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 사도행전 3:1-10

사도행전 1장에서는 주님의 명령대로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성령이 내리기를 기다리는 제자들의 순종적인 모습을 보았고, 2장에서는 약속하신 성령이 오순절에 내려 제자들의 권능을 받고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베드로의 첫 설교를 통해 찔림을 받은 3천명이 세례 받으므로 드디어 첫 교회가 세워졌고, 예루살렘에 세워진 첫 교회가 물질을 통용하며 성도의 지극한 사랑을 나타내고 날마다 마음을 연합하여 말씀 배우고 기도하고 찬미하는 일에 전혀 힘쓰므로 세상으로부터도 칭찬을 날마다 구원 얻는 자가 더해지는 초대 교회의 좋은 모습을 소개받았습니다. 이제 3장부터는 교회의 일군들을 통해 주님이 하신 일을 소개받게 됩니다.

방금 봉독했던 본문 말씀은 교회가 생긴 이후 이적과 기사가 이미 일어났었지만 그 중에서 기록된 첫 이적인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으키신 기적을 소개하면서 우리에게 몇 가지 교훈을 주시게된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교훈을 마음을 활짝 열고 받아드려 나면서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음같이 우리 믿음의 고침을 받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그 주신 교훈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1] 기도 생활로 사명 감당한 베드로의 모습입니다(3:1)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해야하는 사명을 받은 베드로는 그 사명 감당키 위해 기도 생활, 즉 영적 생활을 잘 운영해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요한과 함께 제 9시기도 시간에 성전에 올라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공적 기도 시간으로 3시, 6시, 9시 즉 지금 시간으로 오전 9시, 12시. 그리고 오후 3시 때를 정하고 성전에 기도하였는데 베드로는 개인적으로 정해놓고, 하는 기도 말고도 공적으로 정해진 기도 시간을 잘 지켜서 기도했음을 보게됩니다. 또 더욱 기도의 생활을 잘하기 위해 요한과 함께 기도의 파트너로 기도의 생활을 충실히 한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 10:9에 보아도 베드로가 6시에 기도하러 지붕에 올라갔다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조용한 기도 처를 찾아 기도하러 갔다가 천사의 지시를 받고 고넬료의 집에 가게될 때의 기도 모습입니다. 결국 기도를 통해 능력과 지혜를 얻기 위해 기도 생활에 열심인 베드로의 모습을 보게되는데 다니엘서 6:10에 보면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지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기록이 되었습니다.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에 3번씩 기도한 기도의 생활화된 다니엘의 모습을 소개받게 됩니다.

 

[2] 제자들을 통해 일하시는 주님입니다(2-6)

사복음서에 보면 주님께서 직접 일하신 모습을 보게됩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는 이젠 주님의 모습이 직접 나타나지 아니하시고 제자들을 통해 살아 역사 하심을 보게됩니다. 본문 스토리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되어 40년 동안이나 한번도 일어서 보지 못한 사람이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여러 문 가운데 미문이란 문 입구에서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는 사람이 마침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에 들어갈‘때 그들에게도 구걸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등장 인물은 앉은뱅이와 베드로와 요한입니다. 앉은뱅이는 자기 힘으로도 또 남의 힘으로도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불치의 병으로 체념하고 아예 고쳐 본다는 것을 포기해 버리고 먹고살기 위해 성전에 드나드는 사람들을 통해 한푼씩 얻어먹고 사는 사람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진정코 그가 필요한 것은 몇푼 얻는 것 보다 걸을 수 있는 일이었는데 별로 가치가 없는 것을 구하고 진정코 구해야할 것을 구하지도 않고 아예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근본적인 변화, 근본적 치료가 필요했는데 일시적이요, 완전한 대책이 되지 못한 것임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반면에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그 앉은뱅이레게 관심을 표명합니다. 그에게도 천국 복음이 전파되어야함을 의식했을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 마음속에서 역사 하신 예수님은 그 앉은뱅이에 동정했습니다. 그가 무엇이 필요한지 주목한 것입니다. 그에게 바라보도록 명령합니다. 그 앉은뱅이가 요구한 은과 금은 없거니와 자기가 가진 것으로 돕겠다고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주님은 그 앉은뱅이를 근본적으로 도와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몇 푼보다도 오히려 주를 믿게 하고 일어설 수 있게 해주므로 영육 간에 완전히 고침을 받도록 엄청난 축복을 안겨주게 됩니다. 16절에 보면 믿음으로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다고 기록된 것을 보면 그가 믿음까지 가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앉은뱅이는 뜻하지 않게 자기를 살려준 천사를 만난 것입니다. 꿈에도 생각 못한 엄청난 축복을 제자들을 통해 받게된 것입니다. 이것이 제자들을 통해 일하신 주님의 모습입니다.

