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한 성도들의 모습 – 요한계시록 14:1-5

성경 전체는 선과 악의 지속적인 싸움을 그려주고 있으며, 결과적으로는 선의 승리를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이 지속적인 선과 악의 전쟁은 주님의 재림으로 완전히 끝나버리고 선이 그 이상 피해를 받지 않는 완전한 승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 좁혀서 계시록 전체를 요약해 본다면 주님 재림 전까지 마귀의 세력이 교회와 성도 등을 심히 핍박하여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품에서 빼앗아 마귀를 따르는 자들이 되게 할 것이나, 이 모진 풍파에도 신앙을 지킨 자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것이며, 마귀와 그에게 넘어간 자들은 영원한 불 못에 던지울 것이라는 예고가 주어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선과 악의 싸움을 대조해 가면서 성도들이 승리하여 선에 속하도록 격려하고 있는 것이 성경의 줄거리인데, 지난 두 주 동안에 다뤘던 13장과 오늘부터 다루게되는 14장에서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선과 악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3장이 짐승에 대해 기록됐다면, 14장은 어린 양에 대해서 기록된 것입니다. 13장에서는 우상 숭배하는 자들의 모습을 보았고, 14장에서는 어린 양을 경배하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13장은 적 그리스도에 속한 666 짐승의 표 받은 자들의 모습을 보게되며, 14장에서는 그리스도와 하나님께 속한 어린 양과 하나님의 이름의 표 받은 자들의 모습을 보게됩니다. 13장은 거짓에 대해서, 14장은 진실에 대해서, 13장은 사단이 최후에 멸망을 받게 됨에 대해서, 14장은 성도들의 최후는 구속, 구원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13장은 일시적인 마귀의 승리, 14장은 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성도들의 영원한 승리자의 모습을 보게됩니다.

오늘은 진리가 선이 승리한 모습 중 1~5절까지에서 승리한 성도들의 모습을 교훈을 받게됩니다.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1] 어린양과 함께 있는 14,4000명(1)

[2] 새 노래를 부르는 144,000명(2-3)

[3] 144,000명의 속할 자격(4-5)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어린양과 함께 있는 자들 144,000명입니다(1)

1절에 보니 어린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14,000명이 섰는데, 그 이마에 아버지와 어린양의 이름이 써있는 자들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용은 누구의 상징입니까? 마귀, 즉 사단을 상징하며, 어린양은? 누구를?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12장 17절에 용은 바다 모래 위에 섰었는데, 어린양은 어디에 섰나요? 시온 산에 있음을 소개해 줍니다. 바다 모래 위란 세상을 상징하며 시온이란 예루살렘의 다른 표현으로, 새 예루살렘 새 하늘과 새 땅인 천국을 그와 함께 144,000명이 서있더라는 것입니다. 이미 7장에서 취급했지만 144,000명이란 정확한 숫자라기 보다는 상당히 많은 숫자를 말하는 그 어떤 숫자로 보았으며, 이 144,000명이란 이스라엘의 12지파와 주님의 제자 12사도를 곱하고, 많은 숫자인 1,000명이 곱해져 구약시대 유대인과 신약시대 성도들의 상당수를 상징하는 숫자로 보는 것입니다. 이들은 한사코 짐승의 표 받기를 거절하고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들로 하나님의 표, 어린양의 표를 이마에 받은 자들이라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모든 환난에서 오로지 어린양을 따로 승리자들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들이 누구와 함께 있다고요? 어린양과 함께 천국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도 어린양과 함께 서있도록 최선을 다하라는 격려의 예시이기도 합니다.

 

[2] 새 노래를 부르는 144,000명의 모습입니다.(2-3)

사도 요한이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는데,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과도 같은데 내게는 거문고 소리 같더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많은 물소리나, 뇌성 같은 이란 표현은 우렁찬 큰 소리, 장엄한 소리로 해석을 내릴 수 있겠습니다. 그 장엄한 소리가 거문고 타는 소리 같았다고 소개해 주면서 144,000명이 부른 새 노래를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새 노래를 네 생물과 24 장로들 앞에서 부르더란 것입니다. 네 생물이란 천사들 중 대표 천사로 해석을 내렸으며, 24 장로들이란 신구약 시대의 대표 지도자들로 해석을 내렸습니다. 이들 앞에서 부른 노래는 새 노래였고, 이 새 노래는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144,000명밖에는 배울 자가 없더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새 노래란 고전14:15에서 말한 마음으로 영으로 드린 찬미일 것입니다. 감동을 가지고 하나님을 향해 부른 찬양일 것입니다. 새 노래란 음악 중심의 노래말고, 가사 중심의 찬양일 것입니다. 세상에 자기들이 즐기자고 부르는 노래가 아니고, 하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일 것입니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을 영원히 살게 해 주신 은혜에 감격하여 감동을 가지고 드리는 감사 찬양을 말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새 노래를 누구나 배우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144,000명밖에는 이 새 노래를 배울 수도 부를 수 없다는 것일 것입니다.

