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와 베뢰아 전도 – 사도행전 17:1-15

지난 두 주 동안 빌립보에서의 선교사역을 통해 교훈을 받았습니다. 빌립보에서 누가 맨 먼저 예수를 믿었고 세례를 받았던가요? 비단장사 루디아의 가족, 그리고 빌립보 간수의 가족이었지요.

바울로서는 태장으로 매를 맞는 수난도 있었지만, 그의 수난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져서 결과적으로는 이 빌립보 교회만이 바울의 선교를 물질적으로 지원하는 그런 선교하는 교회로서의 역할까지 감당하여 피를 흘린 만큼 또 보상해주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방금 봉독한 본문 말씀을 통하여 데살로니가와 베뢰아 지역의 선교사역을 통해 교훈을 받고 우리 신앙생활에 적용해야 하겠습니다.

본문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1] 데살로니가에서의 전도(1-9)

[2] 베뢰아에서의 전도(10-15)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데살로니가에서의 전도(5-9)입니다.

1절에 보니 “저희가”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우리가”라는 표현이 있어서 사도행전의 기록자가 누가인데, 누가가 쓰기를 “우리가” 그랬으므로 전도팀에 누가가 함께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었는데, 데살로니가 전도 당시에는 “저희가”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주 전도팀은 바울과 실라를 말하고, 누가와 디모데는 맏 태어난 빌립보 교회 양육을 위해 빌립보에 남아 있고 바울과 실라만 떠나왔다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7절에 보니 “자기의 규례대로”라는 표현이 있는데, 바울의 규례대로라는 것은 말씀을 전하기에 가장 마땅한 곳이 유대인들의 모임체인 회당에 가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에서는 회당이 없었는데 데살로니가에 가보니 회당이 있었고, 그 회당에서 전례대로 복음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도시는 마게도냐 지방의 수도입니다. 자연히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로 6만명이 사는 도시였습니다. 빌립보에서 80마일 정도 떨어진 도시이며, 현재는 터키의 영토라고 해요. 지명은 살로니카이고 상업의 중심지요, 항구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의 전도는 회당에 들어가서 예수를 3주동안 전하게 되었습니다. 전도 대상이 유대인들과 개종된 이방인들이므로 전도 대상자들이 구약성경을 아는 사람들이고, 구약성경을 아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메시야가 오리라는 믿음을 가지고있었으므로 사도 바울로서는 그 메시야가 바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게한 그 분이라고 증거하면 되므로 회당에 들어가서 가르치기를 그리스도, 즉 메시야가 해를 받고 죽을 뿐 아니라 죽었다가 다시 살아아 한다는 메시야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성경적 예언을 통해 뜻을 풀어주었고, 그 성경에 있는 메시야가 즉 죽었다가 부활하시기로 된 그 분이 바로 우리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전하게 됩니다. 논리가 정연하지요? 그렇게 전하므로 메시야를 막연하게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들 중 4절에 보니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가 미었고,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비울과 실라를 좇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행 13장에서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온 성 사람들이 바울의 말씀을 들으려 회당을 꽉 메웠을 때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귀부인들을 선동하여 성밖으로 내쫓았던 그런 귀부인들도 있고, 이곳 데살로니가 귀부인들은 바울과 실라를 따랐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5절에 보니 “그러나”라는 표현이 있는데 또 핍박이 시작됩니다. 유대인들이 시기했다고 했지요. 왜 시기했을까요? 바울의 가르침이 권세가 있고 진리였으며, 따르는 자들이 많아지니 시기가 났겠지요. 택한 백성은 유대인이요, 바울의 전도 첫 대상이 유대인인데, 유대인들은 복음 듣기를 거절하고 오히려 핍박을 하게되므로, 이젠 이방인들에게 구원을 전한다고 바울은 전도 대상을 바꾸게 됩니다.

시기가 난 유대인들은 마을의 불량배를 동원하여 바울과 실라를 잡아 관청에 고발하려고 바울과 실라가 유숙하는 야손이라는 교인 집에 찾아갔으나, 그 날은 그 집에 유숙하지 않으므로 만나지 못하게 되어 화가 난 무리들은 바울과 실라를 영접한 야손과 및 형제들을 끌고 읍장 앞으로 가서, 소리 질러 이 사람들이 가이사 황제의 명을 어기고 임금 예수라 하는 이를 전한다하니 읍장이 서약을 받고 보석금을 받고 풀어주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국 밤 중에 형제들이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게 됩니다. 도망을 친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대로 데살로니가에 머물게 되면 야손 뿐 아니라 성도들에게 심한 핍박이 더해질 것이고, 또 어떤 지역에서 반대하면 새로운 전도 지역으로 옮기라는 주님의 교훈대로 밤 중에 이웃 도시 베뢰아로 옮기게 됩니다.

