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까지 갈라디아서 강해를 마치고 이번 주부터 에베소서 강해가 시작됩니다. 갈라디아서를 기독교 자유의 대 헌장이라고 소개했는데 오늘부터 시작되는 에베소서의 주제는 하나님 안에서의 화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하나님 안에서의 하나됨입니다.
에베소서는 사도 바울이 보낸 편지이며 에베소 교회 성도들과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회람으로 읽혀지도록 보내진 편지로 보고 있습니다. 이 에베소서는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에 감옥에서 써서 보낸 편지이므로 옥중서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보낸 편지는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등 4 서신입니다. 이 에베소서를 서신 중의 여왕이라고 부를 정도로 서신 중에서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으며 죤 칼빈이라는 분은 이 에베소서를 가장 즐겨 읽었다고 합니다.
우리들이 이미 소개받았던 고린도서나 갈라디아서 같은 편지들은 그 지역 교회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공격적이거나 변론하는 어조로 쓰여졌으나 이 에베소서는 그런 논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따른 성도들의 고상한 지위에 대해 1장부터 3장까지에 썼으며 성도들의 고상한 지위에 합당한 성도들의 신앙 생활에 대해 4장부터 6장까지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말씀의 내용에만 관심이 있지만 문학적으로 보는 눈을 가진 자들은 이 에베소서의 문체를 평하기를 ‘인간의 언어로 기록된 글 중 가장 성스러운 글’이라고 평하거나 앞에서 소개했던 대로 ‘서신서들의 여왕’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에베소서 강해를 통해 많은 깨달음을 얻으시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설교 제목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오늘 주신 본문을 4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인사(1-2) [2]양자로 선택하신 축복(3-6) [3]지혜와 총명을 주신 축복(7-10) [4]기업이 되게 하신 축복(11-14)입니다.
[1]맨 먼저 1절부터 2절까지의 인사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절에보니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라고 하여 편지를 쓴 자는 사도 바울이요 편지를 받는 자는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외 지역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임을 알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소개하되 자기가 사도 된 것은 자기의 뜻을 따라 자기의 욕심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되었다고 강조하고 있으며 또 자기의 사도직은 자기에게는 재량권이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자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도직의 하나님적 기원을 강조했으며 자기 삶은 온전히 그리스도에 의해, 그리스도를 위한 삶임을 강조하는 고백입니다. 그는 그의 편지에서 늘 즐겨 쓰는 대로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스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 찌어다’ 라고 인사하고 있습니다.
[2]두 번째로 3절부터 6절까지의 양자로 선택하신 축복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설교 제목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했는데 이 하나님의 축복이 어떤 종류의 축복인지를 3절에서 소개하기를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잘 아는 대로 구약 시대에서 말하는 복은 눈에 보이는 세상적인 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란 영적인 평화와 기쁨,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이며 주님 오실 때에 영원히 누리게 될 준비된 복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산상 설교에서 8복을 소개해 주셨는데 8복은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복이었으며 세상의 번영을 한번도 복이라고 가르치신 일이 없습니다. 즉 신약 성경에서는 육적인 복을 복이라 하지 않고 참다운 복은 신령한 복, 영적인 복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말을 한다면 육신적으로 잘 풀려 번영을 이룬 자를 두고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많이 받았다고 표현하는 것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기준으로 한 표현이라고 말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이나 사도 바울이나 스테반을 두고 복을 못받은 자들이라고 말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적인 복을 한번도 복이라고 표현하시지 않았습니다.
