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 – 요한계시록 1:9-20

지난주에는 어떤 교훈을 받았던가요? 네 가지의 선포를 소개받았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부터 오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기를 원한다는 축복의 선포,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신 은혜가 너무 커서 주님께 찬양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는 찬양의 선포,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들 보겠고 그들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의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이라 선포했던 재림의 선포,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신 말씀에 대한 권위의 선포를 소개받았습니다

오늘 방금 봉독한 1:9-20을 통해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에 대해 소개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내 속에 계신 주님의 모습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어 우리 성도들이 주님을 더욱 뜨겁게 사랑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을 3부분으로 나누어 증거하려고 합니다.

 

[1] 성령에 감동된 요한(9-12)

[2] 주님의 영광된 모습(13-16)

[3] 위로해 주시는 주님(17-20)

 

[1]]성령에 감동된 사도 요한(9-12)

9-12절까지는 계시를 받았던 사도 요한이 스스로에 대해 첫째, 자기는 성도들의 형제요, 예수와 환난과 나라에 동참하는 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사도입니다. 그가 우리의 형제라고 겸손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님 때문에 가난하고 주님 때문에 억울한 누명, 핍박받으며, 우리도 고난에 동참하는 자입니다. 또 성도들이 심한 핍박과 고난을 당하고 있는데, 자기도 예수 때문에 똑같은 고난을 당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해 주면서, 핍박을 당하는 성도들의 그 고난을 본인도 몸소 체험하고 있는 고난을 나누고 있는 동지로서 글을 쓰고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두 번째, 자기는 예수를 증거하다가 밧모라 하는 섬에 추방당해 왔다고 소개합니다. 밧모라 하는 섬은 지금의 터키에 있는 팔모사라는 섬으로 에베소에서 40마일 떨어져있고, 길이 10마일, 넓이 6마일의 작고 쓸모 없는 바위섬으로 추방당한 사람들이나 살게되는 버림받은 섬이 있습니다. 로마 황제 중 AD 96년까지 통치한 도미시안 황제 때부터 황제 숭배를 강요하여, 황제 신상을 만들어 숭배케하는 일이 시작되어 사람들이 서로 만나 인사 할 때도 “황제 즉 가이사는 나의 주님이시다” 라고 인사하면 “그렇습니다. 황제는 나의 주님이십니다”라고 대답하도록 제도를 만들었으나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사형 당하는 일이 있더라고 주님의 은혜를 배반하지 않고, 그런 인사를 받으면 “아닙니다. 나의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라고 자부심을 가지고 믿음도 보였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네로 황제 때 자기가 불을 지르고 그리스도인들이 불을 질렀다고 누명을 씌었던 거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을 미워하고 세상의 모든 누명을 다 씌우고, 화형 시키고, 원형 경기장에 사자 밥이 되도록 밀어 넣어 죽이는 끔찍한 핍박이 시작되었었는데, 지위가 있는 사람은 죽이지는 않고, 유배를 보내기도 했다는데 사도 요한도 죽임은 면하고, 밧모라하는 섬에 유배당해 온 것입니다. 이렇게 되므로 기독교인들은 지하로 숨어 신앙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굴에서 모이거나 밤중 늦게 모이고, 크리스천임을 서로 알리는 암호로 물고기를 그려서 서로 형제인 것을, 그리스도의 제자 인 것을 알렸다고 하지요? 대 물고기 그림이 어떻게 크리스천을 상징했는지 모르지만 ‘물고기’라는 희랍어가 ‘이쿠투스’인데 이 단어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라는 다섯 단어의 첫 글자로 만들어진 단어라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물고기 그림을 그렸으리라고 봅니다. 일제시대 일본 천황을 숭배케하는 신사 참배를 거절하다 순교 당하신 우리 선조들의 굳은 믿음을 연상케 합니다.

