고 잘 믿는 성도들은 휴거한다고 휴거를 기다리고 있는 휴거파 무리들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주님의 재림시기가 비밀이므로 깨어 있으라는 것임에도 어떤 사람들은 그 비밀 날자를 알아내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날자를 비밀로 하신 것은 그 날자를 공개하는 것 보다 인간들에게 유익되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으로 믿습니다.

재림을 소망하는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한마디로 “깨어 있어라”는 교훈을 주시면서 본문에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깨어 있는 것인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소개받는 성도들 모두가 본문에서 주는 교훈대로 깨어 있어서 주님이 언제 오시든지 주님을 영접하실 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을 네 부분으로 나누어서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뜻을 교훈을 찾으며 그 교훈을 우리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깨어 있으라(42)

[2]집 주인의 비유(43-44)

[3]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의 비유(45-47)

[4]악한 종의 비유(48-51) 입니다.

 

[1]맨 먼저 깨어 있어라 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깨어 있어라”는 말은 ‘깨어 지키다’ ‘머물러 경계하다’ ‘잠을 자지 않고 보초를 서다’라는 의미로 어떤 일에 주의를 집중하고 있음을 말하며 꼭 필요한 시간에 정신을 차리고 있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궁극적으로 깨어 있다는 말은 도적이 뚫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잘 지키는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한참 깨어 있었음에도 도적이 들어오는 순간에 깜빡 졸았다고 한다면 깨어 있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과 연결해서 생각한다면 끝까지 신앙을 잘 지키고 있다가 주님 오실 때에 주님 앞에 나타나서 주님을 영접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영접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최고의 소망인데 신랑 되신 주님께서 언제 오실 지를 모르므로 깨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국 주님의 재림의 날과 시간을 비밀로 하신 하나님의 뜻은 우리 세대에 주님이 오시든지 오시지 않던지 성도들로 하여금 깨어 있는 삶을 살게 하므로 성도들에게 유익을 가져다주어 결과적으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게 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어느 날에 오실런지 모르는 우리로서는 항상 깨어 있어 주님 재림시에 주님을 영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만 더 좁혀서 말한다면 인간은 언제 죽을지도 모르므로 살아 있는 날 하루하루를 주님 안에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함께 사는 삶을 살라는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깨어 있어라’는 말을 보다 명확히 하시기 위해 본문에서 지금부터 소개되는 세 비유를 들어 가르쳐 주십니다.

[2]첫 비유인 집주인의 비유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깨어 있는 자’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인지를 가르쳐 주시기 위해 첫 번째로 집주인의 비유를 주십니다. 집주인의 비유에서는 집주인이 도적이 몇 시에 올 줄 알고 있다면 깨어 있어 집을 뚫지 못하도록 하였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집주인이 깨어 있어 도적이 못 들어오도록 지킨 것 같이 우리도 주님이 언제 오시든지 맞을 수 있도록 예비하고 있어라 는 것입니다. 전연 예측치 않은 때에 주님이 오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재림의 문제를 도둑이 드는 것에 비유한 곳이 살전 5:2; 벧후 3:10; 계 3:3 에 나와 있습니다. 도둑은 우리의 상식과 평범한 사고를 초월한 시간과 방법으로 침입하게 되므로 항상 경계 태세를 하고 지키지 않으면 도둑을 맞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도 우리가 예기치 않던 날에 홀연히 재림하실 지도 모르니 깨어 있고 예비하고 있어라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재림 전에 있을 징조를 말씀해 주셨으므로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관심 있게 보살피며 주님의 재림을 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벧후 3:13에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노라” 했는데 주의 재림을 소망하며 주님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 것을 소망하여 세상에 눈을 팔지 말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3]그 다음은 두 번째 비유인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의 비유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깨어 있는 자’란 어떤 자인지를 분명히 가르쳐 주시기 위해 두 번째 비유로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의 비유를 주십니다. 본문에서 주님께서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란 주인집의 모든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수 있는 자라고 소개하고 계십니다. 즉 집주인이 집안 식구들을 그 종에게 맡기고 멀리 출타하고 주인이 집에 없지만 종으로서 주인이 집에 있던 없던 자기가 맡은 책임인 집안 식구들에게 매 끼니때마다 거르지 않고 꼭꼭 양식을 나누어주는 자란 것입니다. 집주인은 종에게 자기가 출타하고 없는 동안에 자기 가족을 잘 보살펴 주도록 책임을 맡기고 갔지만 조금은 염려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고 없이 집주인이 돌아와 보니 집주인이 부탁한 대로 때를 따라 양식을 잘 나누어주고 있음을 확인한다면 그 주인은 그 충성된 종에게 주인의 모든 소유를 맡길 것이라는 비유인 것입니다.

