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지 않는 자와의 관계에 대한 교훈 – 로마서 12:14-21

어떤 분이 말씀하시기를 자기 교회에 나오는 그 어떤 사람 때문에 그 교회를 계속 나가지 못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이 있습니다. 이런 일은 비단 그 분만이 아니고 성도들이 신앙생활 하면서 비슷한 경험해본 일이기도 합니다. 그런 문제를 해결 받도록 성도 간에 사랑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는 교훈을 지난주에 받았습니다. 믿음을 통해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 된 성도들끼리도 사랑하기가 쉽지 않은데 오늘의 본문은 원수를 저주하지 말고 오히려 사랑하고 축복하라는 교훈을 받게 됩니다.

 

원수를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라는 교훈은 나를 따르라고 하신 예수님의 교훈이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들은 최선을 다해 실천해야 하는 교훈으로 받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주신 본문의 말씀을 통해 우리들의 이기적인 체질이 이웃을 돌아보며 원수까지도 돌아볼 수 있는 체질로 변화되어지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14) [2]모든 사람과 평화 하라(15-18) [3]원수를 갚지 말라(19-21)입니다.

 

[1]맨 먼저 14절의 핍박하는 자를 축복 하라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편지를 쓰는 시절에는 기독교가 많은 박해를 받던 시대였으므로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신체적으로 경제적으로 피해를 당했던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직장을 잃기도 하고 집을 떠나 피해 다니며 나그네의 삶을 살아야 하는 불이익을 당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성도들을 못살게 구는 핍박자들 때문에 큰 피해를 보고 있는데 그런 핍박자들을 두고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는 교훈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자기를 십자가에 메 단 자들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시기를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라 하셨음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또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를 당할 때에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 하였음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저들의 죄를 사해달라고 하는 그 높은 차원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상 우리들은 당장 내 눈 앞에 나타난 이익과 피해를 계산하여 내게 이익을 남겨준 사람에게는 호의적이고 피해를 준 사람에게는 적대적이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런 것은 우리들은 바로 눈앞의 현실의 삶에 집중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나 스데반의 경우에는 그들의 삶의 목표가 현실적인 삶에 있지 않고 영적인 구원에 있었기 때문에 나를 사랑해준 자뿐 아니라 나를 핍박하는 자들까지라도 다 죄를 용서받아 함께 구원의 문에 들어오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삶의 목표가 분명한 자들로서는 그 목표가 달성되도록 자기를 핍박한 자들을 저주하지 않고 축복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을 핍박하는 자를 저주하는 것은 내 육신의 삶의 목표에 합한 것이나 핍박하는 자가 회개하고 죄를 용서 받기를 바라는 축복하는 마음은 하나님과 주님의 목표와 합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2]두 번째는 15절부터 18절까지의 모든 사람과 평화 하라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처세술이 좋아서 많은 사람들과 잘 사귀고 어디서든지 인기를 끌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에서는 일시적이고 세상적인 어떤 인기몰이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기와 상관없이 하나님을 생각하며 자기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주신 말씀 15절에서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했습니다. 남이 기쁜 일을 만났을 때에 함께 기뻐해주라는 것입니다. 남이 축하를 받을 일을 만났을 때에 마음에 울어나는 축하를 해 줄 수 있어야함에도 우리 보통 사람의 마음은 남이 잘 되면 시기가 나고, 나와 비교를 하게 되어 내 스스로 위축되어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주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슬픔을 당한 자와 그 슬픔을 나누라는 것입니다. 슬픔을 당하고 몹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에 진심으로 위로해 주는 자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기쁜 일을 당한 자와 함께 순수한 마음으로 기쁨을 나누고 슬픔을 당한 자와 함께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자가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는 성도의 마땅한 자세인 것입니다. 내 이웃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16절에서는 겸손하라고 했습니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교회에서 늘 자기 자신을 높이고 반면에 남을 깔보는 자세를 가진다면 그 공동체의 구성원들과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늘 자신을 낮추고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다 그를 좋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자신을 낮추고 남 앞에서 잘난 체하지 말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또 이웃과 좋은 관계를 갖기 위해서 17절에서는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했습니다. 이미 앞부분에서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는 교훈을 받았는데 거의 같은 교훈이 되겠습니다. 자기에게 악을 행한 자에게 악으로 맞선다면 결과는 피차의 나쁜 관계가 개선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악을 악으로 대항한다면 상대방에게도 피해가 주어지겠지만 사실상 더 큰 피해는 본인 스스로에게 올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악의 구렁텅이에서 빠져 나오는 길은 나에게 악을 행한 자에게 악으로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대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길입니다. 앞에서 이미 강조했지만 우리들의 최종 목적지는 이 땅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것이므로 내가 그 자격을 얻기 위해서도 악에서 빠져 나와 모든 사람으로 선을 도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아무리 내게 악을 행했다 하더라도 그에 대항하여 내가 악을 행한다면 나도 그와 똑같이 악한 자가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행하기가 매우 어렵겠지만 우리 앞에 있는 큰 목표를 소망하며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19절부터 21절까지의 원수를 갚지 말라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원수를 갚고 싶은 충동은 인간의 본능일 것입니다. 약한 동물을 비롯하여 강한 짐승에 이르기까지 밟히면 꿈틀거리며 수단을 다하여 상대방을 공격하려 하는 것입니다. 인간도 그것에 크게 벗어나지 않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피해를 입게 되면 기회가 되는 대로 갚아주기 위해 기회를 벼르기 마련인 것입니다. 문제는 원수를 갚으려고 맘을 먹고 있는 동안은 마음에 평화가 존재키 어려우며, 비록 마음먹은 대로 원수 갚는 일을 실행에 옮겼다 하더라도 마음에 어떤 시원함이 있을 수 없으며 오히려 그로 인해 원수 관계가 더욱 악화되고 결과적으로 행복이 찾아들기 어려운 마음 상태가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본문에서는 원수를 시원스럽게 갚는 방법을 처방해주고 있습니다.