 

[3]있는 것 가지고 행해진 이적입니다(7-10)

베드로는 40년 동안 앉은뱅이 된 자에게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걷기도 하고 뛰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아 계실 적에도 제자들 보는 앞에서 많은 이적을 행하셨는데, 오순절 이후 제자들을 통해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43절에 보면 사도들을 통해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음을 보게되고, 또 사도행전 8장13절에 보면 사도들로부터 안수 받는 제자들을 통해서도 표적과 큰 권능이 나타났음을 보게됩니다. 요사이 병 고친다고 은사를 받았다고 하는 분들의 은사집회가 성행하고 있습니다. 그 분들의 한결같은 대답은 사도들이 했던 똑같은 이적과 기사를 행하겠다는 것입니다. 병만 고친다면 능력 받는 사람, 신령한 종이라고 병 고치는 것이 바로 능력을 재는 기준이 되어 버렸습니다. 기도원마다 은사집회마다 안수 받으러 수많은 각색 병자들이 다 몰려와서 병 낫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은사 집회마다 이적과 기사가 일어난다고 신문에 내고 사람들을 끌고 있는데 예수님이나, 예수님의 사도들, 또 예수님의 제자들로부터 안수 받은 제자들이 행했던 이적과 기사의 특징을 살펴보며 현재 일어나고 있다는 이적과 가사와 비교를 해보므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 4:23, 마 9:35에 보면 주님께서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 특징은 병에 제한이 없고, 고치시겠다고 말씀 한 마디면 무슨 병이라도 고치셨다는 것입니다.

마 8:3에 보면 문둥병자에게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 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특징은 즉시, 지체치 아니하고 점점 나아진 것이 아니라 “즉시” 낫게 되었습니다.

마 8:5-13에 한 백부장의 하인이 중풍 병에 걸려 집에 누워있는데 주님께서 가서 고쳐 주시겠다고 했으나, 자기 집에 오심을 감당치 못하겠다고 말씀으로만 해달라고 부탁하니, 네 믿음대로 될 찌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세 번째 특징은 손을 얹거나 오직 말씀 한 마디로도 고치시었습니다.

안찰 이라고 막 문지르거나 병 고친다고 때리거나, 인간의 힘으로 하는 냄새가 전연 없어요.

마 10: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내 보내시며 부탁하기를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고 하십니다.

네 번째 특징은 거저 주는 것입니다.

값없이 고쳐주어야 합니다. 현대판 이적과 기사는 어떻습니까? 병 잘 고친다고 소문난 한국의 일인자가 누구입니까? 그의 제자들은 던져두고 그 머리되신 능력과 은사를 받았다는 능력의 행하는 모습은 어떻습니까? 또 이들이 우리를 뭐라고 유혹합니까? 보라 막 16:17절에 보면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고 쓰여 있지 아니하냐? 모든 믿은 자는 이렇게 할 수 있다. 너도 왜 하지 아니하느냐?고 무안을 주고 있습니다. 할 수 없음은 믿음이 부족함이라고 능력을 받지 못함이라고 부끄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큰소리치며 이적과 기사를 창출해 낸다고 하는 분들, 똑같은 하나님을 믿고 또 같은 성령의 능력을 받았으므로 사도들이 했던 이적과 기사를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분들의 집회 기록이 무엇입니까?

첫 번째 특징인 모든 병을 다 고칩니까? 죽은 자는 살리고 눈먼 자는 뜨게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문둥병자가 10명이면 10명 다 고치고 있습니까? 누구는 낫고, 누구는 못 낫고, 고기를 낚아서 입을 벌리면 그 입 속에 동전이 들어 있을 것이라고 하면 말한 그대로 다 이뤄집니까? 네가 성령을 속이느냐고 책망하면, 아니니아와 삽비라와 같이 죽어 넘어집니까?

두 번째 특징인 또 병들이 즉시 낫습니까? 차츰 좋아집니까? 많이 좋아졌습니까? 완전히 좋아졌습니까?

세 번째 특징인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만 예수의 권세로만 합니까? 아니면 인간의 힘이 가미됩니까? 아픈 대를 문지르거나 귀신 쫓으려 막 두들겨 때려 죽게 하거나, 마귀 쫓는다고 머리를 잡고 있다 밀어 넘어뜨리고 있습니까? 예수의 이름으로 손으로 몸을 해부해 피를 쏟게하고 그 속에서 무엇을 끄집어내서 낫게합니까?

네 번째 특징인 거저 주고 있습니까? 은사집회에서 헌금을 강조합니까? 요사이는 교회에서 직분을 주면서 집사는 얼마, 권사는 얼마, 장로는 얼마, 이렇게 직분을 주고 돈을 받아야 합니까? 병을 낫게하고 돈을 받아야 합니까? 은사집회 열어놓고 헌금만 거둬드린다면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마귀 잘 쫓아낸다는 유명 목사가 모든 마귀를 다 쫓아낼 수 있습니까? 죽은 사람 살릴 수 있습니까? 문둥병자 10이면 10명 다 완치해줄 수 있습니까? 아니면 어떤 이는 낫고 어떤 이는 낫지 못하고 합니까?

주님께서 이적을 행하셨으므로 그가 친히 하나님의 아들이심의 징표가 되었습 니다. 그가 사도들에게 능력을 주시어 이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시므로 아직도 주님께서 일하시되 제자들을 통해 일하심을 증거케 하시므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우리의 구세주가 되심을 믿게 하신 것입니다.

