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자의 구원 – 로마서 9:27-33

우리들은 오늘의 본문 바로 앞부분에서 토기장이가 귀히 쓸 그릇과 천히 쓸 그릇을 자기의 마음먹은 대로 구워내듯 하나님께서는 조물주로서 하시고자 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시고자 하는 자를 강퍅하게 하신다고 하는 하나님 편에서의 주권에 대해 강조된 말씀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구원 문제에 있어서 사람 편에서의 책임에 관해 강조된 말씀을 받게 됩니다. 본래 미약한 존재였던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시어 하나님의 백성을 삼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앞세워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이방인들까지도 하나님의 백성을 삼으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나 이방인이나 구별하지 않고 다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은 택하시고 이방인은 버리신 것으로 오해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인들을 대할 때에 인간적인 대우를 하지 않고 지나치게 멸시했던 것입니다. 즉 구원이란 오직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으로 착각을 하고 이방인들은 영원히 멸망 받을 존재인 것으로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점점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떠나고 이방 신들을 섬기기까지 한 것입니다. 그런 교만한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는 버리시기로 작정하시고 이방나라 앗수르라는 나라에 의해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셨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렇게 천대했던 이방 나라 앗수르라는 나라에 의해 지배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가 살게 만드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열어두신 구원의 문에 들어오도록 배려하신 것입니다. 즉 구원은 민족적으로 또는 집단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이거나 이방인이거나 믿는 자 개개인의 믿음에 따라 개인적으로 주어지는 것임을 오늘의 본문에서 밝혀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와 구원의 계획에 대해 보다 더 깊게 이해하시게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남은 자만 얻는 구원(27-29) [2]믿음에서 난 의(30-33)입니다.

 

[1]먼저 27절부터 29절까지의 남은 자만 얻는 구원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구약 이사야서를 인용하여 세상의 많은 사람들 중 일부만 구원을 얻게 될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바울이 인용한 이사야서는 10장 22절부터 23절까지로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훼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이미 작정되었은즉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입니다. 이 이사야서의 본래의 뜻은 하나님의 노여움으로 앗수르로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백성중 적은 수가 포로로부터 풀려나 다시 본국으로 돌아오게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 남은 자를 모든 환난을 통과하고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올 자들로 적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소수를 남은 자란 단어를 사용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스라엘이 번성하여 바다의 모래와 같고 하늘의 별과 같이 될 것이라고 약속을 하셨지만 이 약속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할 것을 전제한 약속이었기 때문에 이 약속을 지키는 자들은 남은 자들이 되는 것이고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이사야서 1장 9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를 이용하여 하나님께서 은혜와 자비로 남은 자를 남겨두시지 않았다고 한다면 소돔과 고모라가 완전히 심판 받은 것과 같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씨를 남겨두셨다고 하여 이스라엘 전체가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중에서도 소수는 구원의 자리에 들어갈 것을 예언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위의 이사야서를 인용하여 우리들에게 전달하고자 한 것은 남은 자 사상입니다. 즉 세상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구원받을 자는 소수라는 사상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원리 원칙대로, 약속하신 대로 엄하게 심판하시어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은 자만이 살아 남게 된다는 교훈을 주고자 함이요 또 남은 자라도 자기들의 행위에 의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것임을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2]두 번째로 30절부터 33절의 믿음에서 난 의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30절에서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라’ 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비하면 율법을 모르고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도덕적으로나 하나님의 법으로는 한 참 뒤떨어진 자들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해 주어진 것이므로 오히려 행위가 부족한 이방인들은 자기들의 행위를 의지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에 따라 의로와 질 수 있었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와 정 반대인 것을 31절과 32절에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31절과 32절에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라 했습니다. 이방인들은 자기들이 내 세울 것이 없음으로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 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율법이 있어서 자기들이 율법을 지키고 행한 상당한 자격이 있는 것으로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들이 행한 행위를 의지했기 때문에 의롭게 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는 것은 인간이 행한 어떤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내리신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데도 잘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사코 자기들의 잘난 것을 앞세웠으니 의롭게 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내려보내시고 그를 믿는 자마다 죽지 않고 영생을 얻도록 구원의 계획을 세우셨는데 이방인들은 예수님을 믿어 예수님에 의해 의롭게 되었으나 이스라엘인들은 예수님을 도리어 죽게하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 때문에 멸망 받게 된 것입니다.

