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바로 앞부분에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는 것은 인간이 행하는 어떤 선행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의해서 되어지는 것임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예를 들어 확인해주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유대인들이 지나치게 율법과 할례를 자랑하여 의롭게 되기 위해서는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율법이나 할례에 대해 별로 관심을 두고 있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유대인들 크리스천들 중에는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잘못 가르친 자들까지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잘 못된 가르침을 차단하기 위해 율법과 할례를 받지 않아도 믿음으로 의롭게 되며 구원될 수 있음을 여러 측면에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구원되었음을 증거한 사도 바울은 오늘의 본문에서는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은 할례를 받기 전이었음을 증거하면서 율법이나 할례는 의롭게 되는 것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님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믿음과 율법, 하나님의 약속과 율법 등에 대해서 확실한 답을 성경을 통해 얻으므로 믿음으로 얻는 구원, 믿음으로 받는 약속에 대해 확신을 가지시게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무할례시에 의롭게 된 아브라함(9-12) [2]믿음으로 후사가 된 아브라함(13-16)입니다.
[1]맨 먼저 9절부터 12절까지의 무할례시에 의롭게 된 아브라함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율법과 할례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었다는 자랑이요 증거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의해 복을 받을 수 있도록 축복의 문을 개방하였음에도 오랜 기간 내려온 유대인들의 전통과 습관에 의해 신약 교회 안에서도 할례를 받은 자와 할례를 받지 못한 자를 구별하였던 것입니다. 심지어 베드로까지도 이방 교회에 가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다가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인 형제들이 식사 장소에 들어오니 식사 장소에서 빠져 나와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지 않은 것 같이 행동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사도 바울은 베드로의 잘못된 믿음을 책망하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신약 교회에서도 율법을 지켜야 하고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바른 진리를 가르쳐 할례를 받은 자나 할례를 받지 않은 자나 믿음만으로 온전히 의롭게 될 수 있음을 증거하기 위해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실을 다시 증거로 내 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때가 언제인가? 에 초점을 맞추어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이 할례 받기 전인가 아니면 할례 받은 후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며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이 할례 받기 전이었음을 밝히므로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일에 할례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여김을 받은 이후 약 20 여년이 지나서야 할례를 받은 것입니다. 즉 이 말은 할례와 전연 상관없이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그 믿음에 의해 의롭다함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기 전에 의롭다함을 받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은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들도 할례와 상관없이 믿음에 의해 의롭게 될 수 있다는 진리를 강조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은 유대인이거나 이방인이거나 상관없이 그들 중 믿음을 가진 자의 조상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반면에 아무리 할례를 받는 유대인이라도 믿음을 가지지 않은 자는 자기가 받은 할례로서는 의롭게 될 수 없으며 아무리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의롭게 되는 문을 열어두셨지만 믿음을 가지지 못한 이방인이라면 하나님이 주신 그 특권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기회에 할례의 정체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라 했습니다. 즉 할례란 의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의롭게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주는 하나의 표라 했습니다. 의롭게 되는 것은 할례 때문이 아니라 믿음 때문이요, 할례란 믿음 때문에 의롭게 된 자들이 의롭게 되었다는 인증서일뿐이라고 했습니다.
[2]두 번째로 13절부터 16절까지의 믿음으로 후사가 된 아브라함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기의 후사라는 말의 뜻은 상속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7장 8절에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고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상속을 받도록 했으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의 하나님이 되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이 약속은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어 살게 하시겠다는 약속이며 또한 영적인 아브라함의 후손 즉 아브라함이 가졌던 그 믿음을 가진 유대인이나 이방인에게 천국을 허락하시어 천국에서 영원토록 살게 하신다는 약속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약속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오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아브라함이 이 언약을 받은 후 약 400년 이상이 지난 이후에야 율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율법과 할례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에 자랑할 만 하고 중요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율법이나 할례는 죄인이 의롭게 되는 데에나 약속을 받는데 전연 상관이 없는 것임을 여러 각도에서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율법을 지키는 자들만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상속자가 되도록 제한한다면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믿음은 헛것이 되며 믿음에 의해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그 약속도 폐하게 된다고 사도 바울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더욱 더 사도 바울은 율법이라는 것이 사람을 의롭게 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이 있으므로 죄가 죄로 판정을 받게 하는 것이므로 율법은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율법을 자랑하고 있는 유대인들에게는 퍽 못마땅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복음을 중심한 진리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담대하게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일방적으로 할례를 무시하고 내 팽개치는 것은 아니었다는 증거로서는 사도 바울이 이방인인 디모데에게는 할례를 행했으나 디도에게는 할례를 행하지 않은 사실을 두고 알 수 있습니다.
16절에서 사도 바울은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한 약속은 믿음에 의해서 되어지는 것이며 어떤 행위에 의해 이루진 것이 아니므로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믿음에 의해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한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후손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라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모든 후손이이란 아브라함과 같은 혈통인 육적인 유대인 뿐 아니라 비록 육적으로는 이방인이지만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을 가진 자 모두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의 모든 사람이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믿음을 가진 모든 자들을 말하는 것이며 믿음을 갖지 않은 자들은 제외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믿음에 대한 모든 답은 성경으로부터 얻어진 것이라야지 어떤 특정 교파나 특정한 인간의 주장을 중심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입니다.
사도 바울 그 당시의 유대인 기독교인들의 일부는 자기네들의 입맛에 맞게 복음을 손질하고 구원의 교리를 변질시켰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음에도 그들을 택하신 하나님의 길을 따르지 않고 자기 욕심에 따라 살았던 것입니다. 선지자들을 통해 전해진 메시지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소견에 따라 멋대로 살았던 결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은 망하게 하시고 다른 나라에서 포로 생활을 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 고난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깨달을 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에 메시아 되신 주님을 믿고 영접하기는커녕 자기들의 판단에 따라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드린 일부 유대인 그리스도인은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유대전통중심의 기독교로 변질시키려 했던 것입니다. 한사코 하나님 중심이 아닌 자기들 중심의 삶을 계속해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 또 사도 바울과 같은 사도들을 통해 인간 중심을 벗어나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갖도록 경고해온 것입니다. 우리들이 들고 있는 성경은 성경에 있는 말씀대로 살도록 우리들의 손에 주어졌지만 손에 있는 성경 말씀에 따라 살지 않고 한사코 내 생각과 판단에 따라 또 다수의 사람의 의견에 따라 살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다수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며 다수의 횡포에 소수의 진리가 피해를 당하고 있는 시대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다수의 의견에 따라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운영될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심판이 이뤄질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다수가 진리를 거역해도 하나님은 이에 굴복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 일획이라도 가하거나 감할 수 없다는 말씀이 바로 그런 의미에서입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분명히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경위를 우리들에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믿음이란 바로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택하고 사람들의 주장을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들은 믿음에 의해 우리가 의롭게 되지 사람들의 주장에 의한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선악과와 같이 눈에 보암즉도 하고 먹음직한 것이 진리가 아니라 내가 먹고 싶지만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다면 그 명령이 바로 진리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택한 백성이라는 기득권을 가지고 계속 그 기득권을 어디에서나 남용했었는데 내가 가진 기득권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 기득권을 포기하고 내 주장과 내 이익에 손해가 온다할지라도 나를 꺾고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고 이에 순종하는 것이 믿는 자의 기본 자세인 것입니다. 이런 자를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며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진리의 말씀을 받아드리며 진리에 순종하셔서 하늘나라의 상속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