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선된 배와 하나님의 구원 – 사도행전 27:27-44

지난 주에는 로마로 출발하는 바울 일행의 모습을 보며 교훈을 받았습니다. 어떤 배를 탔던가요? 알렉산드리아호. 미항에서 겨울을 내자고 하는 바울의 의견을 무시하고 베닉스에서 겨울을 내자는 선장, 선주의 말대로 항해하다 풍랑을 만나 배에 있는 물건까지 다 버리고 별도 해도 보이지 않는 구원의 여망이 전연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그들 중 하나라도 목숨을 잃을 자가 없으리라는 구원의 소망을 주었던 일들을 통해 교훈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본문 27-44절까지를 통해 완전히 파선되어버린 배에서 구원되는 구원의 성취를 통해 교훈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1] 도망하려는 사공들을 막음(27-32)

[2] 바울의 격려(33-38)

[3] 배는 암초에 걸렸으나 모두 구원 얻음(39-44)

 

[1] 도망하려는 사공들을 막음(27-32)

배가 폭풍을 만난 지 14일째 되는 날 밤에 배는 아드리아 바다에 이리저리 쫓겨다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드리아 바다는 이달리아와 그리스 사이에 있는 바다인데, 사공들의 경험으로 무엇이 보이지는 않지만 어떤 소리를 통해 알았는지 분명히 육지에 가까이 있음을 짐작하고 물이 얼마나 깊은가 재어보니 20길이 되고, 또 조금 가다가 재어보니 15길이었다고 했습니다. 1길이란 1.8m 정도의 길이, 보통 큰 사람 두 팔 끝의 길이이니 20길은 약 40m, 15길은 약 30m 정도 된 것이지요. 그러니 이젠 육지 근처에 다 닿은 것을 알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풍랑이 세므로 그대로 가다가는 배가 바위에 부딪혀 깨질지도 모르니 날이 셀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배를 parking 시키기 위해 고물에서 닻을 4개 내렸는데, 고물은 배 뒷부분으로, 배 뒷부분에 있는 닻을 내려 고정시켰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공들은 자신이 생겼습니다. 육지가 가까웠으니 구명보트 즉 거루를 타고 자기들만이라도 살아보자고 궁리를 하게됩니다.

30절에 보니 “이물에서 닻을 주려는 체하고”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물은 고물의 반대편이니 이물은 배의 앞부분입니다. 배의 앞부분에 있는 닻을 내리는 척 하면서 구명보트를 내려놓았다는 것이지요. 바다에 경험이 많은 바울은 그들의 도망하려는 계획을 알고 백부장과 군인들에게 말하기를 이 경험 많은 사공들이 배안에 있지 아니하면 사공을 잃은 너희는 살아나지 못한다. 육지에 가려면 그들이 필요하다고 알려주므로 군사들이 바울의 말을 듣고 구명보트 줄을 잘라 버리므로 이젠 배에는 구명보트도 없고 오로지 바울만 의지하게 됩니다.

 

[2] 바울의 격려(33-38)

날이 새었습니다. 다행히 아침까지 배는 파선되지 아니했습니다. 바울은 14일째 하루하루를 육지에 닿기를 기다리며 풍랑과 싸우다 지쳐있고 더욱 14일째 먹지 못하고 굶주려 있는 이들에게 음식을 먹도록 권하고, 너희 중에 한 사람도 생명을 잃을 자가 없을 것이라고 다시 획신시키며 격려하게 됩니다. 음식을 가져다가 축사하고 먹도록 하니 그들이 다 바울의 말을 믿고 안심하고 받아먹었는데 수를 세어보니 276명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배부르게 먹고 이젠 나머지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더 가볍게 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해안이 점점 얕아지기 때문이겠지요.

바울은 음식을 먹으라고 권할 때, “이것이 너희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먹어야 힘을 얻어 밀도 바다에 던질 힘고 있고, 또 헤엄치거나 널판을 타고 육지까지 갈 것이므로 너희 중 하나라도 생명을 잃을 자가 없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뤄지려면 이들이 음식을 먹고 힘을 얻어야 하는 조건이 되기도 한 것입니다.

 

[3] 배는 암초에 걸렸으나 모두 구원을 얻음(39-44)

아침이 되니 어느 땅인지는 모르지만 항만이 눈에 보이므로 그곳까지 배를 댈 수 있을까 사공들이 의논하고-배를 parking 시킬 때 무로 시킨다고 했지요? 닻. 어느 쪽 닻? 고물 쪽 닻-닻으로 배를 고정시켜두었던 것을 이젠 배가 움직여야 하는데 닻을 끌어올리지 아니하고 아예 잘라버려 바다에 버리고 배를 운전하는 키의 줄을 늦추고 바람을 이용하여 가야하므로 돛을 달고 육지 쪽으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가까이 갔을 때 두 물줄기가 합해진 곳에 오게되어, 그곳에는 진흙이 쌓여져 이Tj 배가 여기에 박혀버리는데, 어느 쪽이 먼저 박혔겠어요? 이물이요, 고물이요? 이물 쪽. 앞쪽이니. 그리고 고물 쪽도 큰 물결에 깨어져 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군인들이 생각할 때 죄수들이 헤엄쳐 도망갈까하여 죄수들을 다 죽여버리자고 계획하였으나, 백부장이 바울을 살리기 위해 그들의 뜻을 막고 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은 헤엄쳐서 육지에 먼저 가게하고 남은 사람은 널판 조각이나 배에 있는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여, 마침내 배에 있는 사람들이 다 육지에 도착하여 구원을 얻었다는 기록입니다.

