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교회에 대한 관심 – 골로새서 2:1-7

보통 사람들인 우리들은 다른 나라에서 전쟁이 났다하면 별로 관심이 없고 또 남의 집에 어떤 문제가 있다면 별로 관심을 두지 않으며 남의 교회에 어떤 문제가 일어났다 해도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내 손가락 하나가 아프면 심히 아파하지만 다른 사람의 머리가 터졌다면 아픔을 못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식구가 다른 교회로 갔다면 마음 아파하고 때로는 그 사람을 두고 욕도 하겠지만 다른 교회에서 우리 교회로 옮기는 사람이 있으면 그 누구도 떠나온 그 교회를 생각하며 마음 아파하거나 우리 교회에 온 식구를 두고 불평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지나치게 나 중심이며 또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우리들도 그런 풍조에 많이 젖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사도 바울이 자기가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골로새 교회를 두고 그 교회 문제를 걱정하고 기도하며 권면하는 내용을 소개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걱정하고 염려한다해도 자기에게는 아무런 이해타산이 없는데도 골로새 교회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염려하는 진정한 전도자의 참 모습을 소개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모습은 지나치게 이해타산만 따지는 현실 교회 지도자들의 모습과는 전연 다른 새 모습인 것입니다. 전도자도 자기 욕심을 위하고 교인들도 자기 욕심을 위해 교회 생활을 하는 자기 중심적인 교회 생활의 수준을 완전히 넘어서 온전히 하나님을 중심한 차원 높은 신앙의 모범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소개받는 우리 모두가 지나치게 이기적인 신앙에서 온전히 벗어나 하나님 중심, 또 내 이웃 중심의 신앙 생활로 수준을 많이 높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주신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가보지 못한 교회를 위한 사도 바울의 염려(1) [2]바울의 중보 기도(2-5) [3]바울의 권면(6-7)입니다.

 

[1]먼저 1절의 가보지 못한 교회를 위한 사도 바울의 염려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라오디게아’는 골로새 근처의 도시인데 사도 바울은 이 골로새서를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에게도 돌려보도록 했으며 또한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편지도 골로새 교회가 돌려보라는 글을 4장 16절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에도 라오디게아에도 가본 일이 없기 때문에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이나 라오디게아에 있는 성도들이나 또 그 근처에 있는 성도들이 사도 바울의 얼굴을 직접 본 일이 없는 것입니다.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다는 말은 어찌보면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말로 풀 수 있을 지도 모르지만 사도 바울은 비록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자기가 그곳의 교회들이 겪고 있는 혼란과 시련 때문에 자기가 힘쓰고 있음을 골로새 교회가 알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가 힘쓰고 있다고 표현을 했는데 힘쓰고 있다는 말은 고통을 당하면서 그 고통의 원인이 사라지도록 중보 기도를 통해 싸워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를 원한다는 말입니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골로새 교회에는 잘못된 이단 사상이 들어와 교인들을 혼란시키고 교회 내에 분열을 조장했던 것입니다. 이런 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그들이 당하고 있는 고통을 함께 나누고 있는 사도 바울이 있음을 골로새 교회가 알라는 것이고 그 고통의 이유가 교회에서 완전히 추방되도록 하나님께 중보 기도를 간절히 드리고 있음을 알기를 원한다는 글을 보낸 것입니다.

 

[2]두 번째로 2절부터 5절까지의 바울의 중보 기도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가보지 못한 교회를 위한 중보 기도 제목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그들이 위로 받고 사랑으로 연합되기를 원한 것입니다. 이단 사상으로 인해 교회가 나누어지고 마음이 상하고 흔들려 있는 그들이 하나로 연합되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사랑에 바탕을 이룬 연합은 이단 사상을 추방할 수 있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두 번째의 중보 기도는 통찰력과 풍부한 지혜와 이해력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바로 알게 되기를 위해서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골로새 교회에 들어 온 이단 사상이 무엇이든 그리스도에 관한 올바른 지식과 이해가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을 것이므로 사도 바울의 중보 기도는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에 대해서 올바른 이해를 갖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와 지식을 강조한 것은 아무도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속임수로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교회에서 끌어내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으므로 비록 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과 함께 있지는 못하지만 영적으로는 늘 함께 있어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얼마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지를 보고 듣고 알고 있어서 이를 기뻐한다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3]마지막으로 6절, 7절의 바울의 권면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하기를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였므로 이젠 다른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말고 주안에서 행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주안에서 행하라는 말은 말씀 밖의 것은 받지 말고, 행하지 말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으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튼튼한 기초인 그리스도께 뿌리를 내리라는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의 기반 위에 믿음을 세우고 말씀을 받는 대로 그 말씀대로 생활하므로 믿음을 지켜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늘 감사가 넘치는 생활을 하라는 권면을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생활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겠습니까?