세 번째, 유배당해 밧모섬에 와 있던 사도 요한은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의 날은 지금 주일인 Sunday입니다. 그가 주일에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있을 때 주님이 찾아오신 것 같습니다. 성령의 감동이란 사도 바울이 몸 안에 있었는지, 몸밖에 있었는지 모르지만 세째 하늘에 끌려갔던 상태와 같은 경지를 말하는 것 같고, 베드로가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본 것과 비슷한 상태였으리라고 봅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내려 말씀하신, 명령하신 환상을 보게된 것입니다.

네 번째, 사도요한은 나팔 소리 같은 우렁차고, 권위 있고, 뭔가를 경고하는 듯한 위력 있게 들었는데 말씀하시기를 “너의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일곱 교회, 즉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라”는 명령을 받게된 것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2] 주님의 영광스런 모습(13-16)

사도요한은 음성을 들었고, 또 말씀하신 주님을 뵈옵게 되었는데, 그가 뵈었던 주님의 모습을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제한된 단어를 사용하여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아무리 훌륭한 미술가라도 언어학자라도 자기가 본 주님을 바로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구약에 있는 근거와 거기에 있는 성경적 단어들을 동원하여 자기가 뵈었던 영광스런 주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으로 서는 변화산상에서 다른 두 제자와 함께 변형된 주님의 모습을 한번 뵌 적이 있습니다.

(1) 그는 촛대 사이에 계신 주님을 보았습니다. 1:20에 촛대는 교회라고 풀어주고 있으므로 촛대사이에 계신 주님이란 교회 사이에 계신 주님이심을 알게 됩니다. 촛대의 사명, 즉 교회의 사명은 뭘까요? 빛을 발하는 것이지요. 누구의 빛을 주님의 빛을 받아서 비취는 사명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빛 되시는 주님이 교회 사이에 계셔야 되겠지요. 교회들이 누구에게 말씀을 전해야 할까요? 주님이 주신 말씀을 전해야하므로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이 교회 사이에 계셨겠지요. 주님의 말씀에서 떠나 사람의 교훈으로 대신하는 현대판 교회에서 교훈을 주시고 계십니다.

(2) 그는 끌리는 옷을 입으신 주님을 보셨습니다. 누가 끌리는 옷을 입지요? 제사장, 또는 왕, 주님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제사장이시오, 세상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왕 중의 왕이 입으실 수 있는 긴 옷인 것 같습니다.

(3) 가슴에 금띠를 띈 주님을 뵈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가슴은 교회이요, 주님께서 교회, 즉 성도들을 철저히 보호한다는 뜻이라고도 해석하지만 왕이므로 가슴에 금띠를 띄고 있는 만 왕의 왕 되신 풍채를 나타내고 있다고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4)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은 주님을 뵈었습니다. 흰색은 주님의 죄 없으신 순결, 정결을 뜻한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5) 불꽃같은 눈을 가지신 주님이셨습니다. 불꽃같은 눈이란 어떤 눈일까요? 무서운 통찰력 마음속에 있는 것을 꿰뚫어 보실 수 있는 눈,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에게 네 남편이 다섯이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라고 꿰뚫어 보시는 눈가지신 주님을 뵈었습니다.

(6) 빛난 주석 같은 발을 가지신 주님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는 못에 찔리는 연약한 한 인간의 발이었으나. 심판 때는 도미시안 황제도 악의 어떤 세력도 다 밟아 버릴 수 있는 강한 발을 보게 된 것입니다.

(7) 많은 물소리 같은 음성을 들었습니다. 바닷가에서 바위에 부딪치는 장엄한 파도 소리 같은 천하를 호령하시는 위력이 있는, 파괴력이 있는, 웅장한 음성이었으리라고 봅니다.

(8) 오른손에 일곱 별을 가지신 주님이셨습니다. 오른손은 더 힘있는 손이며, 더 귀중한 손입니다. 일곱 별이란 20절에 해석해 준대로 일곱 교회의 사자들입니다. 주님께서 장 중에 주의 종들을 철저히 지키심을 증거해 주시는 모습입니다.

