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박해와 전도의 열기 – 사도행전 4:1-31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를 고친 표적을 보고 모여든 군중들에게 이때라 생각하고 설교를 하였던 일로 설교가 끝나자마자 옥에 잡혀 들어가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교회에 첫 박해가 시작되었으나, 교회는 박해에 조금도 위축되지 아니하고 복음이 널리 전파되어 오늘 우리에게까지 구원의 역사가 소개되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신앙고백하며 하나님의 아들, 딸로서의 위치를 지키며 작은 그리스도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본문을 중심으로 교회에 어떤 핍박이 시작되었으며 이 핍박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교회는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소개받고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을 통해 크게 힘을 얻어 돌아가는 우리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을 중심으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사도들이 잡혀 옥에 갇힘(1-4)

주님께서는 살아계실 때 제자들이 받은 핍박이나 고난을 여러번 지적해주셨지만 나를 믿으면 병도 안걸리고, 사업도 잘되고, 늘 생활이 평탄하리라는 교훈은 한번도 주신 일이 없어요. 오히려 영적구원을 위해서는 육적 핍박과 시련이 따를 것을,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실 것을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그가 말씀하신 것을 보면 “사람들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말라. 그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고 미리 말씀하셨는데, 모처럼 겁쟁이 베드로가 성령을 받고 앉은뱅이를 고쳐주고 모인 무리에게 설교를 한 결과 많은 믿는 자들이 생겨만 반면, 또 시기하고 미워하는 그룹이 있어 잡아 감옥에 가두려는 것 같이 같은 설교를 듣고 많은 구원 얻는 자가 생기기도 하고 반대로 살기가 등등한 무리들도 있었던 것입니다.

믿는 자가 5천이나 되었다고 했는데, 이 설교를 듣고 5천명이 구원얻는 자가 되었는지, 첫 번 설교에서 3천명의 세례자가 나왔는데 이 숫자를 합한 것인지는 분명치 아니합니다만, 4절에 보면 5천이란 숫자는 남자의 수가 5천이나 되었으므로 믿는 자가 여자 수까지 합하면 1만명이나 1만 5천명이 될 것입니다.

2,3절에 보면 “부활하는 도 전함을 싫어하여 저희를 잡으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당시 대제사장 가야바가 사두개인이었습니다. 사두개인 당파는 부활을 믿지 아니하는데,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다시 사셨다고 부활을 강조하니 자기들 사두개인들의 믿음과 반대되는 것이요, 또 오히려 베드로의 설교 내용에 저희들이 십자가에 못박았던 나사렛 예수를 주님께서 살리셨다고 했으므로 그들을 주님을 죽게 한 살인자로 몰아세웠기 때문에 사도들을 붙잡았으나 심문하기에는 이미 늦은 시간이라 다음 날 재판하기 위해 옥에 가두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2] 사도들의 변호(5-22)

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상 사두개인들이 성질이 나서 사도들을 잡아 옥에 가두기는 했으나 막상 재판을 하면서는 내놓을만한 죄목도 없이 애매하였던 것 같습니다. 다만 재판관들은 두어달 전에 주 예수님을 재판하고 십자가에 못받았던 것 같은 재판장에서 똑 같은 재판관들이라 역시 이 사도들도 십자가에 달릴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한 살기가 아직 가시지 않는 분위기였습니다. 애메한 일로 잡아온 이 사도들에게 애매한 심문을 합니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느냐?”는 질문입니다. “이 일”이라니요? 어떤 특수한 일을 지적해서 묻지 아니하고 막연히 “이 일을 누구의 권세로 행하느냐”고 애매하게 묻고, 그 애매한 대답에 말려 나오는 사도들의 대답을 통해 오히려 죄목을 잡겠다는 의도인 것 같습니다. 주님의 재판장에서 3번이나 주를 모른다고 주를 부인했던 겁쟁이 베드로가 성령을 받고 성령께서 주님이 살아 계셨을 때 하셨던 말들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너희들이 공회에 잡히게되고 채찍질 받게 되어도 무슨 말을 할까 염려하지 말아라 너희 속에 있는 아버지의 성령께서 답하시리라.” 조금도 겁을 내지 아니하고 침착했으며 성령께서 말씀하시도록 기도하는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이 일”이라고 애매하게 물은 질문이 오히려 베드로에게 대답할 수 있는 여러개의 선택의 폭을 넓혀준 결과가 되어 애매한 “이 일”을 분명한 일, 즉 나면서부터 앉으뱅이가 일어선 표적에 관해 대답을 하게 됩니다.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앉은뱅이가 어떻게 구원을 얻었는지를 “너희들은 분명히 알아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고 하나님이 다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리라”고 담대하게 대답합니다.

