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구원과 유대인의 구원 – 로마서 11:11-24

사도 바울은 택한 백성이라고 하는 자기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원 문제에 대해서 9장부터 11장까지에서 취급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사도 바울이 자기 동족 이스라엘의 구원 문제에 대해 강조하기를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거역한 이유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으며 오히려 이방인들은 복음을 받아드리므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주셨던 점을 강조해왔던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그렇다면 자기의 동족인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영원히 버리신 것이냐고 질문하면서 결코 그렇지 않다고 답을 하여 자기의 동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의 기회가 다시 주어질 것이라는 소망을 소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복음을 거절한 결과가 가져다 준 특별한 의미는 무엇이며 또 하나님의 선택에서 제외되었던 이방인들이 구원의 자리에 들게 된 특별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 버림을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다시 구원을 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소개해 주고 있는 오늘의 본문을 통해 귀한 교훈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이방인들을 구원하신 뜻(11-15) [2]높은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할 이방인들(16-22) [3]이스라엘의 회복의 가능성(23-24)입니다.

 

[1]맨 먼저 11절부터 15절까지의 이방인들을 구원하신 뜻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지 아니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버리시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드린 이방인들을 구원하신 특별한 뜻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본래 이스라엘 백성들은 스스로 믿기를 자기들은 구원이 보장된 택한 백성이고 이방인들은 영원히 구원에 들지 못하는 버림받은 백성이라 믿어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드리므로 구원을 얻는 자리에 들게 하시고 이방인들이 구원받는 것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기가 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해 천대 받게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기심이 가득하게 하심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 자기들의 자리를 회복하게 하여 결과적으로는 이스라엘이나 이방인 모두를 구원의 자리에 들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깊은 구원의 뜻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시적으로 그리스도를 거역한 사실을 두고 이스라엘의 넘어짐, 저희의 실패, 저희를 버리심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와 같이 이스라엘의 넘어짐과 실패는 이방인에게 구원의 문을 개방하게 된 결과를 가져왔고 또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문을 개방한 일은 이스라엘에게 시기 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이 구원의 문에 들게 된 사실을 두고 세상의 부요함, 이방인의 부요함, 세상의 화목 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복음을 거절한 결과는 이방인들에게 은혜가 풍성하게 하였고, 또 이방인들에게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들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 회복되어 구원의 자리에 들게되는 것을 두고 저희의 충만함, 받아드리는 것으로 표현했으며 사도 바울은 자기의 동족인 이스라엘이 일시적으로는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지만 시기심으로 인해 이스라엘 중 남은 자들은 다시 구원의 자리에 들게 될 것에 대한 큰 소망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2]두 번째로 16절부터 22절까지의 높은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할 이방인들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6절부터 22절까지에서는 사도 바울은 자기의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진 고유의 신분에 대해 두둔하고 있으며 이런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분에 근본적으로 미칠 수 없는 이방인들에게 교만치 말고 겸손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고유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가루 그리고 나무의 뿌리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처음 익은 열매를 하나님께 바쳤던 것입니다. 첫 열매를 하나님께 바쳤으므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친 결과가 되며 하나님께 바쳐진 모든 것은 거룩하게 되어지는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이런 원리를 인용하여 사도 바울은 16절에서 첫 열매와 뿌리가 거룩하므로 떡덩이와 가지도 거룩하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의 첫 열매와 뿌리는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을 말하는 것이며 떡덩이나 가지란 이스라엘의 후손들을 가리킨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논리는 이스라엘의 조상이 거룩하였기 때문에 그 조상의 후손인 이스라엘 사람들은 거룩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일시적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복음을 거절하므로 거룩한 무리에서 떨어져 나갔지만 다시 복음을 받아드린다면 그들의 조상이 거룩했던 대로 거룩하게 될 것이라는 선택받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본래의 자부심을 강조한 말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족보적으로는 이방인들과 분명한 차별이 있음을 이방인들을 향해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점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사도 바울은 나무 가지의 젖 붙임의 원리를 내 세우고 있습니다. 