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에서의 전도 – 사도행전 18:1-17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철학과 우상의 도시 아덴에서 복음을 전하여, 비록 적은 수의 개종자를 냈지만 그에게 맡겨진 전도의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빚진자의 자세로 복음을 전하고 성령의 인도에 따라 고린도로 전도지역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본문 말씀을 통해 고린도에서의 전도활동을 통해 교훈을 얻고 우리 신앙생활에 그 교훈을 적용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본문 내용의 줄거리를 크게 5가지로 볼 수 있는데,

[1] 바울의 전도활동(1-5)

[2] 핍박(6-7)

[3] 성과(8)

[4] 하나님의 격려(9-11)

[5] 가이오 총독의 협조(12-17)입니다.

먼저 본문 강해에 들어가기 전에 고린도 도시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고린도 도시는 인구가 20만명 이었다고 합니다. 마게도냐의 수도 데살로니가가 6만명 이었던 것과 비교해보시기 바랍니다. 이 고린도는 아가야 지방의 수도로 바울이 방문한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입니다. 다른 하나는 에베소인데 그 중요성을 말해주듯 고린도에서는 1년 반을, 에베소에서는 3년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이 고린도는 위치상 무역, 교통의 중심지로 돈과 부도덕이 이상야릇한 철학과 새로운 종교들과 함께 고린도에 정착하여 고린도는 죄악의 도시로 로마제국 전체에 알려졌습니다. 가장 사치스런 도시이며, 또 비너스여신의 숭배가 대단한 도시이며, 방탕의 도시였습니다.

본문으로 들어가서

 

[1] 바울의 전도활동(1-5)

바울은 우상과 철학의 도시에서 혼자 복음을 전했는데, 도저히 복음의 씨가 떨어져 열매 맺힐 것 같지 않은 이 고린도 도시에 역시 혼자 도착하므로 위축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비하사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게 하는데 우연이라 할 수 없게 이들은 장막치는 직업을 가졌으므로 함께 주중에는 장막치는 일에 종사하고 안식일에 회당에서 말씀을 강론하고 권면하였던 것입니다. 다음 주에는 아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에 대해 소개되지만, 바울은 이 부부를 아주 칭찬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롬 16:3-4에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이라도 내어 놓았다”고 소개할 정도의 희생적인 협조자며, 꼭 필요할 때 나타난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것입니다.

5절에 보니 실라와 디모데가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 등 새로 새워진 교회들을 튼튼히 하고 이곳 고린도에 도착하므로, 그렇게 외로웠던 바울은 힘이 솟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만 나타나도 힘이 나는데, 고후 11:9에 보면 이들이 마게도냐 지역에 올 때 재정적 지원금을 가지고 왔으므로 장막치는 일을 덜하고 말씀을 증거하는 일에 치중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힘이 났겠어요.

기록에 보니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음 같이, 그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가 바로 성경에서 예언된 메시야, 곧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하게 증거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회당에서 논리적으로 강론도 하고 또 개별적으로 만나 권면도 한 것입니다.

 

[2] 핍박(6-7)

그런데 전도의 문이 열리나 했더니 또 훼방자들이 나타났음이 6,7절에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대적자가 나타난 것을 너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고전 16:9에 “내게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이 열리고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6절에 보니 유대인들이 훼방하므로 바울이 옷을 떨어뜨리면서 나에게는 책임이 없다하고 이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겠다고 하였으며, 회당에서 옮겨 디도 유수도라 하는 교인의 집으로 모임의 장소를 옮기면서 회당에도 가르치고 유스도의 집에서도 가르치게 된 것입니다.

 

[3] 성과(8)

이렇게 가르침으로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고 기록됨 같이 유대교 회당장이 개종된 것입니다. 개종되면 계속 회당장이 될 수 있겠어요? 개종됨으로 사임해야 마땅하지요. 자기 직업을 버리고 개종하기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거물이 전도딤으로 고린도의 허다한 사람이 듣고 믿어 세례받는데 바람을 일으켰을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온 가족이 더불어 세례받은 기록이 몇 군데 나옵니다. 관심가지시기 바랍니다. 고낼료 가정, 루디아 가족, 빌립보 간수 그리고 그리스보 가족입니다.

8절에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고 기록이 되었고, 빌립보 간수의 어떻게 구원을 받느냐는 질문에 주 예수를 믿으라는 처방을 내려주니 빌립보 간수가 믿고 세례를 받았음이 너무 명확한데도, 전통과 유전 때문에 온 가족이 세례받았다고 했는데 그 가족들에게는 유아가 있었을 것이고 젖먹이도 온 가족이란 묶음 속에 들어가므로 당연히 그 젖먹이는 유아세례 받은 것이 사실일거라고 유아세례의 근거가 있다고 궁색하게 끌어들이려 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는 현실은 결국 교파가 진리를 가리는 단면이기도 합니다.