배에 있는 사람 모두 몇 명이었지요? 276명. 물론 다음 28:1에 나와서 알게 되지만, 이 섬은 멜리데 섬이라는 곳이었습니다. 비록 바람에 밀려 떠내려 왔지만 로마로 가기에 적절한 땅에 인도하셨음을 보게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본문 말씀을 소개받으면서 어떤 교훈이 마음에 옵니까?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진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교훈이 무엇인가요? 저는 이 말씀을 통해 세 가지의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첫째, 환난과 역경을 통해 인물이 재평가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죄수였으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역자로서 276명을 보호하는 보호자였으며, 생명의 은인이요, 선장이요, 총지휘자로서 부각되어 음식 먹을 때 하나님께 축사할 정도로 부각되었고, 반면에 배를 안전하게 운전해야할 사공들은 승객들을 버리고 자기들만 살려고 도망치려 했고, 군인들은 그곳까지 자기들을 살려준 바울에게 감사와 은혜를 모르고 죽이려했던 모습을 보게됩니다.

잘 훈련된 믿음은 환난과 시련 가운데 더욱 돋보이는 인물로 평가가 되고,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은 이런 혼란 속에 자기의 본성이 다 드러나 불지르고, 약탈하고, 살인하게 된다는 교훈입니다.

이기적인 삶이 아니라 희생적인 삶, 썩은 밀알이 되는 삶, 이웃을 살리려는 삶, 결국 이웃도 살리고 본인도 사는 삶, 상이 보장된 삶, 월게관 쓰는 삶, 평상시에 훈련된 삶은 어려운 시기에 흔들리지 않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교훈입니다.

 

두 번째는 구명보트의 줄을 끊는 믿음입니다.

군인들은 바울의 말을 믿고 배에 있는 구명보트의 줄을 다 잘라버렸습니다. 즉 배가 육지에 가까이 갔을 때 타고 나갈, 또 파선되었을 때 생명을 구해줄 구명보트를 버렸습니다. 이 순간 군인들은 세상의 지식과 경험 버리고 하나님의 사자 바울의 말을 더 신뢰했습니다. “너희 중 하나라도 생명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했습니다. 진리는 여기에 있습니다. 구명보트는 인간을 의지하는, 인간이 운전하는 배이며, 구명보트의 줄을 끊어버리는 것은 하나님이 운전하는 배를 타는 행위입니다. 인간 눈으로 구명보트를 타야 생명이 유지될 것 같지만, 세상의 구명보트를 버리고 하나님 의지하는 그를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살리신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구명보트가 무엇입니까? 자기를 보호해줄 것이 무엇일까요? 때론 돈, 명예, 지식, 권력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요사이 폭동사태 때는 권총이라 믿고 의지할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가장 안전한 구명보트는 하나님의 배에 올라타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고 사는 길입니다. 구명보트의 줄을 잘라버린다는 진리, 세상의 미련 잘라버린다는 진리, 이것이 결국 하나님의 손을 잡는 구원이요, 하나님이 내 손 잡아끌어 올리는 진리입니다.

 

세 번째는 인생에 밀려 닥친 풍랑이 있을 수 있으나 하나님 의지함으로 구원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늘 항해로 비유되는데, 인생 자체는 가끔 좋은 날씨도, 가끔 태풍도, 가끔 파선을 당하는 항해에 비유된다는 것이지요. 살다보면 육체적으로 어려움을 당하고, 재물에 또는 명예에 손상을 입는 일이 있게되겠지만, 그런 시련 가운데서도 믿음 지키고 흔들리지 않고 그대로 참아 나가면 결국 하나님의 도움과 약속대로 멜리데 섬에 도착된다는 소망적인 교훈입니다.

14일을 굶었던, 해와 달이 보이지 않았던 그것은 인생 과정이요, 결과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 눈물과 아픔과 질투와 미움과 죽음이 없는, 탐욕과 약탈과 분쟁이 없는, 가난과 부자와, 유식과 무식과 남녀와 노소가 없는, 흑인, 백인, 멕시칸, Korean이 구별되지 않는, 영남 호남이 구별되지 않는 천국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 여행 중 이기적이었던 사공들과 같이 배타고 자기들만 살려고 했던 죄인들도, 자기 은인을 죽이려던 군인 죄인들도 모두 하나님 안에서 믿음에 의해 하나될 수 있고, 그들도 천국백성이 될 수 있고, 면류관 쓸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이 구원의 약속에 들어가려면 헤엄쳐야하고, 널판 타고 나갈 힘을 얻기 위해 바울의 말대로 구원을 위해 음식을 먹으라는 조건이 주어졌는데, 우리가 해야할 일, 인간의 해야할 일, 구원에 이르기까지 우리 인간들이 해내야 할 일들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육지에 헤엄치기에 힘이 될만한 것이 무엇일까요. 기도, 말씀, 경건의 시간, 구제, 봉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모두가 역경을 통해 더 높이 평가되는 인격을 갖추고, 인간 구명보트의 줄을 끊고 하나님의 생명줄에 줄을 이으시고, 구원을 이루기 위해 영력을 키워 내게 맡긴 사명 잘 감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