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의 – 로마서 3:21-31

사도 바울은 로마서의 앞부분을 통해서 율법을 받은 유대인이나 율법을 받지 못한 이방인이나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불의한 자들임을 지적해 왔습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율법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며 이방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의 법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둘 다 의롭지 못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 자기 자신의 능력으로는 의로와 질 수 없으며 의로울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갈 자격이 없다는 결론인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절망 속에 있는 인류에게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음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1장 16절 17절에서 믿음에 의해 의롭게 되고 믿음에 의해 구원되는 진리를 이미 예고했지만 믿음에 의해 의롭게 되고 믿음에 의해 구원된 진리를 보다 구체적으로 소개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의 본문에서는 죄인이었던 모든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의롭게 되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있는 은혜를 입게 되었다는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증거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단계적으로 그리고 율법과 연관해서 증거 해주고 있는데 우리 성도님들은 오늘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남에게 이 진리를 잘 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하나님의 의(21-26) [2]은혜로 얻은 의롭다함(27-30) [3]율법과 믿음(31)입니다.

 

[1]맨 먼저 21절부터 26절까지의 하나님의 의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21절에 보니 이제는 율법 외에 다른 의가 나타났다고 했는데 이 말은 율법도 의였는데 이제는 율법 말고 다른 의가 또 나타났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율법도 하나의 의였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이 하나의 의라고 했는데 어떻게 율법이 의라고 말할 수 있을 까요? 율법이 의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율법을 통해 인류가 죄를 깨닫게 되고 죄를 깨닫게 되므로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는 길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려고 할 것이므로 구원의 길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도록 충격을 준 율법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하나의 의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율법 말고 다른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의는 율법과 선지자들에게서 증거를 받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율법과 선지자란 구약 성경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미 율법 말고 그 한 의는 구약성경에서 소개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15장 6절에 보면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했으며 하박국 2장 4절에 보면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2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다고 했습니다. 즉 율법은 인류를 구원할 수 없는 의였으나 율법 말고 다른 의는 누구든지 차별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해서 구원을 얻게 하는 의라는 것입니다.

 

23절에 보면 모든 인류가 죄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모든 죄 값으로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고 인정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모든 인류는 죄 값으로 죽어 마땅하지만 인류가 죽는 대신 예수 그리스도를 죽게 하심으로 인류는 죄 사함을 받았으므로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것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대 제사장이 지성소에 1년에 한 번 들어가 수송아지의 피를 뿌렸는데 이 때에 수송아지의 피가 하나님과 유대인간의 화목제물이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제물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류는 죄가 있었으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인해 과거의 죄가 없는 것으로 사면을 받게 된 것입니다. 죄 있는 자에게 죄가 없는 것으로 사면해주시므로 하나님께서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로우신 분들이심을 나타내신 것이며 또한 예수 믿는 자들도 의롭다함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2]두 번째로 27절과 29절의 은혜로 얻은 의롭다함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어떤 인간도 율법을 다 지킬 수 없으므로 모든 인간은 죄인일 수밖에 없으므로 영원히 의롭다함을 받지 못할 존재들이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할 존재들임을 많이 강조해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화목제물 되심으로 인해 인류가 의롭다함을 얻었으니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되어진 것임을 24절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이 우리의 공로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되어진 것이므로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을 지킴으로 또 무엇을 행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되어지는 것임을 28절과 29절에서 다시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다시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와 행함이 없는 믿음에서의 행함에 대한 구별입니다. 야고보서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했는데 28절과 29절에서는 율법의 행위에 의해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되어진다고 했습니다. 야고보서에서는 행함이 강조되었고 오늘의 본문에서는 믿음이 강조되어 있는데 이것을 혼동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말하는 것은 인간이 구원받는 것은 무엇을 행한 인간의 공로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해 구원된다는 뜻에서 믿음이 강조된 것이고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된 자는 마땅히 믿는 자가 나타내 보여주어야 할 행동이 따라야 한다는 의미에서 행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30절에서 구원은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전연 차별 없이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영접하는 믿음이 있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하실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구원이 오직 유대인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똑 같은 조건으로 구원의 문에 들어 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았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3]마지막으로 31절의 율법과 믿음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앞부분에서 사람이 의롭다함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되어진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31절에서 그렇다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은 전연 필요 없는 것이냐는 질문을 하고 있으며 또 결코 그렇지 않고 도리어 믿음은 율법을 굳게 세우는 것이라고 답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5:17에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은 율법을 굳게 세운다는 말의 뜻과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 함이라는 말의 뚯이 무엇일까요?

 

앞에서 이미 말씀드렸거니와 율법 자체는 하나님의 의인 것입니다. 다만 인간이 그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기 때문에 그 율법을 통해서는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을 뿐 인 것입니다. 율법을 통해서는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으나 믿음을 통해서는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으므로 믿음은 율법을 온전케 하는 것이요 율법을 굳세 세우는 결과가 된 것입니다. 믿음은 율법의 근본 정신을 실천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오신 것은 율법을 폐하려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의 근본 정신을 가르치시고 근본 정신을 그대로 실천하도록 오셨기 때문에 율법을 온전케 하려 오셨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즉 형식적으로만 지켰던 율법에서 진심으로 마음으로 참 뜻을 지키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행위로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오늘의 본문 30절에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할레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 했습니다. 이것은 누구든지 차별 대우하지 않고 구원받는 조건이 같다는 보장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요한 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주시려 함이라 를 쉽게 외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인류에게 선포한 가장 위대한 선포라고도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선포는 구원받는 방법이 제시되어 있고, 구원이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개방된 사실이 선포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구원이 행위에 따라 허락된다고 생각해 봅시다. 즉 기부금을 많이 내야 한다든지, 학벌이나 가문이 좋아야 한다든지, 달리기나 높이 뛰기를 잘해야 한다고 제한한다거나 또는 일생에 거짓말을 한번도 한 일이 없는 사람이라거나 교회 모임에 한번도 빠지지 않은 사람이라고 제한한다고 가정해본다면 행위로 구원받을 자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도록 개방해 주신 것입니다. 무식하든 유식하든, 돈이 있던 없든, 나이가 많든 나이가 젊든, 잘났던 못났던 아무런 구별 없이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의 문에 들도록 개방해주신 것입니다. 솔직히 우리 누구든지 차별 대우 받는 것을 다 싫어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야 차별 받으면 차별 받는 곳에 가지 않으면 되겠지만 천국에는 꼭 가야하는 데 그곳에 들어가는 길에 차별 대우가 있다고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무 것도 다른 조건을 내 밀지 않으십니다. 오직 좋은 믿음입니다. 값없이 주신 것입니다. 정말 우리 모두는 이 사실을 두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이 사실을 두고 감사해야 합니다. 내놓을 것이 없는 나를 구원의 문에 들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드린다는 기도가 이어져야 하겠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리게 하시며 그를 믿는 자의 믿음 하나를 보고 구원 얻게 하신 하나님께 늘 감사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