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적 권면 – 빌 4:1-5

빌립보서가 모두 몇장으로 되어 있지요? 모두 4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마지막 장인 4장은 결론적인 권면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미 우리들은 알고 있지만 빌립보 교회와 사도 바울은 아주 친밀한 관계에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빌립보 교회를 퍽 사랑했지만 빌립보 교회 역시 사도 바울을 아끼고 사랑을 보냈던 교회였습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볼 때에 사도 바울이 빌빕보 교회에 보낸 이 편지가 얼마나 진실되며 사랑에서 나온 편지인 것을 짐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이 4장은 결론 부분으로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꼭 주고 싶은 결론적 권면이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에 간절하게 써보낸 마지막 권면은 우리들에게도 꼭 필요한 권면입니다. 오늘은 그의 결론적 권면의 일부를 소개받게 되는데 이 결론적 권면을 소개받는 우리 모두에게 큰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주신 본문을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주안에 서라(1) [2]같은 마음을 품으라(2) [3]동역자들을 도우라(3) [4]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4) [5]관용하라(5) 입니다.

 

[1]맨 먼저 1절의 주안에 서라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모두 5절의 짧은 말씀인데 5가지의 교훈을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중 1절은 주안에 서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마지막 결론적 교훈을 쓰면서 이 마지막 결론적 교훈을 받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얼마나 귀한 존재들인지를 확인 시켜주고 이 교훈을 꼭 지켜야 함을 암시하는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두고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사도 바울이 많이 사랑하고 또 항시 사모하는 귀한 존재들임을 확인시키고 있습니다. 또 그는 그들을 두고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만 생각하면 기쁘고 하나님께 감사하였던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사도 바울의 기쁨이었습니다. 또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사도 바울의 면류관이라 했습니다. 주님 재림시에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승리의 면류관을 씌어주시게 될 것인데 그 이유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잘 지도한 공로로 받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사도 바울이 면류관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믿음 생활을 아주 철저히 해야 할 입장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주안에서 서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히듯 그 당시 성도들은 많은 핍박을 견디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약해 있다면 믿음을 쉽게 포기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힘으로 갖은 핍박을 이겨내서 꿋꿋하게 서 있기 위해서는 성령이 충만해 있었어야 했던 것입니다. 어떤 인간의 힘으로는 고난과 핍박을 이겨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힘을 힘입기 위해서는 능력을 주시도록 늘 기도하며, 어려움에서 힘을 얻도록 늘 찬송하며, 늘 말씀을 묵상하므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과 감동이 이어져야 했던 것입니다. 조금만 더 참고 견디어 내면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므로 주님의 다시 오심에 소망을 두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참아내고 꿋꿋하게 서 있어라고 한 것입니다.

 

