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다와 욥바에서의 베드로 – 사도행전 9:32-43

사도행전은 글자 그대로 사도들이 어떻게 행동했는가에 대한 기록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기록된 내용을 보면 베드로와 바울의 행전이라고 이름을 바꿔도 좋을 만큼 바울과 베드로의 활동으로 국한되어져 있습니다.

1장부터 10장까지에서 9장만 빼고는 주로 베드로의 활동을 중시한 말씀이고, 11장부터 마지막 28장까지는 바울의 행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10장까지의 베드로의 활동을 보면 그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천국열쇠를 사용하게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있으며, 그가 해한 몇 가지의 이적을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천국열쇠 사용이란, 주님께서 천국을 선포했는데 그 천국에 들어가도록 메시지를 전했고, 그 복음을 받고 회개하고 주께 돌아오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오순절에 3천명을 회개시키듯 유대인에게 천국열쇠를 사용하셨고, 다음은 8장에서 보는 대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사용했고, 또 다음 주에 보게될 10장의 이방인에게 사용한 기록이 나옵니다. 3장에서 베드로가 성전 미문의 나면서 앉은뱅이를 고친 이적이 소개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9:32-43까지 에서는 베드로가 핍박으로 인해 각지에 흩어진 성도들을 돌아보러 다니는 선교여행 중에 일어난 2가지의 이적을 소개해주므로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된 2가지의 이적을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1] 룻다에서 8년된 중풍병자를 일으키신 이적입니다.

31절에서 보면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두루 다녔을까요? 성도를 돌아보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또 기회되면 복음전하려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디에 왔다고요. 룻다. 룻다는 지금은 폐허라고 합니다. 이 룻다는 예루살렘에서 걸어서 하룻길(약40km)이며, 아름다운 사론이라는 비옥한 평야에 있는 마을이었다고 합니다.

이 룻다에 도착하니 애니아라는 8년된 중풍병자가 있어서 베드로가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하니, 곧 일어났다고 기록되었으며, 그 결과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애니아에 대한 소개는 더 이상 없습니다. 얼마나 잘 믿었는지, 얼마나 교회 봉사했는지에 대한 얘기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애니아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받으시려고 베드로를 그에게 보내시어 불치로 생각하고 포기하고 있는 애니아의 고통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낫게 하시며, 그 결과로 많은 이들이 회개하고 주께 돌아오도록 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2]욥바에서 죽은 다비다를 살리신 이적입니다.

욥바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어기고 다시스로 도망가느라 요나가 배를 탔던 곳입니다. 베드로가 욥바에 있는데, 같은 욥바이지만 6마일쯤 떨어진 곳에서 성도들의 초청이 있었습니다. 지체하지 말고 급히 와달라는 초청에 응하여 베드로가 가보았더니 다비다라고도 하고 도르가라고도 하는 여제자가 죽어 이에 장사지내기 위해 시체를 씻고 장례용 향유를 발라둔 이후였었습니다. 물론 베드로는 그들로부터 무엇을 해달라고 요청받은 기록은 없으나 하나님의 지시가 그를 살리는 것이었는지 모든 사람을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고 시체를 향하여 “다비다야 일어나라”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았다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손을 내밀어 일으키고 성도들과 과부들을 불러 들여 그의 살결을 보였다고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온 욥바 사람이 보고 많이 주를 믿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 다비다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간단히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름이 다비다 또는 도르가인데 도르가의 뜻이 사슴입니다. 36절에 여제자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충실한 일군이었나 봅니다. 또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았다고 되어 있고, 37절에 그가 병들어 죽었는데, 모든 과부가 울며 도로가가 살아 있을 때 과부들을 위해 지어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다비다는 약한 자를 도울 수 있는 어늦 어도 재력이 있었던 것 같고, 과부들이 그의 죽음을 무척 애도하는 것 같이 과부들을 끔직히 돌보았던 것 같습니다. 이름 그대로 용모와 내모가 사슴같이 아름다웠던 여인이었나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본문을 통해 우리가 얻은 교훈은 무엇이며, 우리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겠습니까?

