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한계 – 로마서 14:13-23

피아노를 치는 사람은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자유가 있으나 이웃이 잠자는 시간에 피아노를 치는 것은 삼가해야할 것입니다. 우리들은 아이들이 무심코 연못에 던진 돌이 연못에 있는 개구리가 맞아 개구리가 죽을 수 있다는 비유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연못에 돌을 하나 던지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아주 자연스런 일임에도 그 자연스러운 일 때문에 개구리가 피해를 볼 수 있는 가능성도 우리들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한 말이 잘못된 말이 아닐지라도 어떤 사람이 그 말 때문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고 내가 한 어떤 행동 때문에 어떤 사람이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 각자에게 주어진 자유의 한계 내에서 합법적으로 한 행동이 이웃에게 피해를 줄 수 있듯이 교회 생활에서도 성경에서 보장한 자유를 누리는 일로 그 어떤 형제에게 상처를 주고 피해를 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성도들에게 주어진 자유라 할지라도 그 자유를 누림으로 내 형제에게 피해가 될 수 있는 일이라면 그 자유를 사양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잘난 맛에 살고 있어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자기가 하고 싶은 데로 하고 심지어는 아이들을 기를 때에도 기죽여서는 안 된다고 이웃에게 불편을 주든 말든 아이들을 내버려두는 세상이지만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는 성도라면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라 할지라도 그 자유 때문에 내 이웃에게 피해가 되는 일이라 판단되면 그 자유를 사양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신앙인들이 되라는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1]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13-16) [2]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17-23)입니다.

 

[1]먼저 13절부터 16절까지의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사도 바울이 음식 문제를 주제로 하여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구약시대에는 모세 율법에서 금한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레위기 11장에 기록된 대로 짐승 중에는 약대, 토끼, 돼지, 생선 중에는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것을 먹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새 중에는 독수리, 솔개, 매, 까마귀, 타조, 올빼미, 학과 황새 종류와 박쥐를 먹어서는 안 되었던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율법에서 그렇게 명했기 때문에 당연히 먹어서는 안 되겠지만 신약 시대에는 그런 율법으로부터 해방되었으므로 더 이상 그런 율법에 메이지 않아야 마땅함에도 어떤 이들은 아직 율법에서 금한 것을 먹을 수 없는 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즉 그들은 신약시대에는 온전히 율법으로부터 해방되었기 때문에 율법에서 금한 것을 먹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지 못하는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베드로가 기도하고 있을 때에 비몽사몽간에 하늘에서 한 그릇이 내려오고 그 그릇 안에는 율법에서 먹지 말라고 하는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들이었는데 소리가 들리기를 베드로야 잡아먹으라 하였던 것입니다. 이 소리를 듣고 베드로는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라 했는데 소리가 들이기를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했던 것입니다.

 