본문에서 소개되고 있는 종은 주인으로부터 직접 책임을 부여받은 것을 봅니다. 그리고 그가 맡은 책임은 주인의 가족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일이었고 그는 주인이 자기에게 부탁한 대로 ‘그렇게 했으며’ 주인이 갑자기 여행에서 돌아와서 종의 충성을 확인했으며 주인은 그 종에게 이젠 전 재산을 맡기게 된다는 것인데 이런 종과 같은 자가 바로 깨어 있는 자란 비유인 것입니다. 주인이 누구일까요? 하나님이시겠지요. 종은 누구일까요? 믿는 성도들을 말합니다. 주인의 가족들이란 하나님의 가족이므로 역시 믿는 성도들을 말합니다. 더 넓힌다면 불신자들까지 포함된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준다는 말은 성도들에게 말씀을 나누어주고 성도들을 사랑으로 보살피는 것을 말하며 ‘주인이 올 때에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이란 주님께서 재림하시어 성도들이 맡은 바대로 충성스럽게 일하고 있는 것을 보시면 이란 말이며 ‘그 종이 복이 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이 세상에서 모는 환난을 잘 이기고 믿음을 지킨 충성에 보상해 주시기 위해 하늘 나라의 많은 복을 내려 주실 것이라는 말씀이며 ‘주인이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긴다’는 말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모든 영광을 다 누리게 될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깨어 있는 자’란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기신 사명을 그 대로 순종하여 충성스럽게 감당하되 주님의 재림시 까지 시종 여일하고 감당하고 주님으로부터 우리의 충성이 인정된 자가 결과적으로 ‘깨어 있는 자’란 결론을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와 연계시켜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확인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벧전 4:10 에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했는데 우리 각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사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들을 돌보아야 할 청지기로서의 할 일도 능력도 다 받았습니다. 각자가 할 수 있는 모든 은사를 가지고 하나님과 사람을 위해 충실히 봉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주님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함을 전제하고 성실과 충성으로 직무를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말씀을 받으면서 내게 맡기신 청지기직은 무엇일까를 찾아내야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님께서 다 다른 달란트를 주셨는데 자기에게 맡기신 달란트를 발견하고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 충성스럽게 봉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충성하되 주님이 오실 때까지 충성을 하란 말이며, 또 사람의 기준으로 합격을 판정하지 말고 주님의 기준으로 합격이 되도록 진심으로 충성하라는 말입니다. 고전 15:58에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라 했는데 모든 청지기들은 흔들리지 말고 확신을 가지고 또 항상 주의 일에 힘써라는 권면이신 것입니다. 그런 모든 수고가 하나도 헛되지 않고 모두 상급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에게 약점이 있다면 큰 것에는 충성을 하는데 작은 일에는 등한한 점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교훈은 언제나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할 줄 아는 자에게 큰 것을 맡기신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역으로 말한다면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한다는 말씀이 주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도로서 내게 맡기신 크고 작은 일을 충성스럽게 해내야 합니다. 그리고 한번 시작한 일은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충성을 해야 합니다. 한 일년은 잘하고는 느슨해져서도 아니 된다는 교훈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비유는 내가 할 일을 찾고, 맡은 일을 주님 오실 때까지 충성하고 주님으로부터 큰상을 받는 자가 바로 ‘깨어 있는 자’라 할 수 있다는 비유입니다.

 

[4]그 다음은 세 번째 비유인 악한 종의 비유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세 번째의 비유에서는 ‘깨어 있는 자’가 누구인지를 보다 선명하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 깨어 있지 못한 자를 소개해 주시는 비유입니다. 48절부터 51절까지에서 악한 종의 모습을 소개해 주고 있는데 본문에서 지적한 ‘악함’이란 첫째, 주인이 더디 돌아올 것이라는 마음 자세입니다. 주인이 언제 오던지 상관없이 꾸준히 충실했어야 함에도 주인이 늦게 돌아오리란 마음을 갖고 자기가 맡은 일에 방심한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즉 주님께서 도적같이 속히 오실 것이니 깨어 있으라고 약속하셨음에도 이를 믿지 않고 주님의 오실 시기를 자기 판단으로 단정을 내린 불신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또 두 번째 지적하신 ‘악함’이란 ‘동무들을 때리고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심’입니다. 종이 맡은 일은 주인의 가족들을 돌보는 일임에도 자기가 맡은 일은 하지 않고 다른 종들을 때리고 술친구들과 먹고 마셨다고 하니 하나님께서 맡기신 말씀 전파와 사랑과 봉사의 사명을 주셨음에도 자기가 할 일을 팽개치고 세상에 빠져 타락한 점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영적인 일에 관심을 쏟고 하나님의 일에 마음을 쏟아야 함에도 먹고사는 일에만 전력 투구하거나 또한 형제를 사랑하고 서로 아끼라고 하셨는데도 서로 미워하고 헐뜯고 하는 것을 지적하시고 이런 자들은 악한 종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즉 오직 호칭만 종이지 실지로는 주인의 행세를 하고 있는 자들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호칭만 성도이지 실지 행동은 세상에 빠져 있는 타락한 세속적인 사람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50절과 51절에는 이런 악한 종들에게 내릴 형벌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비록 악한 종이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주인의 오심은 종의 시간표에 따라 오시는 것이 아니고 주인의 시간표에 따라 오시게 되어 있으므로 ‘생각지 않는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오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인이 오시어 종의 악함을 보시고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들이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였습니다. ‘엄히 때리고’란 아주 지독하고 엄한 형벌을 받는 다는 말이며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는 말은 마태복음에서 특징적으로 자주 사용하고 있는 문구로 철저하게 후회하는 모습이요 극한의 절망과 고통을 안겨 주는 심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거기서’란 심판의 처소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게 되며 그 교훈을 우리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언제 임할는지 모르므로 깨어 있어라 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당시의 사람들은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후 곧 종말이 올 줄 알고 지내다 종말이 오지 않자 실망하여 세상으로 발길을 옮기거나 이단적 종교로 바꾼 자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주님께서 밤이 지나서 새벽녘에 오실 것인데 대 낮까지만 기다리다 오시지 않으므로 포기한 자들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주님께서 언제 오실는지 모른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음에도 그들은 대 낮에 또는 초저녁에 오실 것으로 자의적 판단을 하고 자기들의 판단이 맞지 않으므로 오시지 않을 모양이라고 단정해 버린 자들입니다. 일찍 포기해 버린 자들은 ‘깨어 있으라’는 주님의 경고를 무시한 자들입니다.

