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악한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참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인류를 사랑하는 인물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많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락과의 전쟁이 일어나니 인간 방패란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평화를 사랑하고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전쟁터에 몰려가서 폭격을 하지 말도록 자기 몸으로 폭탄을 막아보겠다는 사람들을 두고 인간 방패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자기 목숨보다도 인류를 더 사랑한 자들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평생 자기는 쓰지 않고 모은 돈을 장학금으로 내 놓거나 사회에 돌리는 훈훈한 이야기들을 가끔 신문을 통해 접하게 됩니다. 그 중에서는 재벌 기업가도 있겠지만 일평생 바느질을 했다거나 행상을 한 노인이 자기를 위해서는 안 쓰고 모았다가 몇 억 아니 몇 십억을 내 놓는 것을 보면 그런 인물들은 많이 높임을 받아야 할 인물들이라 생각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봉독한 본문을 통해 아무리 사회에서 큰 선을 행하고 사람들로부터 큰 칭찬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가 행한 선한 행위로는 자기가 지은 죄의 한 부분도 감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으며 오직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은 믿음뿐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앞부분에서도 이미 수차에 걸쳐 증거 하였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실제적인 예를 들어 이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가 실지의 예를 든 것은 믿음의 조상이라 부르고 있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예를 들어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임을 확인시켜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아브라함을 통한 증거(1-3) [2]일하는 자를 통한 증거(4-5) [3]다윗을 통한 증거(6-8)입니다.
[1]맨 먼저 1절부터 3절까지의 아브라함을 통한 증거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구별된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가 유대인으로 태어나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왔으므로 당연히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믿었을 것이며 율법도 없고 할례도 없는 이방인들은 영원히 버림을 받아 마땅한 존재로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진 후에는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믿음을 통해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음을 깨닫고 이 진리를 로마서를 통해 강력하게 설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므로 혹시나 유대교의 전통을 무시하고 율법을 무시한다는 유대인들로부터의 오해가 충분히 가능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점을 의식하고 율법 이전에 생존했던 아브라함과 율법시대에 생존했던 다윗의 예를 들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사실이 이제 신약시대에 갑자기 만들어진 작품이 아니고 그 이전 구약시대에도 적용이 되었던 진리임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15장 6절에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직 아들을 낳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 하늘을 보게하며 하늘의 셀 수 없는 많은 별과 같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그와 같게 될 것이라고 약속을 하셨는데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믿었던 것입니다. 자기 아내가 나이 많아 이미 아이를 낳을 수 없는 형편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므로 의심치 않고 그 약속을 믿은 그 믿음이 위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의롭다함을 받을 만한 어떤 행위를 한 것이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지만 오직 아브라함의 믿음 하나 만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하셨기 때문에 의롭다함을 받은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자기가 의롭게 된 것에 대해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기 고향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곳으로 가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으로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주어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자기 고향을 떠난 믿음의 인물인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의 믿음대로 또 하나님의 약속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람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게 되었으며 아브라함의 후손 중에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시어 그를 통해 만민이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에서 아브라함의 이 믿음을 소개하기를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만을 믿고 자기가 지금 어디로 가야하는 지도 모르고 자기 고향을 떠났던 아브라함의 믿음을 소개한 것입니다.
