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의 만 찬 (Lord’s Supper)

주 의 만 찬 (Lord’s Supper)

 

 

유월절과 주의 만찬

 

주의 만찬은 주님께서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는 기간에 유월절과 별개의 것으로 이를 행하여 지키도록 명령하신 것이다. (눅 22:16-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이에 잔을 받으사 사례하시고 가라사대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즉 주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마지막 유월절을 두 제자 베드로와 요한에게 준비하도록 하고 자기를 팔 유다와 함께 다락방에서 식사가 아닌 새로운 규례를 선포하고 제자들에게 이를 행하도록 명령하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주의 만찬이 구약시대의 유월절을 대신해서 지키는 것이 아니고 주의 만찬이란 새로운 별개의 주님이 명령하신 예식인 것이다.

 

(눅 22:8 -13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여짜오되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보라 너희가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의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그 집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뇨 하시더라 하라 그리하면 저가 자리를 베푼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예비하라 하신대 저희가 나가 그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예비하니라)

 

그러나 유월절과 주의 만찬은 그 의미에 있어서 유사한 의미를 갖고 있음을 보게 된다.

1) 유월절이 애굽에서 탈출되기 전 죽음의 재앙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기 위해서인 것같이 주의 만찬이 인류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져내신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념한다는 점.

 

(출 12:25-27 너희는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대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를 때에 이 예식을 지킬 것이라 이 후에 너희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

 

(눅 22:19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 유월절 양을 죽일 때 그 몸의 뼈가 꺾이지 않았는데 예수님도 뼈가 꺾이지 않았다는 점.

 

(출 12:46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

 

(요 19:32-36 군병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이를 본 자가 증거하였으니 그 증거가 참이라 저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이 일이 이룬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우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3) 유월절에 양을 속죄의 희생물로 드렸는데 예수님이 바로 온 인류의 죄를 위해 속죄양이 되심으로 유월절 양의 실체가 되신 점. 즉 유월절 양의 피를 문지방에 뿌림으로 죽음의 재앙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건너뛴 것처럼 유월절 양되신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 인류가 죽음에서 해방됨으로 유월절 양은 그리스도의 모형이 된 점이다.

 

주님의 명령

 

주님께서 잡히시기 전 마지막 유월절을 제자들과 함께 지키시면서 주의 만찬을 행하시고, 제자들에게 이를 행하도록 명령하신 것이다(마 26:26-28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주님을 기념하라 하셨다(고전 11:25-26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교회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주님에 의해 명령되어진 것이다. 이 말은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의 명령이므로 교회가 이를 시행하던지 시행하지 않던 지를 결정할 아무런 권위를 갖지 않는다. 오직 순종만이 요구된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마땅히 주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요 14: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만찬의 요소

 

주의 만찬이 유월절 기간 중에 행해졌기 때문에 만찬에 사용된 떡과 잔은 누룩이 들지 않은 것들이었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기간 동안에는 누룩은 집밖에 두어야 하며 유교물은 먹지 말도록 경고되어 있기 때문이다(출 12:19-20 칠 일 동안은 누룩을 너희 집에 있지 않게 하라 무릇 유교물을 먹는 자는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 자든지 무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쳐지리니 너희는 아무 유교물이든지 먹지 말고 너희 모든 유하는 곳에서 무교병을 먹을지니라)

 

주의 만찬이 유월절을 대신해서 지켜지는 율법적인 것이 아니므로 율법에 규정된 법을 따르지 않아도 되겠으나 떡과 잔을 가지고 주의 죽으심을 기념해야 하는 입장이므로 다른 어떤 떡보다는 유월절에 사용된 떡과 잔을 사용하는 것이 제일 좋겠다는 것이다.

 

주의 만찬은 유월절과 같이 식사를 하는 규례가 아니라 주님을 기념하는 것이므로 떡의 크기와 잔의 양은 현재 유리 교회가 실행하고 있는 것과 같은 적은 양의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잔에 대해 신약성경에는 포도나무에서 난 것, 혹은 잔이라 표현되어 있다(마 26:27-29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유월절에 사용했던 “잔”이나 “포도나무에서 난 것” 이 알콜기가 없는 포도즙이었지 포도주는 아니었다는 사실은 유월절 절기 동안에는 누룩 있는 것은 집안에 두는 것조차 금했기 때문이다. (출 12:19 칠 일 동안은 누룩을 너희 집에 있지 않게 하라 무릇 유교물을 먹는 자는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 자든지 무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쳐지리니)

 

 

 

목적과 의의

 

  1.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떡과 잔을 가지고 나를 위해 십자가상에서 못박히시고 피 흘리신 주님을 기념하는 것이다. 십자가 주변의 조롱과, 십자가상의 고통을 회상하며 이런 모든 수난을 당하시면서까지 나를 사랑하셨던 주님을 생각하며 떡과 잔을 드는 것이다.

