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봉독한 본문 말씀에 대한 강해 제목은 그리스도인과 가정입니다. 부인과 남편, 부모와 자녀관계에 대해 교훈해 주고 있으며 더 나아가 기업주와 노동자의 관계에 대해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이미 지난 2주 동안에서 성도들이 벗어버려야 할 옛 옷과 성도들이 입어야 할 새 옷에 대한 교훈을 통해 성도다운 행실을 가지라는 교훈을 받은 바 있는데 오늘의 말씀도 지난주에 이어 성도가 가정에서와 직장에서 지켜야 할 생활 패턴을 안내해 주고 있습니다.
성도란 가정에서도 좋은 아내, 좋은 남편이 되어야 하며 또한 좋은 부모와 좋은 자녀가 되어야 할 뿐 더러 사회에서도 좋은 업주와 좋은 종업원이 되어야 한다는 권면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소개받는 우리 모두는 날마다의 삶에서 남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접하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두고 저 사람은 참 좋은 사람이다 라던가 또 아마 그 사람은 교회 다니는 사람인가 보다 라고 말할 수 있도록 성도로서 구별된 행동을 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그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아내와 남편의 관계(18-19) [2]자녀와 부모의 관계(20-21) [3]종들과 주인의 관계(22-4:1)입니다.
[1]먼저 18절부터 19절까지의 아내와 남편의 관계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제목을 우리들은 에베소서 5장과 6장의 강해를 통해 오히려 보다 더 자세하게 강해 받은 바 있습니다. 반복되는 오늘의 말씀을 통해 부족한 것들이 보충되는 좋은 기회가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아내들에게 권하기를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마땅하니라’ 고 했습니다. 에베소서에서는 복종하되 주께 하듯 하라 했으며 그 이유는 남편은 아내의 머리가 됨이요 몸의 구주이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덧붙였음을 우리는 압니다. 아내들이 남편에게 복종하는 일을 두고 이는 주안에서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마땅하다는 말은 당연하다는 말도 되겠지만 잘 맞는 옷을 입었을 때에 아름답듯이 아름다운 일이란 뜻이 되겠습니다. 똑똑하고 잘난 아내들이 오히려 남편에게 대들고 남편을 무시하게 되는데 그 똑똑과 그 잘난 것은 오히려 아름답지 못한 일이라는 교훈이 되는 것입니다. 제 아내가 제일 예뻐 보일 때는 미장원에 다녀오고 비싼 옷을 입었을 때가 아니라 주님의 은혜를 머리에 두고 예, 예 하고 남편에게 공손하고 예절바르게 대우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 여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내가 입어야 할 아내의 유니폼을 입어서 네 용모가 아름답구나’라고 칭찬하실 것입니다.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권면이 누구의 권면입니까? 남편이 권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면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내 된 자들에게 하신 권면을 놓고 아내들이 성토하기를 ‘남편들 하기 나름이지’라고 토를 단다면 하나님께 도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남편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아내 된 본인의 행복의 몫이 더 큰 것임을 깨닫는 수준 높은 아내들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남편들에게 주는 권면입니다. 남편들에게 권하기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자들은 처음에 태어날 때에 사랑을 먹고사는 존재로 태어난다고 생각됩니다. 태어날 때에 남자의 갈비뼈를 받고 태어난 그 자체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자들이란 남자들이 어떤 형태로든지 사랑해 주어야 하는 상관 관계로 존재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 차원에서 남자인 남편은 자기 아내가 바로 여자란 존재임을 알고 그 여자를 돌보고 사랑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의 교훈을 따른다면 자기 아내는 자기의 몸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아내가 남이 아니요 자기의 몸으로 알고 자기 몸을 아낌과 같이 자기 아내를 그런 입장에서 보살피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아내를 사랑하는 것인 줄 압니다.