 

33절에 보면 ‘부딪히는 돌’, ‘거치는 반석’ 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성경에는 예수님을 돌로 표현한 곳이 몇 군데 있습니다. 버린 돌, 모통이 돌, 시온의 기초 돌,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 거치는 돌, 걸리는 반석 등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을 버렸으니 예수님은 그들에 의해 버린 돌이 되는 것이고 이방인들은 예수님을 믿고 그 위에 믿음의 집을 지었으므로 예수님은 그들의 모통이 돌이 되신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앞으로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에 그 돌에 맞아 박살 날 수도 있고 그 돌에 의해 구원받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지 않고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예수님 돌은 걸려서 넘어지는 돌이요, 거치는 반석이 될 것이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이 거치는 반석과 부딪히는 돌이 오히려 그 위에 집을 세우는 반석이요 건축자의 모통이 돌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말씀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구원이란 사람이 갖는 어떤 외적인 조건과는 전혀 상관없이 오직 자신이 갖고 있는 믿음에 따라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행위에 의해 의롭게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따라 의롭게 된다는 사실을 로마서 앞부분에서 많이 강조한 바가 있습니다. 믿음에 의해 의롭게 되는 것이 분명함에도 유대인들은 한사코 자기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이기 때문에 구원이 보장된 자들이고 이방인들은 구원에서 제외된 자들로 오해를 하고 있었으며 또한 그들은 그들이 지켜왔던 율법을 행함으로 구원될 수 있다는 전통적인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잘못된 믿음을 시정해주고 또한 하나님의 폭넓은 구원의 계획을 소개하기 위해 유대인들의 구원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통해 우리들은 분명히 확인한 것이 있습니다. 구원은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이나 택함을 받지 못했던 이방인이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믿음에 의해 의롭게 된 자들을 남은 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남은 자라고 하는 것은 바다의 모래와 같은 다수의 사람들이 어떻게 구원관을 생각하고 있던지 간에 그들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받을만한 소수의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교파에서 구원관을 어떻게 믿고 있어도 그것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이 만드신 기준에 맞지 않는다면 남는 자의 무리에 속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인수가 수십만 명이 된다해도 그 숫자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과 타협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또는 개인적으로 믿는 자의 가정에서 태어났다든지, 교회에서 평생 봉사를 했다든지, 또는 도덕적으로 흠이 없다든지 반대로 부도덕했다든 지 하는 어떤 외적인 조건과는 전혀 상관이 없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믿는 믿음에 따라 구원이 주어진다는 교훈인 것입니다. 사실상 그리스도의 말씀의 권위가 사람의 권위에 의해 너무 많이 손상되어 있는 이 시국에 이런 교훈은 푸대접을 받고 있는 현실입니다. 성경에서 구원받기 위해 어떻게 하라고 명령한 것과 상관없이 교파가 또는 교회가 자기들 나름대로의 구원관을 가지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에 대해서 성경에서 뭐라고 했는지를 찾아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만든 구원관이 자신들 구원하게 할 것을 믿고 있으며 또한 남에게도 적용하는 기준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분명하게 하나님께서 엄하게 심판을 시행하실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받고 그 말씀에 순종한자를 두고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으로 비유했으나 말씀을 거역한 자들을 두고 반석에 부딪히는 자 반석에 거치는 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소수의 남은 자 속에 다 들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반석 위에 내 집을 건축하는 자들이 다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뭐라고 하든 세상 사람들의 말과 상관없이 예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세상 문화가 예수님의 문화를 덮어버리고 있는 이 현대에 남는 자의 무리 속에 들 수 있는 길은 오직 순수한 말씀을 받고 순종하는 길뿐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으로 구원받아 남는 자의 대열에 꼭 들어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