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남은 자 – 로마서 11:1-10

이방인들은 복음을 받아드려 구원에 이르게 되었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다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리스도와 복음을 거절하므로 구원에 등을 돌렸음을 사도 바울은 앞부분에서 강조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서는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를 하나님께서 버리신 것이냐? 는 질문을 던지고 결코 그렇지 않다는 답을 하므로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복음을 거절했지만 이스라엘 중에서도 구원받을 남은 자가 있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강조하려고 하는 남은 자에 대한 예를 구약 성경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데 노아의 홍수 때에 세상을 다 물로 심판을 했지만 소수인 노아의 가족들을 구원하셨으며, 소돔을 불로 심판하실 때에도 다수는 멸망 받았지만 소수인 롯의 가족을 구원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내용이지만 엘리야 시대에도 많은 백성들이 믿음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지만 엘리야는 믿음을 지켰으며 엘리야말고도 바알에게 절하지 않고 믿음을 지킨 자가 7천명이나 남아있다고 하는 남은 자 사상이 소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 시대에는 나무를 베어내도 그루터기가 남아 있다고 하는 그루터기가 강조되어 그루터기란 하나님께서 거룩한 씨를 남겨두신다는 남은 자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의 본문에서 이스라엘의 많은 자들이 복음을 거절하였지만 그 중에서도 복음을 듣고 믿어 순종하므로 구원에 이르게될 남은 자가 있다는 사실이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의 교훈을 통해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선택함을 받은 남은 자 속에 들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남은 자된 사도 바울(1) [2]남은 자된 7천명(2-6) [3]택하심을 받지 못한 자(7-10)입니다.

 

[1]맨 먼저 1절의 남은 자 된 사도 바울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1절에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고 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두 다 버리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기 자신을 들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은 선민이라는 자부심만 갖고 복음을 믿고 순종하는 것을 거절했지만 그렇다고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다 복음을 거절한 것이 아닌 증거는 사도 바울 자신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중의 한 사람인 자기 자신이 복음을 믿고 순종하여 사도가 된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모두를 버리신 것이 아님을 증거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2]다음은 2절부터 7절까지의 남은 자 된 7천명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열왕기상 19장 1절부터 18절까지의 엘리야 선지자의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에든지 하나님의 뜻을 전파할 씨를 남기신다는 진리를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야 선지자 시대의 왕은 아합이요 그 아내는 악명이 높았던 이세벨 이었습니다. 아합왕과 이세벨이 사람을 보내어 엘리야 선지자를 죽이겠다는 뜻을 전달하였는데 이 전달을 받은 엘리야 선지자는 생명을 위하여 40주야를 걸어서 호렙산에 이르러 굴에 들어가 유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나타나시어 엘리야야 네가 어찌 여기 있느냐고 물으셨던 것입니다.

 

엘리야가 대답하기를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고 하나님의 제단을 헐며 칼로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다 죽였고 오직 나 혼자만 남았는데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죽이려 하므로 이곳에 숨어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하였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믿음을 지킨 자중 살아 남아 있는 자가 오직 자기 혼자 있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 믿음을 지킨 자 7천을 남기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천국 복음 사업을 해낼 씨를 아무리 험악한 시대에서도 보호하시며 남겨두신다는 강력한 메시지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5절과 6절에서 하나님께서 엘리야 시대에 씨를 남기신 것 같이 사도 바울의 시대에나 현 시대에도 씨를 남기시어 남은 자가 있게 하신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씨를 남기신 것은 남은 자에게 어떤 행위의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서 남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살아 남아 있게 되었다고 하여도 자기의 능력이나 자기의 어떤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께서 은혜로 택하셨기 때문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많은 핍박과 수난 속에서 믿음을 지킨 것이 자기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택해주시고 지탱할 능력을 주심으로 되어진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무를 베어낸 그루터기에서 싹이 싸온다고 해도 그것은 그루터기 자체만의 힘이 아니라 그루터기에서 싹이 나오도록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힘에 의한 것임을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7절부터 10절까지의 택하심을 받지 못한 자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앞부분에서는 이스라엘 중에서도 남은 자가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는데 7절부터는 남은 자 속에 들지 못한 다수에 대해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7절과 8절에서 소개한 것을 보면 그들은 대대수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이 구한 것을 얻지 못했고 오직 택함을 받은 자만 얻었고 택함을 받지 못한 대다수는 완악해졌다고 했습니다. 자기들이 구한 것을 얻지 못했다는 말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택한 백성이란 자부심만을 믿고 복음을 거절하고 자신들의 율법적인 행위로 구원 얻기를 구했기 때문에 자기들이 그렇게 구한 구원을 얻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구한 것을 얻었던 자들이란 오직 택함을 받은 자들로서 자기들이 혈통적으로 지녔던 특수성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복음을 믿고 복음에 순종한 자들인 것입니다.