 

  1. “내가 올 때까지 나를 기념하라” 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따라 주의 만찬을 들면서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에 대한 확신을 갖는다(고전 11: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1. 떡과 잔을 들 때마다 주님의 피흘리심으로 인해 우리의 모든 죄가 속죄 되었음을 확신하게 된다(떡과 잔을 들게 되므로 죄가 사해지는 것이 아니다)

 

  1. 한 떡과 한잔에 참예하는 모든 성도들이 주안에서 한 피로 태어난 한 형제 자매임을 확신한다.

 

만찬을 행할 시기

 

  1. 안식교회를 제외한 모든 기독교회들은 “주일에 모여 예배드리라는 주님의 직접적인 명령”이 없는데도 주님의 부활일인 주일(안식후 첫날)에 모여 예배드리고 있다.

 

  1.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 보면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전 16:2)고 매주일 첫날(주일, 안식후 첫날)에 성도들이 예배드리기 위해서 모였음을 분명히 해주고 있고 이렇게 매주일 모일 때에 헌금을 하도록 교훈하고 있다.

 

  1. 사도 바울은 분쟁이 있는 고린도 교회를 책망하는 말로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고전 11:17)라고 하면서 그 이유는 “너희 중에 편당이 있어서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다”(고전 11:18-20) 고 책망하고 만찬에 임하는 바른 자세를 가르치고 있어서 초기 기독교회들이 매주일 모였고 모이면 주의 만찬을 행했음을 보게 된다.

 

  1. 초대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의 뜨거운 믿음을 소개해 주는 말씀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주의 만찬)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 2:42)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주의 만찬)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음식) 하나님을 찬미하며”(행 2:45-47) 을 참조하면 초대 교회 성도들은 모여 예배드릴 때에 “말씀” “기도” “주의 만찬” “헌금” “찬송” 을 했음을 보게 된다. 날마다 성전에 모였던 열심을 보게 되며, 또 가정집에서 모이는 교회에서 만찬을 행했음을 보게 된다.

 

  1. 바울이 드로아 교회를 방문했을 때에 주일 예배에 대해 소개한 것을 보면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하여 모였더니”(On Sunday, we all met together to eat the Lord’s Supper)(행 20:7)라고 되어 초기 교회들은 매주 모였고, 안식 후 첫날에 모였고, 모임의 큰 목적이 주의 만찬을 행하기 위해 모였음을 보게된다.

 

  1. 초기 기독교의 예배를 소개하는 책자들에는 물론 주의 만찬이 매주일 첫날에 행해졌음을 보게 되지만 위의 성서적 증거만으로라도, 초기 기독교인들이 “매주” 모였고, “안식 후 첫날”에 모였고, 그 모임에는 “주의 만찬”이 행해졌음을 믿기에 충분하다.

 

  1. 매주 만찬을 행하지 않은 교회들이 태반이므로 다수의 목소리는 “성경 어디에 매주 만찬을 하라고 명령한 곳이 있느냐?” 라든지 “1년에 몇번 하든지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안는다”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매주 주일 예배에 빠지지 말고 꼭 지켜야 한다고 보수적인 주장”을 하는 교회들이 만찬만큼은 아주 소흘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매주 주일마다 꼭 예배드려야 한다”는 주님의 명령(성경)이 있어서 매주 주일을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고, 초대 교회 교인들의 모범에 따라 기독교회들이 따르고 있으면서도 매주 만찬을 하라는 명령이 없으니 일년에 몇번 하던지 자유라고 말을 한다.

 

  1. 분명한 것은 성경에 근거하여 믿음을 실천한다면 매주 주의 만찬을 행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요, 1년에 2번, 또는 1달에 1번, 각 교회가 자유로 한다는 주장은 성경적 근거가 전연 없음이 확실하다. 매주 만찬을 하지 않는 교회들은 만찬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교회 제도 자체가 성경적 근거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교파의 전통과 헌법에 많이 좌우되고 있으므로 “매주 만찬을 해야 한다”는 권면을 그렇게 중요한 일로 받아드리지 않는 것이다.

