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는 죄 없는 바울을 죽이려고 변호사까지 사 가지고 벨릭스 앞에 고소한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을 보았고, 또 이에 조금도 겁냄이나 분노 없이 사실 그대로를 밝히는 침착한 바울의 모습을 통해 교훈을 받았습니다. 특히 관심있었던 것은 변호사 더둘로가 총독 벨릭스의 마음을 사려고 아첨하는 말을 많이 늘어놓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 진리를 거부한 벨릭스 총독과 그의 아내 드루실라의 죄된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교훈을 얻고, 우리 실생활에 적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총독 벨릭스와 그의 주인 드루실라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총독 벨릭스는 그리스 사람으로서 그 형제와 함께 노예 출신의 신분이었는데 황제의 가문에서 노예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로마정부가 노예를 해방하고, 해방된 노예 출신을 관직에 등용할 때에 그 형제 발라가 등용되어 큰 권세를 갖게 되었는데, 그때 황제에게 간청하여 벨릭스를 유대총독으로 보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총독은 세 여자와 결혼했는데 특히 왕족의 딸들과 결혼하게 되었고, 그가 결혼한 이 드루실라는 헤롯 아그립바 1세의 막내딸인데, 헤롯 아그립바 1세는 행 12장에 나오는 사도 야고보를 칼로 죽인 왕으로 그는 야고보를 죽인 즉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는 이유로 충이 먹어 죽었던 왕이지요. 드루실라는 헤롯대왕의 손녀인 것입니다. 그이 아버지가 죽었을 때 6세쯤 되었고, 그가 벨릭스와 결혼할 때는 20세가 조금 지난 나이였다고 합니다. 이 드루실라는 너무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자였는데, 에메사라스 나라의 아지스왕과 결혼했고, 결혼조건으로 아지스왕이 유대교로 개종하기도 하고 할레를 받았다고 합니다. 벨릭스 총독이 드루실라를 보고 한눈에 반해 버렸어요. 그래 자기 부인으로 삼고 싶어 마술사 시몬이란 사람을 보내 드루실라를 설득시키게 되었는데 결국 드루실라는 율법을 어기고 남편 아지스왕과 이혼하고 벨릭스의 세 번째 부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벨릭스는 8년간 유대총독으로 있으면서 노예적인 근성으로 다스렸는데, 탐욕이 가득하고, 야만적이고, 불공정하며, 사적인 살인, 공적인 학살로 사람들의 피를 흘리기에 골몰했다고 합니다. 우대 현지사람들이 황제에게 진정하여 처형 당할뻔했으나 그 형제 발락 황제에게 간청하여 처형은 면했으나 총독직에서 물러나게 되며, 벨릭스와 드루실라 사이에 난 아들은 화산 폭발로 죽었다고 합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본문을 3부분으로 나누어
[1] 재판의 연기(22-23)
[2] 바울의 설교(24-25)
[3] 벨릭스의 탐심(26-27)
[1] 재판의 연기(22-23)
22절에 보니 벨릭스가 이 도에 대해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재판을 연기하며, 천부장 루시라가 오면 이 일을 처리하겠다고 발표하므로 변호사를 통해 당장 죽여보려고 고발했으나 미뤄지게 되었으며, 이 벨릭스가 천부장 루시아의 편지를 통해서도 바울은 죄없음을 알았고, 또 벨릭스 총독은 이 기독교에 대해, 바울에 대해 누구보다도 더 많이 알고 있어서 당연히 바울은 무죄로 석방되어야 하는데 재판이 연기된 것입니다. 그리고는 바울을 가두고 있는 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좀 자유를 주어 누구든지 말하게 하고 누가 와서 돌볼 수 있도록 특별 허락을 해주도록 명한 것입니다.
벨릭스가 이 도에 대해 저 많이 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도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도, 기독교를 말하는 것이지요. 어떻게 누구보다도 더 많이 알게 되었을까요?
①부인이 유대인이라 자기 종족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남편에게 전해주었을 것이고,
②총독부가 있는 가이사랴는 빌립이 그곳에 살고, 교회가 있었고, 잘 아는 백부장 고넬료가 그곳에 살았으므로 기독교에 대해 들을 기회가 많고,
③그가 총독이므로 당연히 그가 관할하는 지망의 모든 사건에 대해 정보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므로 더 많이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2] 바울의 설교(24-25)
벨릭스와 그의 아내 드루실라는 수일 후에 바울을 불러 이 기독교에 대해 듣고자 찾아오게 됩니다. 복음을 듣기 위해 참 좋은 현상이지요. 그래서 바울은 의에 대해, 절제에 대해, 장차 올 심판에 대해 담대하게 소개한 것입니다. 불의한 이 부부에게 무엇이 의인지 소개한 것입니다.
