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삶 – 로마서 12:1-2

로마서의 맥을 이해하지 않은 상태에서 로마서를 혼자 읽어나간다면 로마서가 어렵게 느껴지고 친근하지 않게 느껴질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런 강해를 통해 로마서의 핵심을 소개받은 후에 읽어본다면 친근하고 체계적으로 쓰여진 귀한 말씀인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인류를 구원하실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의 계획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죄 사함 받아 의롭게 되었음에 초점을 맞추어 가르쳤던 것입니다. 죄인 된 인간이 의롭게 되는 것은 인간의 어떤 행위에 의하지 않고 오직 복음을 믿는 믿음이 강조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믿음에 의한다는 사실이 강조되므로 인해 성도들의 실천적인 삶에 오해를 가져다 줄 수도 있으리라 봅니다. 즉 오직 믿기만 하면 구원 받을 수 있으므로 매일 매일의 삶은 어떻게 살든지 별 문제될 것이 없다고 오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오해를 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오늘부터 시작되는 12장부터 마지막까지에서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1장부터 11장까지는 교리부문이요 12장부터 마지막까지에서는 실천적인 삶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과 뼈로 이뤄지듯 성도의 삶은 믿음에 의해 의롭게 됨과 의롭게 된 성도의 일상생활에의 실천적인 삶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입니다. 살이나 뼈 중 그 하나가 빠진 것은 몸이라 할 수 없음 같이 의롭게 됨과 의롭게 된 자로서 마땅히 살아야 할 실천적인 삶 중 그 하나가 빠진 것을 성도의 삶이라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두고 믿음의 조상이라 하고 있는데 이삭을 바친 그의 실천적인 삶이 그의 믿음을 온전케 하였던 것입니다. 야고보서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 한 것이 바로 교리와 실천은 따로따로 있지 않고 동전 양면과 같이 늘 함께 붙어 있어야 함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믿음에 의해 구원받은 성도들이 일생생활에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12장부터 16장까지의 교훈을 통해 우리들은 성도들이 자신을 어떻게 헌신해야 하며, 대인관계 또는 교회 내에서나 사회나 국가를 향해 어떻게 처신해나가야 할 지에 대한 교훈을 받게될 것입니다. 그중 오늘의 본문은 앞으로 받게 될 교훈의 바탕이며 기본 방향이 되는 교훈이 주어졌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성도가 마땅히 살아나가야 할 귀한 교훈을 받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적용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1]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1) [2]하나님의 선하고 기뻐하시며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도록 하라(2)입니다.

[1]먼저 1절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의 실천적인 삶에 대한 교훈을 시작하면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라 했습니다. 여기에서의 너희의 몸이란 오직 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몸과 마음과 기타 모든 것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너희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제사라는 단어가 사용된 것은 구약의 동물제사를 전제한 단어가 되겠습니다. 우리들이 아는 대로 구약에서는 사람의 죄를 사함 받기 위해 사람을 대신하는 동물의 희생을 통해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물론 그들의 제사는 특정한 장소인 성전에서 드려졌으며 특정한 날에 드려졌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요청에 의해 억지로 드려졌던 것입니다. 이런 동물이 희생되어 드려졌던 제사를 전제해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한 것은 억지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자원하여 드려져야 하는 것이고 어떤 특정한 장소나 특정한 시간에만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드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동물의 희생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직접 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제사 희생물로 드리라는 것인데 본래 동물 제사에서의 희생물은 흠 없는 것으로 골라 드렸듯이 우리 자신의 몸과 마음을 성결하게 지켜 정결한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입니다. 주일 예배 때에만 경건하게 드리는 것이 아니라 1년 내내 평생 경건한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해 날마다의 삶 자체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되고 제사가 되도록 날마다의 삶을 살아나가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2]다음은 2절의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도록 하라입니다. 사도 바울은 거룩한 성도로서의 성공적인 삶을 살도록 성도가 살아나가야 할 근본 핵심을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성도로서 불리움을 받기 전에는 내 스스로가 나의 주인이 되어 나를 유익하게 할 수 있는 내 중심의 인생관을 가졌었지만 이제는 성도로서의 불리움을 받았고 주님 재림시에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게 될 신분으로 승격되었으므로 이제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새로운 인생관을 설정하라는 권면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기뻐하실 수 있는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천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사양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택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세상영광을 주겠다는 사단의 유혹을 거절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골고다의 십자가를 선택하신 것과 같은 결단과 선택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에 대한 목표를 세우고 그 삶을 실천해 나가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삶을 성공적으로 실천해 나가기 위해서 늘 우리들을 유혹하는 현 세대의 흐름을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현 세대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고 사단이 좋아하는 사단의 길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사단이 좋아하는 길이 있고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길이 있는데 시대가 시대인 만큼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길보다는 사단이 좋아하는 길을 따라가기를 좋아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세상의 흐름에 자기를 맡겨 세상 풍조에 따라 살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현 시대에 살고 있는 대다수가 그렇게 한다고 해도 그 길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으로 판단되면 나는 그것을 본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날마다의 말씀을 상고하여 말씀에 따라 자신의 현재를 점검하고 반성하며 늘 성령의 충만함으로 이 세대에 물들려진 것을 벗어버리고 새롭게 되라는 교훈입니다.

