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데 교회에 보내진 편지 – 요한계시록 3:1-6

오늘은 일곱 교회 중 다섯 번째 교회인 사데 교회에 보내진 편지를 통해 우리 교회에 주시는 주님의 책망과 교훈을 받게됩니다. 일곱 교회 중 두 교회는 칭찬은 없고, 순전히 책망만 받았는데 바로 오늘 소개되는 사데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이며, 두 교회 중 사데 교회가 더 심한 책망을 받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집니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분문 이해에 도움이 되도록 사데라는 도시에 대해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데라는 도시는 고대 리디아 황국의 수도로 세계적인 도시였다고 합니다. 도시를 질러간 강 주변에서 금이 발견됐다는 전설이었는데, 그 당시 소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상업 도시로 양털, 보석, 염색 업으로 유명했으며, 또 이 도시는 1500피트의 바위, 절벽 같은 바위 많은 산, 가파른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라 천연적인 요새, 즉 적군이 공격하여 쳐들어 올 수 없는 안전한 곳, 파숫군, 보초세우지 않은 도시였으나 과신하여 페르시아, 시리아의 두 번의 공격받아 빼앗겼던 도시입니다. 절벽으로 소수가 올라왔으나 항복했다고 합니다. 신으로는 다이아나 신전이 있고 기타 다른 도시와 같은 신전들이 있었습니다. 돈이 많고, 가장 안전한 도시에 살면 어떻게 되겠어요? 나태해지겠지요? 아무런 도전 받는 것이 없으므로 도전할 필요도 없고, 이대로 좋다는 안일주의에 빠져 결국 쇠퇴해진 것이요, 결국 요한이 이 서신을 쓸 때는 과거의 영광은 사라진 후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터어키의 사르트란 곳인데, 완전 폐허가 되어 있고 초라한 오두막이 널려있는 조그마한 마을로 남아 있습니다. 이곳에 교회가 세워져 한 때는 소아시아의 전도의 중심 같은 역할을 했으나, 그렇게 명성 있던 도시가 차츰 사라져 폐허가 되듯 교회도 사회의 풍조대로 밀려가 이름은 있으나 죽어 가는 교회로 책망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네 교회들에 공통적으로 지적된 우상숭배, 이단교리 즉, 이세벨 발람의 교훈에 대한 책망이 빠진 교회이나, 오히려 외적 공격이 없으니 내적 문제로 쇠퇴해진 교회가 된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함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 1절에 보니 편지는 역시 사대교회의 사자에게 보내졌습니다.

교회가 이름만 있고 죽어가도록 방치했던 책임도 묻고, 또 교인들은 일깨워 회개케 해야할 책임이 있는 지도자에게 주어졌고, 또한 성도들에게 읽히도록 보내진 것입니다. 또 이 편지 역시 6절에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는 권면과 같이 모든 교회들에게 주어진 편지여서 오늘 우리 교회에 전달된 것입니다.

[2] 1절 하반 절에 편지를 보내신 이가 표현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 신이라 기록되었습니다. 구태여 일곱 영, 일곱 교회와 연결 지으려는 경향도 있으나, 일곱은 완전 수로 해석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일곱 영은 완전한 영, 충만한 영, 이 일곱 영을 주님께서 관리하신다는 말인데 이 교회는 이름은 있으나, 속은 죽어있는 교회이므로 영적 변화와, 영적 충만이 요구되므로 일곱 영이 강조된 듯 합니다. 또 일곱 별이란 일곱 교회의 지도자들로서 교회 지도자들을 주님께서 관리하신다는 뜻이며, 마땅히 교회 지도자들은 주님께서 바라시는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된 듯 합니다.

[3] 이 교회는 칭찬이 없이 책망만 주어집니다.