왜 이런 이적들이 성경에 쓰여 있습니까? 요20:31에 무엇이라 기록되어 있습니까?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함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이 있기 전에는 이적과 기사를 직접 눈으로 보게 하므로 믿음을 갖게 하였으며, 이제는 성경의 기록을 통해 믿음을 갖게 하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사도들이 받은 것 가지고 있는 것 가지고 복음을 전하고, 우리들은 우리들이 가진 것 가지고 복음을 전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했던 것을 자기도 해보겠다고 기를 쓸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죽은 자를 살리시고 앉은뱅이를 지금도 일으키시겠지요. 그러나 목적이 주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기 위한 것이므로 그런 이적을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아니해도 성경을 통해 얼마든지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므로 구태여 이런 이적의 필요성이 없어져, 이적이 일반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기대하고 또 해보려고 기를 쓰다보니 거짓 선지자가 나타나고, 마귀가 역사하여 거짓 믿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천국 갔다 왔다는 유명한 목사의 간증이 인기가 한참 있었을 때, 어느 한 목사가 통역하러 따라 다녔는데, 집회 때마다 스토리가 달라지더래요. 그래서 이건 가짜구나 하고 통역을 그만 두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죽어 냉동이 되었는데 그 사람이 살아났다나요. 그래서 그 간증 테잎이 유명해지고 많은 이들이 은혜를 받았다나요. 그런데 조사해보니 그것도 가짜더래요. 현대는 성경만을 가지고 믿지 못하고 성경 + 무엇, 즉 거짓을 어찌 좋아하는지 거짓을 가미해야 환영을 받습니다.

없는 은과 금으로 주님 증거하려 할 필요 없습니다. 베드로와 요한 같이 있는 것 가지고 병을 낫게 하여주므로 복음 전파하는 거예요. 병 낫게 하고 기적 일으킬 수 없는 것 가지고 하려고 하면 거짓이 나오고 사기가 나오지요. 그러므로 있는 것 가지고, 즉 사랑, 친절 , 봉사, 말씀 그리고 기도 가지고 복음 전하세요. 내 이름으로 말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내가 가진 것 나눠주는 것이 현재 우리의 사명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을 톤해 우리가 얻은 교훈을 무엇이며, 우리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기도생활입니다.

기도생활의 실천입니다. 영적생활의 실천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이 있습니다. 천국 복음을 전할 책임이 있는데, 먼저는 내게 천국이 계속 유지되도록 영적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특정시간을 내어 기도하고 말씀보고 찬송하는 영적 시간을 가져야 할 뿐 아니라, 우리에게 맡겨진 큰 사명 감당하기 위해 주님으로부터 힘 공급받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자동차가 달기기만 할 수 없습니다. 개스를 넣어야 합니다. 우리도 영적 힘을 충전해야 하므로 영적 시간을 갖는 것은 모든 일의 시작이요 기초가 될 것입니다.

주님의 사명 감당하시기를 원하십니까? 기도 통해 합당케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우리의 손을 통해, 우리의 발을 통해 주님께서 일하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발이 있으시면서, 손이 있으시면서도 지금은 구태여 주님이 직접 그의 손으로, 그의 발로 일하시려 하지 않습니다. 그의 계획은 이미 지상 생활을 통해 직접 일하셨고, 지금은 우리들을 통해 그의 뜻을, 그의 일을 성취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더 이상 가난한 자를 위해 빵을 전달하는 그의 손을 사용치 않으실 것이며, 병든 자를 위해 그의 발로 방문하지 않으시며, 복음전도를 위해 그의 목소리를 사용치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의 손과 발과 목소리를 사용하길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이 안에 거하시며 우리의 손과 발과 목소리를 통해 그의 엄청난 일을 하시길 원하십니다. 즉 우리가 그의 손발이 되어 봉사하고, 그의 목소리를 대신하여 천국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우리가 가진 것 가지고 봉사하기를 원하십니다.

베드로는 은과 금이 없어서 은과 금으로 거지를 돕지 못하고 그가 가진 능력으로 앉은뱅이를 고쳐줌으로 그리스도를 증거 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입니까? 없는 이적, 능력 가지고 하려고 하지 않아도 됩니다. 있는 것 가지고, 주님께서 주신 것 가지고 그리스도를 증거 하시면 됩니다. 친절, 사랑, 적은 물질, 위로, 격려, 그리고 함께 기도하고, 말씀보고, 찬송하는, 이 내가 가진 것으로 말씀 전하므로 천국 확장을 원하시는 주님의 손발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당장 눈에 보이는 값없는 것을 도움 받고자 하지만 사실상 그런 요구에 그대로 응해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자긴 것, 복음을 전달하므로 돈 한푼 얻는 것보다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고 뛰는 것이 비교도 안되게 가치 있듯이, 우리의 이웃에게 보다 가치 있는 봉사를 선물로 주는 결과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한인교회 성도들이 기도생활 열심히 하여 우리를 통해, 우리가 가진 것을 통해 천국복음 전파의 뜻을 이루시기 원하시는 주님의 뜻이 성취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