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기독교에서 부활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각 지역마다 오늘 새벽에는 부활절 기념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오늘 부활 주일을 맞아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방금 봉독한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요점은 그리스도 대신 사람의 유전이나 전통을 강조하는 신앙을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의 유전과 철학은 우리들을 죄에서 구원시켜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가 죄 사함을 얻고 모든 얽매임에서 온전히 자유롭게 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아침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 세상 철학이나 유전에 가려진 예수 그리스도께서 더욱 선명히 증거 되어지게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그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헛된 속임수와 예수 그리스도(8-10) [2]할례와 세례(11-13) [3]율법을 십자가에 못박으심(14-15)입니다.
[1]맨 먼저 8절부터 10절까지의 헛된 속임수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주신 본문은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 침투된 이단 사상과 예수 그리스도를 선명하게 대조해 줌으로 이단 사상에 약간 혼돈 속에 있는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이단 사상에서 온전히 구출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 중 8절과 9절에서는 골로새 교회에 침투된 이단 사상이 그리스도와 전연 상관이 없는 것이며 복음의 일부가 아니고 속임수라고 분명하게 밝혀줌으로 이단 사상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점에 대해서 분명히 밝혀주기를 그런 이단 사상은 그리스도를 좇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와 전연 상관이 없는 사람의 유전이나 세상의 초등학문 즉 미신에 불과한 것을 좇는 일이라고 일축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침투된 사람의 유전이나 미신과 그리스도를 구별할 줄 알라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가 주신 복된 소리인 복음과 복음을 듣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는 사람이 만든 잡음을 구별할 줄 알고 그 잡음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히려 그 잡음에 잡혀 먹힐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복음이 아닌 다른 잡음에 사로 잡혀 있는 무리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잡음이 어떻게 시끄럽든지 참 소리가 잡음에 묻혀서 들을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단적으로 말을 하자면 이단 사상이거나 세상의 어떤 철학이거나 그런 것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비교가 될 수 있는 대등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그런 것들의 주인이시오 머리시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신뢰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어떤 철학이나 미신을 섬겨야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는 논리인 것입니다.
[2]두 번째로 11절로 13절까지의 할례와 세례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유대인 사내아이는 난지 8일만에 할례를 받았던 것입니다. 할례를 받으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할례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자랑이 아닐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할례를 받은 할례당과 할례를 받지 못한 무할례당은 옛날 우리 나라의 양반과 쌍놈의 차이만큼,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차별화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에서 왔다고 하는 자들이 골로새 교회에 와서 세례도 받았지만 할례도 받아야 한다고 가르침으로 골로새에 있는 교인들에게 혼동을 주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 분명히 하기 위해 유대인들이 받았던 할례를 손 할례라 부르고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으로 구원된 과정을 그리스도의 할례라 구별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손으로 한 할례를 받음으로 육적인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를 믿고 순종함으로 손으로 하지 않은 할례를 받아 영적인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손으로 받은 할례와 구별하기 위해 믿음에 의해 구원된 사실을 그리스도의 할례라고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것으로 완전한 것이어서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은 성도들은 손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도인들은 손 할례가 아닌 세례를 통해 살게 되고 죄 사함을 받게 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2절에 보니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또한 그 안에서 일으키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세례의 성경적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땅에 묻히셨다가 다시 부활하신 사실을 믿는 사람이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또 그리스도안에서 새 사람으로 태어나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무할례와, 또 많은 죄로 인해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들을 죽음에서 다시 살리시고 모든 죄를 용서받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즉 손으로 행한 할례를 받지 않아도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믿음을 가진 자는 세례라는 과정을 통해서 옛 몸은 많은 물 속에 묻어버리고 죄 없는 새 사람으로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14절로 15절까지의 율법을 십자가에 못 박으심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할례는 율법의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육적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모세 율법에 메이는 것이 아닌데도 유대에서 왔다고 한 유대주의자들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복음도 믿고 또한 율법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이 문제를 분명히 해주고 있습니다. 14절에 보니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라 했습니다. 