아내를 괴롭게 하지 말라는 말은 아내들에게 부당하게 불편을 주지 말라는 말로 아내들의 위치와 입장을 배려하여 만족스럽게 해주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말의 뜻은 여자가 하자는 대로 다 해주어 아무런 마찰이 없게 하라는 그런 소극적인 팽개침이 아니라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자기 몸인 아내를 위해 아내가 좋도록 모든 배려를 해주라는 뜻인 것입니다. 더 적극적으로 표현한다면 한국의 정신없는 여자들처럼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여자의 고삐를 잡아서 자기 아내의 위상을 지켜주라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요사이 잘못된 장모들은 자기 딸에게 언제나 무엇이든 응응 하고 들어주는 사위를 놓고 칭찬하는데 반대로 자기 딸의 말을 챙겨서 좋은 것은 응하고 해서는 아니 될 것에는 노 할 줄 아는 사위를 칭찬하는 수준에 이르러야 합니다. 자기 아내의 나쁜 버릇을 길러주는 남편을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이 아니고 아내를 죽여가고 있는 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면에서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편이 되라는 것이며 그 진정의 사랑의 수준을 이해하는 아내가 되라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사주어야만 우리 남편 최고야라고 칭찬하는 장사꾼 아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2]두 번째는 20절부터 21절까지의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자녀들에게 권하기를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바꾸어 표현한다면 자녀들아 부모님께서 신앙 안에서 권하는 말씀이라면 무슨 말씀이던 그 말씀에 순종하라는 말로 바꿀 수 있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님께서 하시는 권면에 언제나 예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사코 자기의 의견이나 주장을 내 세우고 부모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신앙에 맞지 않은 말씀에도 순종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자녀의 아름다움은 부모님의 모든 말씀에 예예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또 부모들에게 권면하기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했습니다. 부모가 부모의 권위만 내 세우고 자녀들을 비이성적으로 다루지 말라는 것입니다. 타당하지 않는 대우를 받는 자녀들이 부모에 대한 실망감이 가득차서 낙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녀가 자기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요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하도록 임시로 맡아 기르는 책임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자녀들로부터 받아 마땅한 예우를 받기 위해서도 가장 타당하게 주님의 말씀을 기준하여 주님께서 주신 교훈으로 양육해야 하는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22절부터 4장 1절까지의 종들과 주인의 관계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요사이 한국에서 노사간의 갈등이 심하여 가끔 파업이 일어나고 있는데 22절부터 4장 1절까지에서는 노사간의 갈등을 풀어 주는 해결책이 주어졌습니다. 지금은 종과 주인의 개념이 아니지만 그 당시에는 노예 제도가 있어서 노예는 전연 인권이 인정되지 않은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 상태에 있던 노예들에게 권하기를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눈가림만 하지 말고 주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현 사회에서 신분상 노예일 뿐이지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는 노예나 상전이나 행함에 따라 상을 받게 될 것이므로 현재의 신분이 노예라면 노예의 신분에 맞게 상전에게는 순종하고 상전의 눈치만 볼 것이 아니라 상주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성실하게 일하므로 상을 차지하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이제는 성전들에게 권하고 있습니다 ‘상전들아 의와 공평으로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라 했습니다. 자기가 업주이면 종업원들에게 공정하게 대우해주고 보편 타당하게 의롭게 대접해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언젠가는 주님의 심판을 받을 터인데 공평치 못한 불의한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게 될 것이므로 하늘에 계신 자기의 상전을 늘 염두에 두고 아랫사람들에게 마땅한 대우를 해 주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권면은 주님께서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사랑과 나의 허물을 전부 덮어주신 은혜를 생각하고 그 은혜를 내 이웃과 나누는 위치에서 또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님께 갚는 방법으로 바로 내 곁에 있는 모든 이웃에게, 내가 하루의 생활 중에 접하는 모든 이웃에게 최선의 것으로 대우하라는 것입니다. 아내는 아내로서 자기 남편에게, 남편은 자기 아내에게, 자녀는 부모에게, 부모는 자녀에게, 종업원은 주인에게, 주인은 종웝원에게 가장 잘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표현하자면 자기가 접하는 모든 사람을 대할 때에 주님을 대하는 심정으로 대접하라는 교훈입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자녀나 부모가, 또 종업원이나 주인이 자기의 앞 가름만 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위해 서게 된다면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언제나 자기 위에는 하늘에 자기를 심판하실 하나님께서 계신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이웃을 대면한다면 우리들의 행동은 더욱 성숙하고 인자하며 사랑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여자이기 때문에 받는 부당한 대접도 시정이 되어야 하고, 앞치마를 두른 자기 사위를 보는 장모는 내 사위가 최고라고 자랑을 하고, 반대로 친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부엌에서 설거지하는 모습이 마땅치 않게 생각되는 그런 풍토가 남의 입장에 서지 않고 자기 입장을 내 세운 잘못된 풍토에서 나온 것임을 깨닫고 고쳐야 합니다.
늘 아내도 없고 늘 남편도 없으며, 늘 부모이겠습니까? 늘 자녀이겠습니까?, 종업원도 임시요 기업주도 임시일 뿐입니다. 친정과 시댁의 구별도 임시일 뿐입니다. 모두 다 주님 오시기까지 임시로 주어진 신분일 뿐입니다. 주님 오실 때에 불의를 행한 자에게는 불의의 보응을, 의를 행한 자에게는 의의 상을 내리실 것입니다. 모두가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상대방을 대우할 수 있다면 피차에 만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들은 모든 이들이 자기의 신분에서 바로 내 이웃에게 최선의 것으로 대하여 주님 오실 때에 의로운 큰상을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