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환난에서 지키실 하나님 – 요한계시록 7: -17

지난 2주 동안 여섯 인의 재앙에 대해서 소개받았습니다. 특히 지난주에 소개받은 여섯 번째 인의 재앙은 큰 지진이 있고, 해와 달아 빛을 잃고 하늘이 종이 축 말리듯이 둘둘 말려지고, 별들이 궤도에서 이탈하여 떨어지는 천체의 큰 변화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음을 알고 불신자들이 벌벌 떨며 심판대 앞에 서느니 차라리 산이나 바위가 자기들 위에 떨어져 죽기를 바라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6장 마지막 절에 보면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하나님 앞에 서겠느냐 라는 질문을 던지고 6장이 마쳤습니다, 그런데 7장에서는 이 질문에 답이 될 수 있는 이 대 환난 날에 마귀 밥이 되지 아니하고 살아 남은 자들이 소개됩니다. 이미 소개된 여섯째 인까지의 재앙만 해도 천체의 변동과 세계 인구 4분의 1이 죽게되는 참혹한 재앙을 예고 받았는데, 이것은 재앙의 맛을 보여주는 예고편에 불과하고 본 재앙은 8장부터 소개되는데, 이미 언급했지만 마24:22에 보면 이 일곱째 인의 재앙은 너무 극심해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살아남지 못할 정도라고 미리 예고를 받은바 있습니다. 이렇게 끔찍한 대 환난을 하나 하나 소개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런 대 환난 가운데서도 철저히 보호하심으로 영적으로 살아남게 될 것이라고, 큰 환난을 이겨내도록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있는 것이 바로 7장인 것입니다.

 

7장을 요약하면 환난 날에 살아 암은 자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1] 1-8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서 144,000

[2] 9-14 이방나라로부터의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소개해주며,

[3] 15-17 살아 남은 자들의 축복, 흰옷 입은 자들의 축복입니다.

 

요한계시록 전체가 다 그렇고 성경 전부가 다 그렇겠지만 이 계시록 7장만 하드라도 본문을 읽은 자들에 따라 여러 가지의 다른 해석이 주어질 수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난 6장에서 대체로 건전한 학자들은 흰말을 탄 자를 그리스도로 보거나 복음전파로 봄으로 그리스도의 승리, 진리의 승리로 볼 수 있는 반면, 오히려 정반대로 적 그리스도 일시적 승리 즉 정복자로 해석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인을 떼신 이가 주님이심으로 첫째 인을 떼시니 주님이 말을 타고 나타나셨다는 좀 이상한 해석이 되어 흰말 탄 자가 주님이시라기 보다 다른 세 말을 탄 자와 같은 부류로 저는 해석을 내렸습니다만 사실상 50%, 50%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기 7장에서는 1-8절에 이스라엘 12지파에서 하나님의 인을 맞은 자가 144,000명이라고 나오는데 이것의 해석이 몇 가지로 가능합니다.

이것을 문자 그대로 인 맞은 자가 꼭 144,000명이라고 제한하는 해석이 있고(여호와의 증인), 또 이 숫자는 이스라엘 후손들 중에 구원받는 상당수라는 해석이 있으며, 또 이것은 영적 이스라엘 즉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주님을 믿는 자들 중 구원된 숫자로 보기도 하는 것입니다.

또 144,000명은 종들, 즉 전도하는 지도자들이고, 9절부터 나오는 수많은 사람들은 종들로부터 전도 받은 자들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또 144,000명은 대 환난에 전도되어 환난에서 건져진 영혼들이고, 9절부터 나오는 셀 수 없는 흰옷 입은 자들은 큰 환난 전에 이미 수원 된 영혼들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마에 인을 쳤다는 기록이 없다는 이론입니다.

이제 본문에 들어가서 다시 분석해 보겠지만 이런 많은 해석 중 우리는 무엇을 택할 것이냐가 문제입니다. 엊그제 어떤 나이 많은 목사님을 초면에 만났는데 우연히 계시록 이야기를 하시면서 흰 말 탄 자를 내가 그렇게 해석한 지를 이 분은 몰랐어요. 자기가 가르쳐준 다음에 하라고요. 자기가 녹음한다고 원고를 한 보따리 가지고 왔데요. 결국 누가 이단이냐고 하면 계시록 가지고 내가 옳고, 너는 틀렸다고 단정을 짓는 사람일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정확히 흰 말 탄 자는 누구라고 말씀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입장은 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책으로 보고 계시록도 하나님의 구원에 초점을 맞추어 다른 성경의 구원관과 조화를 이뤄나가는 방향에서 7장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1] 1-8절에서의 인 맞은 자 144,000명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1-3절까지를 보니 4이란 숫자가 여러 번 나옵니다, 네 모퉁이 사방, 네 천사, 4는 땅의 숫자입니다. 동, 서, 남, 북. 참고로 3은 하나님의 숫자로 성부, 성자, 성령을 나타냅니다. 네 천사가 땅이 네 모퉁이에 서서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을 불지 못하게 하더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천사가 하나님의 인(도장)을 가지고 해 돋는 대로부터 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해 큰 소리로 외치되 우리가(천사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큰 환난 즉 재앙을 허락 받은 천사들에게 어느 기간까지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어느 기간까지냐 하면 하나님의 도장을 가지고 와서 주의 종들의 이마에 도장을 다 찍기까지 기다려 달라는 것입니다. 인 맞은 자는 그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인 맞은 자로 계시록 13:16의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 또 계16:2같은 짐승의 표 받은 자로 구별됩니다. 어떤 분들은 십자가 도장을 믿는 성도들의 이마에 찍는다고 해석하나 인 맞는다는 말은 주를 마음으로 영접하여 성령 받은 자들이며, 짐승의 표 받은 자들이란 불신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마에 도장 찍지 아니해도 자기 자식인지 아닌지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도장 찍는다(인 친다는) 말은 보증, 보호, 소유를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보증하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4절부터 8절까지 보니 인 맞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14만 4천명이라고 했어요. 14만 4천명이란 12지파 완전 수에 12 완전 수를 곱하고, 사람의 숫자 100에 많은 900을 더한 것을 곱한 수로, 육적 이스라엘 자손 중 상당수가 구원된다는 것이며, 제한하는 확정된 숫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 누구든지 주를 믿고 영접한 자는 144,000명 숫자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천국은 정원제가 아니고 제한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집고 넘어갈 것은 12지파 하면 첫 아들 르우벤의 맨 먼저요, 레위는 빠지고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들어가게 되는데 여기에 기록된 것을 보니 르우벤 보다 유다가 맨 먼저 기록되었어요. 이것은 주님이 유다 지파에서 나셨으므로 그리스도 메시야 중심으로 기록했기 때문이며, 또 레위가 들어갔고 단이 빠졌으며, 에브라임이 빠지고 그의 아버지 되는 요셉이 들어 있습니다 물론 단과 에브라임은 우상 숭배를 했던 일로 빠진 것으로 보통 보지만, 그것을 말하려고 이것을 쓴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서 상당수가 환난에서 구원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받아드려야 할 줄 압니다.

