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 로마서 7:14-25

사도 바울은 사울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유대인이었고 유명한 스승 밑에서 교육을 받은 인물이었습니다. 유대교에 얼마나 열심이었든지 기독교인들을 잡아 처형하는데 앞장섰던 인물이었으며 기독교인들을 체포하러 가는 길인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 기독교인으로 개종된 인물이었습니다. 기독교인으로 개종된 이후에는 이방인들을 개종시키는 임무를 수행해낸 헌신적인 인물이었으며 이방에 복음을 전파하는 동안 수 없이 매를 맺고 감옥에 갇혔으며, 독신으로 천막을 치는 일로 생활비를 벌어가며 전도했던 인물이었습니다. 능력으로는 그의 앞치마만 병자의 몸에 올려놓으면 병자의 병이 나을 정도로 성령의 능력이 함께하셨던 특출한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전도 사역을 통해 성경에 나온 많은 교회들이 개척되었고 또 전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게 했으며 성경 66권중 13권내지 14권의 책을 기록한 기록자이기도 한 큰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그가 이런 빛나는 모든 여정을 다 끝내고 죽음을 눈앞에 둔 때에 소망하기를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라는 확신을 밝힌바가 있었습니다. 자기의 일생을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헌신하고 이젠 나이 많아 죽음을 눈앞에 두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의의 면류관을 주실 것을 확신하였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위대한 믿음의 인물이었던 그가 육신의 죄와의 싸움에서 견디기 힘들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호소할 정도로 힘들어했던 인물이었음을 우리가 또 알아야 합니다. 그의 고민하고 힘들어했던 때의 심정을 고백한 내용이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통해 귀한 교훈을 받으시게되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린 바울(14-20) [2]바울의 마음속에 있는 두 법 혹은 두 세력(21-23) [3]구원자가 필요한 비참한 바울(24-25)입니다.

 

[1]맨 먼저 14절부터 20절까지의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린 바울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앞부분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죄의 몸인 옛 몸을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오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은 몸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더 이상 죄에 속아넘어가 죄를 짓는 일은 종지부를 찍은 것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죄 사함을 받아 의롭게 된 자신이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려 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자기 마음으로는 의인으로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행하고자 하지만 결과를 보면 자기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않고 오히려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들을 행한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만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행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지 않은 것을 행했다고 한다면 분명히 죄 사함을 받은 자기가 그것을 행한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 거하는 죄가 한 것임이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선을 행하고자 하지만 선을 행하지 않은 것은 분명히 자기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마음으로 죄 사함을 받았지만 육신에는 아직 죄의 뿌리와 죄의 속성이 남아 있어서 때로는 죄가 육신의 지체를 유혹하여 죄를 범하게 함을 알게 되었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속에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고자 하는 선도 존재하고 또한 자기가 원치 않는 악을 행하게 하는 죄가 역시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4절에서는 율법을 신령한 것, 그리고 16절에서는 율법을 선한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율법이 없었다면 비록 자기가 원치 않은 것이었다 하더라도 악을 행했다면 그것이 죄인 것을 몰랐을 것이나 율법의 기준에 따라 자기가 행한 죄악이 죄인 것을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에 율법 그 자체는 신령하고 선하다는 사실을 밝힌 것입니다. 율법이 선하고 신령하다고 하는 것은 비록 자기가 죄 사함 받아 의롭다함을 받았고 그 이상 율법에 메이지는 않지만 육신의 지체를 통해 죄를 짓게 되었다면 율법을 통해 죄를 죄로 알고 자기가 육신을 입고 있는 한 죄를 온전히 추방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죄 사함을 주실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가도록 해주는 역할을 율법이 해주기 때문에 율법이 신령하고 선하다고 한 것입니다. 죄 사함을 받은 자도 죄의 유혹에 따라 죄를 지을 수도 있으며 육신을 입고 있는 한 평생 죄의 유혹에 도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고백한 것입니다.

