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찬송(Singing in worship)

성경적 찬송(Singing in worship)

 

찬송의 정의:

  1. 찬송이란 곡을 말하는 것도 아니며, 또 곡이 찬송의 일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찬송 가사가없는 곡만을 가지고는 찬송이라 할 수 없다. 찬송가란 노래가 붙은 찬송일 뿐이지 찬송은 꼭 노래가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곡이 없는 찬송을 해본 일이 없고 찬송이라면 가사보다 곡을 중점적으로 생각해왔고 좋아하는 찬송이란 좋은 곡의 찬송이지 좋은 가사의 찬송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찬송이란 곡만 가지고서는 찬송인지 보통 노래인지를 구분할 수가 없다. 비록 찬송가 책에 있는 어떤 것을 택하여 피아노나 다른 악기로 그 곡을 연주한다 하드래도, 아니 가사를 생각지 아니하고 곡만 흠잉으로 부른다해도 그 자체가 찬송이 될 수 없다. 가사가 없이 곡만으로는 찬송이 존재할 수 없다. 물론 어떤 이가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한 곡을 만들었다 하드래도 제 삼자가 이 곡만을 연주하거나 콧노래를 부른다고 해도 찬송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찬송가에 보면 명곡이나 민요나 국가에 찬송가사를 붙여 놓고 찬송가 책에 수록해 놓은 것들이 있다. 그러므로 그 곡에 어떤 가사가 붙어 있느냐에 따라 명곡, 국가, 찬송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찬송가 79,287,245 참조)

 

  1. 찬송이란 하나님의 속성(전능, 전지, 무소 부재, 사랑, 자비)과 그가 하신 일(창조와 구원의 계획)을 알고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온 감사와 찬양의 표현이다. 그런 면에서 누구나 찬송 가사를 지을 수 있고, 찬송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찬송가사란 특수인 만이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 개인에 따라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지은 찬양의 가사를 마음으로 이해하고 공감하여 자기의 것으로 소화하여 표현하므로 찬송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즉 남이 지은 가사를 내가 그 뜻을 이해하고 마음으로 영으로 하나님을 향해 표현하므로 훌륭한 찬양이 가능한 것이다. 다른 사람이 한 기도에 따라 아멘으로 동참하므로 다른 사람의 기도가 바로 내가 드린 기도가 될 수 있는 거와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찬양이란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의 표현을 말하는 것으로 곡이 꼭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즉 가사가 없는 찬송은 존재할 수 없지만 곡이 없는 찬양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1. 곡이란 전 교인이 함께 부를 수 있도록 하는 편의이고 필수는 아닌 것이다. 혼자 부른다면 무곡이 가능하나 여러 명이 함께 부르기 위해 박자로, 또 쉼표를 통해 같은 템포로 시작하고 마칠 수 있는 약속이 주어진 것이다. 같은 가사에 다른 곡을 붙여 더 느리게 부르거나 더 높게 불러도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으나 같은 곡이지만 가사를 바꾸어 준다면 전연 다른 내용의 표현이 되는 것이다. 달리 말한다면 곡은 틀리게 부른다 해도 가사를 하나님께 전달하는데 문제가 되지 않지만 가사의 뜻을 이해 못하거나 가사를 틀리게 부른 다면 마음이 하나님께 전달되는데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사는 성서적이어야 하고, 또 그 가사의 뜻을 명확히 이해하고 마음으로 불러야 하는 것이다. 곡이란 가사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며 목적이 아닌 것이다. 곡이란 상품을 포장한 포장지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이다. 찬송가책 안에도 비 성서적인 가사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하고 비성서적인 가사는 고쳐부르거나 피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하나님께는 음악적 요소가 전연 무시된 음치의 찬송이나 음악 전문가의 찬송이나 동질의 찬송으로 인정되어질 수 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2. 시, 찬미, 신령한 노래(엡 5:19; 골 3:16), 찬송(약 5:13): 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글(시편이나 기타 시) 즉 곡이 붙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고, 찬미란 하나님을 찬양하는 글에 곡을 붙여 드려진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신령한 노래란 하나님을 찬양하는 글이 아닌 신앙적인 가사가 붙은 노래라고 구분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고전 14:26의 “찬송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로 위의 시(엡 5:19)과 동질의 것일 것이다.