 

7절에서 선택받지 못하고 남은 자 속에 들지 못한 자들은 완악해졌다고 했는데 8절에서는 완악해진 내용과 결과를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함을 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하는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혼미한 심령이란 선악을 분간도 못하고 진리와 비 진리를 분간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심령이 무디어져서 선과 진리를 찾고 사랑하는 마음의 상태가 전혀 아닌 것을 말하며 보지 못하는 눈과 듣지 못하는 귀란 진리인 말씀을 보고자하고 듣고 알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기 때문에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눈과 귀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싫어하는 자들의 마음을 완악하도록 내버려두셨기 때문이요 하나님을 싫어하는 자들을 선택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도 백성들이 오히려 그리스도를 거절하고 복음을 받아드리기를 거절하는 것을 두고 그들이 들어도 듣지 못하며 보아도 보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구약 신명기 29:4와 이사야 6:9-10 에도 같은 말씀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9절과 10절에서 다윗의 예를 들어 택함을 받지 못한 자들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시편 69:22-23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저희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굽게 하옵소서라 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싫어하고 하나님의 버림받은 자들을 두고 한 기도인데 밥상이란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좋은 것인데도 오히려 그 밥상에 걸려 넘어지게 해달라는 것이며 눈이 흐려져 보지 못하게 하시고 등이 굽어져 마음놓고 편하게 살지 못하게 해 달라는 기도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주님께서는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으로 표현된 것을 소개받았지만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이 되시지만 예수님을 거절하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은 그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반석이요 올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거절하는 자들을 두고 그렇게 기도함 같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한 자들에는 그리스도를 보지 못할 눈, 복음을 듣지 못할 귀를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하나님의 선택함을 입어 남은 자 속에 들라는 교훈입니다. 성경에서는 대다수가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의 버림을 받게 되며 오직 소수만이 선택을 받아 남은 자 속에 돌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는 대다수가 악이라면 다수라는 힘 때문에 악인 다수가 주도권을 잡고 살아 남게 되는 것입니다. 메스컴에서 일마다 사건마다 사람들의 지지율을 조사하여 발표하고 지지율이 많은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민주의 나라에서 민의에 따라 운영되는 세상일에 국한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 일은 다수가 아닌 하나님 한 분의 판단에 따라 산악간에 심판을 하실 것이기 때문에 다수이건 소수이건 사람들의 의견은 전혀 참작되지 않은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기준에 들어야 합격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나가는 길입니다. 즉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들을 말하며 이들은 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자들이며 진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사물을 잘 보는 좋은 눈을 가진 자라도 그리스도를 볼 수 없는 눈을 가진 자가 있을 수 있으며 세상소리라면 무슨 소리든 잘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진리를 들으려고 하지 않은 귀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맹인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볼 수 있는 자는 복된 눈을 가진 자가 되며 청각 장애자라도 복음을 마음으로 믿고 받아드린 자는 복된 귀를 가진 자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선택되어 높은 자리에 앉고 궁궐 같은 집에서 사는 자들이 있겠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고 있다면 그들은 선택받지 못한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로부터 선택되어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된다할 지라도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한 자가 된다고 한다면 복이 많은 자 같이 보이면서도 참된 복을 소유하지 못한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처세술이 좋아서 대통령이 바뀌어도 늘 살아 남아 있는 자들도 있음을 보지만 그렇게 살아 남아 있는 자 말고 하나님의 기준에 맞게 늘 살아남은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들이 다 되어야 하겠습니다. 복된 눈을 가진 자들이 되며 복된 귀를 가진 자들이 다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남아 있는 자들이 되고 그루터기가 되어 주님 재림시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이 베푸실 영광을 누리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