주님께서 가라사대 “네 행위를 안다”고 하십니다. 에베소 교회는 “네 행위를 안다”고 하시면서 에베소 교회의 “수고” “인내”를 칭찬하셨는데, 사데교회는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라”고 책망을 하십니다. 무엇을 할 것을 안 해서 죽은가라는 책망을 받은 것이 아니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칭찬할 정도로 외모로 다 갖추어져 있는 교회인데 주님 보시기에는 죽은 교회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사람들로부터 칭찬 받는 교회도 쉽지 아니합니다. 또 사람들 즉 교인들이 만족하는 교회도 쉽지 아니합니다. 그런데 이 교회는 사람들로부터는 칭찬을 받을 정도로 준수했다는 것이지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어서 교인들이 만족스럽게 활발한 교회, 헌금 열심히 하여 예배당 건물도 구입했고, 선교사도 파송하고 출석 교인수도 많고, 열심히 집회에 참석하고, 구역활동도 경쟁적으로 열심히 하고 수도 계속 증가하는 교회, 성도들끼리 친교도 잘되고, 협력하여 피차 도울 일, 잘 돕는 교회, 성경교육이 잘되어 바른 교리 관도 갖은 행위도 있고, 교리 관이 있는 교회, 이러므로 어느 교회하면 다 부러워하는 교회, 어느 교회 목사하면 부러워하는 목사, 즉 이름만 교회인데 실은 죽은 교회라는 것이지요. 도대체 어떤 교회를 말하는 것일까요?

(1) 주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가 아니라 형식적 예배, 활동 위주의 교회,

(2) 주님 영광 위하기 보다 내 자랑, 내 영광, 우리 교회 영광 구하는 교회, 자기만족을 위한 교회

(3) 그리스도를 전하고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목적보다, 큰 조직체 유지, 목적 중심의 경쟁만이 있는 교회

(4) 영적 성장과, 덕을 위하기 보다, 세상적인 친교, 또는 사업적 목적의 교회

(5) 설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갈급 함이나, 감동이 없이 설교하는 교회

(6) 영적 구원에 관심 두지 않고, 외적 부흥에 관심 기울이는 교회 수 늘리기에 급급한 교회

(7) 주의 능력이나 성령이 함께 하지 아니하고, 인간의 힘에 의해 인간의 목적을 위해 운영되는 교회

(8) 자기 선전용 구제와 활동만 있는 교회

(9) 죽어가고 있다고 주님이 지적할 정도이지만 스스로 죽어가고 있는지 전연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교회

(10) 자기 명예를 높이기 위한 교회 직분을 갖는 교회

 

주님의 판단과 인간의 판단의 차이가 이렇게 나군요. 2절 마지막에 보면 “내 하나님 앞에서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라고 표현이 되어 있는데, 교회의 활동이 그렇게 많은데도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것을 찾아보지 못한 이유는 교인도 전도자도 하나님이 바라시는 일은 하지 않고, 자기 중심으로 일을 했다는 것이 되겠습니다.

 

[4] 권면(명령)입니다.

(1) “일깨어라.” 잠에서 깨어나라, 정신치리라, 지금 자기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중지하고 점검해 보라, 왜 죽어가고 있다고 하는지 판단하라, 영적 각성하라, 주님 다시 접하라.

(2) “굳게하라.”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므로 지금 남아 있는 것에 불을 붙에 살려 나가라 영적 충만을 하라 영적 성숙을 기하라는 충고입니다.

(3) “생각하라.” 주님을 어떻게 영접했고, 은혜를 어떻게 입었으며, 주님 영접했을 때의 첫 감격을 생각해 보라 회상해 보아라.

(4) “지키라.” 은혜, 회복한 것을 지속하라.

(5) “회개하라.” 현재의 상태에서 돌이키라는 총체적인 권면입니다.

