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예수의 일꾼 사도 바울 – 로마서 15:14-21

오늘의 본문부터 15장 마지막까지는 사도 바울의 선교관과 앞으로의 선교 계획에 대한 것이고 16장은 인사로 로마서를 끝맺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바울이 그리스도를 통해 해낸 과거와 현제의 전도 사명에 대해 기록해 주고 있으며 다음 본문에서는 바울의 미래의 선교 계획을 소개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의 말씀의 제목을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 사도 바울이라고 정해보았습니다. 오늘의 본문을 통해 선교의 사명을 성실하게 감당한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종 사도 바울을 소개 받게 됩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로마 교회 성도들에 대한 바울의 확신(14-15) [2]사도 바울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은혜(16-19) [3]바울의 선교관(20-21)입니다.

 

[1]맨 먼저 14절부터 15절까지의 로마 교회 성도들에 대한 바울의 확신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지만 로마를 방문해본 일도 없고 오직 전해 들어서 로마 교회의 사정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14절에서 로마 교회 성도들을 높게 칭찬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알기로는 로마 교회 성도들이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사도 바울이 확신한다고 했습니다. 선함이 가득하다고 하는 것은 성령에 사로 잡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한 것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세상 욕심으로 가득하다는 말과 반대말이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충만하고, 모든 지식이 찼다고 했습니다. 모든 지식이란 구원에 대한 기본적인 성격지식을 포함하여 성도들이 가지고 있어야할 여러 가지의 지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들이 능히 서로 권하는 자라 한 것은 로마 교회 성도들이 서로 권면할 있을 정도로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선악을 분별할 수 있어서 서로 격려하고 권면하고 바른 길로 인도 할 수 있었던 수준의 신앙들을 가지고 있었음을 사도 바울은 확신 한다고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15절에서 쓰기를 이미 로마 교회 성도들은 상당한 지식과 능력을 이미 소유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 편지를 쓰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이 생각나도록 하기 위해서 즉 알고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복습시키는 의미에서 이 편지를 대강 기록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2]두 번째로 16절부터 19절까지의 사도 바울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사도 바울은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했던 자였는데 하나님께 그를 택하시어 그리스도의 일꾼 되게 하신 사실을 두고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강조한 것은 그리스도가 맡기신 일을 해내는 일꾼이라는 말이며 사람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불리움을 받은 자가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일꾼이 해내야 했던 사역을 16절에서 소개하기를 이방인들을 제물로 하나님께 바쳐드리는 제사장의 직무를 행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드려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고 그들을 양육하여 흠 없는 성도가 되게 하는 사역을 제사장이나 제물이라는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즉 구약시대에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동물을 잡아 하나님께 제물로 제사를 드리듯, 이방인들을 잡아다가 죽게 하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나게 하므로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 되게 하는 사역자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을 그리스도 안으로 인도하여 온전히 말씀에 순종하게 한 것을 두고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께 받으심 직하게 한다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로 하여금 이방인들을 하나님께 인도하고 그들이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제물이 되게 하신 선교 사역을 감당케 하셨는데 이런 결과는 사도 바울 자신의 어떤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그 일을 해내도록 간섭하시고 도와주신 결과 인 것을 18절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이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의 입이 되어 주셔서 필요한 말을 채워 주셨으며, 무슨 일에나 함께하시어 그 일이 제사장이 되게 하는데 도움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의 전도 사역에 큰 힘을 실어주시기 위해 표적과 기사와 능력으로 함께 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의 예로 사도 바울이 제 1차 전도여행을 막 시작했을 때에 서기오 바울이라는 총독이 바울과 바나바를 초청하여 말씀 증거를 받고자 했는데 그 때에 총독과 함께한 박수 엘루마란 자가 바울과 바나바의 사역을 방해하여 총독으로 하여금 믿지 못하도록 힘쓴 것을 보고 사도 바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박수 엘루마를 향해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앞이 보이지 않으니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긴 사실이 있었습니다. 또 행 19:11-12 에 보면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고 했습니다. 