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는 배가 파선되어 멜리데 섬에서 3개월 동안 머물면서 일어났던 사실들을 통해 교훈을 얻었습니다. 섬에 발을 디딘 276명은 섬 원주민들이 불을 피워 주었던 친절과 섬의 제일 높은 사람이 그 많은 사람을 다 자기 집에 초청하여 3일이나 친절히 대접해준 사실과 이런 친절의 보상으로 모든 병들을 낫게 해주었던 일, 그리고 독사에 물린 바울과 이로 인해 바울이 특수한 사람임을 알게 하여 하나님의 섭리와 로마에 있던 성도들이 20마일, 30마일까지 마중 나와줌으로 바울이 크게 격려 받았던 일을 통해 교훈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로마에 도착하여서의 바울의 전도활동을 통해 교훈 받기를 원합니다. 사도행전 마지막 부분인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큰 뜻을 발견하고, 바울의 전도사명을 계속 이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1] 유대인 지도자들과의 첫 모임(16-22)
[2] 유대인 지도자들과의 두 번째 모임(23-28)
[3] 셋집에서 2년간 하나님 나라를 전파(30-31)
[1] 유대인 지도자들과의 첫 모임(16-22)
우리 한글성경에는 없지만 다른 성경판을 보면 16절에 백부장이 경비대장에게 넘겼고 바울은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유하도록 허락을 받았다고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백부장은 떠났고 이젠 로마의 시위대 경비병 한 명씩 교대하면서 바울을 지키되 다른 죄수와 함께 있지 않고 바울 혼자만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과대한 대우가 주어졌을까요? 틀림없이 벨릭스 총독이나 아그립바 왕의 편지에 이 사람을 죽일 죄나 또 묶어둘 죄목이 없는 자라고 썼기 때문일 것이고, 또 배가 파선되었으나 276명의 생명을 건져준 바울의 지도력을 백부장이 잘 보았으므로 백부장의 특별한 추천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에 도착하여 감옥에 있지 않고 셋집을 얻어 생활하도록 허락되었으니 요사이 가택연금 정도가 된 것 같습니다. 3일 동안에 셋집이 정리가 되었는지 3일만에 로마에 있는 유대인 지도자들을 초청했습니다. 바울로서는 로마에 오고 싶어했던 목적이 복음전도였으므로 이곳 로마에 있는 유대인 지도자들로부터 강한 반대를 받으면 전도가 어려우므로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 지도자들과 같이 어떤 오해를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유대인 지도자들을 자기 셋집에 정중하게 초청하여 자기의 된 일을 변명하려 했던 것입니다. 유대인 지도자들이란 대개 회당의 지도자들로, 이 로마에는 6-7개의 회당이 그 당시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을 초청하여 자기가 이곳까지 죄수의 몸으로 온 것은 내가 우리 조상의 어떤 것도 범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나를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어 주었고, 오히려 로마인들은 나를 심문해도 죄가 없으므로 풀어주려 했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하여 내가 가이사에게 호소한 것이니 행여라도 내가 내 민족을 송사하려는 것이 아니며 오로지 나는 우리 정통 유대인들이 갈망해 오는 메시야에 대한 소망과 부활의 소망 때문에 내가 쇠사슬에 매여있다고 자기를 설명하게 됩니다.
그때 유대인 지도자들이 대답하기를 우리는 누구의 편지도, 연락도 공식적으로 받은 바 없으므로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한다고 대답을 합니다. 바울로서는 참 다행이었습니다. 나쁜 편견이 없는 그들에게 마음 편하게 전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2] 유대인 지도자들과의 두 번째 모임(23-28)
유대인 지도자들은 제2차 모임의 날짜를 정하고 다시 많이 찾아왔으므로, 바울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쳤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전하되 예언서에서와 모세의 율법에서 이미 말하는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했더니 반응이 두 가지인데,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서로 갈등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유명한 사도 바울의 설교를 듣고도 믿지 아니하는 유대인 지도자들을 향해 바울은 이사야서를 인용하여 “유대인들이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 것은 이들의 마음이 악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눈이 뜬 것 같아도 감았고 그 귀는 듣기에 둔하기 때문이라”는 말씀으로 책망하며, 이렇게 유대인이라는 사람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하나님의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이방인들은 들을 것이라고 하나님의 섭리를 예고해줍니다.
이곳 로마에서도 바울은 먼저 유대인들에게 복음전하는 우선 순위를 택하나 그들의 불신으로 이젠 이방인들에게 전하게 된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29절이 본문에는 없으나 밑에 작은 글씨로 있지요. 참고로 읽어보겠습니다. “저가 이 말을 마칠 때에 유대인들이 서로 큰 쟁론을 하며 물러가더라.” 서로 의견 충돌이 자기들끼리 생겼다는 것이지요.