첫째는 남을 위해 중보 기도를 하는 자들이 되라는 교훈입니다.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를 위해 고난을 나누며 골로새 교회의 고통이 사라지도록 하나님께 중보 기도를 드리고 있음을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를 위해 고통을 스스로 감수하며 그 교회의 짐을 나누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이 설교를 듣는 우리 성도들이 자신은 모르지만 자기 자신을 위해 누군가가 기도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의 현재가 있는 것이 많은 사람의 기도의 결과라고 믿을 수 있어서 자신은 모르지만 자신을 위해 기도해준 많은 분들에게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도 나 아닌 다른 사람, 얼굴을 본 일도 없지만 중보 기도가 필요한 자들을 위해 중보 기도를 하는 자들이 되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온 우주의 아버지시오, 온 우주에 있는 모든 분들은 아버지 안에서 한 형제이며 모든 교회는 한 몸의 지체임을 이해하고 모르는 그들을 위해 중보 기도를 하라는 교훈입니다.

 

두 번째는 그리스도가 가르치신 말씀을 바로 알고 그 말씀에 기초된 믿음의 뿌리를 내리고 세워나가 발전하는 믿음을 가지라는 교훈입니다. 구약의 유대인의 믿음과 그리스도가 가르치신 믿음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믿음은 원수를 미워하는 믿음이요 그리스도의가르치신 믿음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믿음입니다. 분명하게 구별한다면 구약적인 믿음은 땅의 믿음이요. 그리스도가 가르치신 믿음은 하늘의 믿음이라고까지 표현해도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의 믿음은 육적인 수준을 넘지 못한 초보적인 믿음이요, 그리스도가 가르치신 신약적인 믿음은 땅에서 발을 떼고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손에 말씀이 있지만 그리스도의 말씀을 뒤로하고 자기의 고집과 전통에만 사로 잡혀 있는 신앙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땅에 세운 믿음이요, 그리스도가 가르치신 말씀을 상고하고 배운 말씀대로 실천해 나가는 신앙은 땅에서 발을 떼고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땅에서만 살기를 원하며 지혜로운 자는 땅을 떠나서 하늘을 향해 점점 올라가는 신앙 갖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말씀의 깊이를 이해하고 그 정신에 따라 살므로 하늘로 올라가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뜻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원수를 사랑하라는 깊이를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바로 주님께 한 것이라는 주님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받는 자가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는 자가 복이 있다는 그의 가르치심의 뜻을 이해해야 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가르치심과 오른 편 뺨을 치거든 왼편 뺨을 돌려 대라는 교훈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늘 높은 곳에서 땅에 내려오시되 종의 형체인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내려 오셨으며 십자가를 지신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죽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 되었던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 은혜와 사랑의 깊이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깨닫고 주님의 교훈대로 실천해 나가는 자들은 땅에서 발을 떼고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발전적인 신앙을 가진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천국 복음에 대한 가르침을 이해 못하고 아직 구약적인 믿음의 수준에 있는 자들은 떡을 얻어먹고자 주님을 따라다녔던 4천명, 5천명의 무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또 주님이 가르치신 천국 복음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한 신앙인들은 세상에서 유혹하는 많은 이단 교리 바람에 얼마든지 흔들릴 수 있는 자들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주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주님을 바로 아는 길은 떡으로만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그가 가르치신 말씀을 바로 이해하므로 나와 아무런 이해타산이 없는 자들이거나 내가 직접 눈으로 본 일도 없는 자들을 위해 중보 기도를 할 수 있는 사도 바울과 같은 신앙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또 이런 자들은 비록 몸은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마음은 세상에 메이지 않고 이미 천국 생활을 즐기고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모두가 주님을 바로 알아 이 세상에서도 천국 생활을 하며 주님 오셨을 때에 주님의 나라에서 영생할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