 

첫째, 이적의 목적은 하나님께로의 회복을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병낫기 위해 예수 믿는 경우도 있고, 사업 시작해 놓고 사업 잘되기 위해 예수 믿기 시작했고, 아이 없는 집 아니 낳게 해달라고 예수 믿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지어 죽은 자 다시 살았다해도 또 얼마 있으면 죽게되므로 다시 살았다고 큰 의미가 없으며, 죽을 병자가 이적에 의해 살아났다 하더라도 조금 지나면 사람은 죽게되므로 큰 의미가 없으며, 재산이 늘어났어도, 3대 독자를 하나님의 힘에 의해 얻었다 하더라도 1세대 지나고나면 있는 것 없는 것의 차이가 전연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적의 목적은 이적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요, 이적을 통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회복시키고, 지식이 회복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계속 관계를 회복시켜주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는 형상의 회복인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많은 이적들이 있는데, 이적이 성경에 기록된 이유가 옛날에도 일어났으며 지금도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심어주기 위함보다는 그 이적들을 보고 비록 내 몸이 성하지 못해도, 내가 부자가 아니라도, 자식은 없어도 예수 잘 믿고 하나님 아들 딸답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 이적을 눈으로 본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내 속에서 역사하실 그분의 능력을 믿고, 죽은 자를 살리시듯 우리를 부활케하실 하나님을 잘 믿으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중풍병 든 자 고침 받고, 마음으로 죽은 자 다시 살아서 주님과 늘 동해하는 성도들이 되셔야 합니다.

 

두 번째, 사도들의 이적의 특징은 지금 은사집회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하니 곧 일어났으며,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살아난 이적입니다. 그 즉시, 완전히 낫도록 명령받은 자 모두가 일어났습니다. 지금 은사집회에서 안수자가 안수하는 모든 자 모든 병이 낫습니까? 완전히 낫습니까? 즉시 낫습니까?

물론 하나님이 원하시면 지금도 죽은 자 살리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은사 받았다고 하는 분들이 사도들이 했던 그것을 그대로 우리도 할 수 있다고 말은 하나 그대로는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모든 기록이 되어있으므로 꼭 그것이 아니라도 성경을 통해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는 그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충분히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시대의 기적이 지금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것을 보기를 소망하는 사람은 성경을 경솔히 대한 결과가 됩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며, 죽은 자 살리시며, 38년 된 병자라도 살리시는 분으로 믿습니까? 10년 된 내 병을 낫게해주시지 않느다해도 하나님은 능력자이십니다. 그는 내 영혼을 구원키 위해 독생자 예수를 보내셨고, 십자가에 우리를 위해 돌아가시게 했습니다. 육은 점점 시들지라도 영은 날로 새로와, 주님 오실 때 하나님 예비하신 영광에 이르도록 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모두 베드로가 되고 모두 도르가가 되어야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같이 두루 다닐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집 저집 두루 다니며 성도 가정 격려하고 기회 되는대로 말씀 전하는 위로자와 전파자가 되고 도르가와 같이 기회 있을 때 선한일 많이 하여 그가 죽었을 때 많은 성도들이 눈물 흘리며, 그가 살았을 때의 선행을 기억하여 베드로에게 모두 소개하듯 우리들의 행실을 성도들이 하나님께 고하는 그런 좋은 마음가진 성도들이 다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병고침을 받기 원하십니까? 육신의 병 내놓고 기도하려니와 더 중요한 것은 마음에 어떤 병이 있는지 다 내놓고 능력있는 예수님 통해 다 고침 받기 원합니다. 앉은뱅이가 걸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서 하나님과의 관계 온전히 갖고, 이웃에 선한 일 행하며 기회 되는대로 말씀 소개하는 충실한 베들와 도르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넬료의 개종

행 10:1-48

 

 

지난 주에는 베드로를 통해 룻다에서 8년된 중풍병자 애니아를 일으켰고, 욥바에서 다비다라고 하는 여제자를 죽음에서 살린 사역을 통해 교훈을 받았습니다.

오늘도 베드로를 통해 일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생각하며 주신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긴 본문을 크게 3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보겠습니다.

 

[1] 고넬료의 소개

1,2절에서 고넬료는 가이사랴에 사는 이달리아 군대 백부장으로 소개되고 있으며,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며, 하나님께 항상 기도한 사람으로 소게되었습니다. 이달리아 사람임에 틀림없는데 이방인으로 유대교를 믿게된 것 같습니다. 군대 지휘관으로서, 이방인으로서 유대교로 개종되는 것은 쉽지 않겠는데 그 중에서도 믿음이 좋아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일상생활에서 믿음의 외적증거로는 구제하고, 내적 증거로는 항상 기도하는 믿음과 그 행실이 훌륭한 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3절에 보니 그가 하루는 기도하는데, 환상 중에 천사가 나타나서 말씀하기를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하나님의 기억하신 바 되었다는 사실과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초청하라는 말씀을 주고 천사는 떠났고, 고넬료는 즉시 집안 하인 두 명에 호위병 하나를 딸려 환상을 설명하고 욥바로 떠나 보냈습니다.