 

[2] 베뢰아에서의 전도(10-15)

이 베뢰아는 데살로니가에서 약 60마일 떨어진 곳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페리아라고 하는 지역인데, 이곳 베뢰아에 도착하니 그곳도 회당이 있어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가서 보니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 보다 신사적이었다고 누가는 소개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공통적인 죄가 있는데, 이들은 조상들로부터 온 유전 때문에, 잘못된 지식 때문에 복음의 빛을 받아들여야 할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것인데, 그 무지가 큰 죄가 된 것입니다. 신사적이라고 소개한 것은 베뢰라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그들은 말씀이 사실인가 하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한 것을 보고 신사적이라고 느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들어보지도 않으려고 마음을 꽉 닫고 있는데, 이들 베뢰아 사람들은 첫째는 마음을 열고 말씀을 들으려 했다는 태도를 칭찬했고, 두 번째는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들은 것을 성경을 통해 확인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므로 12절에 보니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않다고 표현되어 있는데, 베뢰아의 유대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개종했고 헬라인도, 귀부인들도 많은 수가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역시 마귀가 시기하여 핍박이 있었음을 소개합니다.

13절에 보니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달려와서 무리들을 선동하여 소동케 했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형제들이 바울을 보호하기 위해 배편으로 어덴까지 인도하였으며, 당분간 실라와 디모데는 그곳에 머물게 했고 혼자 아덴으로 떠나게 됩니다. 베뢰아에는 반대자들이 없으니 데살로니가에서 반대자들이 몰려온 것입니다.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고치고 많은 환영을 믿으니 시기하여 멀리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으로부터 유대인들이 달려와 돌로 쳤던 그런 모습입니다. 악한 자리에는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는 인간의 한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게 되며 우리 신앙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가 있겠습니까?

 

첫째, 데살로니가 교회와 같은 교회가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어떤 교회인지 아십니까? 바울로부터 3주 동안 전도 받아 세워진 교회인데, 살전 1:8에 보면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고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고 바울이 이 교화에 보낸 편지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교회 이름만 바꾸어 한인그리스도의 교회를 통해 말씀이 여러 지역에 번지고, 우리 교회 성도들의 믿음의 좋은 소문이 각지에 퍼질 수 있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도들 각자가 부단히 영성 훈련을 쌓아 그런 소문난 교회가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베뢰아 교회와 같은 교회가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였던가요? 신사적인 교회였지요. 마음을 열고, 말씀을 듣고, 또 들은 말씀을 성경을 통해 상고하되 날마다 상고하므로 믿음이 좋아진 교회 아니였습니까? 즉 베뢰아 교회는 우리 교회가 하고자 하는 QT를 이미 그 당시에 실시한 교회여요. QT 통해 말씀을 날마다 상고하고 그 말씀을 실천하고 적용하므로 우리 성도들의 믿음이 날로 성장하여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둘째는 신사적인 교회가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불굴의 신앙을 가져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들 호사다마란 말을 아십니까? 좋은 일에는 마귀가 뀐다는 뜻이어요. 데살로니가 전도, 베뢰아 전도 다 성공적이지만, 반면에 시기심이 나서 죽도록 반대하는 마귀도 또한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반대를 무릅쓰고 꾸준히 전도했고, 어디든지 가서 전도했고, 그의 계획대로 전도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 일에나 교회 일에나 좋은 일이 있으면 또 나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귀는 시기심이 나서 못살아요. 그러나 마귀가 어떻게 방해해도 바울은 마귀를 피하며 꾸준히 그의 가야할 길을 가면서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듯 우리 모두는 마귀를 피하고 대항하여 불굴의 신앙을 갖고 꾸준히 하나님 사업 위한 우리의 발걸음을 가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교회 성도들 모두가 최선을 다하여 믿음을 갈고 닦아서 우리 교회 통해 말씀이 널리 전해지고, 우리 교회의 좋은 소문이 각처에 퍼지며, 우리 성도들이 날마다 말씀 상고하고 적용하는 Q.T생활을 지속하며, 그때마다 도전해 오는 마귀를 대적하여 마귀의 계획을 좌절시키고 하나님의 계획을 꾸준히 실천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