무엇이 의입니까? 그리스도가 의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의입니다. 불의한 이들이 의롭게 되는 것은 의이신 그리스도를 소개받고 그 분을 자기의 구세주로 믿어 자기들의 지난 죄를 회개하여 새사람 되는 길뿐입니다. 성령의 눈을 가진 바울은 이 부부가 어떻게 악한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므로 그들이 죽을 때와 살아날 수 있는 길을 바로 제시한 것입니다. 절제하지 못하고 욕심만 채우는 이 부부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절제해야하는 것임을 알고, 생활을 절제하도록 감히 그들의 죄악된 생활을 지적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리고 죄인이 받게 될 심판에 대해 설교를 합니다. 복 받을 것이라는 축복은 쉬워도, 믿음생활 잘 못하고 있는 사람에게 장차 올 심판, 즉 벌을 예고하기가 쉽지 않는데, 바울은 담대하게 죄를 지적하고 죄의 결과는 심판임을 경고합니다. 자기 살아날 것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고 복음을 전해 구원 받게하는 영혼의 살림에만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벨릭스는 심판에 대한 설교에 두려움을 표시하지만, 그러나 벨릭스는 즉시 구원의 길을 회개의 길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미룹니다.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또 부르리라”고 때를 놓치게 됩니다.
[3] 벨릭스의 탐심(26-26)
벨릭스는 바울로부터 뇌물을 받을까하여 더 자주 불러 이야기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 바울은 구호금을 거두어 왔으므로 돈이 있을 것이고, 또 제자들이 그를 사랑하므로 석방운동을 위해 제자들이 뇌물을 모아가지고 오리라고 믿었으리라 생각됩니다.
벨릭스는 고소한 유대인들로부터 인기를 끌기 위해 가두어 두고, 또 바울로부터는 뇌물을 받을까하여 계속 가두어 두게됨을 26,27절에서 보게됩니다. 2년을 가두어두었으며, 결국 파면되어 그 자리를 떠나게 되고 대신 베스도가 총독의 자리에 취임하게 됨을 알게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왜 이 본문이 오늘 우리에게 전해졌습니까? 우리더러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요? 이 본문을 우리 성도들이 읽고 Q.T를 했다면 어떤 실천 목표가 나왔을까요? 저에게 주신 주님의 음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은혜를 망각하면 패망뿐이라는 것입니다.
벨릭스가 노예 출신이었다고 했지요. 총독이 된 것은 특별한 섭리요, 은혜인데 하나님께서 왜 그런 자리에까지 높여주셨음을 생각지 않고 자기 욕심대로만 살고, 의에 대해, 절제에 대해, 심판에 대해 생각지 않으므로 높은 자리에서도 물러나고 결국 영혼도 죽게된 것 아니겠어요.
마찬가지로 드루실라는 왕가에 태어나게 하고 천하에 미녀로 태어나게 해주었으면 그 은혜에 감사하여 자기가 가진 것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터인데, 자기 아름다움에 스스로 교만하여 남편과 이혼하고 탐욕에 쏠려 다른 이의 3번째 부인이 되고, 자기는 아는 진리를 실천치 아니하고 오히려 이방인과 같이 살게되므로 하나님께서 치신 것 아니겠어요.
우리가 가진 지식, 지혜, 재물, 열심, 외모, 건강 가지고 자기 욕심대로 쓰지 말고 하나님 위해, 전도 위해 쓰라는 것이지요. 그렇지 못하면 때가 되면 그것 때문에 망하게 된다는 것 아니겠어요. 두루실라가 자기의 아름다움 때문에 망한 것 같이 내가 가진 귀한 것에 스스로 발이 묶여서 패망하게 될 것이라는 교훈입니다.
두 번째, 미루는 것은 없는 것이다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부르리라는 벨릭스의 결심은 그가 구원받는데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선한 일을 조금도 미루지 마시고 듣는 즉시 실천하라는 교훈입니다. 헌금, 구제, 선한 일 생각날 때 해야합니다. 미루지 마십시오. 생각이 바뀝니다.
“무죄석방”이라고 선포할 수 있었던 그가 미루므로 하나님의 사자를 계속 결박하는 큰 죄를 지은 결과가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일, 자기의 죄 회개하는 일, 성령 받는 일, Q.T하는 일 그 아무 것도 미루는 것은 결국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음에 부르겠다는 벨릭스에게 다음에 시간이 있으면 부르리라는 다음은 벨릭스에게 오지 아니했습니다.
우리는 다음이 아니고 지금이 내 시간입니다. 선한 일을 지금 곧 시행하라는 교훈입니다.
세 번째, 진리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에게 인기도 얻고, 뇌물도 받고 하려는 것이 벨릭스의 계획이었습니다. 바울을 살리든지 유대인의 요구를 따르든지 했어야 합니다. 둘 다 얻겠다는 벨릭스는 둘 다 놓쳤고, 또 자기도 놓쳤습니다.
우리가 택할 것은 진리뿐이고, 선한 일뿐이요, 주님 존귀하게 하는 일뿐입니다. 결국 세상은 아닙니다. 세상을 택했을 때 우리는 심판을 받는다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은혜 깨닫고 살며, 선한 일을 할 때 지금하지 않으면 내게 기회 주어지지 않는다고 믿고 지금 해내며, 주님과 세상 중 주님을 늘 택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