 

[2]두 번째로 21절부터 23절까지의 바울의 마음속에 있는 두 법 혹은 두 세력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체험을 통해 자기 속에 두 가지의 법 혹은 두 가지의 세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세력은 영적인 세력으로 자기의 마음 즉 자기의 속 사람의 세력이요, 다른 세력은 몸의 지체의 세력이라 했습니다. 속 사람의 세력은 선을 행하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육신의 세력 즉 몸의 지체의 세력은 악을 행하기를 원하며 죄의 법을 행하기를 원하여 이 두 세력과 두 법이 서로 싸우되 악의 세력이 선의 세력을 누르고 사도 바울을 죄의 법 아래로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본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 같은 능력의 인물 안에 있는 두 법이 싸우되 죄의 세력이 오히려 선의 세력을 이기어 바울 자신을 죄 속으로 사로잡아오는 것을 본다고 했으니 사단의 세력이 얼마나 강력하게 성도들을 공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겠습니다. 사도 바울 같은 분도 육과 영의 싸움에서 오히려 자기 속에 있는 육이 영을 누르고 자신을 죄 가운데로 끌고 가는 것을 본다는 고백을 하므로 자신의 체험을 조금도 속이지 않고 그대로 고백하고 있는 것은 육을 입고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큰 교훈을 주기 위함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모든 인생은 아무리 믿음이 좋고 신령한 지도자라 할지라도 자기 몸 안에서는 육신과 영의 전쟁이 항상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는 부분입니다.

 

[3]마지막으로 24절부터 25절까지의 구원자가 필요한 비참한 바울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는 자신을 곤고한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곤고한 자란 자기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 실행할 수 없고 그것이 나쁜 줄 알면서도 행하게 되는 무능한 존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누구의 도움이 꼭 필요한 존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곤고한 존재임을 깨닫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므로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것은 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의 마음이 싫어하는 것을 행했다고 한다면 그가 아무리 희생적인 삶을 통해 복음을 널리 전했다하더라도 그의 결과는 사망의 몸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를 통해 전도 받아 구원받은 자들이 아무리 힘을 합해도 사망의 몸에 있는 그를 구제해줄 수 없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위대하다는 것을 지금까지는 그가 능력 있게 전도 사업을 해냈음을 중심하여 평가했는데 오늘 본문을 통해 그가 그렇게 위대했던 것은 그가 행했던 큰 능력보다는 자신의 몸 속에서 역사하고 있는 죄를 깨닫고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것을 물리칠 능력이 없는 아주 미력한 존재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됩니다. 그 능력 있던 사도가 이렇게도 비참한 호소를 공개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사도 바울이 아니고서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자신의 큰 약점을 발견한 사도 바울은 자기의 약점을 넉넉히 채워주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심을 믿고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있기에 율법의 지식을 통해서 자기 속에 있는 죄를 발견하고 자기의 속에 있는 죄를 추방시켜주실 수 있는 분께 자신을 구원해주시도록 호소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성도들이 이미 의롭게 되었다 할지라도 육신의 몸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죄의 세력에 밀려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과, 그러므로 어떤 인간도 자기의 행위로는 구원될 수 없고 오직 모든 죄를 사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의해 가능하다는 교훈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한번 하나님의 은혜 안에 들어간 사람이라면 다시 죄를 지을 수 없다고도 합니다. 다시 죄를 짓는 것은 애초에 진정한 죄 사함이 없었기 때문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을 통해 어떤 성도도 다시 죄의 세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존재인 것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아무리 마음으로는 선을 행하기를 원하지만 그가 원하는 것과는 반대로 악을 행하게 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기에 어느 누구도 자기의 행위로는 구원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죄를 지을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고 죄를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마음으로는 최선을 다 했음에도 결과적으로는 악을 행한 자신을 발견할 때에는 사도 바울이 호소한 대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 이 곤고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건져주시라고 호소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의 법이 악을 행하고자 하는 죄의 법과 싸워 이기도록 성령이 충만케 해 달라고 하나님께 늘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성령이 충만할 때에는 마음의 법이 육신의 법을 이겨내지만 그렇지 못할 때에는 육신의 법이 마음의 법을 이겨 죄 속으로 끌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원하는 것을 행치 못하고 마음이 싫어하는 것을 하고 마는 무능한 우리들을 건져달라고 하나님께 늘 호소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