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두 번째 설교 – 사도행전 3:11-26

야구경기에 적시 안타라는 것이 있습니다. 방망이로 공을 잘 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베이스에 주자가 있어 점수를 날 수 있을 때 잘 때리는 것을 적시 안타라고 합니다. 설교도 적시 안타라는 말이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청중이 있어야 하고 청중이 듣고자 할 때 설교를 해야 아멘으로 받아드려 안타로 처리가 될 수 있게 됩니다.

베드로는 지금R지 두 번 설교를 하게 되는데, 두 번 다 적시 안타를 치는 설교를 하게되므로 설교라는 경기가 있다면 적시 안타상을 틀림없이 받게 될 것입니다.

첫 번째 설교가 적시 안타였다고 하는 점은 무엇입니까? 예루살렘에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천하각국으로부터 모여들었고, 그들이 성령의 강림으로 급하고 강한 바람소리 같은 것이 온 집 가득 찼고,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 눈에 보였으며, 사도들이 각 나라 말로 방언을 하니, 이 어쩐 일이냐고 놀라며 하나님의 역사로 받아들이는 상태에서 설교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두 번째 설교도 40년 동안 서보지도 걸어보지도 못한 채, 늘 성전 문 앞에서 얻어먹던 앉은뱅이 거지가 걷기도 하며 뛰기도 하니 모든 백성이 다 놀라며 기이히 여기며 솔로몬의 행각에 많이 들 모여 있는 바로 그때에 설교를 했으니 때가 잘 맞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저의 설교도 적시안타가 될 수 있겠습니다. 왜 인가요? 모여들었고 또 듣고자 마음을 비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온 성도들이 모여 마음을 비워 말씀을 듣고자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받아 좋은 열매맺는 우리 모두가 되l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하여 몇 가지로 나누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능력의 출처입니다(11-13)

본문을 통해 두 가지 명확한 사실을 찾아보게 됩니다. 첫째는 모든 백성이 병자인 그가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즉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그 사실은 40년동안 한번도 일어서본 일이 없는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 거지였으나, 그가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한 이적 자체의 명확성입니다.

두 번째는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쳐다보면서 베드로와 요한을 대단한 사람들로 쳐다보고 있을 때, 베드로가 분명하게 이적의 출처, 능력의 출처를 밝힌 사실입니다. 베드로가 뭐라고 했지요?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우리를 주목하느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즉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영화롭게 하셨는데 그 아들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분명히 밝혀주고 있습니다. 행14:8에 루스드라에 역시 나면서 앉은뱅이가 있는데, 바울이 일어나라 하므로 뛰어 걷게 되었지요.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바나바와 바울을 신으로 대접하여 이름도 쓰스와 허메라 부르고 제사장이 이 신들에게 제사지내려고 소와 화관을 가지고 왔을 때, 바울은 옷을 찟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 소리질러,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바로 이같은 헛된 것을 떠나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려함이라”고 분명하고 철저하게 인간에 돌리려는 영광을 하나님께 주님께 돌렸습니다.

고침은 나를 통해 되었지만 그 능력은 주님으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분명케 한 사실입니다.

 

[2} 죄의 지적(13-15)

베드로는 그들이 이미 유대인들로서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므로 나사렛 예수,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박게한 예수와 유대인들이 믿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분명히 깨우쳐주려고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이요, 그의 종인 예수를 영화롭게 했다고 해줌으로 나사렛 예수는 바로 유대인들이 믿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해줍니다. 빌라도는 그 예수가 죄 없음을 알고 놓아주기를 원했으나 오히려 살인자 바라바를 놓아주기를 원하고 죄 없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들라고 했음을 지적해주므로 죄 없는 생명의 주를 죽인 유대인들의 죄를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고 그의 이름을 믿음으로 구원케 되는 구세주로 삼으셨고 또 앞으로 심판 때 심판주로 오실 그리스도로 높이셨음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부활케 하시고 그가 예비하신 나라에 우리를 초청하게될 회복자 메시야임를 강조하므로, 유대인들이 믿는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오히려 살리셨고 승천케 했으며 하나님 우편에 앉도록 높이셨고 심판주와 만유를 회복하실 자로 높이신 것과는 대조적으로 유대인들은 오히려 살인자를 살려줘야 한다고 하여 십자가에 못박은 그들의 죄를 대조적으로 지적해줌으로 그들이 얼마나 사악한 죄인들인가를 깨닫게 해줍니다.

