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간의 관계에 대한 교훈 – 로마서 12:9-13

오늘의 본문의 바로 앞부분에서는 각기 다른 은사를 가진 성도들의 역할에 대한 교훈을 받았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각기 다른 은사를 가지고 봉사해 나가는 성도들 상호간의 관계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교회내의 성도들 간의 관계가 원활하지 못할 때에 교회 공동체는 평화를 잃게 되고 성도 각자는 신앙 생활하는데 심한 갈등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교회내의 성도들 간의 원활한 관계를 위한 절대적인 처방전을 써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통해 얻는 귀한 교훈을 마음으로 받고 실천하여 신앙생활에 큰 변화가 있어 정말 행복하고 은혜가 넘치는 날마다의 삶이되어지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서로 사랑하라(9-10) [2]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11-12) [3]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라(13)입니다.

 

[1]맨 먼저 9절부터 10절까지의 서로 사랑하라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들은 교회 생활을 통해 사랑이란 단어를 많이 들어왔고 사랑이란 말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사랑하라는 교훈이 많이 나와 있지만 그 중 대표적인 것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예수님께 한 율법사가 찾아와 예수님을 시험하며 계명 중에 어떤 계명이 큰 계명이냐고 질문하였을 때에 주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했으며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니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치 못하는 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음 소망 사랑 중에서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했고 또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 했으며 사랑이 빠진 방언이나 예언을 하는 것은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 하고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빠져 있다면 이런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랑에 대한 많은 설교를 듣고 사랑을 실천하려고 힘쓰고 있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오늘의 본문을 통해 다시 사랑하라는 교훈을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라는 교훈을 또 주신 것은 우리들의 사랑이 온전치 못하기 때문일 뿐 아니라 사랑하는 일은 아무리 하고 또 한다 할지라도 끝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9절에서는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사랑을 하되 진심으로 하라는 말입니다. 어떤 딴 속셈이 없고 위선적인 어떤 포장이 없이 순수하게 형제를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어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게 하셨는데 이와 똑같이 이웃에 있는 내 형제를 위해서도 예수님께서 희생양이 되셨음을 생각하며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삶은 악에 속한 삶이요 거짓 없는 사랑의 삶은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받을 수 있는 선한 삶이되기 때문에 모든 성도들은 사랑하므로 선에 속하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10절에 보니 형제를 사랑하고 우애하며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려고 하는 사랑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신 절대적인 사랑이며 우애란 하나님을 아버지로 하는 혈족으로서의 형제간의 우애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존경하라는 것은 상대가 사회적으로 대단한 존재이기 때문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가 대신 희생된 귀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하라는 존경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가끔 이런 말을 합니다. 그 사람이 먼저 안하는데 왜 내가 먼저 해야 하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에서는 사랑도 우애도 존경도 그 사람보다 먼저 하라고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억지로 하지 말고, 외식으로만 하지 말고, 진심으로 하되 상대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분명히 알고 하나님의 자녀에게 해야 할 마땅한 대접을 하라는 것입니다. 내 개인적으로 그 사람에게 도움 받은 것도 없고 또 앞으로도 주거나 받을만한 아무 것도 없다 할지라도 오직 하나님의 피로 함께 형제 된 관계인 것을 염두에 두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2]두 번째로 11절과 12절의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1절에서는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맨 처음에는 열심을 내다가도 시간이 흐르면서 미지근해지기 쉬운데 믿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만사를 다 제치고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형제를 위해 봉사하다가도 그 열성이 점점 식어지기 마련인 것입니다. 인간은 그런 미지근한 대접을 받아도 그만이지만 독생자 예수께서는 성도들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바치신 분이시기 때문에 대신 죽으신 분께 우리의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질이 높은 대접을 받으시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일이 점점 식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필경 믿음이 식어진 연유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12절에서는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바라는 삶은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주님 재림 후에 나타날 천국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장차 들어가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면 어려운 가운데서도 즐거울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환난도 일시적임을 알고 그 환난이 지나고 나면 