여기에서 말한 의문에 쓴 증서란 율법을 말합니다. 법이 있기 때문에 그 법에 의해서 죄가 들어 나고 또 심판을 받기 때문에 그 율법을 두고 우리들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있는 한 늘 그 율법은 우리를 고소할 것이고 그 법은 우리를 죄인으로 판정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율법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목 박아 버리심으로 율법을 중지시키셨으며 법의 효력을 없애버리셨다고 했습니다. 그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지켜야하는 매임에서 해방되었으므로 그 율법의 하나인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논증하고 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공생애를 시작하시자 마자 마귀의 시험을 받으신 것을 시작으로 33년간 많은 사탄의 세력의 공격을 받았지만 십자가를 통해 모든 악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나 완전히 승리하신 것이라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주님 자신의 승리요, 모든 성도들의 승리인 것입니다. 그의 십자가가 아니었다면 우리들은 영원히 율법아래에서, 마귀의 통치권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들을 죄로부터 분리시켜 주었으며 율법으로부터의 해방을 가져다 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은 주님의 부활을 대대적으로 기념하는 행사를 하는 부활 주일입니다. 연합 예배를 하며 기념 음악회를 하며 어떤 형태로서든지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사실을 만방에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이 바라는 부활절 행사가 어떤 것인지를 교훈 받았습니다. 첫째 교훈은 주님이 진정 바라시는 부활절 행사는 우리 교회들이 시행하고 있는 교파적이고 전통적인 사람이 만든 제도나 의식을 추방하고 그리스도가 만든 제도나 의식을 부활시키는 것입니다. 즉 높아진 교파나 사람의 권위는 낮추고 그리스도의 권위를 높여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기독교 역사가 2천년이 되었기 때문에 기독교 안에는 지나치게 교파나 사람의 권위가 높아져서 그 권위에 그리스도의 권위가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보다는 교파나 헌법이나 교리가 우선적인 현실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행사를 거창하게 치른다면 그 행사가 사람을 위한 행사일까요 그리스도를 높이는 행사일까요? 심지어 미신적인 것까지 성도들의 신앙을 지배하고 있는 이 때에 진정한 부활절 기념행사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권위가 절대적으로 다시 부활하여 사람이 통치하던 인본 통치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해 통치도며 그리스도가 각 교회나 각 교파의 머리가 되시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두 번째의 교훈은 성도들이 말씀에 따라 죽고 말씀에 따라 부활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세례를 통해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한 그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일으키심을 받았다고 했는데 예수 믿기 시작부터 끝까지 말씀에 따라 죽고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서 살아서 나를 통치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해 각 교회가 통치될 뿐 아니라 그 같은 말씀이 우리 성도들 각자를 통치하도록 우리 자신을 말씀에 맡겨야 합니다. 한국에서 관급 공사를 맡다보면 공사비의 많은 부분을 뇌물용으로 낭비되고 실지로 공사에 사용되는 비용은 얼마 남지 않아 결국 부실공사를 하게 되어 와우 아파트 사건이나 또는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이 터지고 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각 교파가 빼먹고 또 각 교파내의 각 교회가 빼먹고 또 각 교회내의 교인들이 빼먹고 나면 우리 신앙 생활에 적용된 하나님의 말씀이 과연 몇 %나 되겠습니까? 그러면서도 그리스도께 잘 보이려고 부활절이니 성탄절이니 하는 행사로 자신의 부정을 눈가리려고 한들 주님께서 이를 즐겨하시겠습니까?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다고 했는데 세례의식을 통해 자기 몸을 많은 물 속에 장사 지내는 교파가 얼마나 되며 실지로 자기의 옛 몸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고 또 날마다의 삶에서 자기를 죽이고 그리스도가 사시도록 하는 삶을 사는 성도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오히려 반대로 그리스도는 죽이고 나만은 살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들의 신앙이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말씀을 들은 우리 모두는 예수 믿는 첫 걸음인 세례를 통해 자기 옛 몸을 장사지내버리고 새 사람으로 태어날 뿐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 내 욕심과 내 주장은 죽이고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이 살아 역사하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운동이 네 속에서 일어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매일 매일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권위와 그리스도의 말씀이 날마다 부활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