레위기 11장에서 금한 음식이 구약시대에는 속된 음식이요 깨끗지 못한 음식이었다 할지라도 신약시대에는 그 이상 모세 율법이 우리의 믿음을 구속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음식들이 더 이상 깨끗지 않은 음식으로 남아 있지 않은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들린 소리 그대로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주님께서 음식에 대해 하신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입에서 들어가는 것이란 음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음식은 다 깨끗하다는 사실을 강조한 말씀이며 오히려 더러운 것은 깨끗지 않은 마음 바탕에서 나오는 온갖 거짓 것이나 미움, 질투, 시기라는 뜻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14절에서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미 모든 음식을 깨끗케 하셨기 때문에 깨끗지 않은 음식은 없지만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셨다는 확고한 믿음이 없어서 구약에서 금한 음식이라든지 또는 우상에게 제사지낸 음식을 먹을 때마다 늘 마음에 거리낀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음식을 깨끗케 하셨지만 먹는 사람의 믿음과 판단에 따라 아직도 부정하고 속된 음식이라고 믿는 다면 그 사람에게는 아직 속된 음식 존재할 수 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런 특별한 형편에 있는 이웃 형제들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사도 바울은 13절에서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고 권고한 것입니다. 어떤 이는 딱딱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자도 있고 더러는 아직 우유밖에 먹을 수 없는 자가 있을 수 있으므로 딱딱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자가 우유밖에 먹지 못한 자라고 비판하거나 우유밖에 먹지 못한 자가 딱딱한 음식을 먹는 자를 두고 딱딱한 음식을 먹는다고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특히 모든 음식을 다 먹을 수 있는 믿음이 확고한 자들은 믿음이 약해서 성경이 금한 부정한 음식을 아직도 부정한 음식으로 알고 먹지 못하는 자들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그들에게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고 했는데 이 말은 믿음이 연약한 자들 앞에서 우상에게 제사지낸 음식을 먹는다거나 구약에서 금한 음식을 자랑스럽게 먹는 행동을 삼가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믿음으로 먹는 것은 자유이지만 하나님께서 내리신 자유를 누리는 일로 다른 형제로부터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누린 자유 때문에 믿음이 연약한 어떤 형제가 근심하게 되거나 믿음이 연약한 자가 자기는 아직 먹어도 된다는 확신이 없으면서도 자기도 따라서 먹다가 오히려 마음에 큰 죄악감을 갖게 된다면 우리가 먹은 음식으로 인해 주님께서 죽으심으로 얻은 형제를 망하게 하는 결과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형제를 사랑으로 돌보는 자세로 음식 가지고 형제를 실족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두 번째로 17절부터 23절 까지의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7절에 보니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의 신앙 생활하는 데 무엇이 본질이며 무엇이 가장 중요한 일인지를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예배 후에 친교 시간에 다과를 나누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인 것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성도들이 사랑으로 친교를 나누기 위함이지 먹기 위해서 모인 것은 전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먹는 일 때문에 예배드리는 일이 지장을 받아서도 안 되며 먹는 일 때문에 성도끼리의 화평이 깨지고 이웃 성도의 신앙에 지장을 주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20절에서는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업이란 인류가 죄 사함 받아 의와 평강과 희락 속에 사는 것이기 때문에 먹는 것이나 그 아무 것이라도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고 또한 믿는 성도들로부터도 칭찬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형제를 동시에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은 성도들끼리 화평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며 형제들에게 덕을 끼치도록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이미 앞에서 강조된 말씀이지만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다고 했으며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3절에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모든 것이 죄라고 했습니다. 그럼으로 아직 믿음이 연약하여 모든 음식을 다 먹을 수 없는 자들이 의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믿음이 강한 자들이 먹는 대로 따라 먹다가 시험에 들고 죄에 빠지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21절에 보니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했습니다. 고기도 먹을 수 있고 포도주도 마셔도 되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으나 내가 먹고 마시는 일 때문에 그것을 보고 믿음이 연약한 내 형제의 마음을 거리끼게 하고 믿음에 갈등을 갖게 한다면 먹는 것 마시는 것을 개인적으로 하되 형제들 보는데서 는 사양하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내 형제의 유익을 위해 사양할 수 있는 큰 믿음을 가지라는 교훈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8장 13절에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고 했습니다. 내 형제는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주님 대신 구해낸 값비싼 형제이기 때문에 내가 고기를 일평생 먹지 않는다 해도 주님께서 대신 죽으신 그 형제를 구하는 일과는 비교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바로 깨달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들이 죄 사함 받아 의롭고 화평하며 희락 속에서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고 어떤 집에서 살며 어떤 차를 타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며 내 형제도 나와 함께 하나님의 뜻에 따라 승리의 삶을 지속적으로 살아가도록 내 이웃 형제에까지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여유 있는 삶을 살아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때로는 내가 가진 것도 아낌없이 나누며,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도 내 형제를 위해 사양하고 희생할 수 있는 큰 아량과 사랑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 형제의 믿음이 실족되면 영원히 그 형제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므로 내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을 사양하므로 내 형제를 구하는 길이라고 한다면 일평생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을 사양하겠다는 사도 바울의 분명한 인생관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먹는 음식을 주제로 한 것이지만 먹고 마시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우리의 행동거지 모든 것으로 내 이웃 형제에게 덕을 세우고 행여나 나 때문에 내 이웃 형제가 시험이 들지 않게 하는 것이 아름다운 일인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내가 무엇이든지 가질 수 있고 무엇이든지 입을 수 있으며 무엇이든지 말 할 수 있다 할지라도 내 이웃에게 덕을 세우기 위해 내 이웃을 마음에 두고 내 자유를 사양할 수 있는 믿음은 큰 믿음이며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나라가 법으로 허락했으며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허락한 자유를 내 곁에 있는 믿음이 연약한 형제를 위해 내 자유를 억제하고 사양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신앙을 가져 하나님께도 칭찬을 받고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