11,12절을 보면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듯이 너희거 죽인 예수께서 우리가 살 수 있는 주춧돌이 되었으며, 천하에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이름으로 구원 얻을 이름이 없고 오직 앉은뱅이를 낫게 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어야 구원된다고 변명이 아닌 공격을 퍼붓게 됩니다.

13,14절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본래 배운 바도 없고 학식이 없는 자들인데, 속시원하게 재판관들보다 더 우세하게 대답하는 것을 보고 보통사람인줄 알았다가 이상히 여겼고 예수의 제자들인 것을 알았다고 했으며, 더군다나 병 나은 자가 함께 섰으니 재판관들이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 사람 모두에게 이 일을 하나님께서 하신 일로 소문이 나 있는데 아니라고 부인할 수도 없고 오히려 잡아가둔 일이 부끄럽게 되었습니다. 죄목을 씌우기는커녕 내보내기에도 궁색해졌습니다.

15,16,17절을 보면 재판관들이 의논합니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꼬? 이적이 일어난 사실을 우리도 부인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러니 더 이상 예수의 이야기나 이적 이야기가 퍼지지 못하게 사도들을 위협하여 누구에게든지 예수의 이름을 증거하지 못하도록 하자고 결론을 내렸던 것입니다.

18절에 보니 사도들을 불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경고합니다. 만일 이때 사도들이 목숨이 아까워 “예”라고 순종했다면 두 사람은 편했을지도 모르지만 복음 전파는 중지되고 우리도 예수를 모르는 상태에 이르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19,20절에서 사도들이 분명하고 똑똑하게 대답합니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대답해 보라. 너희 말 듣는 것이 옳으냐,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이 옳으냐?”고 답을 했습니다. 재판하려다 궁지에 몰린 재판관들은 백성들 앞에서 그저 쩔쩔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저 그 이상 아무 것도 못하고 위협하고 풀어주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앉은뱅이가 나은 일로 백성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데, 이 일을 부인하거나 이 일로 사도들을 더 이상 괴롭히면 백성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3] 사도들의 기도(23-31)

베드로와 요한은 공회에서 승리를 거두고 나왔습니다. 위함 속에서도 전혀 전도 의욕이 꺽이지 않았으며, 꼬 그렇다고 그들은 재판관을 깔보고 교만하지도 않았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다른 제자들에게 모든 된 일을 보고하고 12사도가 함께 기도하게 됩니다. “주여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저놔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무리들이 살기등등하여 예수의 도 전함을 방해하고자 하니 그들의 위협이 수그러지게 해달라는 것과 그 위협 속에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핍박하는 자들 원수들이 죽게 해달라고 핍박자에게 피해가 주어지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지 아니했습니다. 위협을 전혀 존재치 않게 해달라고 위협 면제 기도를 한 것도 아닙니다. 너무 핍박이 심하여 전도를 포기하지 않도록 위협을 좀 줄여주시고, 또 어떤 위협 속에서도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합심하여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은 통해 우리가 받은 교훈은 무엇이며 우리 일상 신앙생활에 적용할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믿는 자에게 고난이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교훈을 믿는 자에게 핍박과 어려움과 고통이 따를 것을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는 이유가 믿음으로 모든 어려움을 다 피하게 되고 육적 번영을 이룰 것을 믿고 교회에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에게 어려움, 핍박, 또 고난이 있을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어려움과 핍박 그리고 고난이 천국을 소유할 유자격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는 천국이 저희 것이라는 산상교훈의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평안과 평강을 위해 우리가 기도하지만, 하나님께서 도리어 믿음의 시련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시는 모든 고난을 감사히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잘 믿으면 믿을수록 어려움이 더 커지게 됨을 아시기 바랍니다. 적당히 믿으면 어려움이 없어지게 됨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믿는 자에게 고난이 따르나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크게 유익이 되고 모든 시련도 다 피할 길을 주시게 될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 뭐가 따른다고요? 고난, 어려움, 핍박. 그러니 겁내지 마십시오.

