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인의 재앙(2) – 요한계시록 6:9-17

지난주에는 주님께서 하나님 오른손에 들려있는 책에 붙은 일곱 인중 넷째 인까지 떼실 때 일어난 사건을 소개받았습니다.

첫째 인에 무슨 색의 말? 흰색. 이는 정복이기는 것.

둘째 인은 붉은색. 전쟁, 평화를 깨는 것.

셋째 인은 검정색. 흉년, 하루 일해서 밀 한 되.

넷째 인은 청황색. 죽음, 전쟁, 흉년, 질병, 짐승으로 인류 4분의 1이 죽는다는 소개를 받았습니다. 주님 오시기 전에 이런 일들이 꼭 일어난다는 것이었지요.

오늘은 다섯 째 인과 여섯 째 인을 떼실 때 일어나는 사건을 소개받게 됩니다. 다섯 째 인과 여섯 째 인을 떼실 때에는 말을 탄 자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또 넷째 인까지는 땅에서 일어난 사건을 소개받았는데 다섯 여섯 째 인을 뗄 때 일어나는 사건은 땅이 아니라 무대가 하늘로 바뀌게 됩니다.

 

[1] 9절에 보니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그랬습니다. 누가 인을 떼셨다고 했지요? 어린양 주님이십니다.

사도 요한이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아래 있음을 보게됩니다. 순교자들이 제단 아래 있더란 것입니다. 그런데 죽임을 당한 이유가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가 가진 증거 때문에 순교 당한 자, 즉 주님 때문에 순교 당한 자들이 하늘 나라의 재단 아래 있었음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말씀을 연구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말씀을 가르치고, 말씀을 전하다가 죽임을 당한 자들이란 것입니다. 이렇게 순교 당한 자들은 주님을 유일한 주인으로, 또 세상의 무엇보다 첫째로 앞세웠던 자들이며, 세상이 주님을 거역하기를 권하고 주님 믿는 일을 뒤로 미루고, 세상 섬기는 일을 먼저 하기를 권해도 이를 무시하고, 주님이 첫째요, 주님만을 섬기며, 주님에 의해 살았던 자들인 것입니다. 주님 때문에 죽임을 당한 자들이 어디에 있다고요? 재단 아래에 있더란 것입니다. 구약 성소에 있었던 제단이란 사람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동물을 죽여 피를 쏟았던 자들이라 할 수 있으므로 즉 하나님께만 열납된 제사를 드린 자들이기에 제단아래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가만히 있지 아니하고 이들이 큰 소리로 하나님을 부르기를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재”이시라고 부릅니다. 대 주재란 주님, 주인이란 말이고, 또 “하나님은 거룩하고, 참되신 흠이 없고, 진실하신 분”이라고 고백을 하며 탄원하기를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이까?” 라고 호소를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어떤 자들의 핍박으로 피 흘리고 죽임을 당했는데 하나님께서 언제 이런 핍박 자들을 심판하심으로 갚아주시겠느냐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할 것은 주님이나, 스테반은 자기를 죽인 자를 용서해 주었는데, 재단 아래 있는 순교자들은 왜 원수를 갚아 달라하는가 라고 오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것은 그런 뜻이 아니라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심판을 집행하시어 지금도 순교를 당하고 있는 그 고통받는 자들의 고통을 줄이고, 의로운 자들을 이 하루 빨리 그런 고생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로 현세에 순교 직전에 있는 자들에게나 힘을 얻게 하고 핍박한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엄하게 원수갚아 주실 거라는 믿음을 더욱 확고히 해 줌으로 지금 순교 직전에 있는 자들이 끝까지 참고 이길 수 있도록 힘주기 위함이 될 것 같습니다.

창세기 4:10절에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네 아우의 핏 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 라고 하심으로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 아벨의 피 값을 원수갚아 주심 같이 운 것이 되겠습니다.

11절에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흰 두루 마리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라고 했습니다. 순교자들에게 흰 옷 즉 승리자의 옷, 천국 백성이 입을 옷을 입히셨고, 그들이 주를 위해 땀흘렸고, 병에 시달렸고, 굶고, 매맞고, 조롱 받고, 고생했던 모든 일에서 이젠 해방되었으니 잠시 쉬라 하셨습니다. 쉼은 육을 완전히 떠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쉼입니다. 핍박 자는 고통을 주려고 죽였으나, 죽임을 당한 자들은 축복의 안식 쉼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계14:13에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지진도, 병마도, 눈물도, 미움도, 갈등도 폭력도 없는 완전 해방된 곳입니다, 그곳에 언제까지 쉬어야 하느냐하며, 순교자의 수가 다 찰 때까지 쉬라는 것입니다. 순교의 순간은 당하기 힘든 일이나 순교자의 축복은 크므로 축복 받는 자의 수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어느 숫자에 찰 때까지 편히 쉬고 있어 라는 것입니다.

좁은 의미로 볼 때 순교란 매 맞아 죽거나 총살, 화형 당한 것이라 할 수 있겠으나, 어떤 형태로든지 주를 위해 일생 견디다 죽은 모든 자가 순교자라 할 수 있겠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 지키고 굴복하지 않았던 용사들이 순교자가 아니겠습니까?

 

[2] 그 다음 여섯 째 인의 재앙을 소개받게 됩니다.

여섯 째 인을 떼시므로 하늘에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주 천체에 이상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첫째는 큰 지진입니다. 지진이란 전무후무한 지진입니다. 세상을 뒤집는 위력 있는 지진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해가 검어지고 달이 피같이 붉게된다고 했습니다. 요엘 2: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아 피빛같이 변하려니와” 라고 예언함과 똑같은 예언이 주어졌습니다. 해가 어두어지고 달이 피빛 같이 된다고 했습니다. 해와 달이 빛을 못 낸다는 말입니다.