(6) 경고로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겠다.” 사데교회 성도들을 도적같이 임한다는 말은 누구보다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도 자신 만만했던 안전한 도시, 심지어 파숫군도 세우지 않았던 도시가 적군의 기습을 두 번 받고, 2번 다 정복되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도 그렇게 적군이 쳐들어오듯 도적같이 오리라고 하는 경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7) 약속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사데 교회에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곧 믿음을 지킨 몇 명이 있었음을 들어내시며 그들을 격려하고 그들이 앞으로 주님 다시 오실 때 흰 옷을 입을 것이라고 보장하십니다. 다 죽은 자 인줄 알았더니, 남은 자가 있었음을 주님은 기억하시고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그와 같이 회개하고, 이긴 자는 흰 옷을 입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흰 옷이란 성결과 의로움입니다. 천국에 들어갈 예복이 되겠습니다. 이긴 자는 생명 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생명 책에서 이름을 지을 수도 있다는 전제인데. 이긴 자는 이름을 그대로 두겠다는 것이며. 승리자의 이름을 하나님 앞과 천사들 앞에서 인정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우리의 믿음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두 가지 교훈을 받게됩니다.

 

첫째는 사람에게 인정받은 신앙이 아니라, 주님 앞에 인정받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도 완벽한 사람에게 칭찬 받는 교회가 주님 눈으로 보실 때는 죽은 교회라니, 우리의 신앙을 재점검하지 않으면 예수 믿고 구원 못 받는 결과가 온다는 것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 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고 주님께서 이미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내 중심의 신앙이 아니라, 주님 중심,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영광 위해 내 중심으로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내 중심으로 귀신을 쫒아내고 많은 구원을 행 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고 하셨음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길이란 말씀 중심의 신앙으로 내 욕심, 내 영광, 내 만족, 나 살기 신앙이 아니라 내 욕심, 내 만족, 내 영광 죽이고,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여, 내 시간 내 물질, 내 몸 바치고, 이 세상에 만족하고 이 세상에 소망을 두는 삶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는 환난이 있어도 참아나가고 주님 재림에 소망을 두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도 두고 사는 삶이요, 죄인을 위해 오셨던 주님을 이웃에게도 전하여 죄의 몸을 벗고, 의의 생활을 하도록 주 예수를 전하는 삶인 것입니다. 헌금, 봉사, 구제, 전도, 직분, 교회 건물, 교인수 늘리는 것, 모두 주의 영광을 위해하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런 면에서 QT의 삶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삶인 것입니다.

두 번째 교훈은 남는 자가 되자는 것입니다. 남는 자가 흰 옷을 압는 영광을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이기자 만이 금메달 후보가 호명되고 시상대에 오르듯 하나님 앞에서 천사들 앞에 주님께서 이름을 시인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엘리야 선지자 시절에 모든 선지자가 다 위협을 느껴 우상 숭배를 하였고, 엘리야 혼자 남을 것으로 알았는데 그런 위험 속에서도 바알에 무릎을 꿇지 아니한 7,000명이 살아 남아 있습니다. 사데 교회가 죽어 사는 교회로 책망을 받았지만,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몇 명이 남아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만만을 초청했지만 세상 마귀와의 싸움에서이긴 자, 즉 남는 자만 흰 옷을 입게 하며, 생명 책에 그의 이름을 그대로 지우지 아니 하시겠다고 합니다. 남는 자 속에 들기 위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오랜 인내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마라톤 우승자 황영조 선수가 올림픽 스타디움에 두 손을 들고 입장할 때 수많은 관중이 환호한 것도 영광스러운데 하나님 잎에서 많은 천사들 앞에서 주님께서 이름을 호명하시며, 인정하신다니 그 이상 영광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그렇게 그 당대에 부자로 이름이 있었겠지만, 세상에서 무명했던 나사로는 이름이 있지만 부자는 세상 떠나서는 무명한자가 되고, 말았음을 기억하며, 우리 각자의 이름이 하나님 앞에서 주님에 의해 인정되도록 이긴 자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신앙 생활하며, 모든 과정에서 다 승리하며 남는 자들이 다되시어 다 흰옷을 입으시며, 하나님 앞과 주님 앞에 우리 이름이 인정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