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바다에서 나온 짐승을 소개받았습니다. 바다에서 나온 짐승을 뭐라 풀었던가요? 적 그리스도로 해석을 했습니다. 외부적 핍박으로 교회를 분해시키려는 세력으로 보았습니다. 우리는 공산 국가의 경험을 했습니다. 로마 나라의 종교적 박해도 보았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하나님보다는 나라를 섬기게 하는 그런 세력을 바다에서 나온 짐승으로 해석을 내렸던 것입니다. 오늘은 땅에서 나온 짐승을 소개받게 됩니다. 바다나 땅은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고, 둘 다 약한 이 세상을 말한 것으로 해석을 내릴 수 있겠습니다. 이 땅에서 나온 짐승은 교회를 내부에서 공격하여 교회를 분해하려는 세력으로 풀 수 있는데,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로 거짓 선지자가 되겠습니다. 지난 주는 적 그리스도, 오늘은 거짓 선지자가 되겠습니다. 이 두 세력이 강하게 역사하여 교회를 심히 핍박하는 모습을 소개받게 됩니다.
방금 봉독한 본문을 4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땅에서 나온 짐승의 기원(11)
[2] 목적(12)
[3] 그의 행위(13-17)
[4] 그의 숫자 666(18)
[1] 먼저 땅에서 나온 짐승의 기원(11)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1절에 보니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한다고 했습니다. 새끼 양 같다는 것은 어린 양 예수를 가장한, 그리스도를 가장한 모습을 말해주고 있으며, 두 뿔이 있다는 것은 열 뿔이나, 일곱 뿔이 완전한 권세를 상징한다면, 두 뿔은 그 보다 못한 권세를 가진 자를 상징한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용같이 말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지 아니하고 적 그리스도의 말을 전하고, 진리가 아닌 거짓을 전하며, 하나님의 대변자가 아니고 적 그리스도의 대변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계시록 16:13절에 보면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온다고 하였고, 계시록 19:20절에는 짐승이 잡히고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다고 소개하고 있으며, 계시록 20:10절에는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다고 소개해 주고 있어, 우리가 성부, 성자, 성령이 삼위를 이루듯 마귀의 세력도 이를 모방하여 용, 마귀, 사단이요, 그 부하가 지난 주 소개받은 적 그리스도요, 또 오늘 소개 받게되는 적 그리스도의 부하인 거짓선지자가 삼위를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소개받는 거짓 선지자는 어린 양의 모습으로 가장하여 천진하고 죄 없고, 양순하며 온유하며, 남들이 만지고 싶고, 사귀고 싶고 의지하고 싶도록 변장한 거짓 선지자이며, 종교 지도자로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같이 전연 나쁜 것이 없고, 악이 없으며 그리스도의 대변자같이 평강과 기쁨과 사랑을 나타내 보인 자같이 어떤 잘못을 할 리가 없을 자같이 나타내 보인다고 거짓선지자의 용모를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둘째 짐승이 땅에서 나온 짐승은 뿔이 열인 적 그리스도의 부하인 거짓선지자가 되는 것입니다.
[2] 목적(12)
12절에 보니 바다에서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행하고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즉 적 그리스도에게 경배하도록 한다고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땅에서 나온 짐승은 바다에서 나온 짐승인 적 그리스도로부터 권세를 받아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적 그리스도를 섬기게 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라고 소개합니다. 땅에 거한 자들이 누구인가요? 불신자들, 또는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우선 순위에 두고 믿는 세상 우상 섬기는 자들이겠지요?
두 번째 짐승의 목적은 첫 번째 짐승 선전꾼, 즉 홍보장관이 되겠습니다. 적 그리스도의 오른 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3] 그의 행위(13-17)
13절에 보니 큰 이적을 행하되,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에서 땅에 내려오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거짓 선지자가 스스로 참 선지자로 나타내 보이도록 능력의 종임을, 아니 하나님의 참 종 같이 속이기 위해 이적을 행하되 불이 하늘에서 땅에 내려오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적이 누구에 의해 일어났지요? 엘리야. 바알 선지자 450명과의 대결에서 엘리야가 기도했을 때(왕상18:38) 하늘에서 불이 내려 번제물을 태웠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아무리 자기 하나님께 기도했으나 불이 내리지 아니했던 그런 기원에서 나온 말씀 같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보니 거짓선지자가 하늘에서 불이 내리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면 하나님의 보내신 참 선지자로 보이겠지요? 많은 이들이 그를 위대한 종으로 알고 따르겠지요?