 

5 찬송에서의 사부 찬송의 의미는 남녀 그리고 높은 음과 낮음을 가진 성도들 각자가 노래하기 편한 음역에서 노래하도록 하는 편의이며, 또 자기의 목소리를 이웃 사람의 목소리 크기와 발란스를 유지케 하므로 회중 예배의 질서와 조화를 이루게 하여 주므로 좋은 점이 있다. 통성기도시에 목소리 큰 자의 횡포를 생각하면 4부의 찬송의 장점이 많이 강조되리라 믿는다. 어떤 경우에도 사부의 찬송과 단음의 찬송이 찬송의 질을 구별해 주는 것은 아니다.

 

  1. 성가대의 찬양과 중창, 독창자의 찬양이 위에서 언급한 정도의 수준이 된다면 찬송으로서 필요하고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하겠으나 만일 합창이 곡을 중심해 있거나 사람의 귀를 위한 발표용(자랑)으로 된다면 찬송으로서의 수준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향한 기도와 찬송을 했던 거와 같은 수준으로 인간의 귀를 의식하지 말고 하는 찬양이어야 할 것이며, 악기의 도움을 전연 느끼지 않는 수준의 찬송을 할 수 있어야 하겠다.

 

  1. 찬송은 가사에 있다고 강조한 대로 찬송에 있어서의 가사에 많은 사람들이 심혈을 기우려 가사부문에 많은 진전이 있어야 마땅하며, 교계에서는 음악인보다는 오히려 문인들이 더 존중되어져야 마땅할 것 같으나 교회마다 음악인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문인들은 교회에서 전연 그들의 직무가 부여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찬송은 바로 곡(음악)으로 오해하고 있는 부산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 기도를 문인들에게만 맡겨도 잘못이려니와 독창, 중창, 합창을 음악인들에게만 전담시키는 것은 찬송의 질을 점점 저하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며, 더욱 일반 성도들에게 넓게 보급시켜야 할 찬송의 특권을 점점 빼앗고 목소리 나쁜 사람은 늘 찬송을 못한다고 사양케 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결과를 낳게 할 것이다.

 

  1. 교회 안에 음악이 치중되면 될수록 하나님이 받으실 몫은 줄어들고 인간들이 받을 양은 많아 지게 될 가능성이 있어서 주님께서는 저희더러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라고 하실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1. 훌륭한 반주자의 반주만으로는 본인이 입술로 또는 마음으로 가사를 생각하며 부를 수 없을 때는 찬송을 했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일평생 반주자로 수고로운 봉사는 했지만 찬송 면에서는 게을리 한 결과가 될 것이다. 지휘자도 훌륭한 합창을 창조해 냈다하더래도 그 본인이 입술로 가사를 생각하며 부를 수 없었다면 성가대원에게는 찬송을 하도록 했을지 모르나 본인은 찬송을 했다 할 수 없을 것이다. 기독교는 모든 성도 각자에게 무엇을 하도록 요구하고있는데 가장 찬송을 위해 큰일을 한 지휘자나 반주자는 찬송을 게을리 했음을 시인하지 않으면 찬송의 의미도 모르고 찬양대를 이끌었다는 결론이 될 것이다. 교회에서 흔히 듣게되는 악기의 독주가 듣는 이의 마음에 와 닿았다 하드래도 곡조만 보고 곡만이 들려진 연주라면 찬양으로서는 가치가 없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수많은 지휘자, 반주자, 악기 연주가들이 음악에만 몰두해 있다고 한다면 찬송과는 거리가 먼 것이나 누가 그렇게 생각을 하겠는가? 사실상 어려운 곡을 4부로 반주하는 반주자는 가사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 성가대 지휘자는 사부 합창을 살리는 것이 목적이지 가사의 바른 이해와 바른 전달에 목적을 두고 있지 못하다. 합창에서는 부르는 이나 듣는 이가 화음이 잘 맞았으면 찬송을 잘 한 것으로 평가가 되고 혹시라도 화음에 차질이 났으면 잘못됐다고 평가를 받는 것이다. 즉 찬송을 인간이 평가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찬송은 인간 몫이 아니라 하나님의 몫임을 다시 강조한다.

