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디옥 교회의 모범 – 사도행전 11:19-30

지난 주에는 복음이 유대인에게만 전해져야한다는 유대인의 편견 대신 복음은 이방인에게도 전달되어져야 하는 하나님의 참된 구원의 뜻을 베드로의 체험을 통해 배웠고, 만민이 구원되도록 우리들의 좁은 편견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구원의 넓은 뜻을 받아들여지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오늘은 본문을 중심해서 안디옥 교회의 모범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하기 원합니다. 본문을 4부분으로 구분하여 본문이 주는 교훈과 우리에게 왜 이 본문이 주어졌는지 우리가 행해야할 적용을 찾아보겠습니다.

 

[1] 안디옥 교회의 설립(19-21)

본문을 보면 “스데반의 일로 흩어진 성도들 중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읻고 주께 돌아오더라” 고 기록되어 있어 안디옥에 드디어 교회가 서게된 것을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19절 처음부분에는 유대인에게만 전했다고 되어 있는데, 20절 중반을 보니 헬라인에게도 전해졌는데, 누가 전했느냐 하면 핍박 때문에 흩어진 성도 중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전했는데, 주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교회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어디에 교회가 섰다고요? 안디옥. 안디옥에 대해 좀 알아봐야겠습니다. 이 안디옥은 행 13:14의 비시디아 안디옥과 구별되어야 하는 시리아의 안디옥입니다. 성경에서 우리가 구별해야 할 안디옥이 비시디아 안디옥과 시리아 안디옥인데, 이 시리아 안디옥은 인구가 50만 정도로 로마제국 3대 도시 중 하나입니다. 3대 도시는 이탈리아의 로마, 에집트의 알렉산드리아, 그리고 이 시리아의 안디옥입니다. 육로, 해로의 교통의 요지였으며,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도시 중앙로 7Km인데, 대리석으로 깔렸고, 길 양쪽 대리석 기둥이 줄잇고, 고대세계에서 밤거리 밝힌 도시는 이 안디옥 뿐이었다고 합니다. 사치스런 도시였으며, 또 고대 모든 신들이 숭배된 부정한 도시였습니다. 이 도시에 사도들도 아닌 평범한 성도들이 들어와 그 도시의 장엄한 건물에 위축되지 아니하고, 또 그런 도시에 산다는 사실의 거만과 자존심에 굴하지 아니하고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함께 하심으로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왔고 교회가 세워졌는데, 바로 이 교회가 세계선교의 기지가 된 것을 우리가 보게됩니다.

이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에 의해 세워진 이방인의 첫 교회이며, 예루살렘 교회는 유대인에 릐해 세워진 유대인의 첫 교회였으며, 예루살렘 교회는 안디옥 교화의 모교회라 할 수 있는 교회입니다. 예루살렘 도시는 종교적, 보수적, 폐쇄적인 반면, 안디옥 도시는 세계적, 진보적, 개방적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이방전도의 근거지가 된 것입니다.

 

[2] 격려와 위로(22-24)

본문에 보면 모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냈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흩어진 성도들에 관심을 갖고, 그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새로 세워진 약한 교회를 돌보기 위해 바나바를 보냈다고 했습니다.

바나바에 대해 성경은 그를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그는 구브르에서 태어난 레위족인데, 그에게 밭이 있어 팔아 사도들에게 바쳤던 사람이지요. 그 이름을 번역하면 위로자, 권면자, 착한 사람,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바나바가 와서 하나님의 하신 일을 보고 기뻐하였으며,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있으라고 권면했다고 했으며, 그, 결과로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즉 교회가 성장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7명의 일군으로 뽑힌 사람 중에는 안디옥 출신 니골라가 있었음에도 바나바를 파송했는데, 이를 눈여겨본다면 이 안디옥에 누가 복음을 전했는가하면 구브르와 구레네 몇 사람이 복음을 전했다 했는데, 바나바는 구부르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하나님께서는 그가 가장 적절한 인물이었나 봅니다. 비판의 사람보다 위로의 사람, 격려의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사울이 예루살렘에 첫 방문했을 때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울을 충분히 신용하지 않을 때, 바로 이 바나바가 사울이 진실된 제자임을 보증했던 일이 있는데, 바나바는 이름 그대로 위로자요, 격려자요, 권면자인 것입니다.

 

[3] 가르침과 훈련(25-26)

본문을 보니 바나바는 동역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멀리 다소에 있는 사울을 찾아가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1년 동안 교인들을 철저히 가르치고 훈련을 행한 기록을 보게됩니다.

