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에서 벗어난 교회 – 사도행전 11:1-18

지난 주에는 고넬료의 가정이 세례받고 구원얻은 사실을 통해 교훈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고넬료의 가정에 가서 복음을 전했다는 서문이 예루살렘 교회에 전해져 교회의 문제가 되었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어떻게 그런 일이 있게 되었는지 사실을 그대로 전해줌으로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도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결론을 맺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봉독한 본문 11:1-18을 가지고 크게 3부분으로 나누어 말씀을 살펴보고,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우리 생활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함께 말씀을 받아보겠습니다.

 

[1] 초기 교회의 전통과 편견(1-3)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비난은 그들로서는 당연한 비난이었으리라고 봅니다. 왜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갔으며,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었느냐고? 그들의 지켜온 전통을 어겼느냐고? 모세의 율법을 어겼느냐고? 지적한 것입니다.

초기교회 성도들은 사실상 순수한 기독교의 신앙을 갖기가 어려웠던 시기입니다. 이미 모세 율법을 지켜왔고< 또 수많은 전통을 지켜왔던 유대교인들 이었으므로, 기독교는 유대교의 연속이요, 기독교의 가르치는 교훈과 유대교의 가르치는 교훈을 훌륭한 가르침으로 받아들여서, 그들은 글자 그대로 유대교식 기독교를 믿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철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편견이란 할례받지 않은 사람과는 접촉도 하지 않게되므로 누구나 할례받아야 하고, 모세의 율법이나 의식을 지켜야하고, 이런 절차 밟은 사람은 유대인과 같은 자리에 서게된 사람이고, 이런 사람을 기독교인이 될 수 있는 자리에 세게된 것으로 믿고 있었는데, 베드로는 모세의 율법과 전통을 완전히 무시하고 할례받지 아니한 집에 들어갔으며, 더군다나 함께 음식을 먹었으니 큰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유대교에서 개종한 교인들의 믿음에 큰 충격이요, 큰 혼란이 오게된 것입니다.

 

[2] 만민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뜻(4-17)

베드로는 자기가 지적 받은 율법과 전통의 거역이 어떻게 이뤄지게 되었는지 지난 주 10장에서 나타났던 사실을 명확히 소개하게 됩니다. 지난 주에 한 것이므로 우리 함께 생각해봅시다.

베드로가 기도할 때 비몽사몽간에 본 환상이 무엇이었지요? 네 귀가 매어진 큰 보자기 같은 것이 하늘에서 내려왔고, 거기에는 레위기 11장에 기록된 먹어서는 안되는 음식이 있었고, 하늘에서 소리가 있으되 “이것을 잡아먹으라”했지요. 베드로가 뭐라고 대답했지요? “주여 그럴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지 아니한 물건은 언제든지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그러자 하늘에서 뭐라고 소리가 또 있었지요?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말라.” 바로 그때 누가 베드로의 집 앞에 와있었던가요>? 고넬료가 보낸 사람. 그때 바로 그 시간에 성령께서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셨고, 6명이 함께 갔다고 했지요. 그 집에 들어갔더니 고넬료가 말하기를 천사가 고넬료에게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로르를 청하라고 지시했다고 했지요. 천사가 무슨 말을 이르리라고 말했지요? “너와 네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그때 베드로가 설교 시작할 그때에 무엇이 내렸다고 했지요? 성령이 내렸고 방언했다고 했지요. 베드로는 “이 성령을, 오순절에 유대인들에게 내렸던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저희가 누구입니까? 고넬료의 가정, 즉 이방인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고 사실을 그대로 보고한 것입니다.

죄를 지적한 자들이 왜 세례를 주었느냐고 세례에 관한 지적은 하지 않아서인지 세례를 베풀었다는 보고는 빠져있습니다.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고 결론을 맺어, 그것은 철저히 인간 베드로의 생각은 없고 순전히 하나님의 뜻에 의해 행동할 뿐이었다고 베드로의 사역을 소개하게 됩니다.

