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 – 로마서 10:1-11

사도 바울은 자기의 동족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는 것이 자기가 바라는 것이며 자기의 기도 제목인 것을 밝히면서 오늘의 본문의 문을 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면서 늘 마음에 걸리는 것이 바로 자기와 같은 핏줄인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문제였습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면 이방인들은 그 복음을 순순히 받아드려 믿고 구원을 받는 반면에 유대인들은 복음을 거절하고 자기들이 전통적으로 지켜온 율법을 중심한 고집과 선민의식의 착각을 버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의 본문을 통해 자기의 동족인 이스라엘의 믿음에 어떤 착오가 있었으며 율법과 그리스도는 어떤 관계가 있고 의에 이르는 새로운 길은 어떤 길인지를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열심은 있으나 지식을 좇는 것이 아닌 이스라엘(1-4) [2]율법의 의(5-7) (3)믿음의 의(8-11)입니다.

 

[1]먼저 1절부터 4절까지의 열심은 있으나 지식을 좇는 것이 아닌 이스라엘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들이 열심으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그들의 믿는 방법으로는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을 알고 자기의 동족의 잘못 된 신앙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잘못된 믿음을 지적한 것은 그들이 잘못된 신앙을 깨닫고 이를 시정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들의 잘 못된 신앙 두 가지를 지적하고 있는데 첫 번째는 2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심은 있으나 지식을 좇는 것이 아니라고 했으며 두 번째는 3절의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의 의를 내 세우기 위해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사도 바울이 기독교로 개종하기 전에 기독교인들을 잡아 가두는 일에 열심을 낸 일을 기억합니다. 사도 바울은 딤전 1:13에서 열심히 기독교를 핍박하고 기독교인들을 잡아 가두는 일에 앞장을 섰으나 자기가 알지 못하고 행한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열심은 있었으나 지식을 좇는 것이 아니었던 자신을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문을 열어두셨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통해 얻는 구원의 길에 대해서 몰랐기 때문에 오직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기 위해 오히려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인간도 율법을 온전히 다 지켜서 의롭게 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고자 하여 복음을 거절했다는 것입니다.

 

4절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었다고 했는데 어떤 인간도 모든 율법을 다 지킬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율법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믿음에 의해 의롭게 되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에 의해 의롭게 되는 이 복음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이스라엘은 믿음에 의해 의롭게 되는 길을 거절하고 오히려 의롭게 될 수 없는 율법의 길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의롭게 될 수 있는 길이 열렸으므로 율법을 통해 의롭게 되는 길은 그 이상 필요 없게 되었으므로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고 한 것입니다. 율법의 목적은 율법을 다 지켜 행함으로 의롭게 되게 하는 것이었으므로 주님께서 율법의 목적을 다 이루셨기 때문에 주님은 율법의 완성이시오 율법의 마침이 되시는 것입니다.

 