 

[3] 새 노래 찬양대원의 자격(4-5)

4~5절에는 하늘 나라에서 새 노래를 부르게될 144,000명의 수에 들을 수 있는 자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새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란?

(1)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한 정절이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교회사적으로 보면 144,000명에 들기 위해 결혼을 금하고 독신주의로 금욕을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결혼을 죄악시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정결한 마음을 갖도록 결혼을 권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여기에서 이야기한 여자란 남자, 여자의 여자가 아니고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겨야할 자가 세상을 섬기는 것을 음녀에게 여자에게 몸을 더렵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 노래, 성가대원은 세상 그 무엇에도 빠져들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 사랑에만 빠져있는 사람이며, 부부관계로 말하자면 한 남편, 하나님만, 그리스도만, 쳐다보며 사는 지조 있는 여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많은 유혹, 거짓 선지자의 공격, 죽음을 오게 하는 핍박에도 굴복하지 않는 신앙 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2)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라 했습니다. 주님을 나의 목자로 알고 목자가 이끄는 대로 믿고 따르는 자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나의 주인이시오 나의 남편으로 알고, 주인과 남편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자이라는 말입니다. 어린양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간다는 말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내 경험과 내 지식에는 맞지 아니해도 나를 가장 안전하고, 좋은 곳으로 인도하시리라 믿고 따르는 자를 말합니다. 말씀에는 늘 아멘으로 무조건 받아드리고, 말씀 아닌 것은 거절하는 자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라는 주권의 이양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성경을 자기 편리에 따라 취사 선택하는 자는 새 노래를 부를 수 없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3) 구속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되어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라 했습니다. 처음 익은 열매란 그 누구든 하나님께 바쳐진 자를 말합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자란 자기 죄를 회개하고, 죄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합쳐진 한 몸 이룬 자를 말합니다. 바로 이런 자들은 세상에 속한 자라 그 이상 아니며,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4) 그 입에 거짓이 없고 흠이 없는 자라 했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사회에서는 예수 안 믿는 척하고도 주일에는 교회 생활을 하는 그런 자가 아니란 말일 것이며, 부부간에, 노사간에, 스승과 제자간에, 통치자와 국민간에 쉽게 거짓말을 하는데 그런 사람이 아닌 자란 말일 것이며, 철저하게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며 자기를 철저히 지키는 그런 자란 말일 것입니다. 이런 자들만이 새 노래를 부를 수 있고, 아니 이런 자들만이 시온으로 표현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에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우리의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해줍니다.

 

새 노래를 부르라는 교훈입니다.

Fany J. Crosby 여사는 맹인이었는데, 그리스도를 믿는 즐거움에 견딜 수 없어서 6,000편 이상의 찬송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백하기를 “나는 남들이 모르는 축복을 홀로 누린다”라고 고백을 해오고 있는데, 그 분이 지은 찬송시중 “십자가로 가까이 나를 이끄시고,”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말 들으사,” “후일에 생명 그칠 때”를 지으신 분인 것입니다. 새해 새 아침부터 우리 모두는 이분과 같이 남들이 모르는 축복을 누리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하고 감사하여 찬양하고, 새 노래를 부를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만 향한 찬송, 은혜에 감사하여 마음과 뜻을 다한 찬송, 때로는 적셔지는 눈물을 가지고 부르는 찬송, 남이 들어도 큰 은혜를 느끼게 하는 찬송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찬송은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즐겁게 해 드리는 능력이 있고, 내 영혼을 살찌게 하는 능력이 있고, 내 육신의 병을 치유하는 능력도 있습니다.

어떤 암 환자의 진단을 내렸던 의사가 얼마 후에 다시 그 환자를 진단했는데 암이 없어졌기에, 어떤 치료를 받았느냐고 하니 찬양밖에 한 일이 없다고 대답했답니다. 찬양에는 이런 능력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로지 하나님만을 향한 찬양, 죄를 회개하고, 구속받은 자의 찬양, 그 입에 거짓이 없는 진실된 찬양,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내게 손해가 나도 따르는 자의 찬양, 세상의 어려운 시련에서도 이겨내고 심지어 순교라도 각오한 자의 마음에서 울어 나온 찬양은 바로 새 노래이며, 이 새 노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내 영과 육을 새롭게 하는 능력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같은 찬송이라도 부르는 자에 따라 새 노래가 될 수도 있고 헌 노래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찬송을 가지고도 일평생 헌 노래만 부르고 마는 자가 있고, 새 노래로 부르는 자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늘 나라에서 144,000명의 찬양 대열에 끼어 새 노래를 영원토록 부르게 됨을 믿고, 새 노래를 부르시는 성도들 되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