 

  1. 명칭 자체가 “만찬”이요 행전 20장에 “저희가 떡을 떼기 위해 모였다”는 내용 뒷 편에 “밤중까지 강론하므로 유두고가 졸다가 떨어져 죽었다”는 것에 근거를 두고 “성경대로 하려면 주의 만찬은 밤에 하는 것이 옳다” 고 주장하는 자들도 있는데 안식후 첫날 모임은 “밤”에 모였다는 근거가 전연 없으며, 모임의 목적을 중심해서 생각할 때 시행하는 시간에 대한 주장은 별 의미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1. 매주 모여서 예배하는 것이 영적으로 유익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라면, 매주 주일 예배에 반복되는 “말씀” “기도” “찬미” “헌금” 과 함께 “만찬”도 매주 해야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혹시 진실된 마음으로 고백하기를 ”1년에 2번 정도 하게 되므로 만찬에 임하는 자세도 좋고 매우 경건하게 만찬에 임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런 같은 이유로 주일에 행해지는 예배의 다른 요소 “설교 듣는 일” “헌금하는 일” “찬송하는 일” “기도하는 일”도 1년에 2번 하는 것이 좋겠느냐는 질문에 뭐라고 답을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1. 주의 만찬은 주님의 명령이므로 인간의 어떤 이론이나 변명도 허용될 수 없으며 “성경적 근거 때문에 주일 성수를 교인들에게 강요한다면” 주일 예배에 “떡을 떼기 위해 모였다”고 만찬을 주일 예배의 중요요소라고 강조하여 가르치거나, 그렇게는 못할 지라도 “주의 만찬은 예배에 행해지는 설교, 기도, 헌금, 찬미보다 조금도 덜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바로 가르쳐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기독교란 어떤 인간의 주장을 소개하는 곳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주장을 가르치는 곳이기 때문이다.

 

  1. 성도들이 다른 지역에 여행을 해야 할 경우 그 지역에 주의 만찬을 행하는 교회가 있음을 알지 못하는 경우에는 미리 만찬을 행할 준비를 하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 권장할 만한 자세라 생각한다.

 

  1.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고전 11:23) 라고 고린도 교회에 사도 바울이 만찬에 대한 바른 지식과 교훈을 가르치고 있는데 “주께로부터 받은 이 명령”을 우리도 남에게 바로 전하는 주님의 충성된 종들이 다 되어야 할 것이다.

 

 

만찬에 참여할 자격

 

  1. 교회 역사를 보면 만찬은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다고 개방한 “개방 친교 주의자”가 있기도 했고, 반대로 만찬에 참예하는 자격을 제한했던 “한정 친교 주의자”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누구도 만찬에 참예할 자격을 개방하거나 제한할 자격이 없다.

 

  1. 만찬 인도자도 일반 교단에서 목사에 한해 이 예식을 거행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는데 역시 성서적 근거에서 온 것이 아니고 각 교단의 독자적인 결정인 것이다.

 

3 고전 11:27-29에 근거한다면, 주의 만찬에 참예하는 자는 마땅히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게 먹고 마셔야 함을 전제하고, 그 방법으로는 “자신을 살피고” 그 후에야 떡과 잔을 들도록 권하고 있다. “자신을 살피는 것”이란 마땅히 만찬을 들기에 부담스러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놓고 정결한 마음으로 드는 것을 의미할 것이고, 또 만찬에 대한 의의를 충분히 생각하며 의미 있게 드는 것을 의미한 것이며, 육적 음식으로가 아닌 영적 목적을 위한 예식으로 분명히 알고 주의 죽으심을 기념해야 한다는 뜻으로 행하도록 권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1.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라는 말은 만찬을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엄숙한 예식으로 생각지 아니하고 음식을 먹는 정도의 자세로 만찬에 임하는 자세를 지적하는 것이라 보는 것이다. 즉 고린도 교회가 바울로부터 책망을 받았는데 “어떤 이는 먼저 와서 배불리 먹고, 어떤 이는 늦게 와서 시장했다”는 기록은 고린도 교회가 만찬을 남용하여 음식을 먹듯이 한 것임에 틀림없고 이에 대해 책망을 했으며, 이런 상항으로부터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라는 개념이 나온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1. 만찬에 참예할 수 없다는 소극적인 자세보다, 마음에 잘못을 느낀다면 잘못을 하나님 앞에 내놓고 용서를 받고 만찬에 참예하는 적극적 신앙이 바로 주님이 바라시는 만찬에 임하는 자의 자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만찬에 임하는 자격은 본인 스스로가 결정할 문제이요 나 이외의 사람이 자격을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마땅히 만찬에 임하는 자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된 자만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관이 되는 것이므로 세례받은 자로서 주의 명령이므로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을 살피고 주의 몸을 바로 분변하고 먹고 마시므로 하나님이 바라시는 주의 만찬을 시행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1. 만찬을 인도하는 자의 자격이란 모든 성도들은 마땅히 자격을 주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다(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자격 역시 만찬의 의미를 분명히 알고 시행하는 자는 유자격자라 할 것이다. 만찬 인도자는 간단히 만찬의 의미를 강조해 주고 인도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나, 만찬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권면이나 기도 인도시에 배려해야 할 것이다.

 

  1. 만찬이 예배의 중심이 되는 것이 부각될 수 있도록 교회에서나 만찬 인도자들이 많이 연구하고 노력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