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 대한 설교 제목은 “다시 오실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에서는 주님을 ‘알파요 오메가이시다’라고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알파는 희랍어 알파벹의 첫 자요, 오메가는 마지막 자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처음과 나중이란 말이 되겠습니다. 처음과 나중이란 의미는 폭넓게 해석되고 적용되리라 봅니다. 저는 처음과 나중을 주님께서 어린아이로 말구유에 오심과 세상 끝에 다시 오실 재림으로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신약성경의 맨 앞에 있는 책이 뭐지요? 마태복음. 이 책 맨 앞에 있는 장은 1장의 골자는 예수의 초림, 즉 처음오심에 대해서입니다. 1:25 “아들을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또 신약 마지막 책이 뭐지요? 계시록. 계시록 마지막 장이 22장. 22장의 결론과 끝인 20절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신약성경의 골자는 주님의 초림과 재림이며. 이 골자의 교훈은 육체로 오신 예수를 믿으라는 것이며 다시 오실 재림, 즉 예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을 놓고, 아무리 좋은 교훈을 받아 생활에 많이 적용했다 하더라도, 신약성경의 핵심인 초림과 재림에 대한 확신이 빠진다면 그 많은 훌륭한 설교는 알맹이 빠진 껍질이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재림의 약속이 몇 번쯤 나올 것 같아요? 318번 나온답니다. 매 25구절마다 한번씩 나온 셈이 된답니다. 이미 요한 계시록에서 만도 여러 번 강조되었는데, 특히 오늘 본문은 다시 오실 주님의 모습을 생생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계시록 마지막 부분이기 때문에도 그렇겠지만 오늘 본문 19:11에서 20:15까지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 즉 주님의 최후의 승리를 소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의 여섯 절에서 각 절마다 재림의 주님의 모습을 어떻게 소개해 주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설교 끝난 다음에 종이에다 재림의 주님의 모습을 그대로 잘 그릴 수 있도록 잘 경청하시기 바랍니다.
[1] 11절은 재림,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개입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성령에 감동되어 계시를 받고 환상을 보게 되는데 하늘이 열리더니 백마와 그 탄 자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로마 나라에서 전쟁에서 이긴 개선 장군은 흰말을 타고 왔다고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주님은 승리자, 사단을 정복한 정복자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을 충신과 진실인데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고 소개됩니다. 충신이란 그가 다시 오시겠다고 여러 번 약속하셨는데 그의 약속을 믿을 수 있는 분임을 강조한 것이면, 진실이라고 표현된 것은 약속대로 현실로 나타나게 될 것을 강조한 말씀이라 하겠습니다. 그가 공의로 심판하여 싸운다 했는데, 공의란 말씀을 선포했는데 그 말씀에 따라 법에 따라 심판하므로 공정 하라는 것입니다. 믿는 자는 구원 얻고 불신자는 공의로운 심판을 받는다고 이미 여러 번 예고되었으므로 그의 심판은 공의롭다는 것입니다.
[2] 11절에서 백마를 탄 승리자 예수로 소개됐는데, 12절에서는 눈이 불꽃같고 많은 면류관을 쓴 재림주의 모습입니다. 이미 계시록 처음에서 주님의 모습이 소개될 때 불꽃 같은 눈을 가지신 분으로 소개되었는데 불꽃 같은 눈이란?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는 눈, 그 앞에서도 아무 것도 숨길 수 없는 그런 눈입니다. 그러므로 잘못 보았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실수란 전연 없는 분이며, 많은 면류관이란 여기서는 왕관으로 만 왕의 왕이신 모든 나라의 왕이신 재림 주라는 의미로 받아야 하겠습니다.
[3] 13절에서는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보통 피, 붉은색 그러면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피, 속죄 그런 뜻으로 풀려고 하는데 성경에서는 두 피가 있습니다. 주님의 속죄의 피, 또 하나는 복수의 피입니다. 예수님이 백마를 타고 오셨다는 말은 원수들을 다 잡아죽이고 승리했기 때문에 원수들의 피가 옷에 묻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피 뿌린 옷이란 심판의 피인데 심판의 기준은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설교 시작 부분에서 처음과 나중이야기를 했는데 요한복음1:1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고 하여 주님이 태초에부터 계셨고 주님은 말씀, 즉 Logos라고 하여 말씀으로, Logos로 초림하셨던 주님이 Logos로 재림하신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말씀을 가지고 오셔서 이미 전했으므로 이제 그 말씀을 가지고 심판하시게 된다는 말인 것입니다.