26절 마지막에 보면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 그리스도쟁이, 분명한 소속을 말한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에게는 유대교의 분파 같은 그런 흐릿한 구분으로 인식되어졌지만, 오히려 이방에서는 이방종교 이교도와 분명히 구별된 새로운 종교로서 인식되어지도록 성도들이 그리스도인답게,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그리스도께 속하여 생활하므로 불신자들이 붙인 이름같기도 하며, 이 이름을 성도들도 스스로 사용한 것 같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이란 어휘가 세 번 나옵니다. 사도행전에 두 번, 베드로전서에 한 번 나옵니다.

바나바가 자기보다 못한 사람 데려다가 자기 밑인 사람 만들려하지 않고, 자기보다 유능한 사울을 데려다 공동목회를 한 자체나 우리들과 뜻이 다르며, 선교의 요지로 사울을 초청하여 데려옴으로 사울은 그때부터 본인의 큰 사명을 감당하여 세계선교의 사명을 다한 것을 생각할 때, 사도 바울이 일하도록 이끌어준 바나바의 업적은 박수를 계속 쳐주어야 합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데려올 때가 사울의 개종 후 약 10년 지난 후인데 그때까지 사울은 어떻게 활동했는지 기록이 없습니다.

 

[4] 구제금 전달(27-30)

유대에 큰 흉년이 들게되므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가난함을 생각하여 안디옥 교회 형제들이 구제금을 모아 바나바와 사울의 손을 통해 전달하되, 구제금이 교회의 시험이 되지 않도록 교회 장로들에게 전달한 기록을 보게됩니다.

사울은 개종 후 3년만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15일간 체류한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는데, 이것이 첫 번째 방문이요, 이번 구제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간 것이 그의 2번째 방문이 되는데, 첫 방문 후 7,8년이 지난 후에 방문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본문이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며, 우리 생활에 어떻게 적용이 되겠습니까?

본문이 주는 안디옥 교회의 소개는 모든 교회가 본받아 할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상을 우리에게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바로 이 안디옥 교회를 본받으라고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우리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다시 확인하게된 것입니다.

 

첫째, 복음전파와 열매

안디옥 교회는 사도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가 아닙니다. 핍박 때문에 흩어진 성도들 중 일부가 뿌렸던 씨앗이 주님의 손이 함께 하심으로 많은 결신자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아는 것 주 예수를 소개하였습니다. 많이 교육받지 아니한 자도 자기가 소개받은 예수를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결과는 나의 지식, 나의 유능에 상관없이 주님의 손에 맡기셔야 합니다. 우리 성도를 주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내가 뿌린 전도의 열매가 맺고, 또 많은 신자가 나에 의해 가능하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격려와 위로의 필요성입니다.

새로 태어난 심령, 새로 믿기로 작정한 사람에게는 누군가 바나바와 같은 격려자, 위로자, 권면자가 필요합니다. “굳게 주께 붙어 있으라”고 권하는 권면자의 권면의 결과로 큰 무리가 주께 더하였다 하지 않았습니까? 위로와 격려가 없이 수가 늘어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바나바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나 생각해 바나바가 되겠다고 이 시간 결단하시기 바랍나다.

 

셋째, 협동 교육

교회 안에 교역자 둘이 하나되기 어렵지요. 시기, 질투하여 지도자들이 협동이 어려운데, 성경에 보니 바울과 바나바가 협동해서 각자가 가진 재능을 가지고 1년 동안 가르치고 훈련하게 되므로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분명한 교회가 된 것입니다.

지도자들의 목적의식에 의한 연합과 철저한 교육과 훈련은 교회 성장의 절대적인 요소입니다. 교육과 훈련이 없는 교회는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을 것입니다.

우리 성도를 각자가 철저히 교육받고 훈련받아 그리스도 닮은 성도들이 다 되어야겠다는 결단이 역시 이 시간에 있어져야 합니다.

 

넷째, 선교와 구제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을 위해 당장 구호금을 거두어 교회 지도자인 사울과 바나바를 통해 전달함으로 구제의 사명을 실천했습니다. 앞으로 행 13장에서부터 나타나지만 안디옥 교회는 1,2,3차 전도여행을 통해 세계전역에 선교를 지원한 교회로 나타납니다. 각 교회가 선교와 구제의 사명을 감당치 못하면 열매 없는 교회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나 우리 성도들이 성교를 직접 행하든지, 선교를 교회나 어떤 선교사를 통해 지원함으로 사명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와 우리 성도들에게 긍휼 베푸시어 우리의 약점을 다 보호하시며, 전도하고, 격려하고, 가르침으로 성장이 거듭되고, 복음 전도 받은 빚을 선교의 사명 감당함으로 빚을 갚는 우리 성도를 다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