(9)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는 주님의 모습입니다. 영혼과 골수를 쪼개는 주님의 말씀으로도 해석이 되겠으나, 그것보다는 모든 악을 쳐부수는, 잘라버리는 무서운 칼로 보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10)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주님으로 강력한 빛, 즉 영광을 상징합니다. 햇빛보다 더 밝은 빛, 다메섹 도상에서 이 빛을 보고 엎드려졌던 강한 빛, 광채를 말합니다.

어떻습니까? 주님의 모습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런 설교를 들었기에 잠드시기 전에 이런 주님을 생각하고 주무시면 틀림없이 오늘밤에 영광스런 주님을 만나게 될지 모르나, 혹시 주님이 꿈에 나타나셨다해도 발표하지 마십시오. 그럴 때는 세상에 너무 많은 계시록이 있게되어 혼동을 주게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위로해 주시는 주님(17-20)

사도 바울이 엎드러지듯 사도 요한도 주님의 영광, 주님의 광채가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었을 때 부드러운 주님의 오른손이 요한의 몸을 어루만졌고, 부드러운 주님의 음성이 요한의 귀에 들렸습니다.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한번 죽었으나 이젠 영원히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고“ 하십니다. 음부란 희랍어 Hades로 이곳은 모든 죽은 자들이 가 있는 곳을 의미합니다. 우리를 지키시어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게 하실 권세 영광스런 주님은 바로 우리편이이시라는 위로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열쇠를 사용하시어 주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하실 주님이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게 됩니까? 또 그것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 광야에 있는 요한에게 나타나신 주님이십니다.

사도 요한이 믿음을 지켜서 늘 주님과 동행하였지만, 그가 교회에서 교인들과 함께 있을 때가 아니고, 자기 가족들과 함께 할 때가 아니고, 그가 가장 고독할 때 그가 가장 곤고할 때, 주님께서 보다 강하게 역사 하시어 주님의 영광을 체험한 사실입니다. 모세도 광야에 있을 때 가시덤불 속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체험했고, 야곱도 광야 벧엘에서 하나님 체험 들었던 사실은 우리는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유배 온, 추방 당해온 밧모섬이 어떤 이에게는 저주요, 불행일 수 있지만 우리 인간 살기에는 가장 불행하다고 하는 밧모섬의 생활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는 오히려 밧모섬의 생활 때 하나님께서 가까이 찾아와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을 전연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나를 버리면 버릴수록, 아니 내가 세상에서 벗어 나오면 벗어 나올수록 주님은 더 가까이 더 힘있게 역사 하신다는 밧모섬의 진리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두려워 말라는 주님의 위로입니다.

병으로 고통당하는 자있습니까? 세상의 근심, 걱정이 있습니까? 예수 믿는데 마귀가 강하게 역사를 합니까? 오른손으로 사도 요한을 어루만지시던 주님의 부드러운 손이 우리를 어루만지심을 믿으시기 바라며, “두려워 말라”고 위로하시는 그 소리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영원히 사시고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이가 두려워 말라고 위로하십니다. 오른 손에 7별은 가지신 즉 그의 오른 팔의 장중에 그의 사자들을 지키시는 이가 우리를 지키시면 주석 같은 발을 가지신 이가 모든 마귀를 짓밟아버리실 주님께서 두려워 말라고 위로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주님을 내가 신뢰한 만큼 주님께서도 내게 강하게 역사하시며 지키실 것입니다. “시저는 나의 주님이시다”고 할 때 “아닙니다. 나의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라고 자부심을 가지고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이를 철저히 의지할 때 주님은 그의 능력으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진 신 이, 처음과 나중이 되시며 두려워 말라고 위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철저히 의지하는 모든 자들의 유배의 밧모섬을 축복의 섬으로 바꿔주실 것이며, 어떤 어려움에서도 지키시고 건져주시는 능력자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에게 나오실 것입니다. 이를 믿고 보다 뜨겁게 주님을 사랑하시는 성도들 되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