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판단과 하나님의 판단 – 로마서 2:1-5

며칠 전 신문을 보니 어떤 사람이 한때는 경찰이었는데 경찰을 그만 두고 깽 단을 조직하여 범죄를 저지르다가 잡혀서 감옥에 있는 동안 통신으로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가 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경찰이나 깽단이나 목사나 사람 보기에는 전연 다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별 차이가 나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꾸민 드라마가 아니고 실지의 인물이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판단하는 자라도 자기가 판단하는 자가 지은 똑같은 죄를 짓는다면 그도 역시 자기가 판단한 사람이 받는 심판을 받게 된다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경찰도 죄를 지으면 죄수일 수 있듯이 남의 죄를 지적하고 판단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남에게 판단 받을 만한 죄가 있을 수 있다는 죄의 지적인 것입니다. 남들은 다 죄가 많다고 남의 죄를 판단하므로 자기의 죄가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죄를 판단하여 회개하여야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심판을 면한다는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깨닫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사람의 판단과 하나님의 판단(1-3) [2]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한 오해(4-5)입니다.

 

[1]맨 먼저 1절부터 3절까지의 사람의 판단과 하나님의 판단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절의 말씀은 남을 죄인이라고 판단하는 사람이 자기도 자기가 판단하는 그 사람이 지은 똑같은 죄를 짓는다면 남보고 죄인이라고 판단한 그대로 자기가 자기를 죄인이라고 판단한 결과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판 날에 자기는 죄인이 아니라고 핑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남의 물건을 훔친 사람을 두고 도적이라고 판단을 한 그 사람이 남의 물건을 훔쳤다고 한다면 자기가 남의 물건을 훔친 사람을 두고 도적이라고 한 그 판단대로 자기가 도적이라고 판단한 결과가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 1장에서는 불신자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은 것에 대해 아무런 핑계를 할 수 없는 이유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을 알만한 것을 주셨고 만물을 보면 만물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불신자들이 주님 재림시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때에 아무런 변명도 할 수 없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에서는 신자라 할지라도 불신자들이 지은 똑같은 죄를 범한다면 불신자들이 받을 똑같은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불신자이건 신자이건 죄를 지은 사람은 모두 심판을 받는 것이지 신자라는 이름 때문에 심판을 면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1장에서는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을 향해 쓴 말씀이라고 한다면 2장에서는 하나님을 믿고 있는 유대인들을 두고 쓰고 있는 말씀으로 보아도 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유대인 바리세인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이라는 표현을 쓰시면서 바리세인들이 겉은 진실 된 신자이나 속은 전연 그렇지 못한 것을 지적하셨던 것입니다. 유대인이라면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법을 지켜나가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법은 지키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을 향해 죄인이라고 판단만 하는 것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오히려 불신자들을 두고 죄인이라고 판단하면서 자기도 똑같은 죄를 짓고 있다면 자기가 자기를 죄인이라고 판단한 결과가 되기 때문에 심판 날에 자기는 죄인이 아니라고 변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절에 보니 남을 죄인이라고 판단하면서도 자기도 똑같은 일을 행한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된다고 했습니다. 진리대로 된다는 말은 편견을 가지고 심판을 하거나 억울하게 하는 판단이 아니라 심판을 받을 자에게 마땅한 심판이 주어지는 매우 타당하고 공의로운 심판이라는 뜻입니다. 세상 재판에서 사람 판사가 내리는 심판에는 잘못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죄 없는 사람을 죄인이라고 심판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죄 있는 사람을 죄 없다고 심판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십 년 동안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다가 진짜 죄수가 나타나서 옥에서 나온 사례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판단은 사람의 판단과 달라서 완벽한 판단, 전연 어떤 실수가 있을 수 없는 판단이라는 의미로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어진다고 표현된 것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한글 성경상에는 똑같은 단어인 판단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원어인 희랍어에서는 사람이 하는 판단과 하나님이 하시는 판단의 판단이라는 두 단어가 다른 단어로 사용되어 단어에서도 그 뜻이 구분되어 있습니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으니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고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고 메시야가 오실 것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면서도 오신 메시야를 십자가에 메 달았으니 불신자인 이방인이나 신자인 유대인이나 똑같은 죄인이요 심판을 면치 못하는 존재들이라는 뜻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1장에서 불신자들이 안고 있는 많은 죄악들을 일일이 지적하면서 불신자들이 안고 있는 그런 죄악으로 인해 불신자들이 현세와 미래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을 경고했었는데 2장에서는 신자들도 불신자들이 범하고 있는 똑같은 죄를 범한다면 불신자와 함께 신자들도 심판을 받게 될 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는 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의 판단은 진리의 판단도 아니오 공의로우신 판단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2]다음은 4절과 5절의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한 오해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4절과 5절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님의 재림의 시기를 늦추시어 심판의 날이 늦추어지는 것은 죄인들이 하나라도 더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신 뜻으로 인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계속 죄를 지어도 당장 하나님의 심판의 불이 떨어지지 않으므로 자기가 잘 믿고 있다고 하나님께서 인정하고 계신 것으로 생각하거나 아니면 이 정도의 죄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으로 오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오해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향해 베푸신 풍성한 인자와 길이 참으심에 대한 조롱이요 멸시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택한 백성들이기 때문에 이방인은 저주를 받아 마땅하나 유대인들은 죄를 지어도 늘 축복 가운데 살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자부심과 교만 때문에 이방인들을 저주받을 자들로 알고 경멸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그런 자부심을 갖고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되 조건을 주셨는데 그 조건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심지어 우상을 섬기고 많은 죄악 속에 살면서 마음으로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고 심판만을 초래하는 자부심이었던 것입니다.