[2]두 번째는 2절의 같은 마음을 품으라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참 좋은 교회였고 또 좋은 여성 일꾼들이 있었던 교회이나 옥에 티라 할까요, 바울의 복음 사역에 동참했던 좋은 두 여자 일꾼 유오디아와 순두게 사이에 갈등이 있어 서로 비난하고 힘을 빼는 일이 있었나 봅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는데 바울의 동역자인 이 두 여인은 서로 비방하므로 교회 성도들을 근심케 하며 교회의 힘을 약화시킨 불행한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도 바울이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같은 마음이란 남을 나보다 높게 여기는 겸손한 마음이요,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사랑의 마음입니다. 이 두 여인이 교회 내에서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칭찬할만하지만 서로 다투고 비난하는 것은 성도가 입을 마땅한 옷이 아닌 것입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사도 바울을 위해 기도하고 복음 사역에 더욱 힘을 내야할 때이지 다투고 있을 때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때에 서로 힘을 합해서 복음 전파 사업에 이바지했어야 마땅한 주의 종들이 서로 다투고 싸우는 것은 하나님의 사업에 누를 끼치는 일이 되므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3]세 번째는 3절의 동역자들을 도우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있는 어떤 자에게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성경에서 밝히고 있지 않지만 그를 두고 ‘사도 바울과 멍에를 같이한 자’ 라고 표현했습니다. 그에게 부탁하기를 사도 바울의 복음 사업에 함께 힘썼던 두 여자 사이의 갈등이 해소되도록 두 여자들을 도우라고 부탁을 했으며, 또 글레멘드와 그 외에 다른 동역자들을 도우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다 하나님의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자들이라고 도움이 필요한 그들을 추천하고 있습니다. 좋은 일꾼이란 남의 부족을 도와주는 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좋은 어떤 일꾼에게 교회 내에서 도움이 필요한 자를 도우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4]네 번째는 4절의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지만 근심 걱정을 완전히 떨쳐 버리고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생각하며 또 하나님의 나라에 입성하여 면류관을 받을 것을 생각하며 현재의 모든 고난을 기쁨으로 소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모범적 삶을 살고 있는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일만 생각한다면 맥이 빠지고 실망하고 근심 걱정에 빠져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들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므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면서 근심 걱정 어려움을 다 뒤로하고 항상 기뻐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이 일이 주님이 함께 하신다면 가능합니다. 그래서 주안에서 기뻐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5]다섯 번째로 5절의 관용하라 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앞에서 두 여인이 다투고 갈등이 있다고 했는데 이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처방이 뭘까요? 관용입니다. 우리 인간 사회에 불화가 생기고 갈등이 늘 존재하는 이유는 관용이 부족한 이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남의 잘못에 조금만 너그러워도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많은 갈등이 많이 해결되리라 봅니다. 특히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은 정말 너무나도 사소한 일인데도 그것 때문에 형제끼리 서로 얼굴을 돌리고 예배드리거나 인사를 안하고 사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자기 잘난 맛에 산다할지라도 너무 자기 잘난 것을 내세워 이웃과의 불화를 가져오는 것은 성도가 입을 옷이 아닙니다. 성도가 입어야할 옷은 형제의 실수에 관용하는 옷입니다. 왜? 남의 실수에 관용해야 할까요? 나도 그런 실수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며 그런 실수를 했을 때에 다른 형제로부터 관용의 은혜를 받아야 하는 신세일 뿐 아니라 주님의 심판시에 우리의 잘못에 대해서도 주님의 관용한 심판을 받아야하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실수에 관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 잘못에 대해 남의 관용을 기대해서는 아니 되며 더욱 주님의 심판 때에 주님으로부터 관용을 받을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인간은 다른 사람이나 또 주님으로부터 관용의 은혜를 입어야하는 존재들이므로 남의 실수에 관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첫번째는 우리들이 어떤 신분인지 깨닫고 살라는 교훈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이 늘 사모하는 존재들입니다. 보다 믿음 생활을 잘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늘 하나님의 시선을 받고 있는 존재들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 전도자의 기쁨이요 월계관입니다. 성도들의 믿음이 성장하는 것을 보므로 전도자의 기쁨은 충만하며 또 성도들을 잘 지도한 공로로 하나님으로부터 월계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늘 시선을 주시며 사모하는 존재들이며 전도자의 기쁨이요 월계관임을 깨닫고 그 신분에 맞는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성도의 옷을 입으라는 교훈입니다. 우리들은 성도가 입어서는 아니될 성도에게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고 있을 때에 아주 언짢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성도에게 잘 어울리는 옷을 입고 있을 때에 아름다움을 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어울리는 옷을 소개했습니다. 주안에 굳건히 서있는 옷을 소개했습니다. 기도하는 모습은 성도의 옷입니다. 말씀을 보는 옷, 찬송하는 옷은 성도에게 잘 맞는 옷인 것입니다. 그런 옷을 입고 다녀서 다른 이들에게 성도의 모습을 선전해야 합니다. 또 같은 마음의 옷입니다.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겸손의 옷이며, 하나님의 나라에 마음을 두는 소망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이런 옷을 입은 사람을 보는 자들의 눈에 얼마나 좋게 보이겠습니까?

 

또 성도들이나 주의 종을 돕는 옷을 입으라는 교훈입니다. 교회 다닌다고 하면서 자기밖에 모르는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이기적인 옷은 성도가 입어야할 옷이 아닙니다. 성도가 입어서 아름다운 옷은 남의 필요를 채워주고 섬기는 봉사의 옷입니다. 또 성도가 입어야 할 옷은 항상 기쁨의 옷입니다. 성도의 얼굴에 늘 수심이 가득 차 있다면 그것은 성도의 옷이 아닙니다. 성도는 어떤 환경에서도 늘 기쁨의 얼굴, 미소짓는 옷을 입어야 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렵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가능케 할 것입니다. 마지막의 옷은 관용의 옷입니다. 남의 실수에 인색한 옷은 성도가 입어야할 옷이 아닙니다. 성도의 옷은 남의 잘못에 관용하는 옷입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관용의 심판을 받아야할 존재들이므로 관용의 심판 받기를 바라는 성도들은 우리에게 죄지은 자에게 관용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남의 잘못에 관용하는 옷이 바로 성도가 입어야할 옷인 것입니다.

 

성도는 성도가 입어야할 옷을 입고 아름다운 용모를 하나님께와 이웃들에게 보여야 합니다. 늘 성령에 충만해 있는 모습, 그리스도와 같은 겸손의 마음을 가진 모습, 필요한 자를 돕는 봉사의 모습,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항상 기뻐하는 모습, 남의 잘못을 관용하는 모습, 이런 모습들이 성도들이 꼭 입고 지니고 다녀야 할 옷인 것입니다. 바로 이런 옷을 입고 다니는 자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우리의 신분을 새롭게 인식하고 성도가 입어야할 마땅한 옷을 입게 되어 하나님의 생명책에 다 기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