 

둘째, 죽음을 이긴 신앙입니다.

교회 간 사람 전부 옥에 가둔다면 어떻게 될까요? 전도자들 전부 옥에 가둔다고 전도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는다면 어떨까요? 어떻게 보면 그런 강한 핍박이 있으면 오히려 구원 얻는 자가 늘어날 것 같아요. 주님을 죽게 한 자들의 살기 등등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한 베드로와 요한 대단합니다. 또 옥에 갇혔어도 풀어달라는 구구한 변명하기보다는 부활의 도를 전한 이유로 잡아 가둔 재판관들 앞에서 당당하게 다시 주님의 부활을 전하고 재판관들에게 그리스도를 죽게 한 죄를 돌리는 것 대단합니다. 목숨을 조금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그리스도 전파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그들의 신앙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위협하며 다시는 복음을 전하지 말라고 경고해도 하나님 말씀 듣는 것이 너희들 말 듣는 것보다 좋다고 답변한 것은 놀랄만합니다.

겁쟁이 베드로가 어찌 이렇게 변화되었습니까? 나약한 베드로가 어떻게 이렇게 강한 자가 되었습니까? 성령이 함께 했습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므로 나약했던 우리가 미지근한 우리가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다 바쳐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므로 베드로와 같이 우리도 순교할 각오한 믿음을 가질 수 있음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오로지 전도를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기도가 가능할까요? 교회 대항 친목 배구시합에서 우리 교회가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마음이실까요? 내 원수가 넘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어떻게 답하실까요? 해와 비를 선인과 악인에게 고루 주시는 하나님 그분의 답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내 육신의 삶만을 잘 살게 해달라는 우리의 기도와 우리들의 수고를 보고 하나님께서는 뭐라 하실까요?

우리의 기도 내용이 변경되어야 합니다. 내 교회가 이기나 이웃 교회가 이기나 우리가 천국생활, 하늘나라 가는데 아무 변화를 주지 못합니다. 원수가 잘 살던 넘어지던 내 천국 생활과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좋은 집에 살던, 나쁜 집에 살던, 어디에서 살던 마찬가지입니다. 이 학교 다니던, 저 학교 다니던, 대학원을 가던, 초등학교만 졸업하던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는 기도 제목이 무엇입니까? 그 기도에 대해 주님은 하나님은 어찌하겠습니까? 100명의 교인이 50명밖에 입학이 안되는 좋은 학교에 다 입학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면, 응답해 달라고 울어 보채면 주님이 뭐라 하시겠습니까? 사업에 성공을 위해, 학교를 위해, 결혼을 위해, 건강을 위해 다 기도할 수 있습니다. 다만 아버지의 뜻대로 해달라고 기도할 뿐 아니라, 그 기도로 1년 내내 기도가 연속될 것이 아니라, 기도의 첫째는 복음을 전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복음을 전할 때 더 효과적으로 전할 분위기를 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해달라는 기도인데, 그 기도는 복음전도요, 복음전도를 위해서는 내 욕심 채우는 기도는 많이 사양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부터는 기도의 첫머리 순서를 바꾸시어 달콤한 말로가 아니라 진심으로 복음전도 할 수 있게 힘주시고, 기회주시고, 복음 전도할 수 있는 좋은 분위기 주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게 필요하고, 내가 구하고 싶은 내용을 간구하되 오로지 하나님의 뜻대로 따르겠다는 자세로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우리 모두에게 새롭게 맡겨진 전도의 임무를 위해 내 시간과 내 재물과 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고, 심지어 목숨의 위험까지도 겁내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내 영혼과 내 육체를 책임져 주실 것을 확신하고 오로지 전도 위해 기도하는 우리 성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