 

[4] 주님의 격려(9-11)

사도 바울에게 주님으로부터 직접 환상 가운데 말씀하시게 됩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하시더라. 주님께서 환상 중에 말씀하시기를 “두려워말라”고 했다는 말은 무슨 말이 되겠습니까? 바울이 많이 두려워하여 낙담하여 포기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 등 간 곳마다 칩박자들이 있어 죽을 고비를 계속 넘겨가며 이곳 고린도에 욌는데, 그가 고린도 교회에 보냈던 편지에 이때의 심정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전 2:3에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사도 바울이 심히 떨 정도였으니 주님께서 격려의 말씀을 환상으로 주신 것입니다. 이때는 성경이 아직 없으므로 환상과 계시를 통해 역사하였으므로, 성경이 있는 이때에 어떤 환상을 신앙에 적용하려는 환상과 계시에 대한 갈급은 위험한 일임을 말씀드립니다.

 

[5] 기이오 총독의 협조(12-17)

가이오가 총독이 되었는데 유대인들이 바울을 잡아와 총독 앞에 세우고 고소를 하기를, “이 사람이 율법을 어기어 하나님을 공경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고 하므로, 바울이 이에 대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데, 총독이 일어나 “나는 누가 부정한 일을 했다면 재판관이 될 수 있으나 저희 종교에 관한 것이라면 나은 이런 일에 개입하고 싶지 않다”고 고소를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참 지혜있는 답변이었지요. 결국 가이오 총독이 바울의 협조자가 되었는데 어쩐 일인가요? 이미 주님께서 약속하셨지 읺아요. 이 고린도에 전도 대상자가 많으므로 그 누구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다고 한 예언대로 였습니다.

바울은 1년 6개월 동안 복음을 전했고, 1년 6개월 머물면서 성경에 맨 처음 기록된 데살로니가 전후서를 이곳에서 기록하게 된 것입니다. 겨우 3주 동안 복음을 전했던 데살로니가에 격려와 위로를 보냈던 것입니다. 또 바울의 편지 중 가장 긴 편지 고린도 전후서를 바로 이 교회에 보내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본문에서 얻은 교훈과 우리 신앙생활에 적용할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바울과 같은 승리자가 되자는 것입니다.

딤후 3:12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했는데, 경건하게 살고자 하면 할수록 어려운 핍박이 있는 것이고, 적당히 살고자 하면 마귀가 칭찬하게 될 것이므로 어려움도 줄어들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바울에게는 말할 수 없는 마귀 중 가장 지독한 수퍼 헤비급 마귀가 붙었으나 결과적으로 바울은 포기하지 아니하고 복음을 전해 고린도 교회를 세우게 되었고, 긴 1년 6개월을 지탱한 것입니다. 마귀는 당장 쫓겨나기를 원했으나 바울은 1년 6개월간 버틴 승리를 거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서 8:35에서 고백한대로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함 같이 칼도, 아픔도, 어떤 핍박도, 기근도 그의 스케쥴을 바꾸지 못했으며, 그가 달려갈 길을 방향 정확히 꾸준히 달려가 승리의 개가를 올려 회당장 그리스보와 많은 고린도 사람이 믿었던 것 같이 우리도 바울과 같은 확신 가지고 나갈 때 어떤 마귀의 대적도 물리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 곁에서 “두려워말라, 내가 늘 함께 있다”고 하신 주님께서 늘 우리 곁에 계시기 때문에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 28:20에서 “내가 세상 끝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신 그 주님께서 우리와 세상 끝까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 하실 때 우리에게는 승리가 안겨짐을 믿고 바울의 생을 바쳐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전파했는데, 우리도 어떤 형태로든지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전파할 수 있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의 시작

행 18:18-28

 

 

바울은 고린도에서의 전도에서 회당장 그리스보와 수다한 고린도 사람을 믿게할 수 있었고, 총독 가리오의 보호아래 1년 6개월을 무사히 전도할 수 있었으며, 그 총독이 있으므로 그 누구도 전도를 훼방하지는 않겠지만 선교사로서의 그의 사명이 또 있으므로 한 곳에 눌러앉아 편안한 생활은 그 자신에게 걸맞지 않는 일이었으므로, 그는 그곳을 떠나므로 2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모교회인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갖게되며, 잠시 안디옥 교회에 머물렀다가 다시 3차 전도여행을 시작하는 선교사의 바쁜 모습을 보게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본문을 중심해서 2차 전도여행의 귀로와 3차 전도여행의 시작을 통해 교훈을 얻고, 그 교훈울 우리 신앙생활에 적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실라와 함께 시작한 제2차 전도여행의 코스를 다시 복습해보면, 안디옥에서 출발하여 고향 다소 지역을 거쳐 1차 전도여행 했던 곳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더베, 루스드라,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을 거쳐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 고린도, 에베소를 들렸다가 배타고 예루살렘 교회에 갔다가 모교회인 안디옥 교회로 돌아가게 됩니다.