 

우리들은 육을 입은 인간인지라 가끔 내 욕심에 의해 또는 사단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과 정 반대되는 길을 걸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해, 기도 생활을 통해 그런 자신을 빨리 발견하고 다시 변화되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로 돌이켜 걸어가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경계한 것은 사실상 우리들의 눈과 귀를 자극하여 우리 자신을 믿음에서 끌어내서 사단에게로 끌로 갈 수 있는 많은 유혹거리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전제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기독교 신앙이 이 세대에 영향을 끼쳐 기독교 문화로 세상에 변화를 주어야 함에도 오히려 세상 문화에 교회가 영향을 받아 교회가 세속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절실하게 요구되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말씀은 죄인 되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죄가 용서되고 의롭다함을 받았으니 그 의롭다함을 받은 자답게 의의 생활을 실천해 나가라는 교훈입니다. 기독교는 윤리나 도덕의 기준을 가르치는 종교는 아닙니다. 아무리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완벽한 삶을 산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는 구원에 이를 수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아무리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사회의 지탄을 받을 정도로 되었던 자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므로 과거의 모든 무너진 도덕과 윤리가 용서를 받고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도덕과 윤리와 상관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얻은 자들은 도덕과 윤리를 떠난 삶을 살아도 되느냐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권면하므로 도덕과 윤리의 차원 그 이상의 삶을 살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동물을 희생시키는 제사를 통해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현 기독교에서는 주일에 예배당에 나와 예배를 드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서는 의식적인 예배 말고 날마다의 실생활에서 하나님께 산 제사를 드리도록 요청 받고 있습니다. 산 제사란 우리 자신이 죽지 않고 산 그대로 몸과 마음을 통체로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입니다. 주일만이 아니고 날마다 산 제사가 연속적으로 드려지도록 마음과 몸을 경건하게 유지하고 그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을 행하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우리 자신은 땅에 발을 딛고 살며 육을 입은 나약한 존재들이므로 늘 많은 유혹을 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루에 몇 번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경고한 것은 우리들이 본받고자 하는 유혹이 얼마든지 우리들 주변에 널려 있음을 전제한 말인 것입니다. 그러나 결론은 이 세대가 추천하고 이 세대가 자랑하고 이 세대가 인정하는 것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께서 추천하시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길을 선택하라는 요구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요구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찾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악을 미워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한 삶을 살아나간다면 도덕과 윤리 그 이상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면류관을 차지할 경주자는 많은 유혹을 다 물리치고 오직 월계관만을 바라보며 경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리실 면류관을 받을 우리 성도들도 그 면류관을 차지할 소망 가운데 세상을 본받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거룩한 산 제사를 드려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미움의 길을 버리고 사랑의 길을 택해야 하며, 이기적인 삶을 버리고 남을 생각하는 길을 택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뜻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선한 길을 선택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삶이 순식간에 무너졌다하더라도 다시 가다듬고 회복시켜나가야 합니다.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그러며 늘 자신을 돌아보고 흐트러진 자신을 돌이켜 평생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는 삶을 지속해 나가야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자들을 두고 신랑을 맞기 위해 기름을 채운 등불을 들고 기다리는 신부에 비유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우리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