[2]두 번째는 5절부터 7절까지의 율법의 의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5절부터 7절까지에서 사도 바울은 율법에 의한 의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레위기 18:5절을 소개함으로 율법에 의해 얻을 수 있는 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어 영생할 수 있는 길이란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지킴으로 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율법을 온전히 다 지키면 의롭게 되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두었지만 인간 그 누구도 율법을 온전히 지키고 행할 수 있는 자란 없을 것이기 때문에 율법의 의는 종막을 내린 것입니다. 율법의 의는 율법을 지키는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의요 믿음의 의는 인간의 노력이나 인간의 공로와는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얻어지는 의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의 의와 믿음의 의를 확연하게 구별해주기 위해 신명기 30:12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할꼬 할 것이 아니요’를 인용해 주고 있습니다. 인간 그 누구도 하늘에 올라 갈 수도 없고 또 음부에 내려갈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율법에서 하늘에 올라가라고 하거나 음부에 내려가라고 명령을 했다면 그것을 행해야 의롭게 될 수 있기 때문에 그 명령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하늘에 올라 갈 수도 없고 음부에 내려 갈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에 어떤 인간도 율법을 행함으로는 의롭게 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8절부터 11절까지의 믿음의 의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으로 얻어지는 의를 소개해주기 위해 신 30:14 ‘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 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6:6,8에 보면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라 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늘 말씀을 가까이하는 삶의 습관이 있었습니다. 말씀이 늘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에나 입에나 이마에나 소매에 가까이 있듯이 믿음에 의해 얻어지는 의, 믿음에 의해 얻어지는 구원은 얻기가 쉽고 아주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우리의 입에 있고 마음에 있다 했으니 그 가까이 있는 복음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므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으로 의롭게 되기 위해 혹 하늘에도 올라가야 하거나 음부에까지 내려가야 하는 멀고 어려운 일에는 비교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9절에서는 믿음으로 얻어지는 의는 누구든지 십자가에 메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으며 다시 부활하신 사실을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으면 의롭게 되어 구원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또 10절에서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의 구세주이심을 사람들 앞에 시인하는 것이 오히려 자랑으로 쉽게 할 수도 있겠지만 핍박이 심한 분위기에서는 주를 나의 구세주라고 고백하는 것은 순교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즉 순교를 각오하고라도 주님께서 나의 구세주이심을 마음으로 믿고 믿는 것을 사람들 앞에 고백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심판 날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이라 한 것입니다. 물론 순교의 분위기가 아니라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희생과 그의 부활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할 수 있는 사람은 심판 날에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어떤 인간도 율법의 의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으나 믿음의 의로 구원 될 수 있음을 소개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구원에 대한 성경적인 온전한 지식을 갖고 실천하라는 교훈입니다. 사도 바울은자기와 같은 혈통을 가졌던 이스라엘이 가졌던 온전치 못한 신앙을 지적하였습니다. 즉 열심은 있으나 지식이 없는 신앙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심판 날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구원에 이르는 온전한 신앙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우리들은 오늘의 본문을 통해 세상에 많은 교파가 있고 많은 교회들과 함께 수많은 교인들이 신앙 생활을 하고 있는데 어떤 이들은 온전치 못한 신앙을 가지고 있을 것이고 어떤 이들은 온전한 신앙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온전치 못한 신앙이라고 한다면 성경적 구원관과 상관이 없는 자기가 속한 교파나 교회가 가르치고 있는 독자적인 구원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에서 보면 구원받지 못할 신앙도 있을 것임을 전제하고 우리들은 성경적인 바른 구원관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성경에 누가 구원을 받는 다고 했는지 성경에서 말한 구원관을 다시 정리하여 내 신앙에 적용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은 어느 교파에서 가르치는 것이거나 어떤 교회에서 가르치는 구원관 말고 성경에서는 누가 구원된다고 했는지 성경적인 구원관을 찾아보고 결론을 내려야 하겠습니다. 롬 10:13-14 에 보니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고 했는데 믿지 아니한 자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라 하여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그 복음을 마음으로 믿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또 롬 10:9-10에 보니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으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또 막 16:16 에 보니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헸습니다. 또 행 2:38에 누구든지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면 죄 사함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위와 같이 구원받는 길을 가르치고 있지만 어떤 교파에서는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한다든가, 주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답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경의 한 부분만을 가지고 얻은 답은 온전한 답이나 온전한 성경적인 지식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답은 위의 말씀들을 종합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셨다는 복음을 듣고 이를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할 수 있으며 옛 몸을 많은 물 속에 장사지내고 다시 태어나기 위해 세례를 받은 자는 죄 사함을 받아 구원된다는 결론인 것입니다. 오직 이런 성경적인 답이 아니라면 어떤 훌륭한 구원관도 권위 있는 구원관이 될 수 없으며 온전치 못한 구원관이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한 믿는다는 말속에는 복음을 듣고 죄를 회개하고 주 예수께서 나의 구세주이심을 입으로 시인하고 세례를 받는 다는 내용을 다 포함한 말인 것입니다. 빌립보 간수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복음을 들었는데 믿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날 밤에 세례를 받았던 것입니다. 내시도 복음을 듣고 즉시 세례를 받았으며 3천명이 복음을 듣고 즉시 세례를 받았던 것입니다. 이방인인 고넬료의 가족도 복음을 듣고 즉시 세례를 받았던 것입니다. 구원은 열심만으로도 안되며 성경 지식만으로도 안되며 교파의 배경이나 교세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것들은 이스라엘이 복음을 거절하듯 성경적인 구원관을 가로막는 장벽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든지 성경적이 아닌 구원관은 거절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큰 교파이건 오래된 교파이건 열심히 대단한 교파이건 예외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구원관을 유지하시어 심판 날에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