 

[3] 하나님의 뜻에 대한 교인들의 긍정적 반응(18)

본래 베드로가 유대교의 보수적인 면이 그들에게 인정되었을 것이고, 또 베드로가 정직한 사람이었음이 잘 인식되었을 것이므로 베드로의 보고를 들은 예루살렘 교회 교인들은 그 이상 따지고 말을 만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누가 막겠느냐는 진실된 고백의 결론을 듣고, 그들도 그가 행한 일을 수긍할 수 있어서, 베드로를 공격하고 비난했던 그들이 18절에 보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 입에서의 고백이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라고 하나님의 깊은 뜻을 그제야 이해한 듯 고백이 나온 것입니다. 물론 바울이 갈라디아서 등 여러 교회에 보낸 편지를 보면 교인들 중 일부는 끝까지 할례를 받아야한다는 율법의 속박으로 자유 억제하려 했음이 행 15장에도 나오고 있는데, 대부분은 수긍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의 교훈이 신앙생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도록 교훈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여기서 얻은 교훈을 우리 일상생활에 어떻게 실천해 나가기를 하나님께서 요구하십니까?

 

첫째, 만민에게 개방된 구원의 문을 더 새롭게 인식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택함 받은 백성이었다는 것은 단계적이요, 과도기적인 것이요, 현재는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구원의 문으로 들어오도록 초청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란 어느 나라 시민이든 받아준다는 말입니다. 조상이 누구인지 그 씨족도 혈족도 구별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양반, 상놈, 족보도 구별 없습니다. 재산의 유무나 학벌에 상관없이, 전과에 상관없이, 나이에 상관없이 그리스도를 자기의 구세주로 영접하면 누구든지 구원될 수 있도록 개방하셨다는 말입니다. 세상에서는 편견이 있을 수 있지만, 구별해보려고 애를 쓰지만, 아무 것도 차별하시지 않고 그의 아들로 딸로 삼아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다운타운의 길거리에서 잠을 자는 거지, 빌딩을 몇 개 가진 거부도 함께 영광의 나라에 똑같은 자격으로 들어가며, 유대인 중 유대인이든, 백인 중 백인도, 새까맣던 노랗던, 몹시 잘생기던 똑같은 문으로, 똑같은 좌석에 앉게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는데 어떤 편견도 제한도 있을 수 없고, 그 누구도 천국좌석권 사재기가 있을 수 없어요. 공평 공정의 저울에 의해 들어가는데, 그 저울은 오로지 믿음만 보고, 하나님을 얼마나 의지하는 지의 양을 재는 것 뿐이요, 큰 죄인도 작은 죄인도 들어가게 되므로 사람의 문으로, 사람의 편견으로 구원의 문을 제한해서는 안됩니다.

 

두 번째, 인간의 잘못으로 구원의 문을 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이방을 하나로 합하기 위해 성소와 지성소의 휘장을 찢어 하나로 했습니다. 또 죄인인 이방인을 깨끗케 하시고 문을 활짝 열어주셨는데, 열린 문을 인간의 편견과 실수로 닫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편견과 우리의 눈을 하나님의 눈과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꿔나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인은 구원 못얻을 줄 알았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참뜻을 깨닫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듯이 그렇습니다.

인간은 각자의 편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내 고집으로, 내 지식으로, 내 습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입을 벌린다면 내 이론이 풍부하게 전달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내 말을 뱉어내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내놓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나는 인간을 차별할 수 있고, 남이 구원되는 것 배아플 수 있지만 하나님의 눈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눈과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눈과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길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떤 형태로던지 잘 배워 깨닫지 못한 진리를 하나 하나 깨닫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문을 만민에게 열어 놓았지만 인간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을 잘못 깨달아 구원의 길에 들어서지 못한다면 역시 구원의 문을 가로막은 결과이므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하나님의 뜻을 거스린 결과가 됩니다.

구원의 신학이 학자마다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제시한 구원의 길을 따라야하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성도들이 구원을 얻게된 그 길을 우리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만민에게 열린 구원의 문에 내가 들어가지 않으면 열린 문은 나와 상관이 없습니다. 3천명이, 내시가, 사울이, 고넬료의 가정이, 빌립보 간수가 구원된 대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많은 물 속에 내 옛 몸을 장사지내고 죄사함 얻어 구원얻어야 하며, 성도들의 성별된 생활을 해야하는 것입니다.

만민에게 열린 구원의 자리에 나도 들어가도, 이웃도 함께 들어가도록 손을 이끄는 우리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