 

원수 갚는 첫째 방법은 내 스스로 원수를 공격하려는 계획을 버리고 하나님의 엄한 심판에 원수 갚는 것을 맡기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우리가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겼는데 결과적으로 자기의 원수가 죄를 회개하고 돌이킨다면 우리와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게 될 것이므로 형제를 하나 얻은 결과가 되며, 만일 그가 회개치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그 원수에게 엄한 심판을 내리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원수를 갚는 것에 비교할 수 없는 엄한 보응으로 원수를 갚게 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원수 갚는 두 번째 방법은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방법입니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마시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내 원수에게 내가 악으로 대항하여 내 스스로 원수를 갚았다고 한다면 그 원수가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지는 않겠지만 오히려 반대로 원수에게 적극적으로 선을 베풀므로 원수가 감동이 되어 죄를 회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만일 우리가 이렇게 원수에게 선을 베푼다면 감동되어 숯불을 머리에 쌓아둔 것 같이 부끄러워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성도들은 악에게 지지 말고 오히려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사도 바울을 통해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라는 권면을 받았습니다. 원수를 말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원수가 목마르거든 마시우라는 것입니다. 내가 원수에게 앙갚음을 해서는 그 원수가 회개하지 않겠지만 내 원수에게 오히려 선을 행한다면 그 원수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 마치 숯불을 머리에 올려놓은 것과 같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나의 선행에 감동이 되어 그가 자기의 잘못을 회개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원수를 친히 갚으려 하지 말고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라는 교훈입니다. 원수 갚는 일은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우리의 몫이 아니라 하나님의 몫이라고 했습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것입니다. 우리들과 감정이 나쁜 사람을 위해 저주하지 말고 축복해 주라는 교훈입니다. 이런 교훈은 세상 사람으로서는 실천할 수 없는 교훈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교훈은 세상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 영원히 천국에서 살 소망을 가진 성도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고 있는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들에게 주어진 교훈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는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들에게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는 우리들더러 주님께서 행하신 대로 주님을 따르라고 권하십니다. 주님을 따르는 우리들도 우리들이 져야할 십자가가 있다면 그 십자가를 벗어버리지 말고 지고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그 십자가가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라면 그 원수가 주릴 때에 먹이고 목마를 때에 마시우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그 십자가가 내 이웃이라면 내 주변의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고 했습니다. 어떤 이유나 변명도 필요 없습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명하시고 권하신 것이기 때문에 하늘나라의 상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넘어야 할 산이요 건너야할 강인 것입니다. 그리고 지고가 야할 십자가 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지금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야 할 큰 소망을 안고 경주를 하고 있는 경주자들입니다. 그 큰 소망을 이루기 위해 우리 모두는 늘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선한 일을 도모해야 하며,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해야 합니다. 원수까지라도 사랑하여 야 합니다. 인간관계 때문에 늘 마음에 숙제를 안고 사시는 분들은 오늘의 교훈을 실천하여 그 숙제를 풀어야 하겠습니다. 그 숙제를 내일로 미루지 않고 지금 당장부터 풀어나가야 하겠습니다. 그 숙제를 풀지 않고는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받지 못할 것으로 알고 꼭 풀어야 하겠습니다. 원수가 주리고 목마를 때에 먹이고 마시 울 수 있는 정도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들에게 주님 재림시에 큰 상을 내리실 것입니다. 말씀을 더 많이 배우면 배울수록 이러 교훈을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 커져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받은 교훈을 잘 실천하시어 큰 상을 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