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문안 – 빌 4:10-23

오늘로 빌립보서 강해가 끝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빌립보 교회가 자신에게 베풀어준 그 동안의 호의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있으며 또한 문안 인사를 전하면서 빌립보서를 끝맺고 있습니다. 오늘 주신 본문에서는 선교사를 후원하는 교회의 자세와 후원을 받는 선교사의 바른 자세에 대해 기록하고 있으며 또한 선교사를 후원하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밝히고 있습니다. 즉 선교사가 지원을 받거나 선교사를 지원을 하거나 그 헌금이 하나님과 온전히 연관되어진 것일 경우에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예물이 되어 많은 열매를 가져오게 된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 성도들이 바른 선교 관, 또는 연보에 대한 바른 확신을 얻게 되리라 믿습니다. 말씀을 듣는 귀와 마음에 성령께서 도와주셔서 본문이 주려고 하는 뜻이 온전히 전달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잇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감사와 자족(10-16) [2]연보의 큰 의미(17-20) [3]인사(21-23)입니다.

 

[1]먼저 10절부터 16절까지의 감사와 자족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빌립보 교회는 교회가 세워지면서부터 사도 바울의 전도를 위해 선교비를 보내기 시작했던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에 의해 세워진 교회들이 많았지만 다른 교회들은 사도 바울의 선교 사역을 위해 선교비를 보내 지원한 교회가 없었던 것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전도를 하고 있을 때에도 두어 번 선교비를 보냈던 것을 사도 바울이 기억하고 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 교회가 선교비를 초창기에는 보냈으나 10여년 동안 보내오지 않다가 10여년 만에 선교비를 다시 보내되 선교비를 에바브로디도 편에 보내면서 에바브로디도가 사도 바울 곁에서 돕도록 배려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과거에 빌립보 교회가 다른 교회와는 달리 복음을 전도 받은 사실에 보답하기 위해 선교 기금을 보냈던 사실에 대해 감사할 뿐 아니라 그 동안 중지되었던 선교 지원이 다시 시작 된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일에 대해 크게 기뻐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이해하기로는 빌립보 교회가 그동안 선교비를 보내지는 못했지만 마음이 없었던 것이 아니고 선교비를 보낼 마땅한 기회가 없었을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1달 월급을 받지 못한다면 얼마나 궁색해 지겠습니까? 그런데 사도 바울은 10여년 간 어떤 지원도 없었고 이제는 감옥에 갇혀 있는 신세가 되었으니 경제적으로 심한 어려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사실상 어려울 때에 이렇게 선교비를 보내주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마음을 가졌겠습니까? 그래서 크게 기뻐한다는 감사를 정중하게 그대로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기쁘고 감사한다는 강력한 표현이 혹시나 지금 어려우니 계속 더 보내달라는 의미로 전달되어 어떤 부담을 주지나 않을까하여 자신의 형편을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기쁘고 감사하다는 뜻을 전달하는 것은 자신이 궁핍하기 때문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가 물질적으로 왜? 궁핍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비록 물질은 없었지만 자신의 마음에는 그렇게 심각하게 궁핍을 느끼지 않았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왜? 그럴 수 있었을까요? 자신은 어떤 환경에서도 자족하는 방법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히 험한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고 또한 풍성한 환경에서도 또한 잘 적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고픔도 넉넉히 참아낼 수 있었던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모든 환경에서도 넉넉히 참고 견딜 수 있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능력이 주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확인해주고 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도 참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이렇게 어려운 고난 중에 있는 자신의 사역을 도와주었으니 잘하는 일이라고 감사와 함께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2]두 번째는 연보의 큰 의미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선교비로 지원하는 것이 사도 바울에게 필요한 것을 도와주는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사도 바울의 관심은 도움을 직접적으로 주는 그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교비를 보낸 자들의 영적인 성장에 따른 많은 열매들이 맺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사도 바울이 바라는 것은 오직 돈이 아니라 선교비를 보내는 자들이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사업에 사도 바울과 함께 동참하는 사명감에 따라 마음으로 자원하여 기쁨으로 함으로 인한 영적 성장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선물을 받는 자에게 전달되는 선물은 그리 크지 안는다해도 선물을 보낸 자들에게 주어질 하나님의 큰 선물을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또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모든 것을 풍성하게 하셨기 때문에 풍성하지만 에바브로디도 편에 보내 준 선교비로 인해 더욱 풍성해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에게 모든 것이 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기에게 모든 것이 꼭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에 의한다면 이 세상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자기가 필요한 것을 언제나 공급해 주실 것을 믿고 있으므로 눈에 지금 보이지는 않지만 모든 것이 있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런 중에 빌립보 교회가 에바브로디도 편에 보내준 선교비로 인해 눈에 보이게 풍성하다고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자원하여 기쁨으로 자기에게 보내준 선교비를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많은 헌금이 교회에 드려지고 있는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도 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헌금이 있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또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도 있을 수 있고 향기롭지 못한 제물도 있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보낸 선교비가 이렇게 높게 평가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빌립보 교회가 하나님의 사업에 자기들의 몫을 해낸다는 사명감에서 그 일을 수행하는 방법 중 하나가 진정한 선교사의 사역을 돕는 것이라 이해하고 기쁨으로 자원하여 했던 것으로 풀이됩니다. 더욱 빌립보 교회가 극심한 환난 가운데서도 기쁨으로 해냈던 점들이 높이 평가하도록 했으리라 봅니다.