24절에 보니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렸다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무엇을 기대하고 누구를 기다렸을까요? 33절에 보니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다음 주에 강론할 사도행전 11장 14절을 보면 “그가 너와 네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와서 구원을 얻게 할 결정적인 말씀을 주실 것이라는 천사의 말을 듣고 자기 친척과 친구들과 함께 들으려고 초청한 것입니다.

22절에는 고넬료의 하인들이 베드로를 만나 고넬료에 대해 소개하기를 고넬료는 의인이며 정직한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는 사람이라고 소개되며, 25절에는 베드로가 자기 집에 들어올 때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대할 때 발 앞에 엎드려 절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 베드로의 소개

고넬료가 사는 가이사랴에서 베드로가 있는 욥바까지는 약 30마일쯤 된다고 합니다. 걸어서 하룻길이 넉넉하지요? 고넬료가 보낸 사람이 걸어 이틀날 베드로가 사는 성에 가까이 갔을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러 지붕에 올라갔다고 9절에 소개되며, 시간은 6시더라 했으니 낮 12시가 되겠습니다.

왜 지붕에 올라갔을까요? 기도하는 것을 남에게 보이려고? 아닙니다. 한적한 방, 기도하기에 적합한 장소가 없었나보지요. 그리고 지붕은 오히려 남의 눈에 가려진 곳이라서 올라갔겠지요. 12시쯤 되었으니 배가 고파 음식을 남이 준비하고 있는 그 시간이었는데, 기도 중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았는데 큰 보자기 같은 것이 네 귀를 매달아 땅에 내려왔는데, 그 보자기 같은 것에는 율법에서 먹지 말도록 지시한 더러운 짐승인 기는 것, 공중에 나는 새들이 있었고, 13절에 보니 소리가 들리기를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고 하나 베드로는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음식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나이다”고 대답했는데,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였는데,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릇이 곧 하늘로 올라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 환상이 더러운 짐승을 먹으라는 음식이야기가 아니고 이방인도 복음을 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자격을 주었다는 뜻으로 해석은 되지만, 그 환상의 뜻을 속으로 더 깊게 생각하고 있는 그때에,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 문밖에서 불러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계십니까?”라고 하는 그때에, 또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어떤 사본에는 세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깨 가라 내가 저희를 보내었느니라” 하므로 베드로가 내려가 너희가 찾는 이가 바로 난데 무슨 일로 찾느냐고 하니, 고넬료의 하인들이 대답하기를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너를 집으로 초청하여 말을 들으려한다고 하니, 그 사람들을 맞아들여 하룻밤을 자게 하였음을 22절에서 보게됩니다.

고넬료 가정의 구원을 위해 천사를 고넬료에게 보내시고 베드로에게 보내시되 시간을 잘 맞추어 보내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사실 우리 모두에게도 똑같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23절에 보니 이틀날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가되 욥바 두어형제도 함께 갔다고 기록되어있는데, 11장 12절에 보면 6형제가 함께 갔다고 정확한 숫자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유대인으로 이방인과 접촉하는 것이 율법에 어긋나나 분명히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셨다는 지시가 있었으므로 이것은 하나님의 보내신 일이 틀림이 없고, 이 일에 증인으로 있어야할 숫자 2의 3배되는 6명을 데리고 함께 갔던 모양입니다.

고넬료의 가정에 들어가 고넬료로부터 베드로를 청하라는 환상에 대해 직접 듣게 되므로 모든 의심이 다 사라지고, 드디어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지는 역사적인 베드로의 설교가 아니 베드로가 받은 천국열쇠를 사용하게 됨을 소개받게 됩니다.

 

[3] 베드로의 설교와 고넬료 가정의 구원입니다.

34절에 보니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심을 깨달았느라고 서론을 말하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그리스도에 대해 소개하게 됩니다. 이미 고넬료도 나사렛 예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바와같이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어 병든 자를 고치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이 일에 우리가 증인일 뿐 아니라, 또 앞으로 재판장으로 오실 예수를 전도하도록 전도의 사명을 받았는데, 저를 믿는 자, 즉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다고 오순절에 했던 설교의 요지를 전할 때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 방언을 하며 오순절에 유대인이 받았던 똑같은 체험을 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때 베드로가 고백하기를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줌을 금하리오” 하고 고넬료의 가정이 세례받도록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 이방인에게도 구원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오순절에 3천명이 세례 받은 때로 부터 10장 고넬료 가정이 세례 받은 시기까지는 거의 10년이 걸렸는데, 이방인에게 복음이 그렇게 어려운 관문을 통해 전달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고넬료의 개종을 소개하고 있는 본문이 우리게게 주는 교훈이 무엇일까요?

