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라 – 로마서 15:1-6

2-3일전에 라디오 코리아의 타운 뉴스를 들으니 어떤 한인 교회의 두 교인 사이에 일어난 돈 사기 사건이었습니다. 같은 교회 교인이요 또 전도사라는 사람이 돈을 쉽게 늘리고 벌 수 있는 정보라고 하면서 이런, 저런 속임수로 수차례에 걸쳐 20만불 정도의 돈을 가로챘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돈을 쉽게 늘리고 크게 벌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귀가 솔깃할 것입니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그런 인간의 약점을 이용하여 사기를 쳐서 형제의 가정에 엄청난 피해를 입힌 것입니다.

 

이 사건은 오늘의 본문에서 교훈하고자 하는 것과 정 반대의 일이 되겠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강한 자는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해 주고 자기 자신을 기쁘게 하지 말고 이웃을 기쁘게 하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성도들은 마땅히 내가 희생하고 내 이웃을 기쁘게 하는 것이 기본 자세여야 함에도 교회 공동체 내에서 내 이익을 위해 내 이웃 형제에게 큰 피해를 끼친 사실은 정말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것은 기독교가 무엇인지 기독교에 대한 기초지식도 배우지 못한 것이고 인생의 가치관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 지 전혀 모르는데서 오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우리들은 오늘의 본문을 통해 사도 바울이 전해주는 성도가 살아야 할 마땅한 삶을 잘 배울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이웃을 기쁘게 하는 삶(1-3) [2]소망을 갖는 삶(4) [3]한 마음으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삶(5-6)입니다.

 

[1]맨 먼저 1절부터 3절까지의 이웃을 기쁘게 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14장에서 믿음이 강한 자나 약한 자들이 서로 어떻게 대해줘야 하는 가에 대한 교훈을 주었습니다. 15장에서도 믿음이 강한 자와 약한 자에 관한 연장선상에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1절부터 3절까지에서는 믿음이 강한 자들은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가기를 기쁘게 하는 삶이 아니라 이웃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서 선과 덕을 세우는 삶을 살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이 강한 자는 믿음이 강하기 때문에 그 믿음에 따라 성경에서 먹어도 된다고 하는 음식을 다 먹어도 되지만 믿음이 약한 사람은 비록 성경에서 먹어도 된다고 허락한 음식도 마음에 꺼림을 가지고 먹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즉 믿음이 강한 사람들은 내 이웃 중에는 모든 음식을 다 먹을 수 없는 믿음이 약한 사람이 있음을 알고 믿음이 약한 사람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약한 점들을 돌아보아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도들은 마땅히 자기를 기쁘게 하는 삶보다는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이웃이 기쁠 것인지를 생각하고 내 이웃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것을 함으로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고 동시에 내 이웃을 기쁘게 하는 일이 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 좋다고 한 일이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지 못하고 내 이웃에게 덕이 되지 못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3절에 보면 왜 우리 성도들이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들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는 삶을 사시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셨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3절은 시편 69:9를 인용한 말씀으로 주님께서 모든 고난을 당하셨지만 오직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시게 하기 위해 그 고난들을 다 담당하셨던 거와 같이 이런 그리스도의 모범에 따라 우리 성도들도 나만 기쁘게 하는 삶을 살 것이 아니라 나보다 약한 내 이웃을 돌아보고 내가 행한 이 행동이 내 이웃에게 덕이 되겠는지 생각해서 내 이웃에게 기쁨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두 번째는 4절의 소망을 갖는 삶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4절을 보니 성경은 우리 성도들로 교훈을 얻게 하게 하려고 기록된 것인데 이 성경을 통해서 성도들로 하여금 인내와 안위를 얻게 하고 소망의 삶을 갖게 한다고 했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들의 소망이 무엇인지, 왜 우리가 모든 어려움을 참고 또 참아내야 하는지,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평안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늘 깨닫기 위해서 말씀을 늘 가까이 해야 하리라 봅니다. 성경을 늘 듣고 읽음으로 주님 재림시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해서 내 이웃을 기쁘게 하는 삶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고, 큰 고난 중에도 하나님이 내리시는 평안으로 마음이 평안할 수 있을 것이며, 인내하고 하나님이 내리시는 평안의 삶을 지속하다 보면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주님이 재림하시어 생명의 면류관을 씌어 주실 것이라는 소망이 더욱 커질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5절부터 6절까지의 한 마음으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5절부터 6절까지에서는 온 성도들이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교회 내에 여러 층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의견도 많고 갈등도 있으며 분쟁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그리스도를 본받지 않고 세상을 본받기 때문일 것입니다. 5절에 보니 하나님께서 성도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아니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까지도 예수님을 세상 임금 되게 하여 예수님을 통해 좋은 세상 삶을 살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사단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려 했습니다. 십자가 주변의 사람들은 남을 구원한 능력자라면 스스로 십자가에서 내려와 자신을 구원해 보라고 충동도 하였습니다. 물론 예수님 본인도 그 십자가의 고난을 피할 수만 있으면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도 하였으나 아버지의 뜻에 따르겠다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인간 한 사람의 마음속에도 많은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길을 가야 옳을지 저 길을 가야 옳을지 결론을 내리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물며 사람이 많이 모인 교회 내에는 다른 의견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많은 의견을 접고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한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는 것입니다.