14절에 보니 이 정도 이적을 행하니 그를 따르는 자들이 많았을 것이고, 그 따르는 자들로 바다에서 나온 짐승 즉 적 그리스도를 위해서 짐승을 만들어 섬기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15절에 만든 우상에게 생기를 그 우상으로 말하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을 하게 한다는 것일까요? 하나님께 참람된 말, 성도들께 참람된 말, 불경스런 말을 하도 한다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죽이게 하며,
16절에 오늘 손에나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게 하고, 이 표가 없는 자는 물건을 사거나 팔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 비슷한 책들이 많이 있는데 성경에 들어 있는 말씀을 성경, 그리고 성경에 들지 못했으니 비슷한 책들이 있는데 이것을 외경이라 부릅니다. 그런데 외경에 보면 적 그리스도가 이적을 행하되 밤중에 해를 뜨게 하고, 정오에 달이 나타나게 한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는 자기가 그리스도가 보낸 선지자같이 외모는 양순하고 가장 선한 자같이 나타나고, 또 이적의 능력을 행하여 하나님의 참 선지자같이 사람들의 마음과 눈을 속이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 놓고는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짐승의 우상을 만들어 우상을 섬기게 하며, 또 우상이 입을 벌려 말하도록 하나님 욕하고, 성도들을 헐뜯는 말을 하게 하며, 우상을 섬기기를 거절하는 자는 잡아죽이며, 또한 거짓선지자와 우상 숭배자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성도가 살아남아 있지 못하게 하기 위해 검은 손들만 물건을 사고 팔 수 있고, 직업을 주고 사회 보장을 주며, 악에 가담치 않는 자에게는 사회의 혜택을 금하고 아무 것도 사고 팔 수 없도록 경제적 제재를 가해서 결국 악에 동참케 할 때가 온다는 예고인 것입니다.
[4] 짐승의 숫자 666입니다.(18)
666이란 숫자가 우리로 공포를 갖게 하고 있습니다. 이 숫자가 주는 뜻이 무엇인지 여러 각도로 풀어보려고 하는 노력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기대했던 것만큼 아니 지금 현세에서 두려움의 숫자로만 알고 있는 그런 숫자만은 아닌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666이란 숫자를 찾아보면 에스라 2장 13절에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사람 중 아도니감의 자손의 수가 666명이었으며, 왕상 10장 14절에 솔로몬 왕이 받아드린 세금 수입이 금으로 666 달란트 이었음을 보게됩니다. 결국 여기에서 666은 특별히 나쁜 다른 뜻이 내포되어 있지 아니합니다. 666이란 숫자에서 우리의 공포와 관심을 풀어도 되겠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666이란 숫자가 별 의미가 없음으로, 또 다른 각도에서 666이란 숫자를 찾아내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알파벳이나 희랍의 알파벳은 글자마다 수치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미국 전화기를 보면 번호 판에 알파벳이 써있어서 전화번호대신 영어 글자로 표시해 주듯 희랍어나 히브리어로 된 사람들의 이름을 수로 계산해 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악명이 높은 사람부터 이름이 있는 사람의 이름을 숫자를 합산해 본 것입니다. 우연히 네로 황제인 네로 가이사의 이름을 히브리어로 표시하여 그 준 자가 말해주는 수를 합산하니 666인 것입니다. 우연히 잘 맞아지요? 또 로마 황제 중 티도나 마호멧, 루터, 칼빈, 나폴레옹, 히틀러의 이름의 숫자의 합산이 역시 666이었습니다. 그러나 666이 로마나, 네로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칼빈이나 루터같은 종교 개혁자에게도 주어질 수 있으므로 사람 이름에서 찾아보려는 노력도 별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 우연한 숫자의 합산인데 1~8까지를 더하면 36인데 또 1~36까지를 더하면 666이 되는데, 우연히 666이 되었지만 이것도 무슨 의미가 있다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본문에 기록된 대로 짐승의 숫자란 666은 사람의 수인 것입니다. 즉 6은 하나님의 완전 수 7에서 하나 뺀 불완전수로서 불완전이 3개 겹친 숫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지나치게 666의 숫자에 예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국 사람 싫어하는 숫자 4, 미국 사람은 금요일과 13, 우리 교인들의 이름을 그 희랍어나 히브리어로 써보고 숫자를 합산하면 777도 나올 수 있을 것이고, 혹은 666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것을 시도해 볼 필요도 없습니다. 너무 자만해지거나 또는 너무 낙담할지도 모르는 미신 속에 빠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666은 사람의 숫자로 사단은 유한한 존재로 때가 되면 죽고 하나님 심판대 앞에 선다는 존재임을 말해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본문이 우리에게 주어진 이유가 어디 있는가요? 이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는 게시는 무엇인가요?