오늘은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1] 2차 전도여행의 귀로(18-22)

[2] 3차 전도여행의 시작(23)

[3] 아볼로의 전도(24-28)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2차 전도여행의 귀로(18-22)

18절에 보니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에 얼마동안 머물렀다고 했지요? 1년 6개월 동안 이지요. 그리고는 수리아로 떠났다고 했는데, 수리아는 어딜까요? 모교회인 안디옥 교회가 무슨 안디옥 교회였던가요> 수리아의 안디옥 교회. 그래서 모교회로 되돌아갔다는 사실을 소개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돌아가는 길에서 있었던 일들을 몇 가지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①형제들과 작별하고 배타고 떠날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였다고 했습니다. 물론 수리아 안디옥까지 함께 온 것이 아니고 에베소까지 함께 왔습니다.

②바울이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깍았다는 기록을 보게되는데, 겐그레아는 롬 16:1에 겐그레아 교회 일군 자매 뵈뵈라고 기록되는 바로 그 겐그레아 교회가 있는 곳입니다. 서원이란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을 지키는 일로서 바울은 무슨 목적으로 하나님께 서원을 했는지 성경을 말해주지 않지만 내용상으로 보면 그는 고린도에 머무는 동안 어떤 기간이 지나기 전까지는 머리를 자르지 않겠다고 하나님께 서원했다가 그 약속기간이 지났거나, 또는 뜻이 이루어졌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깍았고 유대인들의 둘러쌓인 천으로 머리를 감는 그런 모자를 썼을 것입니다.

③바울이 에베소에 아주 잠깐 머물게 되지만 그 틈을 이용하여 회당에 들어가 유대인들과 변론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 에베소에서는 바울더러 더 유해달라고 간청하나 바울이 하나님의 뜻이면 다시 오겠다고 하고 배타고 가이사랴, 즉 예루살렘 쪽으로 떠났다는 기록을 보게됩니다.

④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에 들려 안부를 묻고,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와 선교보고를 하고 얼마동안 머물다가 3차 전도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최소한 1,2개월 머물렀을 것으로 봅니다.

 

[2] 3차 전도여행의 시작(23)

23절에 보면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부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들을 굳게 하니라”고 기록이 되어 있는데, 전에 세웠던 교회들을 여행 때 마다 들리게 되는데, 목적은 관광도 친교만의 방문도 아니고 모든 제자들을 굳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여러 교회를 다니며 굳게 했다는 기록이 단 23절 한 절로 국한되는데, 수리아 안디옥에서 에베소까지의 여행거리는 약 1천 마일이 된다교 해요. 그렇다면 2천 킬로미터 정도이므로 5천리가 되겠어요. 5천리를 날마다 걷기만 해도 50-60일이 되므로 실제로의 여행기간은 수개월 걸린 여행인데도 바울의 마음에는 2차 전도여행에서 가고 싶었으나 성령께서 막아 가지 못한 곳을 이젠 2년 정도 지나 성령께서 허락하신 그 에베소가 주목적이었는지, 기록자 누가도 에베소에 대한 기록을 상세하게 기록하나 그 이전 수개월동안의 교회방문은 23절로 일축해버리고 있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은 전도여행을 혼자 떠나게 됩니다.

 

[3] 아볼로의 전도(24-28)

아볼로의 전도를 알기 위해 몇 가지로 구분해 아볼로를 이해해보려고 합니다.

①아볼로가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했는데, 이 알렉산드리아는 로마제국에서 2번째로 유명한 도시로 애굽에 있는 도시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발견되고 세워진 도시라 그의 이름을 따서 알렉산드리아라고 한 것입니다. 이 도시도 교육과 철학의 중심지며, 교육 도시로 유명해, 당시 그곳에 70만권의 장서가 있는 대학이 있었다고 합니다. 100만인의 유대인이 살고 헬라와 히브리 문화의 주요 접촉지였다고 합니다.히브리어 성경을 희랍어 성경으로 번역하기 위해 70명의 학자가 동원되어 완성시킨 것을 70인역이라 하는데, 바로 이 도시에서 B.C 280년 경에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②이런 도시에서 태어난 아볼로라는 인물입니다. 24,25절에 보니 “유대인이요,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히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교육의 도시에서 학문을 많이 습득한 사람으로 즉 유식한 사람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 성경에 능하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그 말은 사본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어학에 능통했고, 또 많이 연구하여 논쟁하고, 주석을 달고 남을 가르칠 정도로 성경학자에 해당한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일찍 주의 도를 배워라고 표현한 것을 볼 때 부모 아니면 좋은 스승 밑에서 체계적으로 말씀을 배운 사람으로 풀이되며, 열심히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고 가르쳤다는 기록은 구약만 알았던 그에게 예수라는 메시야가 소개되어 자기가 아는 바 전부를 열심히 남에게 가르친 인물로 소개되며,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했다고 26절에 소개되는데, 유대인으로서 예수에 대해 말하는 것은 담대하지 못해서는 할 수 없는 일인데, 그가 진리를 안 이상 담대하게 전했다는 모습이 소개되며, 다만 요한의 세례만 알았다는 것을 볼 때, 그가 예수의 세례, 즉 성령을 선물로 받게되는 세례를 들은 바 없고, 주님의 십자가 부활 등 예수에 대해 잘 모르고 오로지 요한으로부터 아니면 요한의 제자들로부터 지도받은 내용, 즉 어린 양 예수가 메시야로 나타나리나는 정도의 지식만 가진 것 입니다.

