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주의로부터의 자유 – 골로새서 2:16-23

사도 바울은 지난 주 말씀에 이어 오늘의 말씀에서도 골로새 교회에 침투된 율법주의에 대해 구체적으로 경고하고 이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이 취할 자세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골로새 교회에 와서 하나님 앞에 의롭기 위해서는 무슨 음식을 먹어서는 안되며 유월절 같은 절기, 또 안식일이나 매월 초하루 같은 날들을 꼬박꼬박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믿음이 약한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이런 잘못된 가르침에 많이 현혹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또 그들은 어떤 도덕과 철학 또 천사 숭배를 강조하며 이런 것들을 실천해 나가야 하나님 앞에 의로워질 수 있다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현재 우리로서는 이런 잘못된 가르침을 쉽게 판별을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나 성경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이해가 없이는 그 가르침이 과연 그리스도의 가르침인지 사람이 조작한 가르침인지 분간하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의 가르침의 요점은 그리스도에 초점을 맞추고 그를 따라가야지 사람이 만든 규례나 의식 또는 철학을 따라다녀서는 결국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함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소개받는 우리들은 현세 교회에서도 사도바울이 구체적으로 경고하고 있는 율법주의의 일부가 시행되고 있고 또 인간들이 만든 많은 의식과 규례들이 시행되고 있음을 알고 우리들의 신앙에서 그리스도의 것이 아닌 사람의 것을 골라내 버리므로 말씀에 따른 순수한 신앙, 보증된 신앙을 유지하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그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장래일의 그림자(16-17) [2]천사 숭배를 경계하라(18-19) [3]초등학문으로부터의 자유(20-23)입니다.

 

[1]맨 먼저 16절부터 17절까지의 장래 일의 그림자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서론에서 말씀드렸지만 골로새 교회에 유대에서 왔다고 하는 지도자들이 와서 강조한 율법주의에 대한 경고가 쓰여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기 위해 음식을 가려먹고 절기를 다 지키며, 또 유대인들이 지켰던 매월 초하루나 또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이런 유대주의적인 가르침에 혼동하고 있는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향해 사도 바울이 말하기를 누구든지 그런 율법주의적인 기준을 가지고 너희가 믿음이 좋다던가 믿음이 없다고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고 한 것입니다. 방금 말한 음식을 가려먹거나 날들을 지키거나 또 다른 절기나 의식을 지키는 것은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며 그 그림자의 실체는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지는 것들이라고 한 것입니다.

 

음식을 가려먹어서 건강을 유지하는 것을 금하는 말도 아니며, 주일에 예배에 꼭 참석하여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을 등한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인간들이 만들어 낸 것이나 율법적인 것들을 지키지 않는 이유로 하난미 앞에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시므로 별 의미 없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이 만든 그런 것을 준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모범대로 실천하거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교훈대로 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길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이요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는 길이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2]두 번째는 18절부터 19절의 천사 숭배를 경계하라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골로새에 왔다는 거짓 교사들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천사를 숭배하도록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들이 주장하기를 의롭지 못한 사람이 의로운 하나님을 직접 섬기는 것은 교만한 자세이므로 그 중간에 있는 천사를 섬김으로 천사가 하나의 중보자가 되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천사란 존재 자체부터 신비적이어서 천사 숭배는 완전히 자기 체험적인 신앙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자기들이 환상적으로 보았던 어떤 것을 자랑하고 그런 차원의 신앙을 강조하므로 그런 신앙을 갖도록 강조하는 것이 천사 숭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신앙을 갖지 않는다해서 너희들의 신앙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강론은 그런 믿음은 머리를 붇들지 않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가 누구신가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들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여야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제쳐놓고 하나의 가지에 불과한 천사나 숭배하라고 하니 그런 가르침은 잘못된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만이 몸에 붙어 있는 모든 지체에 영양을 공급하여 주고 각 지체가 연합되도록 하여 우리들의 신앙이 성장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주의자들은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제쳐버리고 가지에 불과한 천사 숭배를 강조하므로 자기들이 체험한 눈에 보이는 신앙을 자랑하면서 자기들을 따르도록 하고 그리스도를 멀리하게 한 거짓 교사들이었던 것입니다.