[2]두 번째로 4절부터 5절까지의 일하는 자를 통한 증거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이 얻은 의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것이지 아브라함이 어떤 일을 해서 마땅히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하기 위해 남의 집에서 일을 하고 삯을 받는 일꾼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직장에서 일을 한 사람은 자기가 일을 했기 때문에 월급을 마땅히 받아야 하며 주인은 종업원에게 월급을 줘야하는 빚 진자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을 전혀 하지 않은 사람에게 주인이 월급을 주었다면 그것은 주인이 갚아야할 빚이 아니라 은혜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의롭게되기 위해 그 무엇을 했다면 그가 받은 의롭다함은 은혜가 아니라 그가 한 일에 대한 보상이라 할 수 있겠지만 아브라함이 의롭다함을 받기 위해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이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이기 때문에 일의 대가가 아니라 오직 은혜로 얻어진 것이라는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6절부터 8절까지의 다윗을 통한 증거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다윗의 시 시편 32:1-2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는 복이 있도다의 말씀을 인용하여 복 있는 자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죄를 용서받고 죄가 있음에도 가리움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 죄가 있음에도 죄인이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은 사람이 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윗은 훌륭한 왕이었으나 그가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고 우리아의 남편을 전쟁터에 내보내 죽게 한 죄를 범한 일을 하나님 앞에 내 놓고 회개를 했으며 하나님께서는 진심으로 회개한 다윗의 기도를 응답하시어 그의 죄를 용서해 주신 것입니다. 시편 51:1-4은 그의 회개의 기도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다윗이 시편 32:1-2에서 소개한 복 있는 자라고 하는 것은 죄를 용서받고 죄를 가리움을 받으며, 또 죄가 있음에도 하나님께서 죄를 인정치 않은 사람이 복이 있는 자라 했는데 바로 다윗 자신이 복있자라는 감사의 고백인 것입니다. 다윗 자신이 복이 있는 사람이 될만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음에도 하나님께로부터 죄의 용서를 받았으니 자신이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한 것입니다.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도 바울이 주장해오고 있는 어떤 행위가 없음에도 은혜로 주어진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율법 이전의 인물이었는데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으며 다윗은 율법 시대에 살았던 인물이었으나 행위가 없이 죄 사함을 받아 의롭다함을 받은 인물인 것입니다. 즉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진리는 신약시대뿐 아니라 율법시대에도 또 율법시대 이전에도 적용되었던 진리라는 주장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사도 바울의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증언을 받았습니다. 기독교계에 혼동을 가져다주는 잘못된 가르침이 많이 있는데 우리들은 하나 하나 성경을 통해서 무엇이 진리인지 확인해나가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구원받는 일이 믿음인가 아니면 내가 그 무엇을 해서인가를 밝혀주는 것이므로 아주 중요한 주제가 되겠습니다. 한번 속으로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죄를 용서받고 우리가 구원받는 일이 무엇 때문일까요? 즉 내가 열심히 교회를 봉사하고 헌금을 착실히 잘 내고 이웃들에게 기회 있는 대로 선을 베풀므로 구원을 받는 것이냐 는 질문입니다. 답은 아이요 인 것입니다.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다른 아무 길도 없는 것입니다. 즉 죄 사함 받아 의롭게 되어지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어떤 인간의 수고와 노력으로는 전연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죄 사함 받아 구원을 얻는 길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믿고 내 죄를 하나님 앞에 내 놓고 회개하므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구원이나 의롭게 되는 길은 행위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되어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일 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되며, 헌금도 할 필요도 없고 이웃에게 선을 베풀지 않아도 되느냐는 질문이 나올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죄사함 받아 구원된 사람은 당연히 믿는 자의 행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로서 살아야할 성도의 삶을 살아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는데 믿는 자가 행해야할 행함이 없다면 믿는 자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죄를 용서받을 수 없기 때문에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죄 사함을 얻은 다음 구원 얻는 자가 행해야할 행위를 해내야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진 자가 되는 것입니다. 분명히 밝히고자 하는 것은 우리들이 행한 선한 일 때문에 죄가 조금씩 감해지는 것은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고 선행을 통해 죄를 감해보겠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성경적 답이 아닌 것입니다. 모든 죄를 그리스도를 통해 사함 받고 죄 사함 받은 성도들은 최선을 다해 그 믿음을 지키고 키워나가기 위해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며 성도가 해내야 할 마땅한 일들을 최선을 다해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믿음으로 구원된다는 말은 그리스도를 통해 죄 사함 받고 천국 백성답게 성도가 행해야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나간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