[4] 14절에서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 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했는데, 그가 누구일까요?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도 승리자로 백마를 타고 흰 세마포 옷을 입으셨는데, 그를 힘입어 승리한 성도들도 그와 같이 흰말을 타고 흰 세 마포 옷을 입고 따른다는 것입니다. 즉 주님이 승리한 성도들의 안내자, 지도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흰 세마포 옷을 뭐라고 했지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 했지요?
[5] 15절에서는 “그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라”고 합니다. 이한 검이 무엇입니까? 날카로운 검, 양쪽에 날이 선 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의 권세로 사단의 세력을 쳐부수되, 하나님의 참아오신 모든 화를 무섭게 퍼부어 철장으로 그릇을 부수듯 전멸시키겠다는 것입니다. 무서운 심판을 상징해 주고 있습니다.
[6] 마지막 16절은 “그 옷과 다리에 이름이 쓴 것이 있는데 만 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고 쓰여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왕이시요, 주님이시며, 그 사실을 믿고 그를 예배하여 그를 왕으로 믿었던 모든 자는 그의 백성들이 되어 주님이 다스리시는 나라가 이뤄지리라는 것입니다. 세상 철학자, 과학자, 정치가들이 이뤄보려고 한 Utopia가 주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에서 이뤄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 11절- 16절까지에서 얻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우리 신앙 생활에 적용할 것이 무엇입니까?
날마다 재림의 예수, Logos로 오실 재림의 예수를 소망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작년에 기독교 역사상 참 잘한 Campain이 있었는데, ‘예수님 오신다’는 캠페인이었습니다. 다만 어느 날 오신다고 날짜를 못 박고 그날 예배당 앞에 주님 어서 오십시요라고 아치를 세워 놓고 여자는 햐얀옷들을 지어 입고 신랑 예수 맞겠다고 기다렸던 것이 문제였지요. 햐얀옷이 성도들의 옳은 행실인데, 진짜 하얀옷을 지어 입었으니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재림 예수를 잘못 안 결과이지요. 그러나 그날 오신다고 떠들어 댔으나 결과적으로 그날 오시지 않았는데, 그 결과로 주님이 결국 재림하지 않는다는 안도감으로 변했다면 신앙에서 암이 걸린 것이라 해도 되겠습니다.
요사이 동부에 금세기에 가장 험악한 폭등이 불고 눈이 많이 쌓여 수많은 사람이 죽었지요? 눈이 녹으면 홍수가 나서 오히려 지금 받은 피해보다 더 큰 피해가 예상된다고 하지요.
마지막 때인 것은 신자나 불신자가 느끼고 있습니다. 신앙인 우리들은 아니 말씀을 분간하는 우리로서는 날마다 재림 예수를 연상하며 신앙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탄절에 강조된 아기로 오신 예수로, 아니 병든 자들 낳게한 오 천 명을 먹이신 이적을 베푸신 주님만으로 강조되고 있는 것은 기독교의 유치원에서 가르쳐져야 할 것이며, 기독교의 대학교에서는 부활의 주님 재림의 주님이 강조되어 이 세상은 끝나고 우리의 모든 원수도 갚아주시고 억울한 것 갚아 주시며 우리의 육체를 벗어나 영적 부활의 상태에서 행복하게 살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에 소망을 두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부활절이 돌아오겠는데 주님의 부활만 강조되지 말고 그들 믿는 우리도 부활하게 되리라는 소망을 심어주어 육의 몸을 벗어 육의 고통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살게될 산 소망을 심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부모 잘 만나, 남편 아내 잘 만나, 운이 좋아 날마다 행복하다고 느끼며 우리 각자도 흰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주님이 인도대로 따라 살게될 포부를 갖고 어려운 이 세상 살림을 충분히 이겨나가야 합니다. 종말론이란 예수의 재림을 꼭 비관론이요, 부정적인 사고로 표현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재림은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요, 내게 주는 능력이요, 기쁨입니다. 슬픔의 선포가 아니라 기쁨의 선포입니다. 말씀으로 다시 오실 로고스로 재림하실 주님을 소망하며 날마다 말씀을 상고하고 묵상하며, 말씀 따라 살아가서 주님오실 때 백마를 타고 주님을 따라가는 성도들 되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