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사명 – 마태복음 28:16-20

인류 구원을 위해 지극히 낮고 천한 모습으로 탄생하시고 일평생 섬김의 도를 실천하시다 마침내 가장 처참한 모습으로 죽임을 당하셨던 바로 그 주님께서 오늘 주신 본문에서는 유대인의 왕이요 온 세상의 주인으로서 제자들 앞에 나타나시어 제자들에게 위대한 사명을 당부하는 내용으로 마태 복음을 끝맺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큰 사명을 맡기신 이 내용을 보통 최고의 명령이라는 뜻으로 ‘지상 명령’ 또는 ‘위대한 사명’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이 큰 사명이란 ‘복음을 전파하고, 세례를 주고, 주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일’로서 이 사명은 교회가 시작되어지는 순간부터 행해질 사명이 되므로 이 위대한 사명은 교회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장엄한 서언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큰 사명에서는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심으로 ‘유대인만의 하나님’개념에서 ‘만민의 하나님’개념으로 구원의 문을 만민에게 활짝 열어 주신 ‘복된 선언’이 되는 것이며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심으로 특수 계층의 사람으로만 제한했던 ‘특수층 제사장직’에서 ‘만민 제사장직’으로 문을 열고 누구나 함께 참여하여 큰 사명을 다 감당하도록 하였으므로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에 종말을 선언한 ‘위대한 선언’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간곡히 부탁하신 위 위대한 사명이 오늘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소개받는 우리 모든 성도들은 주님께서 맡기신 이 큰 사명의 뜻을 바로 이해하고 이 큰 사명을 충실히 감당해 내시어 주님 앞에 설 때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란 칭찬을 받으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주신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찾아보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열 한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16-18)

[2]큰 사명을 맡기시는 예수님(19-20)

[3]세상 끝날 까지 늘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시는 예수님(20) 입니다.

 

[1]맨 먼저 열 한 제자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수일 전에 제자들을 모아 놓고 십자가 수난 이후에 제자들이 다 흩어질 것을 말씀하셨고 부활 후에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에 가실 것을 예언하신 바가 있습니다. 또 여인들이 무덤에 찾아갔을 때에 천사가 나타나서 부활하신 주님을 갈릴리에서 만나게 될 것을 제자들에게 전달해 달라고 했으며 또한 주님께서 여인들에게 직접 나타나시어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라는 말을 전하라는 부탁을 하셨던 것을 지난번 설교에서 소개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신 본문 15절, 16절에 보니 “열 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했다”고 되어 있음을 보아 막연하게 갈릴리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 아니고 갈릴리에 있는 어떤 산에서 만나기로 약속이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사복음서에서는 언제 이 산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셨는지? 또 이 산이 어떤 산인지를 말해 주고 있지 않으나 제자들과 자주 만나 서로가 잘 알고 있는 산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백성들에게 전할 하나님의 법을 내리셨는데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통해 만민을 위해 해내야 할 위대한 사명을 전달하시기 위해 갈릴리의 한 산에 나타나셨음을 보게 됩니다.

 

[2]두 번째로 큰 사명을 맡기시는 예수님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님을 버리고 달아난 제자들에게 앞으로 그들이 해내야 할 큰 사명을 부탁하게 됩니다. 행전 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 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신 대로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수일이 못되어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능력의 옷을 입고 복음 전파에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아시기 때문에 제자들이 해내야 할 사명을 분명하고 간략하게 전달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큰 사명의 내용을 전달하시기 전에 부활하신 예수님 자신이 어떤 존재인 것을 확신이 없는 제자들에게 확인시키는 일을 먼저 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18절에 보니 “예수께서 나아 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하여 주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있는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누가 주님을 이렇게 높이셨고 큰 권세를 주셨습니까? 하나님이십니다. 빌립보서 2장 8절-9절에 보면 주님께서 하나님의 존재였으나 약한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내려와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아버지께 순종하셨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그를 지극히 높이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오늘 우리에게 큰 사명을 부탁하신 주님께서는 하늘에서나 땅에서 가장 권세 있는 자라는 것이며, 그런 권세 있는 자의 위탁을 받은 것이므로 역시 그런 권세를 가지고 맡은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암행 어사가 왜? 권세가 당당했습니까? 임금님을 대신해서 임금님의 권세를 가지고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제자들은 하나님의 권세로, 주님의 권세로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권세 있게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부탁하신 큰 사명의 내용을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것이고, 둘째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것이며, 셋째는 주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입니다.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는 내용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요소가 내포되어 있는데 하나는 복음 전도가 성직자라고 하는 특수한 전도자만 하는 것으로 잘못 인식되어져 있었으나 복음 전파의 주체가 모든 크리스천인 ‘너희’라는 사실과 또 복음을 전달받아야 할 대상이 주님 당시에만 해도 오직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만으로 제한되었었는데 이제부터는 복음은 만민에게 균등히 전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주님께서도 12 제자들을 내 보내실 때에 누구에게 가라고 했습니까?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 가라”고 하셨고 심지어 주님께서도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만 보냄을 받았다’고 하셨는데 시대가 변하여 이제는 이스라엘 사람뿐만 아니라 ‘만민’에게 전파하라는 복음 전파의 개방화, 복음 전파의 세계화가 선포된 것입니다.