 

[3]세 번째로 20절부터 23절까지의 초등학문으로부터의 자유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까지의 어떤 가르침이나 교훈을 초등학문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율법도 그렇고 어떤 금욕주의나 인간을 풍요롭게 한다는 어떤 철학 또는 미신을 모두 초등학문으로 본 것입니다. 초등학문이란 지켜도 하나님 앞에 갈 수 없는 것으로 주님이 오시기전까지 임시로 지켰던 것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주장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믿고 세례를 받으므로 이미 초등학문을 옛 몸과 함께 죽었는데 왜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과 같이 그런 초등학문에 순종하느냐고 책망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주의자들은 골로새 교회에 와서 정결한 믿음을 갖기 위해 어떤 움식을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지적한 것은 어떤 음식이라도 먹고 나면 다 썩어져 없어져 버리는 것들이므로 그런 음식이 우리를 의롭게 만드는 것이 아닌데도 왜 사람이 만든 그런 명령이나 가르침을 따르느냐는 책망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명하시고 가르치신 것을 따라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아직도 세상 사람들이 지키고 따르는 세상적이요 미신 같은 것을 따르고 있으니 성도답지 않다는 책망인 것입니다.

 

이런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도 말라는 규칙을 지키므로 인간이 만든 규칙을 따르는 자가 되어 겸손하게 보이고 또 금욕 생활하는 대에는 도움이 될 지 모르지만 이런 가르침들은 그리스도와 상관이 없는 사람이 만들어낸 인조품이므로 이런 것들을 잘 지킨다고 해도 우리를 죄에서 멀리하게 하거나 의롭게 하지 못하는 것들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사람이 만든 교훈은 버리고 그리스도의 교훈에 순종하라는 교훈입니다. 우리 기독교 신앙 안에는 여러 가지가 혼합되어 있음을 우리가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신앙 안에 무엇 무엇이 혼합되어 있다고 생각되십니까? 선조들로부터 보고 배웠던 미신이 들어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믿으면서도 사주 팔자를 따져야 하고 궁합을 보아야 하고 운명 철학가를 찾아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유명한 목사가 이름을 이렇게 바꾸었다가 또 저렇게 바꾸는 것도 그런 영향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들이 쉽게 말하고 있는 곳들이 성경에 어긋나는 미신에서 온것들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문화나 생활 습관에서 오는 것들이 신앙 안에 혼합되어 있을 것입니다. 미신을 섬겼던 자들은 기독교 신앙 안에서도 미신을 섬기던 방법으로 그리스도를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이 각 교파적인 신앙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방언을 한다던가, 환상을 보았다던가, 소리를 들었다던가 등 자기적인 신비적인 체험을 다른 사람의 신앙에 접목을 시켜 그 신앙이 바로 올바른 신앙인 것 같이 소개되는 것입니다. 각 교회들이 신비적인 체험을 한 자들을 간증 집회라고 해서 초청하여 집회를 다투어가며 하고 있는 것들이 바로 신비적인 체험을 해야 신앙이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또 각 교파의 각 교단의 교리가 우리 신앙 속에 혼합되어 있습니다. 즉 성경적이 아니지만 실지로 실행되고 있는 것들이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그런 것들이 성경에 있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생각에 정통으로 인정할 수 있는 큰 교회들이 시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비적인 체험적 신앙이 그렇고 유아에게 세례 주는 것이 그렇고 매주 마다 만찬을 하지 않는 것이 그러며 또 예배시에 오케스트라까지 동원하고 있는 것이 그렇습니다. 하나 하나 다 들출 필요도 없습니다. 지난주에 이어 오늘의 본문에서도 강조되었지만 구약과 신약은 그림자와 실체인 것처럼 분명히 구별되고 있으며 신약은 구약 보다 더 좋은 언약이며 구약은 이미 예수님의 십자가와 함께 못박아 페기처분되었다고 했음에도 우리 교회에서는 악기를 쓰지 않는다고 말하면 그들이 말하기를 구약에도 악기를 써라고 했고 또 다윗도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대답하기를 정도입니다. 이런 정도의 혼합 신앙을 정통으로 알고 있으니 정말 기독교는 후퇴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결정적인 교훈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아닌 것은 모두 초등학문입니다. 미신도 그렇고 도덕과 철학도 그렇고, 구약도 그러며 각 교파의 교리나 전통도 그렇습니다. 초등학문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를 서게 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모범에 따라 살고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어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아닌 것을 과감히 버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선택할 수 있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그 확신은 말씀을 열심히 연구하므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소개받은 우리 성도들 모두가 말씀을 열심히 연구하여 그리스도께서 주신 그리스도 제품과 사람이 만든 인조품을 쉽게 구별할 수 있어서 사람이 만든 인조품은 그것이 보기에 그럴듯하게 보이고 나에게 유익을 가져다줄 수 있게 보일지라도 인조품을 미련 없이 버리고 그리스도의 제품을 택하는 복 있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