 

첫째, 고넬료의 좋은 신앙의 모범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는 로마군대 백부장이라는 유대교에 반대되는 신분으로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가 개종 후 군대에서 나왔는지 기록은 없지만 직업을 버려야하는 신앙을 받아들였고, 또 자기 뿐 아니라 자기 하인에게까지 경건한 생활하도록 신앙의 영향을 미친 사람입니다.

기도의 사람, 구제의 사람으로 소개되어 믿음과 행실의 일치를 보여주며, 천사의 지시에 즉시 순종한 순종의 사람이요, 베드로가 주는 모든 말씀을 듣겠다는 말씀듣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주의 종을 최대의 예우를 했던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그가 유대교인으로 그리스도를 소개받고 세례받아 그리스도인이 된 것같이 말씀을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 순종하는 복된 신앙인이었습니다. 말씀을 듣도록 이웃 친구, 친척까지 초청한 전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기도의 사람, 구제의 사람, 말씀 받기 좋아하는 사람, 말씀 순종하는 사람, 말씀 전하는 자 존중하는 사람, 더 나아가 전도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복된 사람이요, 하나님 경외하는 사람이요, 주님 오실 때 상 받을 사람입니다.

 

둘째, 구원의 문은 만민에게 열려 있다는 믿음입니다.

베드로의 고백대로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입니다. 인종도, 국가도, 분벌도, 재산도, 신분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유대인도, 이방인도, 백인도, 흑인도, 정직한 자도, 부정한 자도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아니한 자기 죄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므로 누구나 공평하게 하늘나라의 모든 상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주님께서는 천국문에서 아무 것도 우리에게 신분 묻지 아니할 것입니다. 돈이 얼마 있느냐, 어느 학교 나왔느냐, 자녀가 몇이냐, 어느 지방 출신이냐 묻지 아니할 것입니다. 무슨 직업 갖고 있었느냐, 죄인이었다, 의인이었다 과거는 묻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 주 예수를 나의 구세주로 믿고 내 죄를 용서하시고 나를 영원히 구원해주실 영생을 주실 분으로 믿음으로 구원의 문제는 해결된다는 사실입니다. 나같은 죄인도, 나같이 부족한 사람도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시고, 천국 상속자로 삼아주시고, 내 허물 전혀 묻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와 찬양으로 돌리시기 바랍니다.

 

셋째, 구원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고넬료는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온 집안으로 경건하고 하나님을 경외토록 한 사람이었습니다. 구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기도와 그의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죄사함 받아 구원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믿음의 행위는 모범적이었으나 결정적으로 구원에 이르는 정문에 이르지 못했던 것입니다.

11:1에 보면 베드로가 와서 고넬료와 온 집의 구원얻을 말씀을 제게 이르리라고 했는데, 고넬료는 베드로로부터 그리스도를 소개받고 세례받아 구원을 얻게된 것입니다.

이 말씀은 구원에 이르지 아니한 많은 경건의 사람, 많은 구제의 사람, 많은 하나님 경외하는 종교인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믿음과 구제와 하나님 경외해도 구원되지 못한 신앙인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구원이란 어떤 경건이나 구제 등, 어떤 행위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해서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경건이 있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지만, 그가 구원되지 못하다가 아나니아로 부터 그리스도를 소개받고 세례받아 구원되었으며, 에디오피아 내시도 경건이 있었고 하나님을 믿고, 말씀을 열심히 보았지만, 그의 행위로 구원될 수 없었고 빌립 통해 예수를 알고, 예수를 영접해 세례받고 구원문제 해결된 것과 똑같습니다. 세상에 구원의 문까지로 와있으나 구원의 문에 들어서지 않는 신앙인이 있을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성경지식, 경건, 구제로 자기 정당화시킬 것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여 많은 물 속에 자기 옛몸을 묻어버리는 침례받아 바울과 내시와 고넬료와 같이 구원의 문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를 좋은 신앙 가지시어 구원의 자리에서 준비된 모든 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