2창세기 12:3에 보면 하나님께서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했는데 이 말은 아브라함의 후손 중에 태어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을 것이라는 뜻으로 복음이 전파될 대상이 ‘땅의 모든 족속’으로 이미 주전 1900년경에 예언되어 있으며 또 주전 730년경에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복음의 세계화가 예언되었음을 보게 됩니다. 이사야 19장 24절, 25절에 보면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과 앗수르로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어 가라사대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 지어다 하실 것임이니라”고 하여 이스라엘을 중심 해서 주변 모든 국가가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 복을 얻게 될 것이 예언되었는데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주님에 의해 그 실행이 선포되어진 것입니다. 이 복음의 개방화는 세상 사람 모두는 복음을 전할 책임과 권리를 부여받았고 세상 사람 모두는 복음을 들을 권리가 있고 들을 책임이 있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종, 정치, 문화, 이념, 지역, 풍습을 초월하여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부탁인 것입니다.

 

두 번째의 구분은 세례를 주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구분의 핵심은 ‘세례를 주라’는 것과 ‘너희가 세례를 주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신학이 생기고 교파가 생겨 각 교파마다 달리 해석하고 달리 적용하고 있지만 성경이 주는 본래의 의미는 복음을 전해들은 사람은 세례 받는 것이 우선 순위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하나 배워 나가는 것은 이차적인 것을 알게 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복음을 전해 듣자마자 세례를 받았음을 보게 됩니다. 다 배우고 그 다음에 세례를 받는 것은 사람이 만든 제도요 의견일 뿐입니다. 빌립이 복음을 전하고 빌립이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즉 현세의 교회들이 목사만이 세례를 베풀 수 있다고 제한한 것은 그 실행이 상당한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성서적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일반 교회들이 제자화 운동을 강조하고 본문 마태 복음 28장 19-20을 강조하여 ‘너희는 나가 복음을 전하라고’ 부탁을 하면서도 세례 주는 것은 ‘너희’가 아니라 ‘우리’인 목사만이 한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꼭 시행되기를 바라시는 ‘복음의 세계화’와 ‘만민 제사장직’의 원형을 변칙 운영하는 결과인 것이며 다시 구약의 옛 그림자로 되돌아가는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의 구분은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살아 계실 때에는 가르치는 일은 주님만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전하여 가로되 천국이 가까웠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님께서 승천하시어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을 것이므로 지금까지 주님께서 친히 해 오셨던 가르치고 양육하는 일을 제자들에게 위임하신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다 배워 주고 지킨 다음 합격자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받아 드린 자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그 다음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교훈 하나 하나를 가르쳐 주고 그 배운 것들을 지키게 해야 한다는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 시작한 사람들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면 그저 믿는 사람과 하나 하나 배워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즉 가르침을 받기 좋아하는 사람과 그저 열심히 믿겠다고 하고 가르침 받기를 거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체로 가르침을 받지 않은 신앙은 맹목적인 신앙이나 독선적인 신앙에 빠지기 쉬우나 가르침은 신앙을 건실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독자적인 신앙이나 체험만의 신앙이 아니라 신약 성경에 기초된 신앙을 배워 실천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기독교 신앙은 자꾸만 새로운 신앙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있는 신앙을 배워 회복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디모데 후서 2장 2절에서도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고 하여 말씀을 가르치라는 권면이 주어집니다. 충실한 사람이란 말씀을 받고 그대로 실천하며 그대로 남에게 또 가르칠 수 있는 정직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말씀을 뜯어고치는 사람은 충실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세 번째 구분의 핵심은 인간이 만든 어떤 교리나 전통을 가르치지 말고 또 주님께서 교훈 하신 것 중 일부만 가르치지 말고 ‘주님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치라’는 것이며 가르침을 받는 것으로 만족케 하지 말고 ‘배운 것을 지키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주님의 모든 말씀을 잘 배우고 배운 모든 말씀을 생활에서 실천하라는 것이며 내가 배우고 실천한 것을 정직한 사람들에게 또 가르치고 실천하도록 제자를 삼아 양육하라는 부탁인 것입니다.

 

[3]세 번째로 세상 끝날 까지 늘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위대한 사명을 주시기 직전에 위대한 사명을 주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미리 소개해 주시고 사명을 주셨는데 이제는 사명을 다 주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 분이 세상 끝날 까지 큰 사명을 감당하는 모든 제자들과 함께 하시겠다는 보장을 주시고 큰 사명 위임의 일을 끝내시게 됩니다. 마태복음 1장에서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했는데 ‘임마누엘’이란 말을 번역하면 무슨 말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입니다. 즉 마태복음이 임마누엘로 시작을 했는데 마태 복음의 마지막도 임마누엘로 끝을 맺었음을 보게 됩니다.