 

5절에서 경고하고 있는 것은 믿는 자가 죄를 회개하지 않고 죄를 그대로 가지고 있고 교만과 무의미한 자부심을 계속 갖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날에 진노를 더 쌓는 일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고 교만한 자는 주님의 재림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죄를 더해 갈 것이므로 하나님의 화를 더 쌓아 가는 결과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회개하기를 거절하고 교만하게 고집을 꺽지 않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님의 재림을 늦추시면 늦추실 수록 맞을 매를 더 쌓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비하셔서 죄인이 더 회개하도록 주님의 재림을 늦추시고 계심에도 이런 깊은 뜻을 무시하고 죄를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죄를 짓고 있다면 하나님의 풍성하신 자비를 무시한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5절에서도 하나님의 심판을 의로우신 심판이라고 했는데 진리대로 심판한다는 말과 같은 의미가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조금도 잘못이 없이 벌받을 죄인에게 꼭 알 맞는 심판을 내리신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남을 판단하지 말고 자신을 판단하여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을 기다리는 자들이 되라는 교훈입니다. 우리들은 자기 자신을 두고 자신이 몹쓸 죄인라는 고백을 듣는 경우는 거의 없고 다른 사람을 두고 나쁘다고 판단하는 말을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믿는 자들이 자신을 판단하는 일에는 게을리 하고 남을 판단하는 일을 쉽게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 앞에 간음한 여인을 데리고 온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모세의 법대로 돌로 쳐죽이기 위해서였습니다. 여인을 데리고 온 무리들에게 주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시니 자기 자신의 죄를 돌아보고 죄 없는 자가 하나도 없었는지 돌로 치는 자가 하나도 없었고 다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렇다고 남들이 다 죄를 짓고 있으므로 간음한 여인의 죄가 용납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다시는 죄를 짓지 말도록 책망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있는 죄는 돌아보지 못하고 남의 죄만 지적한 이런 자들을 두고 주님께서는 자기 눈에 있는 들보를 먼저 빼내고 남의 눈에 있는 티를 빼라고 하도록 경고하셨습니다.

 

오늘의 교훈은 남을 판단하지 말고 자신을 판단하여 자신의 죄를 찾아 회개하라는 교훈입니다. 즉 남의 더러움을 들어내어 남을 죄인으로 만들므로 나는 그보다 깨끗하다는 논리로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내 죄를 들어내어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죄를 계속 짓고 있는데도 큰불이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정도의 죄는 너그럽게 봐주시기 때문이 아니라 심판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매맞을 자에게 매를 꼭 알맞게 때리시는 공의로우신 심판이 있을 것을 믿고 그 매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 죄를 회개하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회개하지 않고 계속 죄 속에서 산다면 주님의 재림의 시기가 늦추어지면 늦추어질수록 매가 커지고 늘어난다는 교훈인 것입니다.

 

우리 모든 인간은 내가 남을 판단했던 똑같은 실수를 할 수 있는 나약한 존재들입니다. 내 자신의 문제뿐 아니라 남의 자녀를 두고 판단했는데 똑 같은 일이 내 자신에게나 내 자녀들에게도 있을 수 있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남의 잘못을 쉽게 판단하는 습관에서 내 자신을 돌아보아 내 자신을 먼저 판단하는 그런 습관을 기른다면 감히 남을 판단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남을 많이 판단했다고 하여 상이 주어지기는커녕 나도 그런 실수를 저지르게 될 것이므로 내가 남을 판단한 바로 그 판단에 의해 자동적으로 나는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남을 판단하는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고 남을 판단했던 어리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오히려 내 자신을 판단하고 내 자신의 잘못을 바로 잡고 하나님의 진리의 심판, 의로우신 심판을 기다리는 지혜로운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