 

아비지의 뜻은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구원의 뜻에 따라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심 같이 우리 모든 성도들도 인류의 구원의 계획을 시행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내 이웃이 구원을 얻게 하는데 우리들의 생각의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이웃에게 기쁜 일이 될 수 있다면 내 생각과 의견을 접고, 내게 돌아 올 수 있는 어떤 이익까지라도 접을 수 있는 그런 마음으로 온 성도들이 일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을까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을까에 대한 의견은 다 다를 수 있겠지만 모든 성도들이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내 이웃을 기쁘게 하고 그 이웃에게 덕이 되며 결과적으로 그 이웃을 구원받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온 성도들이 이런 똑 같은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고자 한 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말씀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 니까? 오늘의 교훈은 하나님과 내 이웃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라는 교훈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본받아 이웃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고 예수님을 본받아 한 마음과 한 뜻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말씀을 기록한 사도 바울은 자기의 삶 속에서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과 이웃을 기쁘게 하는 삶을 몸소 실천한 분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사도 바울이 실천한 삶을 본받아 우리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이웃을 기쁘게 하는 삶을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기록한 고린도 전서 10장 23절에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이웃을 위하는 기본 원리에 해당되겠습니다. 법적으로 허락된 일을 내가 했다고 하여 다 남에게도 유익된 것이 될 수 없고 법적으로 내가 해도 되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이 남에게 덕이 되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법적으로 허가된 일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행하기 전에 이것을 행해서 내 이웃에게 덕이 되는 일이겠는지 생각해 보고 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정신을 가진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세 10장 33절에서는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고 하였습니다. 나와 같이 라고 하므로 이 말씀은 사도 바울 자신이 늘 실천해 오고 있는 사도 바울의 인생철학임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런 그의 철학에 따라 그가 고백하기를 자기가 우상에게 절한 고기를 먹으므로 형제를 실족케 할 가능성이 있다면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즉 먹는 것 정도 먹지 않음으로 형제를 구원하는 일에 도움이 된다면 영원히 먹는 것을 사양하겠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또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9장 5-6, 12절에서 고백하기를 우리가 베드로나 다른 사도들과 같이 교회들로부터 재정적인 보조를 받고 또 아내를 데리고 전도를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그러나 이런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사양한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에 어떤 장애가 없게 하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이 말은 어떤 사람들이 비난하기를 바울은 교회가 지원한 돈을 받아먹고 살기 위해 복음을 전한다고 하면 복음 전도에 지장이 될 것이므로 복음을 받아드린 사람들이 그런 오해 없이 복음을 받아드리게 하기 위해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사양했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즉 교회가 주는 보조를 사양하고 스스로 천막 치는 일을 하면서 전도를 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삶을 몸소 실천하였으며 오늘의 본문에서 우리들도 사도 바울의 모범을 따라 그런 인생을 살도록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내 이웃에게 덕이 되겠는지? 내 이웃이 나를 보고 믿음을 갖는데 도움이 되겠는지 생각해서 덕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된다면 내가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사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교훈인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아침 9시에 예배를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배를 마치고 집에 와도 11시 정도면 넉넉했습니다. 하루는 예배 후에 마켓에 가려고 하다가 혹시라도 어떤 사람이 교회도 가지 않고 마켓에 왔더라고 오해할까봐서 마켓 가는 것을 중지한 일이 있습니다. 성도들은 매사에 남에게 오해를 끼치고 덕이 되지 못하는 일을 삼갈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교훈은 우리들의 모든 일에 적용이 되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을 소개 받는 우리 모두는 내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내 이웃을 기쁘게 하기 위해 내 모든 행동거지를 늘 돌아보는 훌륭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