 

찬송자의 자세:

  1. 일상생활에서 천지 만물을 보면서 하나님의 전능과 자비와 은혜에 감탄하고 감사하여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표현이 늘 있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훌륭한 찬송이라 할 수 있다.

 

  1. 마음으로 영으로(고전 14:15)드려져야: 가사의 뜻을 완전히 이해하고, 곡을 완전히 익혀서,곡에 신경쓰지 아니하고 온전히 가사에 마음을 실어 하나님을 향해서만 드려지는 찬송이어야한다. 영으로란 세상적으로 자랑하고 보일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 것을 벗고 오로지 성령을 힘입어 하나님만을 향해 드려지는 것을 말한다. 온전한 찬송은 결코 가사와 곡에 대한 충분한 소화가 필수적인 것이다.

 

  1. 어떤 경우에 찬송을 혼자나 가족적으로 교회 앞에서 하게 될 경우에는 회중들에게 인사를 할 필요는 없고 회중을 의식하지 말고 하나님을 향해 분명한 가사를 전달해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회중은 그 곡에 의해 감동되는 것이 아니라 가사에 동감을 하고 아멘할 수 있게 되어져야 한다.

 

  1. 또 반대로 성가대의 찬양이나, 어떤 독창, 중창을 교회에서 대하게 될 때에는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에 관심을 두지 말고 찬송 가사에 관심을 두고 마음으로 가사를 함께 따라하면서 결과적으로 그 가사를 통해 하나님께 같은 찬양과 감사를 돌릴 수 있어야 한다. 그 가사에 아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찬송은 예배 요소중 하나

  1. 교회가 세워지고 성도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게 되었는데 찬송은 기도, 말씀, 헌금, 만찬과 더불어 공적 예배의 요소였으며, 개인적 예배의 요소이었다(행 2:42-47; 행 16:25)

 

  1. 찬송은 다른 요소들과 합하여 예배가 될 뿐 아니라 찬송 하나 만으로도 예배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찬송이 예배의 어떤 요소를 위한 보조적인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은 잘못이다. 찬송이 예배 분위기를 돋구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면 찬송의 의미를 전연 모르거나 아니면 찬송의 남용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찬송은 어떤 경우에도 예배의 시녀가 되어서는 아니된다는 것이다.

 

  1. 찬송은 늘 같은 의미로, 같은 질로서 드려져야 하며 때로는 “준비 찬송”이라 하여 찬송의 질을 절감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기도도 찬송도 늘 같은 질로서 드려지는 훈련과 습관이 필요하다.

 

예배시에 악기를 왜 사용치 않는가?

  1. 구약에서는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명령도 있고 찬양한 예도 있으나 신약에는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명령도 없고 실지로 사용한 실예도 없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는 있었으나 신약시대에는 전연 언급이 없고 사용한 실예도 없다는 것은 구약시대의 예배와 신약시대의 예배의 질적 변화를 말해 주는 것으로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4:24)”고 하심 같이 영적 예배에는 악기 같은 것이 동원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1. 신약 성서에는 마음으로 영으로 찬미하는 것을 말씀하시며(고전 14:15)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서로 화답하며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고(엡 5: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골 3:16) 라고 하여 마음이 강조되었다. 마음으로 한다는 것은 순수한 육성을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은 분명히 영적 찬송을 요구하신 것이다.

 

  1. 악기가 교회에 처음 소개되기는 주후 666년 이었으나 실지로 교회들이 보편적으로 악기를 사용한 것은 주후 13세기에 이르러서이다.

