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믿음 – 로마서 4:17-25

사도 바울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이 할례를 받거나 율법을 지키는 어떤 인간의 행위로 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되어지는 것임을 아브라함의 예를 통해 분명하게 증거 해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기를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고 하셨는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의롭다함을 받았던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아브라함이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었던 그 믿음이 어떤 믿음이었는지를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유대인이거나 이방인이거나 구별 없이 믿는 자의 조상이 되신다고 했는데 즉 아브라함이 가진 그런 믿음을 가진 자들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소개받는 우리들도 아브라함이 가졌던 그런 확고한 신앙을 가져 아브라함이 우리들의 조상이라고 말 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17) [2]아브라함의 믿음(18-22) [3]우리 모두의 믿음(23-25)입니다.

 

[1]맨 먼저 17절의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가 가진 믿음에 의해 이롭다함을 받았으며 모든 믿는 이들의 조상이 되었는데 17절에는 그가 믿었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창 15:6 에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했는데 그 바로 앞부분을 보면 하나님과 아브라함 간의 대화 내용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 때까지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자녀를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집에서 태어나서 자란 종 엘리에셀이 자기의 상속자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종 엘리에셀은 너의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 말씀하시기를 하늘을 우러러 별들을 보아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아브라함이 바로 이 약속을 하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고 한 것입니다.

 

자식이 하나도 없는데도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리라고 약속하신 것을 믿었다고 했는데 약속하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기에 그렇게 믿을 수 있었는지를 17절에서 밝혀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하나님이시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다고 하였는데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아무 것도 없는 무에서 있는 것을 창조해내실 수 있는 하나님이심을 믿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었던 하나님은 말씀 한마디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심이신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하나님 즉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현재는 비록 자식이 하나도 없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에 하늘의 별과 같은 많은 자손이 얼마든지 가능한 것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2]두 번째로 18절부터 22절까지의 아브라함의 믿음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18절부터 22절까지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셨다고 했는데 아브라함의 믿음은 과연 어떤 믿음이었는지를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18절에서 그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랐고 믿었다고 했습니다. 아직 자식하나 없는데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겠다는 약속은 인간의 지식과 경험으로는 도저히 바랄 수 없는 소망이요 믿을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분이심을 믿었기에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믿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19절에서 소개한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가 100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몸이 죽은 것 같다고 표현 된 것은 생식 능력이 없는 상태를 몸이 죽은 것 같다고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나이가 100세가 다 되어 자기들의 육체적 능력으로는 자식을 가질 수 있는 몸이 전연 아닌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믿는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았다고 소개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비록 자기들의 몸이 죽은 것 같다 할 지라고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몸의 기능을 다시 살리시면 남자도 여자도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몸으로 부활될 수 있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믿음이 약해지지 않은 것입니다.

 

20절과 21절을 보니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오히려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것을 확신했다고 헸습니다. 약속 자체가 너무 터무니없는 것 같고 또 당장 몸이 젊어져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기색도 있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 같으면 믿음이 점점 약해져 의심하게 되었겠지만 아브라함은 의심치 않고 믿음이 견고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것을 확신하였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런 귀한 믿음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이 믿음을 아브라함의 의로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죽은 자도 능히 살리실 수 있는 것을 믿었던 신앙이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우리들의 신앙과 연계되는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23절부터 25절까지의 우리 모두의 믿음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23절부터 25절까지에서는 우리도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을 가지면 그 믿음에 의해서 의롭게 될 수 있음에 대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23절과 24절에서는 아브라함을 의로 여기셨다고 성경에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함이 아니오 의롭다함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즉 누구든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는 자는 의롭다함을 얻는 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말한 죽은 자를 살리시는 자라고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부활시키신 하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죽은 것과 같은 늙은 몸도 다시 살려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몸으로 부활시키실 수 있는 하나님으로 믿고 의심치 않아 의롭다함을 받았는데 우리들은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후 다시 살아나신 주 예수를 믿고 주 예수를 살리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될 수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죄를 위해 죽으신 바 되었으나 주 예수를 믿는 자들을 의롭게 하시기 위해 다시 살아나셨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본문은 죽은 자를 살리실 수 있는 하나님을 믿으라는 교훈입니다. 오늘은 세계적으로 부활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연속적으로 성경을 강해해 나가기 때문에 부활절이라고 부활절에 연관된 설교를 따로 준비하지 않았는데 오늘 자연스럽게 부활에 관한 본문을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소개한 대로 아브라함은 다 늙어서 아이를 갖기에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자신과 자기 아내이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자기의 몸을 부활시키시어 젊은이들과 같이 아이를 가질 수 있음을 믿었음이 소개되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신다는 말은 없는 것을 있게 하실 수 있는 창조주의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게 되리라는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바랄 수 없는 상황에서도 믿고 의심치 않았으며 능히 이루실 것을 확신했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런 좋은 믿음을 가졌었는데 우리들은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우리 지식이나 우리의 판단으로 이해가 되는 것만 믿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말씀은 다 믿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인간이 아닙니다. 눈으로 보이는 것만 볼 수 있는 인간과 다릅니다. 모든 것을 보시며 모든 것을 들으시며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고 무엇이든 만드실 수 있는 창조주이신 것입니다. 남자를 보지 않은 처녀 마리아에게서도 예수님을 잉태케하실 수 있는 분이시며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를 다시 살리실 수 있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밖아 죽게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이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의로 여기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의로 여김을 받은 우리도 죽은 후에 다시 살리실 것을 확인시켜주신 것입니다.

 

우리들이 여러 가지의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실 것이라는 신앙은 우리들의 신앙의 핵심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많은 교계행사가 열리고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부활하시듯 그를 믿고 따르는 자들도 주님 재림시에 다 함께 부활 할 것을 믿고 소망해야 합니다. 그 한 소망 때문에 어려운 가운데서도 믿음을 굳게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세상의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 재림시에 입을 부활은 가장 큰 영광이요 영원한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모든 믿는 자에게 살아 있는 동안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며, 늘 평강과 은총을 입혀주실 것을 믿는 믿음도 매우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죽은 후에도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들에게 다시 살아나게 하실 것을 믿는 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의 본질인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육체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늘고 쇠약해 가지만 그 것을 두고 슬퍼하지 않을 수 있은 것은 부활의 영광을 덧입게 될 것을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평생 건강하지 못한 육체를 가지신 분도 점점 늙어가기 마련이며 평생 건강한 사람도 마찬가지로 점점 늙어가도록 창조된 피조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활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자기 자녀들의 육체를 늙지 않도록 해를 묶어두시지 않은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 앞에서 담대하고 강했던 것은 바로 죽은 후에 다시 살리실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신앙이란 부활의 소망이 기초된 신앙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소망이란 주님 재림시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부활의 확신과 부활의 소망을 갖고 현재의 모든 어려움을 넉넉히 이겨나가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