 

[3] 구원의 처방입니다(19-26)

19절에 보면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 죄 용서함을 받고 유쾌하게 되도록 처방을 줍니다. 유대인들 스스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고 자처하면서도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 되는 일만 저지르고 있으니 그런 교만과 악함을 버리도록 26절에서 권고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너의 씨로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는 약속, 그 복의 근원되는 씨가 바로 나사렛 예수이며,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을 받으리라” 하였는데, 그 선지자가 바로 나사렛 예수이시며, 그가 바로 언약의 자손이므로 그의 말을 듣고, 그를 믿는 믿음에 의해, 그의 이름에 의해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앉은뱅이가 걷게된 것이 바로 하나님RP서 영화롭게 하신 예수의 이름을 믿는 그 믿음이 이 앉은뱅이를 성하게 했으며,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완전히 낫게 했다고 강조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고 싶은 말씀은 루스드라에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바울에 의해 일으킴을 받았는데, 거기에 보면 그 앉은뱅이에게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있었다고 기록이 되어 있으나, 여기 3장에 나오는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의 경우는 16절에서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이 믿음이 앉은뱅이의 믿음인 것같이 오해가 되었으나, 문맥을 전부 살펴보니 앉은뱅이는 처음부터 돈을 구걸하는 것으로만 나와 있고 그가 믿었다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으므로, 16절의 믿음은 사도들의 믿음으로 보는 것이 더 옳겠습니다. 즉 중풍병을 앓고 있는 백부장의 하인이 순전히 백부장의 믿음에 의해 병이 낫듯이, 이 앉은뱅이는 사도들의 믿음 즉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한 사도들의 큰 믿음에 의해 걷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그에게 믿음이 생겨서 하나님을 찬미했음을 마음에 두어야 하겠습니다. 백부장의 믿음이건 사도들의 믿음이건 그의 이름을 믿고, 예수의 능력을 믿는 그 믿음이 구원시킨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이 주는 교훈은 무엇이며, 우리가 생활에 적용할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철저하게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야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조그만 잘나도 교만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더욱 주의 종들이라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그 종이 집사든 권사든 장로든 목사든 마찬가지입니다. 은사를 받았다고 처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차츰 자기가 잘나서 자기 능력으로 되는 줄 알고 교만해지기 시작해서 결국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는 자기가 하나님인 것같이 자기가 능력자인 것같이 하여 결국 능력자들이 타락해버리는 마는 것입니다. 꼭 그런 은사 아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이 많아졌다든지, 사업이 잘되었다든지, 병이 나았다든지, 건강하다든지, 지식, 사회계급, 명예, 그 무엇을 얻든지, 그것이 크든지 작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적은 물질을 얻어도 작은 영광을 얻어도 “하나님 나는 받을 자격이 없는데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철저한 은혜입니다. 감사합니다”하고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두 번째는 죄의 회개입니다.

구원은 죄의 회개 후에 이루어집니다. 우린 크고 작은 죄가 실생활에 따라다닙니다. 크리스챤이라 하면서 성령의 열매인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와 같은 이런 열매 맺지 아니하고 오히려 육체의 열매인 음행, 우상숭배, 술수와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와 분냄, 당짓는 것, 이단, 투기와 술취함, 방탕, 이런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 뭐가 하나님 앞에 나의 죄인지 죄를 스스로 지적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너무 물욕에 차있지 않은지, 솔직히 하나님보다 내 남편이 내 아내가 내 사업이 내 학업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지 아닌지, 하나님을 어느 자리에나 모시고 있는지, 열심히 있는지, 미워하지도 않고 원수 맺는 것 없는지, 너무 분내거나 남의 마음을 늘 상하게 하지는 않는지, 남을 너무 무시하지 않는지, 아직도 사주나 보고 점을 치므로 우상숭배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큰 것 작은 것 하나님 앞에서 죄를 늘 고백하고 용서받아야 합니다. 회개치 않으면 구원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세 번째는 복은 주를 믿음으로 온다는 것입니다.

천하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뿐입니다. 그를 믿는 자에 복 주시는 것입니다. 그는 분명히 우리에게 육의 생활을 하도록 필요한 것 공급해 주실 것이요, 날마다 편안한 삶을 살도록 평강을 주십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어 유쾌한, 평온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을 이름을 믿는 자에게 물질도, 육의 건강도 주어질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자녀인 우리에게 창조자이요 우주 만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믿는 자들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실 것이고 우리를 철저히 보호하시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모든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주신 복을 받고, 모든 복에 감사하여 크고 작은 기쁨을 그 영광을 늘 하나님께 돌리는 우리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