③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통해 지도 받게 됩니다.

회당에서 가르치는 것이 담대하고 열심은 있으나 죽었다가 다시 사신 예수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의 세례, 즉 요한의 세례 정도밖에 모르므로 집에 아볼로를 데려다가 구원의 도를 자세히 풀어 가르쳐주었던 모습이 26절에 소개되며, 아볼로는 순종하는 겸손의 모습입니다.

④그의 마지막 모습은 그가 아가야 지역 즉 고린도 지역으로 가고자 하므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고린도에 있는 제자들에게 추천장을 써주어 아볼로를 영업하도록 하니 그가 고린도에서 영접을 받고 바울은 오히려 유대인들에게 많은 수난을 당했는데, 아볼로는 성경을 잘 풀어주어 공중 앞에서 유대인들의 말을 이기고 고린도 교회에 많은 유익을 주는 인물로 쓰임 받게된 모습이 소개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본문을 통해 우리가 받는 교훈과 실생활에 적용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본문을 통해 4인물이 부각됩니다. 바울, 아볼로, 브리스길라. 아굴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4명의 모양이 다르지만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위해 준비하셨고 그들이 받은 은사를 최선을 다해 활용하므로 천국 확장 사업에 이바지했다는 사실을 증거해주고 있습니다.

바울은 바울대로 높은 교양과 학문을 터득했고, 유대인으로 태어났고, 로마시민권을 가졌고, 그에게는 목숨을 내놓고라도 복음을 전하겠다는 사랑과 열심이 있었습니다.

아볼로 역시 높은 학문과 유대교에서 받은 성경교육, 성경방식, 열심과 담대함으로 예수를 전하겠다는 사명감이 있었고, 그 유명한 바울이 성공을 거두지 못한 고린도에서 아볼로는 오히려 성공을 거두는 사실, 또 그렇게 박식한 아볼로가 구원의 세례도 모르고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모르고 오로지 회개의 세례만 알고 있을 때, 평범한 부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들 집에 데려다 그리스도를 바로 가르쳐주므로, 새로 힘을 얻고 고린도와 아가야 지방 또 다른 지역에서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었다는 것을 보게됩니다. 아볼로의 높은 학문과 성경지식이 크게 쓰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의 지도가 없었다면 그의 담대함과 열심있는 전도는 구원을 얻게 하는 메시지가 될 수 없었음을 볼 때,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사를 잘 활용하므로 하나님나라의 확장 사업은 되게 되어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이런 달란트의 사용을 비유하여 고전 3:5-6에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며, 내가 기초를 세우매, 그가 그 위에 집을 지었도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라고 표현된 것을 눈여겨보시기 바랍니다. 부인 이름이 남편 이름 앞에 와 있습니다. 아마 더 신령했던 것으로 봅니다. 남편이 부인을 시기하지 않았으며, 바울이 아볼로를 시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사가 무엇입니까? 여자입니까? 예, 여자이기 때문에 유익하게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남자입니까? 남자이므로 유익하게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젊었습니까? 아니 늙었습니까? 또 유식하기 때문에 아니 무식하기 때문에 그 이유로 전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명예가 있고 재력이 있기 때문에 아니 때로는 그런 것이 없기 때문에 전도의 문이 열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 사업에는 유식도, 무식도, 건강도, 약함도, 명예도, 권세도 아니 가난과 힘없음도 다 필요한 요소입니다. 모두가 이 모습 이대로 내가 가진 것 가지고 아볼로와 같이, 바울과 같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이 합심하여 하나님께 드려질 때 큰 열매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더 유식할 때까지, 더 부자 될 때까지, 더 나이 먹을 때까지, 더 건강해질 때까지 기다릴 것 없습니다. 지금 가진 것 가지고 지금 하나님 앞에 바치십시오. 이웃을 위해 열심히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때에 애쓰는 그의 자녀들에게 상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 성도들 모두가 바울이 되고, 아볼로가 되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