신령한 복의 첫 번째는 양자로 선택받은 축복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는 복이 없는 자이기 때문이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복을 못 받아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자기의 복을 깨닫지 못하고 받지 못한 복만 바라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우리에게 소개하려고 하는 것은 미래에 우리가 받게 될 복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받아 가지고 있는 복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주일에 이렇게 교회 오는 것에 대해 별 감동과 감사를 모르고 당연한 것 같이 생각하거나 아니면 오히려 하나님을 도와드리는 마음 자세로 교회를 오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우리들이 성도 된 사실 자체를 두고 복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도가 된 것이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미리 택하시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관데 세상을 지으시기 전에 우리를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의 양자가 되도록 택하셨단 말입니까? 그것도 억지가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택하셨다고 했습니다. 어떤 인간도 거룩할 수 없고 흠이 없을 수 없음을 아시고 거룩하고 흠이 없도록 사랑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택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전연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그런 엄청난 은혜를 베푸셨으니 이것은 거저 주신 은혜이므로 이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께 영광을 영영 돌리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3]세 번째는 7절부터 10절까지의 지혜와 총명을 주신 축복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세상에는 지능이 높고 총명한 사람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어제 신문을 보니 14살 먹은 소년이 석사학위를 받았다고 했더군요. 이 아이의 부모는 이런 복을 누리고 있으니 얼마나 만족스럽겠습니까?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그런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를 복 있는 자라 하지 않고 구약 시대에는 감취인 비밀이었으나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때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내려보내시고 십자가에 못박게 하심으로 인류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게 된 사실을 알게 한 지혜와 총명이 복이라고 했습니다. 반대로 말을 한다면 이런 지혜와 총명을 받지 못 한자는 평생 죄인이라는 죄의 명패를 달고 죽게될 것이고 일평생 마음에 평화를 모르고 살 것이므로 죄사함을 알게한 지혜와 총명은 큰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에 의해 같은 믿음을 가진 자들은 이방인이나 유태인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온 세상이 그리스도의 세계인 하나로 통일 될 것을 알 수 있는 지혜와 총명은 복이라는 것입니다.
[4]마지막으로 11절부터 14절까지의 기업이 되게 하신 축복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우리가 그의 상속자 되기를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해 두셨으니 이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 즉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어 세례 받고 성령을 받아 성령을 통해 상속자가 되었음을 확증케 되었으니 하나님의 상속자로 확증을 얻은 우리들이 복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대 기업체의 회장의 상속자로 양자 된 자를 세상이 복 있는 자라고 할 것임에 틀림없는데 그렇다면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다면 기업체의 장의 상속자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과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기업이 되게 하신 복이 복인 줄 알도록 깨우치고 있으며 이런 복을 주신 것은 이런 복을 받은 자들이 복을 복으로 알고 하나님께 그의 영광을 찬미하도록 하기 위해서도 이런 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 복에 대한 가치관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세상이 전부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이 없으므로 우선 눈에 보인 세상적인 복만을 복으로 알고 살겠지만 우리 성도들은 눈에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으므로 눈에 보이는 세상적인 복을 과대 평가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아무리 오래 산 사람도 언젠가는 나그네 길인 이 세상을 떠나야 합니다. 아무리 부자인 사람도 동전 한푼 가지고 가지 못하고 빈손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잘 나고 똑똑해서 권세를 잡고 세상을 흔들어 댔던 자들도 다 한 줌의 흙으로 끝나게 되는 진리를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시적인 복을 복이라고 말하지 말고 영원한 것을 복이라고 하자는 것입니다. 변할 것을 복이라고 하지 말고 변하지 않을 것을 두고 복이라고 하자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복보다는 믿음을 통해 얻는 복을 더 귀하고 큰복으로 인정할 수 있는 복에 대한 가치관을 새롭게 정립하라는 교훈입니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예정하신 대로 우리들에게 이미 주신 복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를 돌리라는 교훈입니다. 창세 전에 예정하신 대로 우리들에게 이미 주신 복이 어떤 복입니까?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케 하시고 우리들을 그의 양자 삼아주신 복입니다. 또 그의 상속자를 삼아주신 복과 죄인이었던 우리들에게 복음을 듣고 믿어 세례 받고 죄 사함을 얻게 하신 복이며, 이런 모든 복을 복으로 알 수 있는 지혜와 총명을 주신 복입니다. 이런 복을 우리들은 이미 받았습니다. 이런 복을 복으로 알고 감사하고 이 복을 누리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말하는 복을 덜 받았다 하더라도 크게 흔들리거나 불행하다고 생각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받지 못한 복을 못 받아서 불행이 아니라 이미 받은 복을 복으로 인정치 않고 받지 못한 복만을 바라고 있으므로 행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내 죄를 사하신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와 상속자로 삼아주신 복, 그 복보다 더 큰복이 어떤 복이 있겠습니까? 자기의 장자의 복을 복 인줄 모르고 팥죽 한 그릇에 바꾼 어리석은 에서와 같은 자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팥죽이 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로 약속하신 그 약속을 믿고 그 약속에 참예하는 것이 복 인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은 복 받은 자들입니다. 이미 받은 복을 귀한 복으로 알고 감사하고 행복해하며 이 감사와 행복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는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미 받은 신령한 복을 큰복으로 알고 감사의 찬미의 제사를 드리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