또 독사가 그를 물었는데도 아무렇지 않았던 사실 등 하나님께서 친히 사도 바울을 보내셨음을 사람들이 믿게 할 만한 많은 표적과 기사와 능력이 사도 바울과 함께 하므로 사도 바울이 이방인들을 제물로 하나님께 바치는 제사장이 되도록 적극 개입하시고 늘 함께 하신 사실을 사도 바울은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아시아에서 유럽에 이르기까지 3차에 걸쳐 전도여행을 다니며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했는데 이 사실을 19절에서 표현하기를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라 했습니다. 많은 지역에 복음을 전했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그가 3차에 걸쳐서 전도 여행을 다녔던 도시들 중 우리들이 잘 아는 이름은 골로새, 에베소, 빌립보, 아덴, 데살로니가, 베레아, 고린도입니다. 이중 우상의 도시 아덴은 이번 올림픽이 열리는 그리스의 수도 아데네 이며 데살로니가는 아데네에 이어 그리스의 2대 도시이며 우리나라 올림픽 축구가 이번 1차전과 3차전 경기를 갖는 축구 경기장이 있는 도시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헌신적인 전도로 아시아, 유럽에 이르는 전 지역에 복음이 전파된 것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다녔어도 힘들었을 텐데 발로 걷고 배를 타고 다니며 배가 다닐 수 없는 추운 겨울에는 겨울을 지내기까지 발이 묶이는 그런 험한 환경 속에서도 목숨을 내 놓고 복음을 전한 결과인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20절부터 21절까지의 바울의 선교관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20절과 21절에서 본인이 가지고 있는 선교관을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에 남의 터 위에는 건축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남이 이미 복음을 전파한 땅에는 들어가지 않고 한 번도 복음이 들어가지 못한 곳에 들어가 복음의 씨앗을 뿌리겠다는 선교관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사야서 52장 15절을 인용하여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이 전혀 복음이 들어가 보지 못한 땅에만 들어가 복음을 전하고 이미 다른 사람에 의해 복음이 전파된 곳에 가서 남이 닦아둔 터에 자기 집을 짓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선교관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이방 지역에 복음을 전파할 때에 당하는 핍박이 얼마나 심하겠습니까? 그러나 사도 바울은 개척자가 당하는 모든 고난은 본인이 감당하고 다른 사람들은 자기가 닦아둔 터 위해 집을 건축하게 하여 다른 사람들은 덜 고생하게 하겠다는 희생정신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우리 모두가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하나님께서 받으심직한 제물들이 되라는 교훈입니다. 우리들은 오늘 본문을 통해 사도 바울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여 개종된 이방인들을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제물이 되게 하는 일에 전심전력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제물이란 하나님의 입에 맞는 음식에 비할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사람대신 동물을 잡아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대로 제사를 지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신약시대에는 동물들 죽여 드리는 제사를 그 이상 요구하시지 않고 인간의 산제사를 요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산제사란 인간이 본래 가졌던 죄 된 몸과 마음은 죽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살아난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산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의 입에 맞게 만들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입에 맞는 몸과 마음이란 하나님께서 싫어하실 몸과 마음의 성품은 죽이고 하나님이 좋아하실 몸과 마음의 품성으로 변화해 나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 안에서 변화 받지 못하고 옛 몸의 죄 된 성품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서는 하나님의 입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로마 교회 성도들은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고 서로 권하는 능력이 있었음을 소개 받았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입맛에 맞는 제물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좋아하신 거룩한 성품으로 변화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변화된 몸과 마음으로 변화되어질 때에 이것이 산제사로 드리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동물 제사를 드릴 때에 동물을 죽여 제사를 드리듯 인간도 제물로 드려지기 위해서는 죄 된 옛 몸과 옛 습관을 죽이고 변화된 새 마음과 새 몸이 제물로 드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온갖 육의 성품의 옷을 벗어버리기 위해 날마다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새로 갈아입은 새 옷이 또 금방 또 더러워진 옷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목표는 나 자신을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리되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제물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직장에 일꾼으로 불리움을 받은 사람은 그 직장 주인의 입맛에 맞게 자기를 드려야 할 것이며 남녀가 결혼을 했으면 자기들의 과거의 습관, 고집, 성질을 버리고 상대방의 입맛에 맞도록 자신을 상대방에 맞추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상대의 입에 맞는 좋은 음식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같은 논리로 날마다 나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께서 싫어하실 기름 덩이는 떼어내고 오직 순전한 것으로만 드려지는 음식이 되려고 최선을 다해야 하나님의 입맛에 맞는 제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흡족한 향기로운 제물이 되도록 우리 각자가 최선을 다하여 우리 모두 새 하늘과 새 땅에 다 들어가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