젖 붙임의 원리에서 하나님을 참 감람나무의 뿌리, 이스라엘 백성들을 참 감람나무의 본 가지 혹은 원가지 그리고 이방인들은 돌 감람나무의 가지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참 감람나무의 가지였으나 믿지 아니하므로 꺾여 떨어져 나갔고, 이방인들은 돌 감람나무의 가지였지만 참 감람나무의 가지가 떨어져 나간 자리에 젖 붙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참 감람나무 가지에 젖 붙임을 받아 결과적으로 참 감람나무의 가지가 되었지만 이 가지는 참 감람나무의 뿌리에서 올라오는 진액을 받아먹고 사는 것이므로 비록 참 감람나무의 가지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떨어져 나간 참 감람나무 가지를 향해 그들을 무시하지 말고 스스로 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자기의 힘으로 참 감람나무의 가지가 된 것이 아니라 참 감람나무의 뿌리에 의해 되어진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행여나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불순종하는 참 감람나무의 가지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버리셨으니 하물며 돌 감람나무로부터 젖 붙임을 받은 가지도 역시 아끼지 아니하시고 버리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자하시기도 하시나 반대로 무서운 분이시므로 만일 불순종한다면 무서운 엄위를 보이시어 가지를 꺾으실 것이오, 순종하면 하나님의 인자가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으로 믿음을 가진 자는 자신의 본래의 신분을 마음에 두고 구원에서 탈락된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해 교만하지 말고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23절과 24절의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23절과 24절에서 참 감람나무에서 떨어져 나간 가지의 재 접목의 비유를 통해 떨어져 나간 이스라엘 백성들 중 믿음을 받아드린 자는 구원을 얻게 될 것에 대한 소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3절에서는 만일 떨어져 나간 자들이 믿는다면 다시 참 감람나무에 젖 붙임을 받게 될 것인데 이는 젖 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24절에서는 본성이 다른 돌 감람나무의 가지도 하나님께서 참 감람나무에 젖 붙임을 받을 수 있게 하셨는데 본래 참 감람나무에서 떨어져 나간 가지야 참 감람나무에 더 쉽게 젖 붙임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일시적으로 떨어져 나간 이스라엘 백성들중 다시 신앙이 회복되어 구원의 자리에 들 자들이 있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동족이 꼭 구원의 자리에 함께 하기를 바라는 사도 바울의 간절한 소망을 적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돌 감람나무 가지였던 우리들이 참 감람나무 가지에 젖 붙임을 받아 참 감람나무의 진액을 먹고 살수 있는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늘 감사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또 두 번째로는 참 감람나무 가지도 버리시는 하나님이심을 알고 돌감나무의 가지였던 우리 자신이 찍힘을 받지 않도록 믿음을 지켜 나가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들의 본래의 신분이 돌 감람나무 가지에 해당하는 이방인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전에는 돌 감람나무에 붙어 있었으나 이제는 참 감람나무의 가지에 젖 붙임을 받게 되어 하나님이신 참 감람나무의 진액을 먹고 살 수 있도록 우리들의 신분이 바뀌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쉽게 생각한다면 우리들이 한국 사람이었지만 미국에 오게 되어 미국이 주는 모든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신분이 변경된 원리와 같은 것입니다. 돌 감람나무에 붙어 있었던 시절에는 천국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오직 내 욕심에 따라 육적인 삶을 살게 되므로 삶이 고달프고 소망이 없었지만 이제는 이 세상이 끝난 이후에 나타날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도 갖게 되고 나 자신 뿐 아니라 내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폭넓은 가슴도 갖게 된 것입니다. 즉 현 세상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참 평화와 참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배에 올라탄 것입니다. 심한 세상 파도로 인에 흔들거리는 배를 탔던 몸이 하나님께서 운전하시는 큰 배 아무리 큰 풍랑에도 흔들이지 않는 배에 올라 탄 것입니다. 이런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라는 교훈입니다.

 

그리고 이 은혜를 귀하게 간직하여 이 은혜를 놓치지 말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물론 사람이 사는 동안 때로는 믿음에서 떠나 살게 되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듯이 우리들도 하나님의 버림을 받을 가능성이 늘 있지만 그러나 다시 하나님을 찾는다면 다시 하나님의 참 감람나무에 재 접목이 될 수 있다는 교훈을 받았습니다. 원예의 상식과 지식으로는 가지에서 떨어져 나간 가지는 말라서 원 나무에 재접목이 가능하지 않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말라진 가지라도 자신을 돌이켜 다시 하나님을 찾는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들 자신의 능력으로는 재 접목이라는 것이 불가능하겠지만 재 접목할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본문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지 나흘이 지나 썩어 냄새나는 나사로를 살리실 수 있고 완전히 마른 뼈에도 살을 붙이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돌 감 나무 가지였던 우리를 참 감람나무 가지에 젖 붙여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늘 감사하며 계속 믿음 생활을 충실히 하여 이 은혜를 주님의 재림시까지 간직할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