 

  1. 교회 역사가들이나 음악 역사가들 모두 초기 교회의 예배는 악기 없이 순수한 육성음악의 제창으로 드려졌다고 증언해 주고 있으며 악기음악은 예배에 허락되지 아니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1. 죤 칼빈은 그의 주석책중 시편 35편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악기음악은 분향이나 촛불을켜는 거나 또 구약의 다른 그림자 속으로 되돌아가는 것 보다 더욱 적합치 않다.” 라고 하였으며, 마르틴 루터는 “올겐은 바알신의 표다”라고 했고, 죤 웨슬레는 “나는 우리의 예배에 악기를 사용하는데 있어서 그것이 눈에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다면 아무 반대가 없다.” 라고 하여 각 교파 창시자들도 악기 사용을 적극 반대하였다.

 

  1. 악기가 노래를 하는 데에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에 사용치 않는다. 악기가 노래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노래를 잘 모른다는 것이며, 노래를 잘 모르는 경우는 노래에 신경을 써야 하므로 가사에 신경을 몰두할 수 없기 때문에 악기가 필요하다는 말은 온전한 찬양하기에는 부족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럴 경우라면 차라리 가사만 중심해서(곡은 무시하고) 하나님을 향해 찬양을 함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리고 평소에 악기를 가지고 곡을 온전히 익히고, 무엇의 도움 없이 찬송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만이 가사를 중심해서 드려지는 온전한 찬양이 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1. 예배에 악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찬송을 적극적으로 하는 방편이요 찬송을 소홀히 하는 것이 아니다. 악기 없이도 자유자제로 찬송을 할 수도 있고 곡 없이도 가사만으로 만족한 찬송임을 아는 사람이라면 온전한 찬양을 드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예배시에 악기가 있어야하고 없으면 찬송에 불편을 느낄 정도라면 찬송에 대해 너무 소극적이요, 언젠가는 찬송은 노래 전문가에게 넘기고 말 찬송 기피자가 될 것이다. 악기를 사용치 않는 것은 찬송을 보다 적극적으로 부각시켜 곡과 가사를 잘 배워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악기로 훈련된 사람은 악기 없으면 찬송에 많은 불편을 느끼게 되어 악기가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악기에 매이게 되는 결과까지 가져오는 것이다.

 

  1. 그런 면에서 악기를 사용하지 않는 다는 것은 찬송은 아무렇게 불러도 되며 예배시에 악기만 사용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은 아니다. 악기가 마귀가 아니다. 악기가 무서워서 예배당에 끌어드리지 않는 것이 아니다. 악기를 사용하는 사람보다 더 영적으로 잘 부르자는 것임으로 적극적으로 찬송을 배워야 하며 찬송할 때 마음으로 영으로 부를 수 있어야 한다.

 

  1. 악기를 사용하는 교회들은 악기를 사용하여 송영을 하거나 기도 끝날 때마다 어떤 곡을 반주자가 쳐주어 기도 뒤를 이어준다. 때로는 성가대원들이 목소리로 송영이나 기도 뒤에 부르는 찬송으로 대신해 준다. 분명한 것은 묵도시간에나 기도 끝난 후에 드려지는 반주가 찬송이 될 수 없고 이것은 묵도나 기도를 돕는 역할만 한다고 할 수 있으며 비록 이것이 성가대의 목소리로 되어졌다 하드래도 찬송의 목적과 방향이 기도자들을 돕기 위한 것이므로 찬송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즉 악기나 성가대의 목소리나 어떤 음악적 효과를 제공한 것이라 하겠다. 그런데 악기를 예배시에 사용하지 않는 교회들이 오히려 성가대원들을 시켜 악기를 대신하게 하는 교회들을 보게 되는데 무엇이 찬양인지? 왜? 악기를 사용하지 않는지를 모르고 있다고 밖에 달리 해석이 되지 않는다. 사람이 악기를 대신할 바에는 악기를 사용하는 것이 차라리 성가대원들이 찬송의 질을 낮추게 하는 결과를 낳지 않으리라 본다.

 

참고가 되는 성구

 

5: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

하며.

 

3:16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고전 14:15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13:15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 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1:5-6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15:11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저를 찬송하라.

 

5: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고후 1: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