셋째는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 열매와 태풍에 흔들려 땅에 떨어짐같이 땅에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별들이 천체의 궤도를 따라 질서 정연하게 자기 자리를 지킴으로 부딪힘이 없는데, 주님오시기 전에 별들이 자기 궤도를 벗어나 혼란을 이루는 때가 있을 거라는 예언입니다. 별들이 부딪혀서 떨어진다면 무섭겠지요.

넷째는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 같이 가라져서 떠나가고 하늘의 종이가 말리듯 없어질 거라는 것입니다. 말아두었던 종이를 펼 때 도중에 잘리면 양쪽으로 말리게 되겠지요. 이사야 34:4에도 “하늘들이 두루마리 같이 말리고” 란 예언이 이미 주어졌습니다.

다섯째는 각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기운다고 했습니다. 사13:13 “나 만군의 여호아가 분하여 맹렬히 노하는 날에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라” 하고 함과 같습니다. 천둥 번개 치면 좀 무섭지요. 같은 천둥 번개 쳐도 더 무서운 사람 있고, 덜 무서워하는 사람 있어요. 누가 제일 무서워할 것 같아요? 큰 죄진 사람, 아이고 이젠 죽었구나! 하나님은 못 속이겠구나할 지 모르겠습니다.

본문 15절에 보니 일곱 종류의 불신자들이 사람들이 벌벌 떨고 있음을 보게됩니다.

땅의 임금들, 왕족들, 장군들, 부자들, 강한 자들, 종, 자주자들이 벌벌 떨고 있습니다. 임금들, 왕족들, 장군들, 부자들, 강한 자들은 무서운 것 모르고 자기 힘으로 살던 자들인데 세상은 자기 마음먹은 대로 다 되었던 자들인데 때가 오시를 자기 힘으로는 되지 아니하는 때가 와서 돈도, 명예도, 지진도, 큰 지진이 나서 우르릉 쾅쾅, 해와 달이 빛을 잃고 별들이 떨어지며, 하늘이 없어지고 산과 샘이 옮겨지니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약한 자, 즉 종도 하나님 믿지 않으면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야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낮에서와 어린양의 진노를 우리가 보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진노의 날이 얼마나 무서웠으면 차라리 산과 바위가 내게 떨어져 죽어버리는 것이 차라리 낫겠다고 했겠습니까? 하나님과 어린양이 빤히 보시며 이젠 심판하실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엘 2:1 설자리도 없고, 숨을 자리도 없다고 했는데 죄인은, 주를 거역한 자는, 믿는 자를 핍박한 자는 숨을 수도, 죽을 자리도, 설자리도 없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천지가 개벽된다는 때가 바로 이때입니다. 불신자들의 마을은 통곡의 소리가 높을 것이며, 믿는 자들의 마을은 기뻐 환호성을 울리게 되는 갈림길이 될 것입니다. 이 때를 바라보고 겸손하며, 참으며, 소망하며, 순종하며, 매일 자기를 죽이는 삶을 살았던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어떤 자는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보면 보라고 신자 조롱하며 높은 체 했고, 교회 가자고 해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자들이 있었지 않겠습니까? 사54:10에 “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지라도 나의 인자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케하고 나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다 너를 긍휼히 여기는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산이 옮겨져도 여호와께서는 성도들을 지키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을 통해 우리 마음에 와 닿는 것이 무엇입니까?

 

제가 얻은 답은 하늘에 거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대우받는 우리 성도들이 되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본문에 보니 대조적인 두 모습을 보게됩니다. 제단 아래 있는 순교자들과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땅에 거한 자들입니다. 순교자들은 하나님 아주 가까이 재단 아래 있었으며, 승리자로서 흰 옷을(천국성도의) 유니폼으로 전달받았으며, 모든 싸움이 끝나 편히 쉬고 있었으며, 월계관 즉, 받게될 시상대에 설날만 기다리는 축복의 기쁨의 쉬는 생활을 하고 있으며, 반대로 땅에 거한 자들 즉, 하늘나라를 모르고 하나님 오히려 믿는 자 핍박하며, 오로지 돈, 오로지 권력, 오로지 지식을 부르짖으며 그것 가지면 천년 만년 살 줄 알았던 그들은 하나님 앞에 어린양 앞에 심판을 받기 보다 산이나, 바다가 자기 위에 내려 덥쳐서 아예 죽어버리는 것이 낫겠다고 심판의 낯을 피하고 싶다고 하는 그들의 모습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험한 죽음을 해도 다들어 날 심판 받는 것 보다 낫겠다는 심정을 가진 그들의 모습입니다. 숨을래야 숨을 수 없고,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그들의 안타까움을 보게됩니다. 하늘에 있는 자에게만, 죄를 대속해 주는 어린양, 자비의 하나님을 나타내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진노하는 어린양 심판하는 하나님으로 크게 대조를 이루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풍성히 살고, 권력누리며 살고 내 멋대로 살다가 태풍, 지진, 질병, 우주의 큰 변동 날 때 숨을 곳을 찾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날이 올 것을 예비하여 날마다 주를 위해 나를 죽여, 사실상 순교자들이 다 되어 하늘의 제단 아래서 주님의 오실 때까지 편히 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큰 진노의 날이 심판 날이 올 것을 믿고 날마다 자기를 죽이고 그리스도를 높이는 생활하여 천체의 변동과 천지의 변동이 일어날 때 상을 내리시기 위해 주님이 오시는구나 하고 주님을 환영하는 자들 되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