[3] 셋집에서 2년간 하나님 나라를 전파(30-31)
바울은 로마에 와서 2년 동안 연금생활을 하는 동안 재판만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맞아들여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가르쳤으나 이를 막는 사람이 없었더라고 기록해줌으로 사도행전을 마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사도해전 마지막 부분에서 무슨 교훈을 얻게됩니까? 우리 각자에게 어떤 주님의 음성이 들립니까? 저에게 들린 주님의 음성을 여러분에게 소개해드립니다.
첫째, 환경을 탓하지 않는 바울의 전도사명입니다.
바울은 옥에 갇혀있는 동안 편지 4통을 썼는데, 빌립보서, 골로새서, 에베소서, 빌레몬서를 썼거든요. 그후 또 디모데전후서, 디도서를 썼는데 모두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지요. 7개가 로마 옥에 있은 이후의 일이어요. 그는 옥에 갇혀있는 초기엔 엡 6:18,20, 골 2:2,3에서 보듯이 내 입을 열어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해달라는 기도해달라고 에베소 교회 교인들, 골로새 교회 교인들에게 기도부탁을 했는데, 빌 1:13,14에 보면 “나의 이 매일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라고 기록이 되었고, 빌 4:22에서 문안하는 사람들 중 가이사 집 사람 중 몇이라고 하였으며, 그의 빌레몬서를 보면 오네시모가 바울의 전도 받고 개종한 것을 보게되므로, 바울은 옥에 갇힌 부자유스러운 몸으로, 아니 군인이 한 손에 바울의 한 손이 쇠사슬에 매여있는 그런 환경에서도 전도방법을 찾던 중, 자기가 갈 수 없는 몸이므로 사람들을 초청전도하기 위해 셋집을 얻어 전도하게되므로 자기 손에 쇠사슬에 매여있는 군인들이 매 3시간마다 교대하게 되는데 그들은 계속 바울의 전도를 듣게되고, 자기들이 들은 이야기를 또 다른 군인에게 전하게되어 최소한 몇 군인들이 믿음을 받아들였고, 또 심히 천한 신분인 오네시모까지 복음을 전했던 것을 보면 신분이 높던 낮던 넓은 분야에서 전도를 했던 환경을 이긴 전도자 바울을 보게됩니다.
여러분의 환경은 어떻습니까? 여자입니까? 남자입니까? 남의 집에 있어 자유가 없습니까? 돈이 없습니까? 병들었습니까? 하나님께 의지하면 환경 초월하여 다 승리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는 바울의 대를 이어 전도사명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마치면서 무척 아쉽고 불안한 것이 있었음이 사실입니다. 그것은 사도행전 29장이 빠져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가가 29장을 썼다면 바울이 어떻게 재판을 받았든 재판에서 풀려나와 그 다음 어떻게 전도를 했다는 내용이 기록이 될 터인데 그것이 빠졌고, 그 동안 바울과 함께 계속 여행을 따라 다녔던 우리는 그것에 관심이 많은데 그것을 잘 모르니 확실히 알려드릴 수 없는 불안이 저에게 컸던 것입니다.
물론 확실한 것은 아니나 일반적으로 바울은 일단 감옥에서 풀려났고, 그후 전도여행을 계속했음을 보게되는 것은 디모데전후서에 나와있는 내용 중 사도행전에 없는 것이 나오므로 일단 풀려나서 전도를 하다가 다시 옥에 갇혀 순교를 당하게 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의 핵심은 바울의 재판의 결과에 있을지 모르나, 누가를 통해 기록해 나가신 성령님의 뜻은 어떤 경로를 통해 복음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사마리아와 온 유대와 로마와 스페인과 미국과 한국과 또 온 땅끝까지 복음이 전해졌는지, 성령께서 전도자들과 어떻게 함께 하셔 큰 일을 했는지를 깨닫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 29장이 빠져 그렇게도 아쉬웠는데. 이 말씀을 준비하며 29장이 빠진 것에 대해 엄청난 환희를 느꼈고 하나님의 암시를 받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침묵하신 일에 인간들이 크게 관심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일에 관심, 정력 쏟지 말라는 것입니다. 행 29장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을 써서 바울의 최후를 써도 하나님 편에서는 별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도행전 29장은 하나님 편에서는 바울의 최후를 기록하실 것이 아니고 우리 성도들의 전도사실을 쓰실려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전도여행은 끝났으나, 이젠 전도여행 훈련받은 우리는 우리 각자가 전도여행 스케쥴 잡아서 형편 초월해서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전도하여 바울의 대를 이어야한다는 중대한 전도명령이 침묵의 29장임을 깨달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도행전은 끝날 수 없습니다. 계속 진행해 나가며 계속 써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도행전을 우리에게 주시고 강해설교를 1년 이상 하도록 하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강해설교를 들을 수 있는 청중을 주셨음에 감사드리며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어떤 환경에서도 환경을 탓하며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내게 주신 사명을 깨닫고 최대한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시며, 바울의 전도사명을 우리 모두 대를 이어 각자의 자리에서 전도사명 감당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