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에 속한 사람 – 로마서 8:1-11

어떤 사람들은 성경 66권중 로마서는 성경중 성경이요 로마서 8장은 로마서중 로마서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사실상 로마서는 너무 딱딱한 교리서신이라 대중들이 듣기 좋아하는 책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책의 목적이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의 구원을 소개할 목적이므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죄 사함과 구원에 대해 많이 강조해주고 있는 책이라면 귀한 책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로마서가 인류의 죄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의 구원에 대해 반복적으로 강조해 주고 있기 때문에 로마서를 성경중 성경이라 평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또 로마서 중 8장이 로마서중 로마서라고 평가된다고 한다니 우리 모두는 더욱 마음을 모두어 말씀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로마서 6장은 성화의 삶과 죄, 7장은 성화의 삶과 율법, 오늘부터 강해되는 8장은 성화의 삶과 성령에 대해 기록된 것입니다. 7장 마지막 부분에서 사도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고 고백한 바가 있었습니다. 이 말은 믿고 세례를 받음으로 이젠 죄와 상관없는 삶을 살게 될 줄 알았으나 믿음 생활의 현실에서 볼 때에 마음으로는 분명히 선을 행하기를 원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지로는 마음에서 싫어한 악을 행한 것을 체험한 사도 바울의 갈등을 고백한 내용이었던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음으로 과거의 모든 죄는 단번에 사함을 받게 되지만 날마다의 삶 속에 육체를 통한 죄가 늘 엄습해 오므로 죄 문제로 모든 성도들이 삶의 현장에서 고민하고 있으면서도 표현 못하고 있는 것을 사도 바울이 대신하여 고백한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8장이 이 고민과 갈등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기 때문에 8장은 로마서 중 로마서라 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오늘은 8장 중에서 1절부터 11절까지의 영에 속한 사람에 대해 말씀을 증거 하게 됩니다.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죄와 사망의 법에서의 해방(1-4) [2]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5-9) [3]부활의 소망(10-11)입니다.

 

[1]맨 먼저 1절부터 3절까지의 죄와 사망에서의 해방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체험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음에도 늘 갖가지의 죄의 유혹에 넘어가 죄의 문제로 주님의 재림시에 받게될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게 되는데 1절부터 3절까지에서 이런 불안을 완전히 씻어주고 있습니다. 1절에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확실하게 답을 주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하는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보장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2절에서는 정죄함이 없게 되는 이유를 밝혀주기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주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요한 복음 5장 24절에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함같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기 때문에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율법 아래에 있는 어떤 자들도 율법에 의해 죄로부터 해방될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율법의 요구를 이루게 하심으로 율법으로부터 해방시켜주신 것입니다. 율법의 요구란 죄가 없기를 바라는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의 몸으로 오시어 만인의 죄를 대신 지심으로 죄를 사해주시어 의롭다함을 받게 해주신 것입니다.

 

정죄함이 없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될 수 있는 조건으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또는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자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세주로 영접하여 세례를 받아 성령을 선물로 받은 자를 말하며 육신의 욕심대로 살지 않고 성령이 원하는 삶을 사는 자를 말합니다.

 

[2]두 번째로 5절부터 9절까지의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하나는 육신의 생각을 하는 사람과 다른 하나는 영의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5절에서는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고 했으며 그리고 6절부터 8절까지에서는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을 구별해주고 있습니다. 6절에서는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 했으며 7절에서는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다고 했으며 8절에서는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육의 생각과 영의 생각은 정 반대의 생각을 말하고 있는 것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들은 무엇이 육신의 생각에 해당되며 무엇이 영의 생각에 해당되는지를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한마디로 육신의 생각이나 육신의 일이란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육신중심의 생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이나 육신의 일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해본다면 그와 반대되는 것은 하나님의 생각이나 일이 되겠습니다. 첫째 세상에서 보통 말하는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이며, 그리고 반사회적인 생각이나 일입니다. 이런 생각들은 사회의 비난을 받아 마땅한 생각이 될 것입니다. 두 번째 육의 생각이나 일은 첫 번째 육의 생각과 정반대로 상당히 윤리적이요, 도덕적이요, 사회 질서에 잘 맞는 선한 생각이나 선한 일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자들은 사회에서 칭찬을 받는 무리들이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과 전연 상관없이 인간을 중심한 모든 생각이나 일 일 수 있습니다. 즉 인간 사회에서는 존경을 받는 생각이지만 하나님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전연 아닌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의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본질과 상관없이 사람의 생각으로 행하는 성경을 떠난 예배의식이나 헌신 또는 겉치레 적인 사랑을 말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예배하고 열심히 헌신하고 봉사하여 교인들로부터는 큰 박수를 받고 있음에도 하나님께서는 도무지 알지 못하시는 일을 말합니다. 이런 세 가지의 생각과 일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며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생각과 일이 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 했습니다.

 

9절에서는 육신의 일과 영의 일을 결론 적으로 말하기를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는 것이라 했으며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은 다 같은 것으로 성령을 말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무엇을 생각하든지 우리 안에 성령을 모시고 성령의 인도에 따라 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요 성령과 상관없이 행한 모든 것은 육신의 생각이요 육신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일을 행하고 선을 베풀었어도 그리스도의 영이 각자 안에 거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한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10절부터 11절까지의 부활의 소망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6절에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 하여 육신의 생각의 열매는 사망이요 영의 생각의 열매는 생명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10절과 11절에서는 하나님의 영이 거한 자는 몸은 죽어도 영은 살 것이며 주님 재림시에는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보장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의 본문을 통해서 어떤 교훈을 받았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성도들은 하나님이 내리신 특별한 보장을 누리는 존재임을 확신하라는 교훈입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하면서도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부족한 우리들입니까? 가족관계에서나 성도들끼리 맺혀있는 갈등을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풀려고 하지 않고 내 고집과 내 정신으로 풀려고 하니 갈등을 풀지 못하고 심한 갈등을 안고 1년이고 10년이고 무덤까지 가지고 가는 심히 부족한 우리들 자신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한 대로 우리 모두는 잘못을 뉘우치고 이제는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지 해놓고는 금방 마귀의 손발이 되고 마는 심히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그런 미약한 존재들에게 오늘의 본문은 확신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어떤 확신이었습니까? 그렇게 부족한 존재들이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라면, 그리스도의 영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심판 때에 정죄함이 없을 것이며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주신다는 보장입니다. 그리고 주님 재림시에 주님께서 부활하시듯이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몸도 살리실 것이라는 보장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는 이런 특권을 누릴 자들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기만을 요구하고 있으며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기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누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이며 누가 그리스도의 영이 그 속에 거하는 자일까요? 누구든지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는 자를 말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자는 내 육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사는 사람은 혹시 죄의 자리에 들어섰다가도 자기가 잘못된 길에 들어 선 것을 깨닫고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기 때문에 계속 성령이 그 안에 거하며 계속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삶을 살아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보장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해야 하며,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정신은 용서와 사랑 그리고 겸손입니다.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었을까? 하고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려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혹 그리스도의 정신을 등지고 실수를 했다하더라도 곧 돌이켜서 주님의 정신으로 회복하려는 정신으로 사는 자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육신의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는지는 우리가 맺는 열매가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살아 성령의 열매를 다 맺는 성도님들이 되셔야 하겠습니다. 그런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결코 없으며, 주님 재림시에 부활의 몸으로 주님을 영접하여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생의 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보장을 받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보장을 다 누리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