첫째, 거짓선지자를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거짓선지자는 무슨 모양으로 온다고요? 어린양의 모양으로 나타난다고 했으며, 무엇을 행한다고요? 이적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 살리고, 암 환자 낫게 하고, 예수님이 하시는 것 흉내내기 때문에 속아넘어간다는 것이지요. 신명기 13:1-3 말씀에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치 말라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고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능력의 종이란 이적을 행하는 그 능력에 있지 아니하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분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입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나오면 주의 종이요. 그 입에서 용의 말이 나오면 거짓선지자인 것입니다. 믿습니까? 아멘. 이적은 거짓 선지자도 행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대낮에 달이 뜨게도 한다고 했지 않습니까? 불이 하늘에서 내리게도 하나 거짓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 마귀의 말을 전합니다.
교회 숫자가 많아지고 문명이 발달하더라도 미신과 우상 숭배자들이 늘어난다고 예언해 주고 있으니 믿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양 같고, 이적 행하는 거짓 선지자의 꼬임에 넘어가 땅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우상을 섬길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으니, 정신차려 말씀을 굳게 지켜 거짓선지자의 유혹에서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 짐승이 외적 공격으로 넘어뜨리려 해도 넘어지지 않으니 둘째 짐승 거짓선지자를 통해 넘어뜨리게 하니 넘어지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두 번째, 어떤 환경에서도 사단에 굴복 당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세상을 사단의 세력으로 가득 차서 사단에게 절하지 않은 사람은 죽일 거라고 예언해주고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 분간할 수 있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또 사단의 표, 짐승의 표 받지 않은 사람, 즉 우상숭배하지 않는 사람은 물건을 살수도 없어 아니 직장도 얻기 힘들고 완전히 사회에서 따돌림받는 때가 온다는 예고입니다. 이런 때를 만나도 죽을지언정 믿음을 지켜 영원한 살음을 받으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6.25때 충청도 강경에 한 목사님이 계셨는데 6.25가 터지니 모두가 언제부터 열렬한 공산주의자였는지 모두 공산당 열성분자로 가득 차고 교인을 찾아 볼 수가 없더랍니다. 하도 기가 막혀서 빳빳한 큰 종이를 들고 한 교인 집을 찾아가서 이것을 잘라서 명함을 만들어 달라고 하더랍니다. 왜 평소에도 명함을 만들지 않으신 분이 명함이냐고 하니 자기가 목사인 것을 자랑스럽게 내놓겠다고 하며 명함 만들어 뿌리고 다니다가 순교 당했다고 합니다. 주안에서 죽는 자는 영원히 삶을 산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시로 살고자 불법과 타협하고 거짓 선지자와 타협하면 영원히 죽는다는 사실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우상을 섬기지 아니하면 Job을 주지 않겠다는 때가 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다른 이단을 섬기지 않으면 결혼하지 않겠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상을 섬기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세상은 버려도, 사랑하는 애인을 버려도, 내 직장 내 직업 내 사업은 버려도, 굶어 죽어도, 화형을 당해도 그리스도는 버리지 말라는 교훈 아닙니까? 주를 위해 죽는 자는 영원히 살며 큰 보상이 준비되어 있음을 믿으시는 성도들 되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