또 반대로 어떤 자들은 본문에서 악한 종의 비유에서 지적한 것같이 주님께서 더디 오실 것이라고 주님 맞을 준비를 하지 않고 다른 데에 정신을 파는 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들이 다른 데에 정신을 팔고 있을 때에 주님이 오실 것이므로 이들 역시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하므로 ‘깨어 있어라’는 주님의 경고를 등한히 한 자들입니다.

또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 중에는 주님이 곧 재림한다고 일하는 것도 포기하고 성도들의 가정에 폐를 끼친 자들도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복이 있으리로다’ 에서 ‘이렇게 하는 것’이란 충성되고 지혜 있게 주인의 집 식구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것을 말하는 것이므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것도 ‘깨어 있어라’는 주님의 권면을 자기 중심으로 해석해 버린 결과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자가 누구뇨?’ 라고 물으십니다. 즉 주인께서 어느 날 어느 시간에 오시든지 ‘충성스럽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 드릴 수 있는 자’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충성되고 지혜 있게’잘 완수하므로 주님으로부터 더 큰 일을 맡게 될 자들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이 말씀을 소개받고 있는 한인 그리스도의 교회 성도들이 모두 예, 접니다 라는 대답이 나올 것을 기대하시고 질문하신 것입니다. 이 질문에 모든 성도들이 새로운 각오로 예, 접니다 라고 대답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만일 아니라면 바깥 어두운 곳에서 이를 갈며 슬피 우는 자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초점은 언제 오시든지 우리가 충성과 지혜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시기 바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게 될 때에는 주님이 오시는 바로 그 순간에 모든 성도들이 자기가 맡은 청지기의 삶을 충성스럽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그 순간으로 인간의 모든 동작은 끝이 나며 그 상태에 의해 상을 받거나 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바로 오늘 오신다면 주님이 보신 우리의 모습이 어떨까요? 합격일까요? 아니면 불합격일까요? 합격을 시켜 주신다면 무엇 때문에 합격을 시켜 주실 것으로 생각하시며 불합격을 당한다면 무슨 이유에서 일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한인 교회 성도들 모두를 하나님께서 합격을 시켜 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현재보다 더 충성스럽게 청지기 삶을 사셔야 합니다. 거울로 자기의 모습을 비춰 보시고 당장 주님이 오시더라도 합격될 수 있도록 새롭게 단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만은 금물입니다. 고집은 금물입니다. 휴거를 당하기 위해 비단 흰옷을 입고 예배당에 앉아서 매일 휴거만 기다리고 있는 낭비적인 삶을 살라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옷, 순종의 옷, 충성의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천천히 오시겠지 하며 하나님께서 내게 바라시는 것을 다 알면서도 하루하루 한 주 한 주 미루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혹시 곧 오시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생명이 언제 끝날지 내일 일을 모르는 인간들입니다. 내가 죽는 날이 주님이 오신 날이요 심판 날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의 모습을 우리 모습에서 찾지 못하신다면 우리는 악한 종의 비유에서와 같이 엄한 형벌을 받고 이를 갈며 슬피 울며 그때야 후회한들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엄한 형벌이 두려워서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충성되고 지혜 있는 복 있는 자들에게 주시기로 한 상을 소망하며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과 형제를 사랑하여야 합니다. 믿음 생활에 열심을 내고 내 이웃들에게 때를 따라 말씀을 나누어주며 형제들을 겸손하게 섬김으로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들이 다 되시어 하나님이 예비하신 복을 다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