곧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것을 알고 모든 어려운 환난을 참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려운 환난을 이길 힘을 달라고,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도록 믿음을 지켜주시기를 위해 기도에 힘쓸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라는 권면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13절의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 하라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의 본문이 주어진 그 당시의 형편으로는 로마 정부에 의해 기독교가 박해를 받아 성도들은 경제적으로 많은 곤란을 받았으며 핍박을 피해 나그네 생활을 하거나 또는 복음을 짊어지고 나그네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자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즉 사랑한다는 말의 위로도 필요했겠지만 형제들이 지금 현실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는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것을 공급해주어야 했던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들은 공동체적인 책임 의식이 많이 결여되어 있지만 그 당시의 성도들은 예루살렘 교회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에 이방에 있는 교회들이 구제금을 모아 바울 편에 보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성도들은 우주적인 교회 공동체로서의 사랑을 나누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교회내의 성도들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온 성도들을 두고도 주님의 피를 나눈 형제애를 가지고 서로 돕고 위로하며 사랑을 나누었던 것입니다. 그런 어려움을 함께 나누면서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에 대한 소망을 크게 하며 현제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종노릇하는 나그네 생활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모든 인생은 현제 다 나그네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 재림시까지의 삶은 나그네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스스로가 나그네임을 인식하고 같은 처지에 있는 나그네들과 서로 아끼고 사랑을 나눌 뿐 아니라 현세에서 실지로 나그네 된 자들에게 적절한 대접을 하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성도들끼리 형제의 사랑을 나누면서 열심히 주를 섬기라는 교훈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치고 사랑받기를 싫어한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세상 어떤 단체보다도 사랑이 풍성한 곳인 것을 알고 교회를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런 기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체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이 교회에서 사랑을 받기만 하고 사랑을 나눠주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또 사랑하라는 설교를 건성으로 듣고 실천을 하지 않은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들은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는 사랑에 대한 본래의 의미를 바로 깨닫고 실천하므로 우리 교회는 사랑이 실천되는 교회가 되어 사랑이 필요한 자들에게 사랑을 공급해주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권하는 사랑은 하나님께서 죄인 된 인류를 사랑하신 그런 차원의 사랑을 하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상대가 누구든 나에게 어떤 관계가 있던 상관없이 사랑해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의 신분이 어떻든 서로 존경하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남에게 사랑을 받은 다음 사랑하려고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남을 사랑하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남에게 존경을 받은 다음 내가 상대방을 존경하려고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남을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무식하거나 또는 매우 가난하고 퍽 비천한 신분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고귀한 어떤 사람과 전혀 구별하지 말고 똑같이 사랑과 존경을 하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신분과 형편, 처지와 상관없이 모든 인생을 다 똑같이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혈족으로 맺어진 내 부모나 내 자녀나 내 형제들과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있다면 그런 똑같은 질의 사랑을 성도들과 서로 나누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세워졌던 초대 교회와 같이 형제들의 쓸 것을 서로 공급해주는 사랑이 풍성한 교회가 현세에도 이 땅에 회복되도록 우리들의 사랑을 키워나가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한 피로 서로 형제 된 우리인 것을 확인해 나가야 합니다. 주님 재림시에는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천국 생활을 하게 될 것을 마음에 두고 현실에서 서로 아껴주고 서로 우애하며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가끔 마귀가 시기가 나서 성도들의 틈을 갈라놓으려 할 때마다 사단아 물러가라고 외치며 사랑을 유지해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아버지를 닮은 작은 사랑들이 다 되어야 합니다. 누가 우리를 보아도 아버지를 딱 닮았다고 알아볼 정도로 사랑이 풍성한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진실 된 사랑을 가지고 교회 일에 열심을 내라는 권면입니다. 사랑이 들어 있는 헌금, 사랑이 들어 있는 봉사, 사랑이 들어 있는 구제, 사랑이 들어 있는 설교를 실천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또 모든 어려움을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며 참아나가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든 삶이 계속 이어지도록 기도에 항상 힘쓰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이 주는 교훈을 실천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칭찬 받으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