 

[2] 9-14절로 이방나라로부터의 큰 무리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베드로는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표현됩니다. 로마서를 보면 이방인과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이방을 비교해 가면 하나님의 뜻은 육적 이스라엘 뿐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인 이방도 함께 구원하심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8절까지는 육적 이스라엘의 구원, 9-14절은 영적 이스라엘인 이방인의 구원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분하지 아니하고 물론 144,000이 포함된다고 해석을 한다해도 교훈의 차이가 없습니다. 각 나라와 각 족속과 각 백성과 각 방언에서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종려가지를 들로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구원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손에 달려 있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14절에 보니 이 흰 옷 입은 자는 환난을 통과한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회개한 자들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주 예수를 믿고 내 죄를 회개하고 많은 물 속에 죄를 장사지내고 거듭남으로 죄를 씻어 회개될 수 있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주 예수를 영접했던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3] 15-17 흰옷 입은 자들의 축복입니다.

(1) 15절 보니 흰 옷 입을 자들은 하나님 보좌 앞에 있습니다. 면전에 있는 것입니다.

(2) 보좌 앞에 하나님 섬기는 일, 수종드는 일을 합니다.

(3) 그렇게 섬기니 하나님께서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신다고 했으니 그들 곁에서 사신다는 뜻입니다.

(4) 다시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아니하고

(5) 어떤 뜨거운 것도 상하게 하지 못하고

(6) 어린 양이 목자되시어 생명수 샘으로 인도해 주시고

(7) 하나님께 저희 눈에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고 흰옷 입은 자들의 축복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을 통해 우리가 받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우리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소망은 하늘 나라의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현재 주를 영접하여 구원 얻고, 우리의 소망은 주님 재림 시에 하늘 나라의 영광을 누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 성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이 없는 믿음이 어찌 보면 결백한 욕심 없는 좋은 믿음의 소유자같이 느껴질지 모르나 환난 후에 있을 천국 생활의 소망을 갖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 환난 중에 보호하신다고 하나님의 보호는 육적으로 살아 남도록 보호하신 다는 뜻이 아니요, 인 맞게 하여 마귀가 손을 못되게 하는 것이 육의 보호를 말하는 것이 아니며, 영혼이 마귀 밥이 되지 아니하도록 환난 날에 믿음을 지키도록 철저히 지켜 주신다는 뜻인 것입니다. 유월절에 문지방에 바른 피 때문에 이스라엘의 장자들이 살았던 그런 육적 삶의 차원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밤, 낮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신 주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시어 우리를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어 다시는 목마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굶주리거나 병으로 시달리거나, 세상 일로 공포를 느끼지 아니해서 다시는 굴욕을 당하지 아니하며, 멸시 천대를 받지 아니하며, 모든 눈물을 말끔히 씻어주시는 그 하를 나라에 소망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젊은이도 늙은이도 우리의 최후의 소망은 하늘 나라에 소망을 두는 확고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늘 지금 부르셔도 흰옷 입을 수 있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십니다. 늘 Chance를 주시고 있습니다. 네 천사를 시켜 환난이 더디 오도록 막고 계시며, 환난 전에 주를 받아드리도록 기다리시며, 인 맞은 숫자가 차기까지 대 환난을 붙잡도록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니 재림 전에 큰 환난을 통해 또 한번 불신자에게 충격을 주어 회개하고 주를 영접하도록 마지막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144,000에 들도록, 셀 수 없는 수에 들도록 계속 기회주시고 계십니다. 우리의 정성 다해 말씀을 이해하고 그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잘 섬겨야 합니다. 부자도 있는 체 말고, 가난해도 비참하다고만 생각 말고 하늘 나라의 소망을 두고 주님을 영접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늘 나라에서 하나님 주님 섬기게 될 터인데, 땅에서는 하나님의 충성된 종으로 하나님 섬기는 훈련을 잘해야 합니다, 우리는 시간, 우리의 돈, 우리의 정성이 말씀 연구와 말씀 전하에 쓰임 바 되어야 합니다. 충성스럽게 살다가 모두 하나님의 인 맞은 자 되어 가난도, 병듦도, 외로움도, 짓눌림도, 눈물도 억울함도 없이 늘 찬양과 영광과 기쁨만 있는 하늘 나라의 보좌에 다 입성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