 

19절에 보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한 것을 보아도 빌립보 교회가 넉넉지 못한 가운데서 선교비를 보냈으므로 그들도 하나님께서 채워주셔야 하는 교회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과부의 빈 기름병을 채워 주시는 하나님께서 빌립보 교회가 필요한 것을 채워주실 것을 믿는다는 바울의 확신을 그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3]세 번째로 21절부터 23절까지의 인사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써 보낸 모든 편지에서와 마찬가지로 교회 성도들에게 안부를 전해달라고 부탁을 하며 또한 자기와 함께 있는 자들도 자기와 함께 안부를 전한다고 했습니다. 로마 교회 성도들이 안부를 전할 뿐 아니라 특히 그가 감옥에 있는 동안에 전도했던 로마 궁중에 관련된 사람들이 안부를 전한다고 했습니다. 안부를 전하고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들의 심령에 있기를 기원하며 편지를 맺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는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할 줄 아는 우리들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사도 바울은 물질적인 환경뿐 아니라 모든 환경에서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했습니다. 자족이란 없기 때문에 궁핍을 느끼며 어쩔 수 없이 그대로 살며 버티어 나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비록 모자라지만 그 모자란 것을 가지고도 감사하며 만족스럽게 믿음으로 산다는 뜻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가지신 분으로 우리가 필요한 것을 풍성하게 주실 분임을 믿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풍성을 느끼며 산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자족하는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내 이웃의 풍성을 바라보며 비교해서는 아니됩니다. 하나님의 풍성을 바라보며 내게도 필요하다면 필요한 것을 주실 것을 든든히 믿고 살아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궁핍하거나 부유하거나 늘 감사하고 풍성하게 사는 것을 자족하는 생활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없는 중에서도 감사와 풍성을 느끼며 살 수 있게 합니다. 반대로 신앙이 없는 사람은 있는 중에도 궁핍과 불안을 느낄 것입니다. 자족하는 신앙은 성도들에게 모든 환경에서 행복과 평안을 가져다주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어떤 환경에서 생할하고 계십니까?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시고 모든 환경에서 자족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시기 원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예물의 유 익에 대한 교훈입니다. 우리들이 물질로 하던 몸으로 하던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예물이 되도록 기쁨으로 자원하여 감사한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몸을 바치는 헌신이든, 물질을 바치는 헌금이든, 또는 마음을 바치는 헌심이든 진심으로 바쳐 온전히 하나님앞에 상달되는 예물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것이 우리들의 일입니다. 우리들이 해야할 마땅한 일을 한 자들에게는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한다는 진리입니다. 바치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실 뿐 아니라 바치는 자에게 유익이 되는 풍성한 것으로 갚아 주신다는 진리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받은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자족하는 신앙을 주시며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예물을 드리는 자들이 다 되어 하나님의 은혜가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