승천하신 후 무소 부재하신 그분은 여전히 제자들의 형제요, 친구요, 구원자요, 상담자요 안내자로서 모든 공간과 모든 시간을 초월하여 ‘함께 계시겠다’는 보장인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지니신 그 분이 함께 하신 다는 말은 모든 지식과 권능과 사랑을 가지고 언제라도 돕고 무엇이라도 돕고 위로해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단 그분의 계명을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지킴으로써 그분의 임재를 체험하고 그 분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들에게 그 분의 약속과 보장은 세상 끝날 까지 실현될 것입니다. 세상 끝날 까지란 역사의 종말을 말하는 것이며, 이 기간은 바로 교회가 지속적으로 선교해야 하는 기간이요, 또한 모든 사람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기간이며 또한 주님의 천국 잔치를 현세적으로 누리는 희락의 기간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걸어가신 수난과 부활의 길을 따라가는 모든 제자들에게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하실 것이라고 보장하시는 것으로 마태복음을 끝맺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특권을 누리며 또한 주님께서 우리에게 위임한 의무를 감당해 나가는 성도님들이 다 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베푸신 특권은 무엇이며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위임하신 의무는 무엇이라 배우셨습니까? 특권이란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고 제자를 삼아 말씀을 가르쳐 양육하는 권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 역사적으로 볼 때에 보통 사람들은 성경을 만지지도 못하게 하는 때도 있었는데 그런 우리들에게 성경을 만지고 펴고 읽고 배우고 전하고 세례를 주고 말씀을 가르치게 하셨으니 이것은 엄청난 특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지금도 일반 모든 교파에서는 각 교파가 만든 법에 따라 목사라는 특수직이 아니면 세례를 베풀지 못하도록 제한을 하고 있으므로 그런 교회를 다닌 사람들은 주님이 주신 특권의 일부를 제한 받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아직도 성경을 못 보게 하는 암흑시대에 사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펴서 읽고 눈으로 보면서도 그 특권을 빼앗고 빼앗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기 시작했던 때부터 우리 교회들의 모습을, 아니 우리들의 신앙 태도를 회상해 보시면 우리들에게 주신 특권을 누리지 못하고 살았던 것을 아시게 되리라 봅니다. 이 말은 우리들의 머리 속에는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이란 오직 목사나 전도사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때로는 교회가 그렇게 제한을 하고 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보통 교인들은 일평생 말씀을 듣고 고개만 끄덕인 것으로 만족하며 살아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성경을 펼 수 있는 특권을 주셨고 복음을 전도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고 세례를 베풀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셨으며 배운 말씀을 남에게 가르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이 특권을 이 세상의 아무도 빼앗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 특권을 주신 이는 하늘 위에나 땅 아래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 주신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이 특권을 누리시기 위해 가장 소극적으로는 세례를 받지 못한 자들은 세례를 받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가르치는 성경 교육 시간에 열심히 참석하시고 우리 교회가 실시하는 나눔 반에 열심히 참석하셔서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가르치신 모든 교훈을 하나 하나 잘 배워 그대로 실천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적극적으로 특권을 누리는 것은 예수를 모르는 자들에게 예수 믿고 구원받는 방법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영접하는 자에게 세례를 베푸시고, 그 다음에는 그들에게 주님의 교훈을 하나하나 가르쳐 그 말씀대로 실천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즉 제자를 삼고 그 제자를 키우는 일을 해 나가는 일을 말합니다. 우리 같은 미천한 자들에게 이런 특권을 주신 것은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이 특권을 다 찾아 누리시는 성도님들이 되셔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위임하신 의무를 다 완수하시는 성도님들이 도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주신 의무란 무엇입니까? 이것은 우리들에게 베푸신 특권과 똑같은 것입니다. 즉 이 특권은 바로 우리들이 꼭 감당해야 할 의무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 사명을 감당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성도님들이 꼭 감당해야 할 주님이 주신 최고의 명령인 것입니다.우리 모두는 입을 벌려 가난하고 병들고, 천대받고 죄에 억눌려 있는 자들에게 복음 을 전해야 합니다. 권세 있고 돈 있고 학식 있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피부색이 노랗거나 희거나 검은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고 이북 사람이나 이남 사람이나 경상도 사람이나 전라도 사람에게 편견 없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을 받아 드리면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그들을 개인적으로 계속해서 말씀을 하나하나 가르치고 그 말씀대로 지키도록 양육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꼭 감당해야 할 특권이요, 의무이므로 이것을 지상 명령이라 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 교인들의 성장 목표에 전 교인 전도자, 전 교인 성경 교사라는 말이 바로 여기에 뿌리를 둔 것입니다. 열심히 배워 모두가 나눔반 지도교사들이 다 되셔야 합니다. 전도하고 세례 주고 제자 삼아 가르치고 양육하는 특권과 의무를 감당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라는 것이 본문이 주는 교훈입니다.

 

이 일을 감당하시기를 위해 최선을 다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세상 끝날 까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윗은 시편 23편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고 고백을 했는데 주님께서 나와 함께만 하신다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두려움도 걱정도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직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주께서 항상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 되신 주님을 믿는 일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약속을 믿고 기쁠 때나 어려울 때나 임마누엘을 외치시면서 이 큰 사명을 넉넉히 감당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